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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26)] 이탈리아 코르소에서 만난 ‘넥스트 애플’과 문화의 힘 

돈으로 살 수 없는 평화와 미적 감각이 여기에 있다 

‘애플 코르소’는 로마 한복판에 자리한 영혼의 ‘파워 스폿’
오감 통해 넥스트 애플의 윤곽 감지할 수 있는 명소 예감


▎이탈리아 로마 ‘애플 코르소’ 매장 본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여백의 미가 로마 애플 매장의 특징이다. / 사진:유민호
'챗GPT(ChatGPT)’가 연일 화제다. 한국에서도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챗GPT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정치권에서 테크놀로지가 정통성과 정당성의 증거이자 기반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대 황제에게 주어진 치수(治水)사업에 비견된다고나 할까? ‘테크놀로지를 둘러싼 정책과 비젼=치수에 관한 고대 황제의 통치 능력’으로까지 느껴진다. 한국 대통령과 정치인 모두 관심을 갖고 적극 논의 중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을 기억할 것이다. 2017년 이래 보수·진보정권 불문하고 난리를 친 국가 핵심 산업의 타이틀이다. 촛불혁명과 시민혁명, 심지어 의료혁명에서 보듯 혁명으로 날과 밤을 새는 곳이 한국이다. 그러나 혁명이란 단어로 ‘통 크게’ 장식했다 해도 길어야 2~3년이다. ‘예외없이’ 사라진다. 4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한여름 폭죽처럼 ‘반짝’하더니 지금은 흔적도 없다. 남은 것은 ‘IT 강국 한국’이란 달콤한 ‘국뽕’ 슬로건뿐이다. 4차 산업혁명의 구체적 내용을 보자. 정보사회, 인공지능(AI), 데이터, 스마트공장, 플랫폼에 이르는 최첨단 테크놀로지 키워드가 길게 나열돼 있다. 처음 대했을 때 ‘울트라 IT 백화점 쇼윈도’로 느껴졌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면서 4차 산업혁명이 정치로 변질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눈먼 정부 돈’은 정권과 주변 기생 세력 모두 환호하는 최대 관심사다. 혁명이란 단어가 불거질수록 눈먼 공짜 돈과 불나방이 넘친다.

올해 초 테크놀로지 무대의 키워드인 챗GPT는 AI 응용 기술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미 귀에 익은 4차 산업혁명 각론 중 하나가 챗GPT인 셈이다. 큰 그림으로 보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챗GPT 이상의 고난도 챗 기술도 홍수처럼 밀려들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정치권에서 난리를 치면서 챗GPT가 테크놀로지 미래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다.

엄청나고도 새로운 뭔가가 ‘갑자기’ 등장할 때는 그 이유와 배경에 대해 알아봐야만 한다. 신문과 방송이 퍼붓는 대로 따라갈 경우 그대로 떠밀려갈 뿐이다. 뭔가 갑자기 뜰 때 필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한다. 첫째, 뉴스가 등장하면서 누가 이득을 볼 것인가? 둘째, 어제도 내일도 아닌 왜 지금 이 시점에 이 뉴스가 급부상했는가?

챗GPT 얘기로 좁혀 생각해보자. 필자가 챗GPT에 대해 처음 안 것은 지난해 말이다. 뉴욕타임즈에 챗GPT에 관한 간략한 소개 글이 실렸다. 이후 올 초 뉴욕타임즈 특종 기사 하나가 미국 전역을 달군다. 유명 대학에서 벌어진 부정 시험 사건이다. 학생들이 챗GPT를 이용해 에세이를 작성한 뒤 만점을 받았다는 기사다. 챗GPT로 만든 에세이가 워낙 정교하기 때문에 대부분 속아 넘어간다는 경고도 실려 있다. 곧이어 ‘챗GPT가 문제다’라는 기사와 함께 ‘챗GPT가 대단하다’는 정보가 미국과 전 세계에 퍼져나간다. 두 가지 관점 가운데 어떤 부분이 각광을 받을까? 호기심에 충만한 보통 사람이라면 ‘챗GPT가 대단하다’에 주목할 것이다.

뉴욕타임즈 덕분이지만, 갑자기 챗GPT를 비롯한 AI의 미래가 ‘디스토피아(Dystopia)’로 묘사되기 시작한다. ‘화성인 지구 공격’같은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발전된다. 그러나 아무리 ‘화성인 지구 점령’이 가까워진다해도 인간은 공포 속에서 24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화성인 얼굴이나 목소리, 화성에 관한 궁금증이 도처에서 일게 된다. 삼척동자도 알겠지만, 미래 정보공간은 챗GPT와 같은 AI로 채워질 것이다. 인간을 대신해 AI가 완벽한 수준의 주식 투자 방식을 찾아내고, 피카소 그림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전망, 아니 현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돈은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최고 가치이자 목적 그 자체다. 미래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바로 주식 투자다. 챗GPT 기사가 넘칠 경우 미래를 돈으로 사려는 움직임, 즉 주식 투자도 급증하기 마련이다. 챗GPT 스토리 등장 이후 관련 업계 주식이 급등하고, 비슷한 업종의 신예 AI 스타트업 주가도 급상승한다. 결론으로 가자면 챗GPT 뉴스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바로 AI 산업이다. 돈이 몰리면서 챗GPT 비슷한 IT 기업들이 돈방석에 앉게 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IT 투자가 급감한다. 챗GPT는 그 같은 상황을 반전시킬 구원투수로 볼 수 있다.

챗GPT가 테크놀로지 미래의 상징?


▎애플 코르소 내부 쉼터에는 높이 5m 정도 나무 20여 그루가 듬성듬성 들어서 있다. 전문 조경사가 매일 들러 나무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고 한다. 아주 작은 사안이지만, 완벽을 기하려는 애플의 자세를 읽어볼 최적 증거가 이 공간이다. / 사진:유민호
전 세계 인터넷 무료 프로젝트, 지구 밖 혹성 내 자원 개발, 가상공간(메타버스)을 통한 쇼핑과 업무 추진. 최근 여기저기서 떠돌던 글로벌 IT 기업들의 초대형 프로젝트들다. 주체는 ‘가파(GAFA)’ 또는 ‘빅 포(Big Four)’로 불리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메타의 전신), 아마존과 주변 위성기업들이다. 이들 글로벌 IT 공룡이 주기적으로 뿌리는 환상 스토리는 태평양을 건너는 순간 혁명으로 승격된다. 미래 세계를 장식할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정치가들의 비전 리스트 0순위에 올라선다. 근본적 배경을 살펴보면 결국 돈이 뒤에 있다. ‘뉴스가 등장하면서 누가 이득을 볼 것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투자를 위한 명분으로서의 별천지 뉴스인 셈이다. 지난해 그 난리를 치며 투자객을 그러모았던 메타버스, 가상공간 관련 뉴스를 보자. 재택근무에 기초한 ‘바이러스 프리(Virus Free)’ 테크놀로지로 반짝하더니 지금은 오리무중이다. 가상공간 산업의 선두주자로 통하던 메타는 1만 명 단위의 인원 해고에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화제가 된 만큼 발전하고 진화한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모두가 생각하는 만큼의 ‘혁명적 경천동지’는 아니다. 아직은 불씨만 남은 폭죽처럼 어두운 하늘을 표류하고 있지만, 챗GPT 스토리도 올 여름이 오기 전 사라질 것이다.

IT 기업들, 대량 해고 명분으로 활용


▎애플 코르소는 이탈리아만이 아닌 세계를 향한 애플 청사진 전시관이기도 하다. / 사진:유민호
‘어제도 내일도 아닌 왜 지금 이 시점에 이 뉴스가 급부상했는가’라는 문제를 챗GPT 뉴스로 연결시킬 경우 어떤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결론으로 가자면 경영 합리화를 위한 뉴스로 해석할 수 있다. 좋게 말해 경영 합리화고, 다른 각도로 보면 ‘대량 해고’가 답이다. 챗GPT 뉴스가 등장한 뒤 빅 포의 대량 해고가 줄을 잇고 있다. ‘넘사벽’ 항공모함으로 여겨지던, 세계 최고로 안정되고 급료도 높은 기업이라던 빅 포는 물론 글로벌 IT 기업들의 대량 해고 뉴스가 하루가 멀다고 터지고 있다. 챗GPT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챗GPT같은 AI 시대가 이미 등장한 이상 과거와 같은 아날로그 인력은 불필요하다는 논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키워드만 검색란에 던지면 IQ 140 이상의 세련되고 정확한 답이 나오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사람이 없어도 챗GPT같은 AI만으로도 가능하다. 더 이상 엄청난 인력이 필요 없다. 한국 대통령이 국정 신년사를 챗GPT에게 위임했다는 소식을 1월 말 들었다. 가까운 시일 내 청와대 연설문 담당관 자리도 위태롭다고 보면 된다. 울고 싶은 참에 뺨을 때린 격이라고 할까? 챗GPT의 실력이 하늘을 찌를수록 IT 기업들이 행할 대량 해고 명분으로 활용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투자를 받고, 다른 쪽에서는 대량 해고를 통해 경영 합리화에 나설 수 있다.

연초 이탈리아 로마에 들렀다. 애플 매장이 로마 방문 목적 중 하나다. 챗GPT 뉴스가 전 세계 관심사로 떠올랐던 시기지만, 필자의 관심 대상은 초지일관 하나, 바로 애플이다. 아이폰 신형 모델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최근 로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이다. 2021년 5월 27일 로마 한복판에 이탈리아 내 17번째 애플 매장이 탄생한다. 로마의 중심 판테온 신전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애플 코르소(Apple Via del Corso) 매장이다. 팬데믹으로 유럽 전체가 얼어붙었던 기간 중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새로운 애플 매장이 등장했다. 개장 즉시 곧바로 락 다운(Lock Down) 방침이 시행되면서 폐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를 대표하는 애플 매장이란 권위는 변함없이 유지됐다. 필자는 애플 신자는 아니다. 지금은 골동품으로 처리될 아이폰 1세대를 구입한 이래 5년 정도 애플 모바일에 매달린 기억은 있다. 그러나 이후 시간을 좀 먹는 모바일에서 벗어나는 과정 중 애플 단말기에 무심해졌다.

비록 아이폰과는 멀어졌지만, 필자의 애플에 대한 관심은 어제나 오늘 변화가 없다. 세계 흐름을 바꾸고 변화시켜나갈 인류 최고 최대의 믿음직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필자 판단이지만, 챗GPT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는 서커스 원숭이로 느껴진다. 기묘한 표정과 행동으로 사람들 관심을 끌 존재다. 애플은 다르다. 굳이 예로 들자면 바다 속 고래와 같은 존재다. 사람 흥미를 끌 언행과 무관하지만, 헤엄치는 모습이나 숨 쉬는 광경 하나하나가 가슴 속에 꽂힌다. 애플은 틱톡 스타일 싸구려 관심 끌기 쇼와 무관하다. 한번이라도 바다에서 고래를 만난 사람이라면 바다 속 포유류 동물이 품어내는 거대한 움직임에 몸과 마음이 진동했을 것이다. 애플 매장은 그 같은 고래를 만날 최적 장소다.

애플이 개장한 로마 코르소의 가치


▎‘애플카’ 등장이 초읽기에 들어섰다. 최하 10만 달러에서 출발하는 고가 자율주행 전기차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 사진:맥루머스
3월 기준 세계 25개 국가에 522개의 애플 매장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은 애플 매장이란 게 50보 100보 비슷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상품으로서의 애플 제품에 주목한다면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전 세계에 흩어진 애플 매장 대부분이 ‘사고파는’ 거래소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토지가 제한되고, 건축이 아닌 건물 개념에 익숙한 동양 관점에서 볼 때 ‘애플 매장=아이폰 판매 건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직 서울 매장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도쿄 긴자의 애플 매장을 봐도 모바일 거래 현장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애플 매장 중에는 비즈니스만이 아닌 ‘창조와 미래의 공간’으로 출발한 곳도 적지 않다. 건물이 아닌 건축으로서의 매장이자 주변과 조화를 염두에 둔 공간이다. 애플의 이상과 정신을 읽을 수 있는 애플 문화 정수로서의 매장이라고 할까? 대표적인 곳으로 뉴욕 5번가 이스트 58 거리의 ‘글래스 애플’ 매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긴자 매장과 달리 지적 자극을 경험할 공간이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파워 스폿(Power Spot)’ 현장으로도 느껴진다. 글래스 애플 매장에 들려 현장 공기를 느끼는 것 하나만으로도 21세기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로마 코르소는 뉴욕 5번가 매장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으로 해석될만한 영혼의 파워 스폿 현장이다. 이유는 로마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21세기 들어 한층 더 심해지고 있지만, 모든 예술도 로마로 통한다. 프랑스 파리를 예술의 최고봉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로마의 짝퉁에 불과하다. 루브르(Louvre)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 뮤지엄이다. 프랑스인도 인정하지만, 루브르를 장식하는 간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초상화 모나리자다. 이탈리아 예술가에 의한 이탈리아 여성이 루브르 주인공이다. 모나리자가 전시된 갤러리는 다빈치만이 아닌 이탈리아 16세기 예술가들의 총집합 장소이기도 하다. 티치아노, 베로네세, 틴토레토, 벨리니, 바사노를 망라한 인류 최고 예술가 군단의 작품이 모나리자 주변에 모여 있다. 전부 이탈리아인이다. 예술을 둘러싼 이탈리아와 프랑스 관계는 모나리자만이 아닌 다른 문화 영역 대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00년 남짓한 프랑스 예술사가 길고 긴 2500년 로마의 경륜을 넘어설 수는 없다.

필자 판단이지만, 로마 코르소는 애플의 모나리자에 해당되는 공간이다. 뉴욕 5번가에 등장한 앵글로색슨의 카우보이 매장도 특별하지만, 예술의 나라 한복판에 들어선 애플 최고 역작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가치와 목적을 갖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뉴욕 5번가는 하드웨어로서, 로마 코르소는 소프트웨어로서 애플의 이상과 꿈을 전시하고 있다. 팬데믹과 락다운으로 인해 방문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여행 자유화가 이뤄진 순간 로마 코르소로 직행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최대 매력은 매장이 아닌 밖에 있다

문을 닫기 1시간 전 애플 코르소에 들렀다. 뮤지엄이 그러하듯 사람이 드문 시간에 찾는 것이 좋다. 애플 코르소는 비즈니스 현장인 동시에 로마 역사와 의미가 새겨진 공간이기도 하다. 애플 코르소 주변은 로마에 들른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다. 판테온과 스페인 광장 중간에 위치한 이유도 있지만, 전 세계 명품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명품 가게 앞에 줄 서있는 한국인 모습은 이미 일상적 풍경으로 변한 상태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나타난 수줍은 신부 모습이라고 할까? 해가 넘어간 뒤 접한 애플 코르소의 첫 인상이다. 대리석으로 된 3층 건물로, 불빛에 반사된 대리석 광선이 코르소 거리 전체로 퍼져나간다. 기능성 건물이 아닌 예술성 건축으로서의 공간이다. 유럽 대도시 건축물은 개인 인생사에 준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애플 코르소의 원래 이름은 ‘마리노리(Palazzo Marignoli)’다. 19세기 건축가로 140여 년 전 애플 코르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16세기에 세워졌지만, 1890년대 재건축에 들어간 뒤 20세기 중반까지 로마를 대표하는 카페로 활용된 공간이었다고 한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높고도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천장에는 흔적만 남은 벽화가 들어서 있다. 공간은 인간 상상력을 드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영어 ‘테크놀로지(Technology)’는 고대 그리스어 ‘Techne’와 ‘Logos’의 합성어다. Techne는 ‘기술공예 방법’으로, Logos는 내면으로 표현된 ‘언어 생각’으로 풀이된다. 기술 공예 방법을 내면 언어와 생각으로 나타낸 것이 테크놀로지의 원래 의미다. 수단이나 기능적 측면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동양인도 쉽게 이해할만한 개념이다. 다만 서양에서는 일상적이지만, 동양에게는 낯선 요소 하나가 테크놀로지란 개념 속에 들어있다. 바로 ‘공간·시간 개념’이다. 방이나 건물이 아닌 구조, 구도, 건축이란 개념 속에서의 공간·시간이다. 동양에서 기술 공예 수준은 손놀림에 기초한 숙련도 여부로 결정된다. 서양은 다르다. 숙련도가 떨어져도 공간·시간 개념이 포함됐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그림을 예로 들어보자. 고가의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지만, 어떤 공간에 어느 정도 위치에 걸린 작품인지에 대한 관심은 애초부터 없다. 어디에, 어떤 높이에, 주변 어떤 환경 하의 작품인가에 대한 설명과 해석이 서양 명화의 기본 조건이다. 공간·시간 개념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쉬운 요소다. 애플 코르소 건축을 생활화한 사람과 인산인해 토끼장 건물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의 세계관은 천양지차다.

애플 코르소의 최대 매력은 매장이 아닌 밖에 있다. 건물 내부에 들어선 사각형 자연 공간으로, 애플 제품 전시관과 무관한 쉼터다. 대리석 기둥 안에 높이 5m 정도 나무 20여 그루가 듬성듬성 들어서 있다. 1층이 아닌 만큼 2층에서 입체적으로 내려다보는 것이 좋다. 실내에 나무를 심는 것은 21세기 건축물의 기본 중 하나다. 주의할 부분이 있다. 식수(植樹) 자체가 아닌 심은 나무를 얼마나 잘 가꿀지가 핵심이다. 그린(Green) 예찬론자로 행세하지만, 실제 자세히 보면 반(反)그린주의자가 대부분이다. 심어둔 뒤 관리가 없다. 나뭇잎이 마르거나 손상된 가지가 대부분이다. 초대형 이벤트를 통해 심고 뿌리는 것에는 익숙하다. 그러나 그 이후가 없다. 서울 갈 때마다 느끼지만, 이미 죽거나 바짝 마른 가로수가 너무도 많다. 놀랍게도 애플 코르소 자연 공간 속 나무는 산이나 들판에 들어선 것처럼 싱싱하고 건강하다. 전문 조경사가 매일 들러 나무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고 한다. 아주 작은 사안이지만, 완벽을 기하려는 애플의 자세를 읽어볼 최적 증거가 자연 공간이다.

‘What is Apple’s Next?’ 전 세계 IT기업, 아니 인류 모든 기업의 최대 관심사다. 4월 4일 기준 애플 주식 시가총액은 2조6290억 달러(약 3454조원)에 달한다. 전 세계 1위로, 중국을 대표하는 13개 대기업 시총 전부를 합친 것보다도 큰 규모다. 한국인 귀에 익은 중국 알리바바도 애플 시총의 1할 정도인 ‘새발의 피’다.

고전과 첨단 기기가 연출하는 조화

인류 초유 공룡 기업 애플의 내일은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애플 코르소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키워드는 바로 ‘문화’다. 애플의 내일인 동시에 인류 문명 수준을 드높일 목적이자 가치가 바로 문화라는 단어에 응축돼 있다. 애플 코르소는 인간 내면의 품격을 드높일 공간이다.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평화와 미적 감각이 애플 코르소에 드리워져 있다. 같은 음식이라도 프랑스 자기에 담겨질지, 플라스틱 접시에 올려질지에 따라 180도 달라진다. 고급 가죽이나 현란한 디자인이 1만 달러 명품 가방의 전부가 아니다. 바로 문화다. 유럽 명품 대부분은 역대 왕가나 귀족을 위한 일용품에서 출발했다. 흔히 말하는 역사와 전통을 잇는 장인 문화 결정체가 1만 달러 가방에 녹아있다. 미국 IT 업계의 상식이지만, ‘애플카’ 등장이 초읽기에 들어선 상태다. 최하 10만 달러(약 1억3000만원)에서 출발하는 고가 자율주행 전기차(EV)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테슬라 EV가 이동 자체에 주목했다고 할 때, 애플카는 움직이는 최첨단 문화 아이콘이라 볼 수 있다. 모두가 주목한다는 챗GPT 조차도 애플카와 애플 문화를 보충할 소품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지론인 ‘탈아론(脱亜論)’을 강조하고 싶다. 탈아론에서 ‘아(亜)’는 아시아가 아닌 중국에 한한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중국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21세기형 문화 창조를 따라갈 수 없다. 중국에 매달리면서 중국과 관계를 중시하는 한 품격, 평화, 안정, 안전과 무관한 미래만 기다리고 있다. 싸고 기능적인 부분은 중국이 가진 최고 덕목이다. 그러나 그 같은 기준에만 집착한다면 한국은 120% 중국에 예속될 뿐이다. 싸고 기능적인 부분으로 경쟁할 경우 한국인 100명이 중국인 1명을 당해낼 수 없다. 곧 닥치겠지만, 1000달러(약 130만원)짜리 중국제 EV가 등장할 것이다. 대응할만한 한국 기업이 단 하나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은 이미 고품격 문명 문화가 뭔지 이해하는 나라다. 애플의 내일이 그러하듯, 품격의 문화가 가치이자 목적이다.

애플, 아니 인류가 추구하는 미래 첨단 문화를 알고 싶다면 먼저 로마에 들를 것을 권한다. 아침 일찍 또는 밤늦게 혼자 애플 코르소를 찾아 천천히 관찰하는 것이 좋다. 애플 신제품만 아니라 대리석 환경과 첨단 기기가 연출하는 조화와 평화에 주목하기 바란다. 눈이나 머리만 아니라 오감 전부를 통해 ‘넥스트 애플’의 윤곽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문화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305호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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