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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27)] 시대를 앞서가는 청춘 문화, 오스트리아 빈의 이케아를 찾아서 

80년 노포 기업이 21세기 다양성 시대의 총아로 

스웨덴 ‘잡화점’을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게 만든 대주주는 오스트리아
수도 한복판 소형 매장에서도 이케아의 싱싱한 기업문화와 비전 엿보여


▎이케아가 도심 한복판으로 진출하고 있다. 20세기형 사재기 매장에서 21세기형 즐기는 매장으로 변하는 셈이다. 사진은 오스트리아 빈 웨스트반호프역 인근 이케아 매장. / 사진:유민호
'세대를 넘어선 대화’는 해외여행의 장점 중 하나다. 동양인 특유 유전자를 적극 활용한 처세술이라고 할까? 바로 ‘동안(童顔) 작전’이다. 동양인 외모의 특징은 백인, 더 나아가 흑인보다 어려보인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몸이 날씬하고 얼굴에 주름도 드물다. 걸음걸이가 날렵하고 계산능력도 탁월하다. 덕분에 열 살은 간단히 뛰어넘고, 스무살을 넘어 많게는 서른 살까지 어리게 볼 정도다. 따라서 장년에 접어든 필자조차 청년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다. 젊은이 사이의 유행어나 관심사를 몰라도 ‘외국인 특권’으로 청년과 대화에 쉽게 끼어들 수 있다. 서양인 역시 동양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말을 걸면 즉각 반응한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필자의 SNS 해외 리스트 대부분은 자식뻘 청년대로 채워져 있다.

오스트리아 기업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문화’

오스트리아 출신 27세 청년 A는 올해 만난 인물 중 가장 인상 깊다. 대화를 통해 두루 많이 배웠다. 기차 여행 중 우연히 알았고, 이후 빈에 들렀을 때 수차례 다시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눴다. 빈 특유의 노면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도시 구석구석 숨은 레스토랑과 카페도 소개받았다. A를 통해 빈 2030세대 8할 정도가 운전 면허증이 없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2023년 유럽 상황은 물론 오스트리아 젊은이의 세계관을 이해한 시간이 됐다. 대화 중 발견한 키워드는 ‘문화’다.

“기업의 이념, 목표라고나 할까? 21세기 오스트리아의 최대 관심사는 ‘문화(Culture)’에 있다. 종래의 ‘수익 우선주의’나 20세기 말 글로벌 시대 이미지 전략이기도 한 ‘기업 특성화(Corporate Identity)’가 아니라 전 세계에 통용될 ‘문화’가 2023년 오스트리아 기업의 최대 관심사다. 돈이나 브랜드 확장을 넘어선 문화가 바로 이 시대의 키워드다.”

A는 중소기업 지원 투자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원래 통계 전문가로, 디지털 수치에 근거한 컨설팅에 주목한다고 한다. A의 화법에는 디지털 숫자가 끊이질 않는다. “문화는 돈이나 브랜드와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돈과 브랜드를 전부 확장, 포용한 것이 문화다. ‘다양성(Diversity)’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21세기 문화의 공통분모 중 하나다. 인종·성별·국가·민족·종교를 뛰어넘는 공생의 철학이지만, 크게 보면 결국 경제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성이 강화될수록 경제적 효과도 확대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만이 아니라 돈을 벌고 싶다면 성소수자(LGBTQ) 문화에도 익숙해져야만 한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이지만, 전 세계에서 오스트리아 빈에 준할 문명과 문화의 공존지대가 있을지 의문이다. 인구 200만이지만, 인류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느끼고 가늠할 총천연색 3D 도시가 빈이다. 18세기 모차르트 음악이 시내 곳곳에 흐르는 반면, 글로벌 첨단산업에 대한 적극적 투자가 빈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세계에 내세울 자국산 브랜드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전 세계 첨단산업 핵심부품 생산과 투자를 단행하는 곳이 오스트리아다.

빈의 특징은 ‘베리어 프리(Barrier Free)’가 일상적이라는 점이다. 장애인이나 노년층에 대한 배려가 탁월하다. 문명·문화 선진국은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아주 구체적이고 정밀하다. 오스트리아 가정집에 머물면서 실감했다. 목욕탕조차도 세라믹 욕조 벽에 문을 다는 등 ‘베리어 프리’로 만든다. 목욕탕 욕조를 넘다가 미끄러져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베리어 프리 목욕탕 보급률이다. 금수저 부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집에서도 볼 수 있다.

문명과 문화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념이다. 크게 보면 문명은 물질적, 문화는 정신적 차원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문명은 국가와 민족, 사회 영역을 넘어선 생활이란 차원에서의 보편적 가치에 주목한다. 문화는 지역이나 피를 바탕으로 하면서 일정 공간 안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개인 삶 전체를 가늠하는 나침반과 같은 것이 문화다. 학문 영역으로 나눈다면 과학 기술은 문명인 반면, 학문과 음악, 도덕은 문화에 포함된다. 사실 문명과 문화를 각론으로 풀면 서로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진다. 문명과 문화가 서로를 자극하면서 공동 영역을 창출해 나가기 때문이다. 물질과 정신을 흑백논리로 양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폰을 예로 들면 문명인 동시에 문화로 볼 수 있다. 하드웨어로서의 아이폰 문명인 동시에 소프트웨어로서의 아이폰 문화가 공존한다.

싸고 간단하면서도 뭔가 첨단적 느낌의 매장


▎그린은 이케아가 창조하는 또 하나의 문화 이니셔티브다. 100% 자연 그린이 아닌, 플라스틱을 통한 인공 그린도 이케아식 변화 중 하나다. / 사진:유민호
인류 역사를 보면 문명 발전과 문화, 진화 사이의 ‘미묘한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문명이 발전하면 문화의 질적·양적 수준도 올라간다.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 문명의 속도도 빨라진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부터 문명·문화 사이의 ‘미묘한 조화’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문명 속도에 비해 문화의 진화가 뒤처지는 양상이다. 문명은 있는데, 문화가 없는 ‘기묘한 시대’가 21세기 글로벌 시대 현황이다. 중국은 그 같은 ‘기묘한 시대’의 최첨단에 선 나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어떨까? 필자 판단이지만, 문명·문화 사이에 조화가 무너진 나라 1위가 중국이고, 한국은 2위 정도에 머물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풍경이지만, 지하철에서 목청을 높이는 ‘모바일족’이 넘친다. 통화 목소리는 물론 ‘유튜브 소음’도 일상적이다. 한마디 했다가는 황당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문명으로서의 모바일은 있지만, 문화로서의 에티켓이나 배려가 약하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수억원대 자동차가 판치는 나라가 한국이다. 도로에 나가는 순간 F1 경주 무대로 돌변한다. 최고급 문명으로서의 자동차는 넘치지만, 남보다 빨리 가는 것 하나가 한국식 자동차 문화의 대세다. 덕분에 ‘민식이법’을 비롯한 수많은 의무수칙이 도로 위에 넘쳐난다. 역설적이지만, 문명의 스피드가 더해갈수록 문화와의 격차도 벌어진다. 물질 발전보다 정신 진화가 늦기 때문이다. 아이폰 14 시리즈를 넘어 언젠가 아이폰 100 모델도 등장할 것이다. 모바일 문화가 14에서 100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명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한 현실 세계는 한층 더 짜증나고 피곤해질 뿐이다.

이케아(IKEA)는 A와 대화 도중 알게 된 21세기형 첨단 문명·문화의 상징 중 하나다. 이케아 하면 스웨덴부터 떠올릴 것이다. 맑고 청정한 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피오르(Fjord) 나무 천국이 바로 스웨덴이다. 그러나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스웨덴과 멀리 떨어진, 유럽을 대표하는 기업이 이케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이케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나라다. 연매출 300억 달러(2017년 기준)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 이케아의 최대 주주가 바로 오스트리아이기 때문이다. A를 통해 알았는데, 회계 장부에 드러난 이케아 최대 주주는 ‘인테로고 재단(Interogo Foundation)’이다. 인구 3만의 미니 국가 리히텐슈타인에 본부를 둔 투자회사다. 그러나 실제 인테로고를 움직이는 최대 투자가는 OBB, 즉 오스트리아 국영철도회사라고 한다. 스웨덴 기업 이케아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든 최대 공헌자 중 하나가 OBB인 셈이다. 무늬는 피오르 스웨덴이지만, 오스트리아 자금을 바탕으로 한 기업이 이케아의 진짜 모습이다.

“웨스트반호프(Westbahnhof)역 주변 이케아 매장에 가보길 바란다. OBB 건물 바로 옆에 들어선, 21세기 다양성 시대의 총아가 바로 이케아다. 20세기형 이케아와 비교하면서 살펴보면 새롭게 와 닿을 것이다.”

2023년 한국에는 서울에 3개, 부산에 1개를 더해 총 4개의 이케아 매장이 들어서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주춤했지만,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브랜드가 이케아다. 놀랍게도 빈에는 무려 6개의 이케아 매장이 들어서 있다. 필자의 20세기 말 미국에서의 기억에도 이케아에 관한 부분이 많다. 워싱턴에 정착한 뒤 가구 장만을 위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이케아다. 싸고 간단하면서도 뭔가 첨단적 느낌을 주는 매장이었다. 비싼 물건도 많지만, 생활용품은 저가에다 디자인도 탁월하다. 인간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신비한 공간으로, 들를 때마다 수백 달러씩 왕창 구입하게 된다. 이케아 이미지는 뭔가 크고 수많은 상품들로 가득 채워진 매머드 매장이다. 주말에는 매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트래픽을 접하게 된다. 2~3단 높이의 초대형 주차장도 볼 수 있다. 웨스트반호프역은 한국으로 치면 서울역에 해당한다. 빈 한복판에 이케아가 들어서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됐다.

대용량 사재기 창고에서 도시 편의점 이미지로


▎매장에서 공동체 카페로 변신하는 도심형 이케아. 청년 세대에 어필할 공간으로서의 문화 진화가 이뤄지고 있다. / 사진:유민호
유럽 여행 재미 중 하나인데, 공공 교통비용이 엄청 저렴하다. 1회로 끊으면 비싸지만, 한 달 단위로 구입할 경우 어마무시할 정도의 저가다. 빈은 지하철, 노면기차, 버스를 포함한 공공교통 한 달 비용이 51유로, 1년은 365유로에 그친다. 선진국의 조건인데, 외국인이나 관광객에 대한 가격 차별이 없다. 한 달 정기권을 끊은 뒤 눈앞에 나타난 지하철, 노면기차, 버스를 타고 도시 전체를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유럽 여행의 진미 중 하나다.

웨스트반호프역에 내리는 순간 멀리 푸른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이케아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은 철근 조립식 유리 구도로, ‘자체 제작(DIY)’을 원칙으로 하는 이케아 상품 이미지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오후 5시 퇴근 직전 시간 들렀는데도 사람이 별로 없다. 필자가 이케아에 들른 것은 거의 15년 만이다. 매장 전체가 조용하고, 엄청 작다. 20세기형 이케아 풍경을 떠올리면 수많은 직원이 매장을 활보하고 있었다. 빈 이케아에는 직원 1~2명만 눈에 띌 뿐이다. 계산대는 20여개로, 전부 자동화한 상태다. 상품 바코드를 인식해 직접 계산하는 식이다. 구입 물품을 잔뜩 쌓아둔 채 기다리는 손님 행렬도 없다.

이케아 상품과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서 느낀 것은 유·무형으로 전달되는 이미지가 넘쳐난다는 점이다. 이케아가 추구하는 문명·문화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이케아만의 고유 컬러로 크게 세 가지 부분이 눈에 띈다.

첫째, 도심형 이케아의 의미다. 도시 교외에 들어선 대용량 사재기 창고로서의 이케아가 아니다. 도시 편의점 같다고나 할까? 퇴근길 잠시 들르는 휴식공간이다. 장년인 필자 세대의 상식은 ‘이케아=자동차, 조립형 DIY 상품’으로 이어진다. 전시관에 진열된 물건을 보고, 상품을 직접 찾아 구입한 뒤 자동차로 수송하는 식이다. 따라서 이케아 상품을 원한다면 큰 자동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빈 전시관에는 전시된 상품 자체가 많지 않다. 잘 팔리는 상품 몇몇만 전시돼 있다. 수많은 종류의 상품을 하나씩 보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기상품을 인터넷으로 검색한 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식이다. 아마존 닷컴 스타일이지만, 회원인 경우 배송비는 거의 무료다. 앞서 살펴봤듯 자동차 운전에 나서는 빈 젊은이 수가 급감하고 있다. 서유럽 선진국 젊은이는 운전 면허증은커녕, 자동차 구입 자체에 관심이 없다. 자전거에 이어 이륜 전동기가 유럽 젊은이의 관심사다. 젊은이의 탈(脱)자동차 현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탈 자동차 문화는 이케아를 교외형에서 도심형으로 바꾼 근본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명과 문화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글로벌 기업

둘째는 스타벅스형 카페와 패스트푸드 매장으로서의 이케아다. 21세기형 문화공간으로서의 이케아인 셈이다. 퇴근길 친구와 만나 커피를 마시고, 10유로 정도의 패스트푸드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장년 세대라면 냉동식품이나 패스트푸드에 대한 거부감이 강할 것이다. 그러나 유럽 10대는 물론 2030세대를 보면 반감이 거의 없다. 거꾸로 친환경 음식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 팬데믹 이전 필자의 체험이지만, 6인용, 나아가 8인용 기숙사형 호스텔을 즐겨 사용했다. 숙박비도 싸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로컬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하는 것은 현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불을 사용한 요리에 주목하는 여행객 대부분이 50대 이상 장년세대란 것을 알게 됐다. 40대 이하는 가스나 석유 등을 통한 화력 요리에 무심하다. 요리라고 하면 전자레인지용 패스트푸드에 국한한다. 값이 싸고 빠르고 간편하다. 채소를 씻고, 고기를 자르고, 생선을 만지는 모든 번거로운 과정이 생략된다. 이케아에 가면 온갖 유형의 냉동 패스트푸드를 10유로 이하에 구입할 수 있다. 1인용은 물론 3~4인용도 저렴하다. 브랜드 이미지 덕분이지겠지만, 이케아가 만드는 패스트푸드는 건강은 물론 환경에도 좋을 듯하다. 무공해 청정국가 스웨덴의 이미지와 함께 패스트푸드의 품격이 덩달아 올라간다. 오스트리아 청년 A를 봐도 빠르고 싸고 간편한 패스트푸드가 대세다. 이케아 카페의 메뉴는 그 같은 21세기형 음식문화의 전형이자 상징으로 느껴진다.

셋째, 그린(Green)이다. 이케아에는 화초, 나무, 잔디 등 그린 생명체가 넘쳐난다. 가격은 모두 10유로 이하다. 층별로 그린 코너가 마련돼 있다. 그린과 관련한 상품, 즉 비료나 흙에서부터 병충해 방지용 약품도 따라붙는다. 흥미로운 것은 ‘플라스틱 그린’에 관한 부분이다. 진짜가 아닌 가짜 그린 상품도 즐비하다. 동양적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광합성 작용을 하는 그린만이 아닌 눈요깃감으로서의 플라스틱 화초도 이케아 풍경 중 하나다. 화학적으로 처리된 인공 고기를 통한 단백질 보충에 준하는 발상이라고 할까? 플라스틱 그린이라도 문제될 건 없다.

이케아는 문명과 문화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글로벌 기업이다. 간편하고 값싼 물건 모두에 문화가 배어 있고, 소비자는 그 같은 이케아의 세계관을 높이 평가한다. 이케아의 고속 성장은 바로 이케아 특유의 문명·문화 접목에 있을지 모르겠다. 눈을 돌려 한국을 보자. 바다 밖 뮤직 랭킹 1위를 무한정 독점하는 ‘K팝’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한국 팝 문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1등 자리에 올라섰다고 하지만, K팝 시장과 연예 무대에 대한 외국의 차가운 비평이 끊이질 않는다. 중국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체조 선수를 대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1등은 했지만, 가혹한 한국 연예인 ‘제조 과정’을 보면서 오히려 반문명· 반문화 모델로 대하는 듯하다. 1등 노래는 있지만, K팝을 둘러싼 문화는 열악하다.

21세기형 음식문화… 이케아 카페


▎‘이케아=스타벅스와 맥도날드 그리고 백화점’으로 나아가는 것이 빈 이케아 매장의 현황이다. 10유로 정도면 음식과 커피 그리고 인터넷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 사진:유민호
기업은 어떨까? 한국인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국 기업들의 문명·문화 세계관을 들여다보자. 문명적, 차원적, 물질적, 보편적 차원에서 보면 한국의 우수성은 탁월하다. 그러나 1등 논리가 아닌 정신적, 개인적 차원의 기업 세계관을 들여다보면 거의 초보 단계다. ‘첨단 제품을 싸고, 빨리 제조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생산성·능률성·신속성’에 관한 한 한국기업은 탁월하다. 그러나 그 같은 영역은 곧바로 추월되거나 이미 중국에 추월된 상태다. ‘생산성·능률성·신속성’은 절대가치가 아닌 상대가치일 뿐이다. 21세기 가치는 ‘생산성·능률성·신속성’ 그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그 같은 결과를 창출해내는 ‘과정으로서의 문화’가 한층 더 중요하고 주목받는다.

시대 앞선 ‘청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생활용품은 10유로 이하 물건이 전체 판매 상품의 5할 정도다. 싸다는 것도 이케아의 큰 장점이다. / 사진:유민호
일본 기업문화라고 하면 먼저 종신고용제가 떠오른다. 죽든 살든 모두 함께 간다는 얘기다. 불경기에는 월급을 깎아 평등하게 나눠서라도 함께 나아가는 식이다. ‘생산성·능률성·신속성’이란 각도에서 보면 불합리하고 원시적인 경영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기업 내 대졸자 5할 정도가 종신고용제 상태라고 한다(2022년 일본 후생성 통계). 21세기에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본=종신고용제’라는 기업문화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의미다. 비난도 있겠지만, 사실상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업문화 중 하나가 일본의 종신고용제다.

세계가 본받고 싶은 한국 기업문화로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군대식의 일사불란한 조직이나 장유유서의 수직형 체제를 세계가 부러워할까? 한국에서도 이미 시작됐지만, ‘갑질 폭력’으로 처리되면서 엄청난 소송에 직면할 20세기형 ‘열등’ 문화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세계에 적용될 한국 기업문화로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1등은 따낼 수 있겠지만, 따르고 존경할 부분이 없다. 다양성 시대의 가치관이지만, 1등은 독점하거나 누리는 위치와 무관하다. 1등이기에, 거기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는 것이 다양성 시대의 상식이다. 참고로 이케아의 고용방식 이야기지만, 2013년 이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과 비정규직 단기 직원제를 아예 폐지했다고 한다. 글로벌 1등 기업답게 전부 정규직원만으로 운영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된 셈이다. 당연하지만 국적·인종·종교·성별·학력과 무관하다. 한국인이라도 이케아 해외 현지 매장 구인 광고에 응모해 취직할 수 있다.

글을 마치려는 순간 오스트리아 A에게 연락이 왔다. 주급 1987유로의 컨설팅 업무를 그만 둘 생각이라는 것이다.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옮겨가는지 물어봤다. ‘물론’이란 답과 함께, 주급 952유로의 환경 컨설팅 회사가 차기 직장이라고 한다. 왜 그만뒀는지 물어보자, 21세기 청년다운 반응이 밀려왔다. “두 번이나 CEO에게 경영 개선 제안을 했지만, 듣지 않았다. 내 제안이 타당하다는 것은 CEO는 물론 다른 직원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결론을 내지 않았다. 나가려고 하니까 주급을 30% 올려주겠다는 제의를 했지만, 거부했다. 당장은 돈으로 지탱하겠지만, 이미 죽은 문화가 조직 내에 퍼져 있다. CEO만이 아니라 눈치만 보는 직장 동료도 문제다. 그런 어두운 문화가 지배하는 곳에서 내 인생을 바치고 싶지 않다. 월급은 깎이지만, 살아있는 기업 문화 속에서 숨 쉬고 싶다.”

이케아의 기업 이미지는 뭔가 젊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기업 역사를 보면 다르다. 1943년이 이케아가 창립된 해다. 스웨덴 동네 잡화점 수준에 머물다가 마침내 1991년 국제화에 동참한 기업이다. 이미 80년 노포 기업이지만, 항상 상큼한 이미지가 풍긴다. ‘싱싱한’ 이케아 기업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 변화에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닌 한 발 먼저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문화다. 당연하지만, 전 세계가 부러워하고 따라간다. ‘세대를 넘어선 대화’의 가장 큰 장점은 젊은 발상을 통한 자극에 있다. 실패하더라도 한 단계 높은 세계로 나아갈 기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청년 A가 그러하듯 시대를 앞서가는 ‘청춘 문화’로서의 이케아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306호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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