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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취재] 대박작은 죄다 넷플릭스? 국내 OTT 활로 있나 

넷플릭스 잡으려다 1000억원대 적자… 토종 OTT들 비명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공격적 마케팅 후유증으로 티빙, 웨이브 지난해 영업손실 1천억원 넘어
쿠팡플레이, 드라마 강한 넷플릭스 피해 스포츠 콘텐트로 틈새시장 공략


▎넷플릭스가 글로벌 업계 1위를 공고히 하는 가운데 토종 OTT는 국내 시장에도 제대로 착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중 자본력을 바탕으로 성장 중인 쿠팡플레이가 가장 시장 안착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 사진:gett y images bank
바야흐로 넷플릭스 세상이다. [오징어게임]을 시작으로 올해 화제가 된 [더 글로리], [피지컬100]에 더해 [나는 신이다]가 던진 파장까지 고려한다면, 온갖 화제성 있는 작품들은 전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다만 전 세계 1위 글로벌 플랫폼과 블록버스터급 제작비 지원이라는 달콤한 술수 뒤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즉 작가나 제작자가 아닌 넷플릭스가 지적재산권(IP)을 가진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작품이 흥행해도 원작자는 수혜를 입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국 콘텐트사업의 자산이 유출되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토종 OTT(Over the Top) 업계는 넷플릭스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월간중앙은 유명 제작사와 방송사에서 근무하는 프로듀서 10여 명을 만났다. 이들은 “넷플릭스는 OTT 중에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고 추앙하면서 “국내 OTT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토로했다. 공룡 넷플릭스에 위축되어가는 국내 OTT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넷플릭스, 대규모 제작비 쏟아붓고 기획 단계부터 개입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트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자신의 글로벌 1위 플랫폼 위상을 지키는 첨병으로 활용하고 있다. /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의 강점은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넷플릭스의 제작 환경이 선진적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기자가 만난 국내 중소규모 제작사 PD 모두가 넷플릭스를 비롯한 대형 OTT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했다. KBS와 MBC 예능국에서 근무했던 한 PD는 “최근 방송국에 소속된 PD들조차 OTT용 기획안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어떤 방식으로 제작하기에 하나같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걸까? 우선 제작사에 좋은 기획안이 들어오면 넷플릭스 내 기획부서 인력이 붙는다고 한다. 이들은 기획안을 조금 손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해체해 재조립하는 수준으로 뜯어 고친다. 제작사가 유명인사 섭외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직접 도움도 준다. 여기에 더해 작가진, 세트 디자인 등을 확정해 보내면 제작비 걱정 없이 진행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한마디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잘 짜인 시스템이 운영 중인 셈이다.

넷플릭스가 지적재산권(IP)을 갖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트의 경우 제작비를 100% 지원해주는데, 그 규모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다. 보통 우리나라 드라마 한 편에 드는 총 제작비 규모가 넷플릭스에서는 한 회 제작비라고 보면 된다. 배우들도 OTT 오리지널에 참가할 땐, 출연료를 두 배 이상 부른다고 한다. 실제 넷플릭스에서 방영 예정인 [폭싹 속았수다]의 경우, 주연배우 이지은(아이유)과 박보검의 출연료만 13억원 가까이 지급될 예정이다. 이는 보통 국내 드라마 한 회 제작비와 맞먹는 비용이다. 이 때문에 [폭싹 속았수다]의 한 회 제작비는 50억원대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톱스타인 전지현 주연의 tvn 드라마 [지리산](2021)이 대작으로 분류돼 회당 제작비가 20억~30억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규모 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넷플릭스는 편집 단계까지도 깐깐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작 결과물을 놓고 퀄리티 체크(QC)할 때, 드라마 한 편 확인하는 데만 3개월씩 걸린다고 한다. 오·탈자는 없는지, 장면 편집이 튀는 것은 없는지 반복해서 돌려보는 것이다. 이후 색 보정 및 사운드 조정, 청각장애인용 배리어프리 자막 내용까지도 종합적으로 요구한다.

“더는 천재 한두 명이 제작 끌어가지 못하는 환경”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문화콘텐트·OTT 업계와 간담회를 가지는 한편, 제작 지원 사업을 지난해에 비해 크게 확대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넷플릭스 본사는 지사에 대한 자율성은 최대한 확보해주고 있다고 한다. 넷플릭스 본사에서 애초에 한국지사에 요구한 메시지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 한국에서 먹히는 콘텐트를 만들어라” 단 하나였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 시장에 집중해서 대박 난 오리지널 콘텐트가 [솔로 지옥]과 [오징어게임]이다. OTT 업계에 밝은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를 경험해보면 더는 나영석이나 김태호 같은 천재적인 PD 한두 명이 프로그램을 끌어갈 수 없는 환경이 됐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갈수록 시청자들의 선택이 까다로워지면서 넷플릭스조차 구독 이탈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더 글로리] 같은 대박작이 나오면 신규 가입자가 잠시 늘었다가 시리즈가 끝나면 다시 유출되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제1 원칙은 전편 동시 공개라는 점인데, [더 글로리]가 파트1, 2를 시차를 두고 공개한 것을 보면 넷플릭스도 구독자 이탈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넷플릭스는 드라마 위주의 포트폴리오라는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 [유퀴즈 온더블럭] 같은 롱런할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넷플릭스는 자사의 글로벌 1위를 지키는 첨병으로 한국 콘텐트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더 강화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에만 5500억원을 들여 한국 콘텐트 25편을 내놓았다. 지난해 넷플릭스 가입자의 60% 이상이 한국 콘텐트 1편 이상을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넷플릭스는 올해도 한국 콘텐트 34편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러고 보면 국내의 좋은 콘텐트, 좋은 기획안을 넷플릭스에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에 비하면 국내 OTT 대부분이 아직도 기존 방송 시스템과 제휴하는 시스템으로 연명하고 있다. 방송사는 외주 제작사에 제작비 상당 부분을 지원해주고 방영권과 지적재산권을 갖는 구조다. 보통 제작비의 50~80%를 방송사가 지원해준다. 대신 지적재산권은 방송국에 귀속된다. 이 방송사와 콘텐츠 제휴를 맺어 방영권을 구매하는 것이 토종 OTT의 콘텐트 수급 방식이다. 대표적인 채널이 웨이브(Wavve)다. 웨이브는 지상파 3사가 공동출자해 만들었기 때문에 3사의 콘텐트 방영권을 독점하는 구조다. 하지만 대박 작품이 자주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와 달리 KT가 만든 신생 채널 ENA는 화제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IP를 방송사가 갖지 않고 제작사 ‘에이스토리’에 넘겼는데, 에이스토리는 우영우 IP를 확보한 후 웹툰 등 다양한 시도에 나서고 있다. 국내 대형 제작사들은 제작비 보전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이렇게 IP를 확보하는 것을 선호한다.

국내에서 지적재산권(IP) 보유하는 구조 만들어야

기자가 만난 제작사 PD들은 유력 콘텐트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지적재산권(IP)을 국내에 묶어둘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 OTT 등 방송영상콘텐트 산업 지원 예산으로 1235억원을 책정했다. 제작사업 예산을 지난해 116억원에서 454억원으로 대폭 확대하고, 작품당 지원 단가도 최대 30억원으로 높였다. 문체부 정책담당자는 “영상콘텐트가 우리 문화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어려운 가운데 활로를 개척하는 토종 OTT의 선전도 눈에 띈다. 이들은 넷플릿스가 못 가진 틈새시장(niche market)을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한다. 쿠팡플레이는 지난해 국가대표 다큐멘터리 [로드 투 카타르](2022)를 만들어 재미를 봤다. 넷플릭스가 스포츠 콘텐트에 관심이 적다는 점을 파고들어 스포츠 분야 콘텐트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현재는 K리그 관련 독점 콘텐트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로드 투 카타르] 제작을 맡았던 이원준 플래디 PD는 “[로드 투 카타르]는 쿠팡플레이 안에서 SNL 다음으로 콘텐트 순위 2위를 기록했고, 평점 5점 만점에 4.7점을 받는 등 스포츠 콘텐트로서 반응이 좋았다”며 “쿠팡플레이가 토종 OTT 중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OTT 대부분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CJ ENM의 OTT 플랫폼인 티빙(TVING)은 지난해 영업적자가 1191억원이었다. 앞서 웨이브의 영업손실도 1217억원을 기록했다. 넷플릭스를 잡겠다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데 대한 후유증으로 풀이된다. CJ ENM 관계자에 따르면 티빙의 해외 콘텐트 배급과 제작 사업 두 가지 모두 적자인데, 콘텐트 배급 쪽이 훨씬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현재 CJ ENM은 고강도로 구조조정 중인데, 그 이유가 ‘티빙 적자’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자본력이 열세인 영세한 구조의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올해 토종 OTT들이 넷플릭스를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몰린다.

-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정정합니다

본지는 4월 17일에 발행한 <월간중앙> 5월호(통권 214호)에서 ‘[정밀취재] 대박작은 죄다 넷플릭스? 국내 OTT 활로 있나’ 제하의 기사에서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피지컬100'(2023)이 애초 장호기 PD가 기획한 기획안과 실제 방영본이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업계 관계자들 취재 내용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초창기에는 피지컬 좋은 인물들을 선정해 밀착 팔로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획됐으나, 넷플릭스 기획팀이 출연자들을 한데 모아 콜로세움의 검투사들처럼 대결시켜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냈고, ‘사실상 피지컬100을 관통하는 핵심 콘셉트를 끌어낸 것은 장호기가 아닌 넷플릭스 기획팀’이라고 단정해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장호기 PD와 넷플릭스 확인 결과 위 보도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장호기 PD는 ‘<피지컬100>이 최초 기획안부터 서바이벌 형태로 기획되었고, 최초 기획안 검토를 요청했던 카메라팀, 미술팀, 음악팀, 의상팀, 넷플릭스팀 모두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며 ‘모든 내용은 이전의 인터뷰와 수차례 강의 및 간담회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넷플릭스 또한 ‘처음부터 피지컬100은 본편과 같은 서바이벌 예능 기획이었으며, 최초 기획자인 장호기 PD와 넷플릭스 콘텐츠팀이 기획부터 공개까지 지속적으로 함께 협의해 원만하게 진행한 작품’이라고 장 PD의 주장을 확인했습니다.

당사자인 장호기 PD와 넷플릭스에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지 않고 업계 관계자의 전언을 사실로 단정해 보도한 것은 본지의 명백한 잘못입니다. 장호기 PD와 넷플릭스에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본지는 앞으로 취재 및 제작 과정에서 사실 확인 절차를 강화해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305호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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