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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의 아트테크-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3)] 남성희 대구보건대 총장의 인당뮤지엄 

녹슨 외형의 목재 미술관, 캠퍼스에 아트로드를 그리다 

학생과 지역민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교육·예술 체험 제공
문체부 주관 박물관 사업 프로젝트에 다수 선정된 미술관


▎남성희 대구보건대 총장의 컬렉션에는 현대미술계의 주목받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있지만, 글로컬 작가에 대한 애정이 더 깊다. 그는 성장 가능성 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지주 제공한다. / 사진:인당뮤지엄
미술컬렉터는 작가를 키우는 사람이자 미술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다. 컬렉터가 없으면 제대로 된 미술관을 설립하기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컬렉터가 기증하는 미술품이 아닌 국민의 세금과 후원금만으로 주요 미술관의 전시실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내에서 미술품을 수집하는 대표적인 곳은 국공립 미술관과 기업 산하 미술관 그리고 문화재단이다. 공공미술관이나 문화재단은 작품 구입 예산을 일정부분 확보해 미술품 수집에 나선다. 반면 개인 컬렉터의 수는 아주 미미하다. 고정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하는 개인 컬렉터들도 일정 기간 수집이 끝나면 한동안은 수집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 의한 자연스러운 미술 시장의 형성과 발전을 기대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미술관이 많이 설립돼 다양한 현대미술을 수집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상 사립미술관 설립을 통한 미술품 구입 유도는 국가의 정책과 맞물려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상당한 시일과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에 만난 컬렉터는 개인 컬렉터다. 그가 학교 내에서 운영하는 특별한 미술관을 소개한다.

인당뮤지엄은 대구 북구 대구보건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다. 녹슨 철판으로 미니멀하게 구축된 건축물 외관이 방문자의 시선을 확 끈다. 한국건축문화대상(2001) 수상 경력의 김종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작품이다. 뮤지엄으로 가는 길 주변엔 대형 조각품이 캠퍼스 건물과 건물 사이 그리고 야외 잔디광장에 포진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조각이 설치된 대학 캠퍼스에 꼽힐 정도다. 뮤지엄 야외 잔디광장에는 국내 최고의 조각가 문신의 ‘생의 기원’을 비롯해 박석원, 곽훈, 이배, 디트리히 클링게, 이환권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오가는 학생들에게 휴식과 색다른 조형적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창의적인 발상을 키우는 데 직·간접적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 주민들에게도 가까운 곳에서 좋은 예술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학 캠퍼스 안에 유명 작가 조각 작품 즐비


▎인당뮤지엄은 대구 북구 대구보건대학교 캠퍼스 안에 위치해 있다. 캠버스로 걸어 들어가는 길, 녹슨 철판으로 미니멀하게 구축한 건축물 외관이 시선을 끈다. / 사진:인당뮤지엄
뮤지엄 내부로 들어서면 크고 작은 전시 공간이 총 6실(제1~제5전시실, 로비) 있다. 수집 유물을 보관하는 수장고 2실을 비롯해 작업실, 사무실, 자료실 등이 갖춰져 있다. 1층 한쪽에는 인당뮤지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와 뮤지엄의 첫 수집작품이 설치돼 있다. 자료를 살펴보면 “인당뮤지엄은 인당(仁堂) 김윤기 박사가 수집해 박물관에 기증한 장롱과 궤 203점을 비롯해 조선시대 목가구와 유물 5000여 점을 바탕으로 한 지역 전문대학 최초 등록 박물관이자 목가구 중심 전문박물관으로서 2004년에는 ‘대구아트센터’로 탈바꿈했다. 2007년에는 대구시 제1종 전문박물관 ‘인당박물관’으로 등록됐고, 소장유물전과 현대미술작품 등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문화 예술 공간 역할에 충실하고자 2016년에는 ‘인당뮤지엄’으로 명칭을 변경했다”라고 쓰여 있다.

2005년 개관특별전 인당박물관 소장, 수집 유물전 ‘한국의 장롱-집 속의 집, 방 속의 방’ 개최를 시작으로 2006년에는 ‘한국의 궤-조선 목가구의 무게 중심’ 전시가 이뤄졌다. 2022년에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윤희초대전-non finito’,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추상세계를 그려내는 ‘오수환초대전-無我行무아행’ 등 총 46회 전시를 기획해 성황리에 진행했다. 개관 이래 누적 관람객만 6만8099명이다. 2021년 대구보건대 50주년 기념 전시인 이배 작가 전시에는 BTS RM이 방문해 작품 앞에서 찍은 사진이 알려지기도 했다. 독일 출신 설치미술가 오트마 회얼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초대전을 과감하게 유치함으로써 관람객이 매년 늘고 있다.

인당뮤지엄은 인당 김윤기 박사가 전통 목가구와 유물을 수집한 것이 컬렉션의 기초가 됐다. 그 후 근대미술 작품 중심으로 컬렉션을 진행해왔고, 현재는 남성희 대구보건대 총장의 손길로 근현대 작품으로 확장, 국내외 작품까지 다양하게 컬렉션하는 중이다. 인당뮤지엄 50주년 기념 도록 [만향]에 수록된 목록을 보면 ‘파트1’에는 목가구와 유물 그리고 우리의 옛그림 석파 이하응 10폭 병풍, 겸재 정선이 수록돼 있다. ‘파트2’에는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김환기, 이대원, 도상봉, 문신 등 근대미술의 중심이 되는 작가들의 작품이, 현대 작가로는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하종현, 김창열, 서승원, 최병소, 곽훈, 남춘모 등 동시대 미술계에 영향력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뮤지엄 야외 잔디광장에 설치한 조각 외에도 권진규, 전뢰진, 최종태, 윤영자, 최인수, 이수경 등 주로 조각 작품 컬렉션 비중이 높은 것도 알 수 있다.

미술을 사랑해 취미로 시작한 게 컬렉션으로


▎남 총장의 특별 컬렉션으로는 변종화 작가의 작품이 있다. 1973년 감염병 예방을 위해 제작한 크리스마스 씰에 실린 작품 이미지의 원본이다. / 사진:인당뮤지엄
남 총장과 인터뷰한 집무실도 마치 미술관처럼 보였다. 복도와 회의실 등 곳곳에 회화와 조각이 어우러져 있다. 박선기의 조각은 공간에 맞게 주문 설치된 작품이었다. 고암 이응로 작가의 양면 드로잉을 보여주기 위해 총장이 직접 디자인한 전시대가 주목을 끈다. 또한 제주 반닫이 위에 권대섭 도예가의 대형 달항아리가 올려져 있어 전통 목가구와 현대 도예 컬렉션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서승원, 이배, 이건용 작가의 회화와 이수경 작가의 조각 등이 적절하게 설치돼 있다. 이처럼 다양한 컬렉션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남 총장은 학교 다닐 때부터 미술시간을 좋아했고 그림을 잘 그렸는데, 특히 이화여고에 다닐 때 미술 선생님이었던 실력자 곽훈, 김차섭 등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곽훈 작가와는 인당뮤지엄에 초대하면서 사제 인연이 작가와 컬렉터로의 인연으로 확장됐다. 남 총장의 본격적인 작품 컬렉션은 결혼 후 시작된다. 남편이 근대미술을 좋아해 그 분야에도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부부는 미술관과 갤러리, 옥션 그리고 작가의 작업실을 동행하며 컬렉션 취미를 공유했다.

남 총장의 개인적인 컬렉션 취향은 현대미술이다. 컬렉션 작가들은 앞에서 언급하듯이 현대미술계에 주목을 받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있지만 글로컬 작가에 대한 애정도 깊다. 지역에 거주하면서 성장 가능성 있는 작가를 발견하면 대작을 갤러리에 전시하기 어려운 작가를 위해 전시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게 전시한 작가들이 박종규, 박철호, 권오봉, 권기철 등이다. 이 중 몇몇 작가는 주요 갤러리에 전속돼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해외 작가도 컬렉션하지만 국내 작가에 더 애정을 더 갖고 있다고 했다.

남 총장은 자신이 컬렉션한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다. 또한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신중하게 작가를 연구하는 편이다. 관심 있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고 시기별로 중요하고 좋은 작품을 컬렉션하는 데 집중한다. 컬렉션 종류는 회화가 주축이지만 조각의 비중도 높다. 조각은 벽면 외에도 공간이 있으면 설치할 수 있고 장식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작품에 들어가는 노동에 비해 가격이 좋은 점도 컬렉션에는 이점이다. 오래전 남 총장이 예술의전당에서 김종영 선생의 전시를 봤을 때 가슴 설레며 구입한 작품부터 최종태, 전뢰진, 민복진, 최만린, 권진규 등의 작품도 대부분 20여 년 전에 구입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고가구나 골동품을 봐왔기에 자연스럽게 입체적인 설치예술에도 관심이 이어진 것으로 보였다.

남 총장은 대구미술관에 변종화 작가의 수련 시리즈 작품 7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특별한 컬렉션으로는 동일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1973년 감염병 예방을 위해 제작한 크리스마스 씰에 실린 작품 이미지의 원본이다.

코로나19 시기에는 VR 등 활용해 비대면 전시

인당뮤지엄은 대학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이점을 살려 특별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다. 2016년 처음으로 도입된 인당서포터즈는 재학생들을 선발해 뮤지엄의 전시, 교육 등을 서포트하고, 조각공원에 설치된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 프로그램 ‘얼굴을 듣다’ 전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신입생들의 학교 생활 적응을 도우면서 교내 작품에 대한 이해와 문화·예술적 소양 함양에 힘쓰고 있어 교내 투어로 각광받고 있다.

2017년에는 정형화된 교육을 넘어 오감으로 체험하고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박물관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대구광역시 주민 연합형 대학육성사업과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문화체육관광부 주최·한국박물관협회 주관)’에 선정됐다. ‘대학박물관 진흥지원사업(문체부 주최·한국대학박물관협회주관)’에도 4년 연속 선정돼 전통 목가구를 활용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020년에는 문체부가 주관하는 박물관 지원사업 중 ▷문화가 있는 날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대학박물관 진흥지원사업 ▷학예인력지원사업 ▷교육인력지원사업 ▷예비학예인력지원 사업 등 총 6개 부문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코로나19로 박물관 접근성이 좋지 않았을 때도 메타버스 시스템을 활용해 VR(가상현실) 전시, 도슨트·전시 연계 프로그램 등 비대면 프로그램을 활성화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내외 참여율을 높였다. 이처럼 인당뮤지엄은 학교에 위치한 뮤지엄이라는 특성을 살려 학생들과 지역 주민, 글로컬 작가들을 흡수하며 글로벌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활동의 중심에는 40년 넘게 수집한 남 총장의 컬렉션이 밑바탕이 됐다.

미술품은 작품이 가진 예술성을 바탕으로 소비자로 하여금 장식 면에서 미적·지적 만족감을 갖게 한다. 장식용 작품은 ‘공간을 꾸미는 그림’을 말한다. 컬렉터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미술품은 가장 필요한 공간을 아름답게 장식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시작된다. 존 러스킨 (John Ruskin)은 “진정한 장식의 조건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그 위치에서 장식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며, 나아가 건물의 다른 부분의 효과에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런 면에서 인당뮤지엄은 아주 효용성이 높은 캠퍼스 아트로드라고 할 만하다.

※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전 현대백화점 현대아트갤러리 수석큐레이터.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했으며, 추계예술대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행정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여주시 명장심사 도예파트 자문위원이며 ㈔한국 지역문화학회 감사로 있다. 대학과 기업에서 미술시장과 투자 등을 강의하는 한편 미술비평 등 글쓰기와 컬렉터 인터뷰를 병행하고 있다.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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