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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프로야구 선수 학폭’ 폭로한 박한울씨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박한울(29)씨는 지난 8일 서울 합정역 인근 카페에서 “가해자들이 사과한다면 어떤 조건도 없이 용서할 거다”라고 말했다. 사진 최현목
박한울(29)씨는 최근 SNS에 학교폭력 피해를 폭로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17년 전 학폭, 담임도 학대…가해자는 지금 프로야구 선수〉라는 제목으로 지난 6일 포털 사이트를 가득 메웠던 사건이다.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소재 초등학교 6학년이던 지난 2006년 A씨 등에게 따돌림·폭력·모욕 등 학폭을 당했고, A씨는 현재 프로야구 선수라는 것이다. 당시 담임 교사를 아동학대와 성추행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내기도 했다. 월간중앙은 지난 8일 서울 합정역 인근 카페에서 박씨를 만나 2006년에 있었던 사건을 되짚어봤다.

17년 전 사건을 폭로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표예림씨 사건의 영향이 컸다. 학폭 피해자임에도 자기 목소리를 낸 표씨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시 가해자들에게 사과를 받고 용서함으로써 제 정신 건강을 챙기고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피해 사례는?

“제가 A 선수에게 문화상품권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잊고 있었는데, A 선수는 제가 ‘거짓말을 했다’며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하교한 뒤에도 집으로 가던 저를 쫓아와 추가로 폭력을 행사했다. 축구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너 때문에 우리가 졌어’라며 욕을 하고 달려들어 선생님이 제지한 적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에 학급 친구들 대부분이 가해자들 눈치를 보면서 저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사실과 일부 다르다” 진실은?

당시 담임 교사를 아동학대와 성추행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냈는데.

“한날 친구에게 맞은 후유증으로 ‘체육 활동이 어려울 것 같다’고 담임 교사에게 말했는데, 당시 가해자들은 ‘거짓말을 한다’며 분위기를 몰아갔다. 이에 담임 교사는 저를 교실 앞으로 불러내 ‘부상을 입증하라’며 학급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바지와 속옷을 벗도록 지시했다.”

주장하는 내용이 6일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이후 상대방 측의 연락을 받았나?

“보도 이전에 A 선수 측에서 ‘사실과 일부 다르다’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보도 이후에는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심리치료 상담을 받고 있다고.

“처음 치료를 받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인 2011년부터다. 그때부터 2015년까지 간헐적으로 치료를 받았고, 2018년부터 현재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진료를 받고 상담 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왜 고등학생 때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한 건지?

“A 선수 외에도 다른 가해자들로부터 지속적인 학폭을 당했다. 중학생 때 겪은 학폭은 당시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해 주신 덕분에 가해자들과 화해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모래사장에서 집중적으로 구타당하는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폭이 누적됐다.”

그중에서 왜 A 선수와 관련된 초등학생 때 사건을 끄집어낸 건가?

“처음 당하는 학폭 피해였고, 제겐 가장 큰 상처였기 때문이다. 성인이 돼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제가 당했던 폭력들이 다 심리적으로 인과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까지 심리검사를 4~5번 받았는데, 성인이 돼서도 학폭이나 아동학대에 노출된 사람이 겪는 후유증들이 남아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다른 학폭 사건은 모두 가해자들과 화해하고 사과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모래사장에서 구타당한 사건은 당시 가해자들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해서 원만하게 잘 끝났다. 하지만 A 선수와 관련한 사건은 아직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어떤 후유증을 겪고 있나.

“혹시 친구가 주먹으로 때릴까 두려워 뒤로 물어서는 등 방어적이고 회피적으로 행동하게 됐다. 아직도 학폭을 당했을 때의 상황이 꿈에 나타나 힘들다. 또 어렸을 때부터 학폭에 지속해서 노출되다 보니 자기감정을 해석하는 데 장애가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맞을 만해서 맞은 거다” 2차 피해 호소

SNS에 글을 올린 후 2차 피해를 호소했는데.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치원 때는 학폭을 안 당했냐’, ‘초등학교 때 일어난 일을 왜 지금 얘기하느냐’, ‘맞을 만해서 맞은 거다’, ‘관심종자다’ 같은 글이 넘쳐났다.”

그런 반응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제가 당한 학폭이 별것 아닌가?’, ‘가해자들에게 사과받는 게 잘못된 걸까?’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학폭은 정말 당해본 사람만 그 아픔을 안다. 한날 거울을 보면서 저 자신에게 ‘너무 많이 힘들었구나. 앞으로도 이겨낼 거라고 믿어’라고 말을 걸었다. 제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비참했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고, 보호받지 못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걸 원하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돈을 받고 싶어서 학폭을 제기했다’는 글이 많다. 하지만 이는 허위사실이다. 저는 A 선수 등 가해자들이 사과한다면 어떤 조건도 없이 용서할 거다. 진심 어린 사과만 받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보도 이후 ‘자신도 학폭을 당했다’는 연락을 많이 받고 있다. 성인이 됐음에도 환청까지 들릴 정도로 괴롭다는 피해자도 있다. 그런 피해자들과 함께 공익광고를 제작해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학폭 피해자들을 위한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싶다. 학폭 피해자들이 서로 위로받고 아픔을 이겨내는 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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