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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10)] 국내 최고 한복 장인 박술녀 디자이너 

“전통의 멋과 현대적 감각의 절묘한 조화” 

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씨 門下에서 한복 대중화 꿈 키워
전통미 살리되 현실에 맞춘 디자인으로 국내외 스타들에 인기


▎한복 디자이너이자 연구가인 박술녀씨는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한복 장인으로 꼽힌다. 그의 한복은 전통의 멋을 간직하면서도 고루하지 않고, 세계인 누구나 입어도 우아한 맵시를 살려낸다. 2월 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술녀한복’에서 그동안 수집해온 비단을 배경 삼아 포즈를 취했다.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67)는 대한민국의 ‘1인 1 한복’ 시대를 꿈꾼다. 지금은 ‘박술녀’란 이름 석자가 브랜드고 명성도 자자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복 장인이 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한복을 유난히 좋아했던 어머니의 권유로 어린 나이에 한복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본명 이은임)를 TV와 잡지 기사로 접하면서 한복인의 꿈을 키웠고, 어렵게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겨울에는 내복을 세 겹 껴입고, 새벽까지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바느질을 배우면서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어려웠던 그 시절이 큰 자양분이 됐다고 말한다. 그렇게 6년의 수련생활을 끝내고 독립해 작은 한복집을 차려 본격적으로 한복인의 길을 걸었다.

가게는 문을 열자마자 문전성시를 이뤘다. 눈으로 볼 때 예쁜 것은 기본이고, 입었을 때 옷의 맵시와 편안함을 추구했기에 입소문이 났다. 한복을 지어 판다는 생각보다 한 벌을 맞춰도 오래 소장할 수 있도록 본인에게 맞는 컬러를 선정하고 제대로 만들었다. 그렇게 거짓 없는 옷을 만들며 한복 외길을 걸어온 세월이 어느덧 45년째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해 청와대에서 파격적인 콘셉트의 한복 패션 화보촬영이 있었던 것에 대해 “한복 같지 않은 드레스에 꽃신만 신으면 한복인가, 더구나 세계인들이 관심을 갖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꼭 그래야만 했는지 안타깝다”고 여러 매체를 통해 토로했을 것이다.

전통 한복의 국제화와 대중화는 박술녀 장인의 오랜 꿈이다.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한복을 홍보하는가 하면, 해외에서 현지인 모델로 한복 패션쇼를 개최해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다. 외국 사람이 입어도 잘 어울리는 한복의 맵시는 박술녀만의 손맛과 그의 열정에서 비롯된다. 이런 점이 국내 유명인들뿐 아니라 앤디 워홀의 수제자인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라샤펠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제이슨 므라즈와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방한했을 때 박술녀의 한복을 찾는 이유는 아닐까. 국내 유명 연예인 중에서도 박술녀 한복을 안 입어본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물론 이런 스타 마케팅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도 있겠지만, 한복의 국제화와 대중화를 위해 겪어야 할 일일 터다.

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 선생 보며 꿈 키워


▎국내외 유명 스타들도 박술녀 한복 마니아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앤디 워홀의 수제자 데이비드 라샤펠, 할리우드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보이그룹 BTS, 팝 가수 제이슨 므라즈가 그의 옷을 입고 한복에 매료됐다. / 사진:박술녀한복
박술녀 장인이 민족의 얼이 깃든 한복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서 2년간 출토 복식을 공부하면서부터다. 우리 한복은 옷고름의 길이와 치마, 저고리 색, 소매 끝동 등으로 아들이 있거나 기혼 여부를 표시한다. 우리 한복은 고대 한반도 유목 민족 스키타이계 문화의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 부쩍 중국이 한복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무적인 것은 한복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故) 김자옥 배우가 평소 입었던 한복을 수의로 입은 것도 관심을 높인 계기가 됐다.

한파가 잦아든 2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박술녀 한복’에서 박술녀 장인을 만났다. 몸이 안좋아 갑상샘 수술을 할 때도 평생 모은 비단 걱정부터 앞섰다는 박 장인의 남다른 한복 사랑을 들었다.


▎박술녀 한복 연구가는 한복의 세계화를 위해 해외에서 퍼포먼스를 벌여왔다.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한 파리 화보. / 사진:박술녀한복
한복을 처음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머니께서 한복을 무척 좋아했다. 막내 여동생을 등에 업고 물에 젖은 무거운 생선을 팔러 다닐 때도 몸뻬 바지에 한복 저고리를 입었고, 먼 친인척이 결혼하면 집에 돌아와 한복으로 갈아입고 가셨다. 어릴 적부터 개구리 잡는 기술이라도 꼭 배우라고 하셨는데, 우리나라 옷은 나라가 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고, 특히 한복 기술을 배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방직공장도 다녔다. 어머니 뜻에 따라 한복을 지금까지 지어오고 있고,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박술녀 하면 한복, 한복하면 박술녀를 생각할 정도로 45년 동안 한 우물을 파면서 걷고 있다.”

스승인 이리자 선생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이리자 선생님이 TV에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한복을 꼭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꿈을 키웠다. 선생님은 그 당시에 화보도 찍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패션쇼도 많이 했다. 잡지에 나온 선생님 기사는 모두 사서 모아두고 볼 정도로 5, 6년 혼자 사모했다. 선생님 문하생으로 가려고 3년 동안 미싱을 배웠다. 그러다가 45년 전에 선생님 댁을 무작정 찾아갔다. 처음엔 안 받아줬다. 세 번째 찾아갔을 때 직원 한 사람이 그만둬 인연이 될 수 있었다. 공부는 싫었는데 한복 기술을 배우려는 열정은 몹시 컸다.”

중국이 비단 사재기한다는 소리 듣고 우리 비단 사 모아


▎박술녀씨는 자신이 직접 지은 한복을 입고 찍은 가족사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 꼽는다. / 사진:박술녀한복
이리자 한복과 박술녀 한복을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이 있다면?

“선생님은 천재적인 감각을 갖고 계셨다. 한복에 수도 많았고, 그림도 많이 그려 넣었다. 베레가 넓고, 고름도 넓었다. 한복도 문화니까 계속 변해간다. 한복을 50년 세월 입어보니 불편한 것들이 있어 현실에 맞게 가다듬고 있다. 고름이 너무 넓거나 길면 불편해 줄였다. 소매도 넓으면 밥 먹을 때 음식에 닿기도 하고, 일할 때 불편해 좁혀가고 있다. 반면에 동정은 목선이 길고 가늘게 보이고, 얼굴이 작게 보이도록 좀 넓게 하는 편이다. 선생님 한복과 다른 점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저고리 장식 부분이다. 몇 년 전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배우들이 입은 한복 저고리에 장식을 처음 시도하고 특허를 받았다. 사람들이 볼 때 저 한복은 박술녀 한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저고리 동정 바로 옆 장식은 이제 제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경주처럼 유명 관광지나 고궁 주변에 한복 대여점이 많은데 대부분 중국에서 제작해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서 경복궁을 한 10년 정도 안 나갔는데,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랜만에 고궁에 나갔는데 대여 한복을 입고 촬영하는 사람 중 외국인이 거의 80%였다. 외국인들이 대여해 입은 그 한복이 대한민국의 전통 옷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안타깝고 아쉽다. 중국에서 우리 비단을 많이 사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빚은 나중에 갚더라도 우리나라 비단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수십 년을 모으다 보니 건물 곳곳에 가득 쌓여 있고, 심지어는 물탱크에도 비단이 들어 있다. 힘들지만 앞으로도 비단을 계속 사 모을 생각이다.”

BTS뿐 아니라 국내외 세계적인 스타들이 박술녀 한복을 입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은?

“BTS는 초창기 신인 때 우리 한복을 입었다. 그 외에도 박진영, 비, 고수, 김희선, 김남주, 김연아, 박세리 등 많은 유명인이 박술녀 한복을 사랑해주셨다. 안정환, 류현진, 박지성 선수 등 결혼할 때 한복을 입은 운동선수들도 많다. 그리고 ‘유느님’이라고 하는 유재석씨 부부도 결혼할 때 우리 한복을 입었다. 사실 한복은 누가 입어도 아름다운 옷이다. 제이슨 므라즈, 브리트니 스피어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우리 한복을 너무나 아름답다고 했다. 행사를 끝내고 숍에 찾아왔다. 핑크색을 좋아한다기에 핑크색 신발 하나를 선물로 줬더니 미국으로 돌아가서 고맙다고 친필로 편지를 써서 보내왔던 기억이 난다. 앤디 워홀 수제자인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라샤펠은 하얀 누비바지 저고리에 까만 조끼를 입었다. 유명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을 묻자 박술녀 한복을 입고 촬영한 것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청와대 촬영 논란에 “드레스에 꽃신이 한복인가”

지난해 청와대에서 잡지, 한복 화보 촬영을 한 것에 대해 쓴소리를 내셨더라.

“사실, 칭찬을 하고 싶지 그 누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싶겠는가? 웬만하면 그냥 아무 소리 안 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퓨전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까지라면 용납이 되는데 너무 지나쳤다. 누가 봐도 한복 같지 않은 드레스에 꽃신만 신겼으니까, 제가 ‘드레스에 꽃신만 신는다고 다 한복이냐?’ 뭐 그런 얘기를 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 그런 화보를 찍었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자리가 자리인지라, 그곳에서 우리 전통을 제대로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45년 한복 외길을 걸어왔다. 지금은 제 말에 울림이 있을 때가 됐기 때문에 너무 뒤에 물러서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이야기를 하게 됐다.”

김자옥 배우가 평소에 입었던 한복을 입고 떠났다. 수의로 한복을 입는 사람이 많은가?

“김자옥 배우 말고도, 그동안 일반 고객도 많았다. 일본에서 여행 온 40대 여성이 있었다. 처음에는 결혼을 안 해서 한복을 멋있게 입고 싶어 맞춘다고 했는데 나중에 유방암으로 얼마 못 산다고 했다. 어느 날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면서 한복을 좀 갖다 줄 수 없느냐고 연락이 왔다. 그 한복을 입고 떠났다. 은행 고위직 여성분도 있었다. 한 번도 자기 몸에 명품을 걸쳐본 적이 없는데, 마지막 가는 길에 박 선생님 한복을 입고 싶었다고 친구하고 같이 왔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김자옥씨 상황은 잘 몰랐는데 어느 날 개그맨 이성미씨 한테서 전화가 왔다. 김자옥 언니가 운명했는데 생전에 박 선생님 한복을 입고 갈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까만 치마에 화려한 초록 저고리를 대종상 영화제에서 입었는데, 화보 찍을 때도 입었고, 하얏트 호텔에서 패션쇼를 할 때도 입었다. 세 번을 입으셨길래 선물로 드렸던 옷이다.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나일론이 섞이면 안 되니까 한복에 입을 속바지를 비단으로 만들고, 조바위, 오낭 등을 만들어 예쁘게 입고 떠나실 수 있도록 가져다드렸다. 평소에 자신이 좋아했던 한복을 수의로 입고 떠난 분들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이 있다면?

“어느 날 여름인데 일거리가 너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 한복과 친정 가족들 옷을 모두 다 만들었다. 그 한복을 입고 촬영한 가족사진이 있다. 어머니는 그날 촬영할 때 입었던, 제가 만들어드린 한복 치마에 당의를 입고 떠나셨다. 그 사진도 가장 기억에 남지만 가장 소중한 사진을 한 장만 손꼽으라면 아무래도 우리 가족 사진이다. 우리 아들과 딸이 어렸을 때 한복을 입고 남편이랑 찍은 가족사진이다. 아이들이 가장 예뻤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제 또 언제나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딸도 외국에 있어 그런 시간이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애틋한 사진이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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