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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기후와 문화 그리고 작품을 찾아서(11)] 성경 '출애굽기'의 열 가지 재앙 부른 그리스의 화산 폭발 

홍해 가른 모세의 기적, 마냥 허구는 아니다 

쓰나미·화산재·분연주 등 자연 현상, 고대인들에겐 신화 그 자체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 중국 하(夏)나라 멸망에 영향 줬을 수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서 모세 역할을 맡은 크리스천 베일. 이집트인들에게 400여년 동안 노예처럼 부려지던 이스라엘인들은 선지자 모세의 지도 아래 이집트를 탈출한다. /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야훼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애굽기] 13장 21~22절)

구약성서에 나오는 ‘엑소더스’의 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이집트인들에게 400여년 동안 노예처럼 부려지던 이스라엘인들은 선지자 모세의 지도 아래 이집트를 탈출한다. 그러나 파라오가 이들을 순순히 놓아주려 하지 않자, 야훼는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렸고, 그제서야 파라오는 이들을 놓아주기로 한다. 이후 이집트 군대가 이들을 추격하지만, 홍해(Red sea)가 갈라졌다가 합쳐지는 기적을 통해 이들을 물리친다. 놀라운 기적은 이어진다. 뜨거운 광야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들을 밤낮으로 보호하고 인도하는 덕분에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달하게 된다.

[출애굽기]의 내용들은 워낙 드라마적 요소와 신비한 이적(異跡)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일반인들에게는 하나의 신화 또는 종교적 상징 정도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자연과학과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엑소더스가 마냥 허구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열 가지 재앙을 포함한 각종 이상 현상들은 이 무렵 지중해에서 벌어진 강력한 화산폭발이 만든 충격의 여파가 반영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출애굽기' 열 가지 재앙은 화산 분화 때문일 수도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아브라함의 이동과 구약성서에 나오는 ‘엑소더스’의 주요 무대.
1925년 영국의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존 G 베넷은 그리스의 유명 휴양지 산토리니 섬에 있었다. 그가 화산 폭발과 엑소더스를 연결한 것은 그 섬에서 벌어진 격렬한 화산 분화를 목격한 직후였다. 구상이 현실로 이어진 것은 40여년이 지나서다. 1963년 그는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 엑소더스와 먼 옛날 산토리니 섬(당시 명칭은 테라 섬)의 화산폭발이 서로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엑소더스에 등장하는 이집트 파라오는 투트모세 3세라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의 이집트 학자 한스 괴디케는 기원전 1477년 엑소더스가 있었고, 이를 쫓아가던 이집트 군대가 산토리니 섬의 화산 분화로 인한 쓰나미 때문에 익사했을 것이라는 논문을 1981년 발표했다.

이것을 보다 구체화한 것은 여류학자 바버라 시버첸이다. 그녀는 열 가지 재앙을 구체적으로 화산 분화와 연결했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열 가지 재앙은 다음과 같다.

①핏빛 강물과 물고기의 죽음 ②개구리 ③이 ④파리 ⑤가축 전염병 ⑥악성 종기 ⑦우박 ⑧메뚜기 ⑨짙은 어둠 ⑩장자 죽음

그녀에 따르면 첫 번째 재앙 핏빛 강물과 물고기의 죽음은 산토리니 섬 분화로 인해 생긴 높이 7~12m의 쓰나미가 이집트의 나일강 하류 삼각주에 밀려들자 나일강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와 동시에 화산재에 포함된 붉은 산화철은 나일 강물을 핏빛으로 변하게 했다. 좌용주 경상대 지질과학과 교수도 저서 [테라 섬의 분화, 문명의 줄기를 바꾸다]를 통해 “테라 섬 분화로 생긴 쓰나미가 1시간 이내에 이집트 삼각주에 도착했고, 이로 인해 물의 식수원이 오염되고 물의 산소 함량을 증가시켜 물고기들을 죽이기에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학자들은 쓰나미로 야기된 홍수와 이곳에 날아든 화산재가 바다뿐만 아니라 인근 수로나 운하, 호수에까지 영향을 끼쳤고 이에 개구리들은 물에서 모두 나왔다가 들어가지 못해 탈수 증세로 죽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바람을 타고 옮겨진 고운 입자의 화산재는 사람의 피부에 닿으면 자극적인 통증을 줬기 때문에 마치 ‘이’가 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화산재가 끼친 영향은 크다. ⑤가축 전염병 ⑥악성 종기 ⑦우박 ⑧메뚜기 ⑨짙은 어둠 등이 모두 여기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화산재가 파리나 벌 같은 곤충들에게 붙으면 표면의 왁스(Wax)층을 상실하고 수분을 잃으면서 죽게 되는데, 실제로 1980년 5월 미국 세인트헬렌즈에서 화산이 분화했을 때 집파리나 말벌 등이 집단으로 죽었던 일이 있다. 또한 화산재의 산성 먼지는 가축들의 집단 전염병을 유발했으며, 폭풍과 결합한 화산재 알갱이는 우박처럼 떨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화산재가 수분을 머금고 엉겨 붙으면서 짙은 농도의 먼지층을 대량으로 형성해 대기를 덮고 흑암처럼 어둡게 만들었다.

미노아 문명을 황폐화시킨 산토리니 화산 폭발


▎지난 2018년 6월 4일(현지시간) 과테말라 푸에고 화산 폭발로 인근 마을이 화산재에 뒤덮인 모습. / 사진:신화통신(연합)
[출애굽기]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도 화산과 맞물려 설명할 수 있다. 먼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 있었던 쓰나미를 떠올려보자. 쓰나미는 지진이나 화산활동 때문에 해저지형이 급격하게 변동했을 때 해양에 생기는 현상이다. 지진이나 화산으로 급격히 방출된 에너지가 물에 전달되면서 파도를 생성하고 수 ㎞에서 수백 ㎞에 이를만큼 거대한 덩어리가 돼 해안가로 몰려온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 기록에도 화산 폭발 후 엄청난 쓰나미 현상이 발견됐는데, [로마사]에는 “파도가 밀려들던 바다가 뒤로 물러나고 육지로부터 후퇴했으며 깊은 바다가 드러나 사람들은 진흙 속에서 많은 종류의 바다 생물들을 보았다…. 예측 불가능한 거대한 물이 되돌아와 수천 명을 익사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모세가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고, 뒤따라오는 이집트 군대가 다시 합쳐진 홍해 사이에 갇혀 죽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쓰나미 현상의 기억이 반영됐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헤맬 때 낮에는 구름기둥이 더위를 막아주고, 밤에는 불기둥이 길을 밝혀준 것은 어떨까? 화산 분화가 일어날 때 형성되는 뜨거운 화산재와 화산가스로 이뤄진 기둥 모양 구름을 ‘분연주’라고 한다. 이것이 공중으로 수 ㎞까지 치솟으면서 밤에도 불기둥처럼 보였으며, 화산 폭발로 생긴 거대한 화산재와 구름 덩어리는 구름기둥으로 묘사됐으리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그렇다면 마지막 재앙인 장자 죽음도 화산 때문일까? ‘엑소더스-화산 커넥션’을 지지하는 학자들도 이것에 대해서는 직접적 연관성을 부인하는 편이다. 이언 윌슨은 유례없는 아홉 가지 재앙을 겪은 사람들의 심리적 행위로 봤다. 고대 중근동에서는 인신 제물, 장자 희생 등이 있었는데, 아홉 가지 재앙을 겪자 하늘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자식을 제물로 바쳤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쨌든 유례없는 재앙들은 모두 산토리니 섬의 화산 폭발로 인해 벌어졌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화산 폭발은 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산토리니 화산 폭발은 기원전 1627~1600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화산 폭발의 세기를 나타내는 지수(Volcanic Explosivity Index, VEI)가 있는데, 0~8까지 숫자가 클수록 폭발이 강력하다는 의미다. 다만 기원전 1만년 이후에는 VEI 8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VEI가 1 올라갈 때마다 분출물의 양은 대체로 10배가 된다. 산토리니 화산 폭발은 VEI 지수가 7이었다. 워낙 강력했기에 고대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번성한 미노아 문명도 이로 인한 지진과 쓰나미로 황폐해졌다. 그래서 산토리니 화산 폭발은 미노안 폭발(Minoan eruption)이라고도 불린다. 이 화산 폭발은 세계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예를 들어 북미에서는 나이테 연구를 통해 기원전 1600년대에 나무 성장이 방해를 받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집트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 기후 난민일 수도


▎2011년 3월 11일 쓰나미 피해 직후의 일본 오카와 초등학교 교정의 모습.
이런 이유로 일부 학자들은 산토리니 화산 폭발이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나 중국의 고대 국가 하(夏) 나라의 멸망에도 영향을 줬다고 본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양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역사기록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하나라가 멸망할 무렵 “노란 안개와 희미한 태양과 3개의 태양, 7월의 서리, 기근과 흉작”이라고 언급한 내용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케빈 팽과 저우훙샹 등은 1985년 논문을 통해 이것이 산토리니 폭발로 인한 여파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화산재 등이 화산 겨울(Volcanic winter)을 만들면서 하나라에서 농업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아틀란티스의 경우는 거대한 화산 폭발과 지진, 해일 등으로 인해 하루 만에 멸망했다고 플라톤에 의해 기록됐는데, 아직 아틀란티스의 실존 여부 자체가 논쟁 중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아이디어가 바로 산토리니 화산 폭발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은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나저나 모세가 살았던 시대에 이집트에는 왜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많았을까.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아브라함은 본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갈데아 우르에서 거주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과거엔 지금처럼 건조하지 않았다. 기온이 현재보다 1~3도가량 높았던 6000~8000년 전에는 적도수렴대가 이 지역에 비를 많이 뿌렸다. 그런데 적도수렴대가 점차 남하했고, 이 지역도 건조해졌다.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비를 찾아 떠난 것이다. 당시 아브라함을 비롯해 이 지역 사람들은 대개 농경과 유목을 복합적으로 했는데 양 떼를 먹이는 풀도, 경작에 필요한 물도 필요하다 보니 비 내리는 기후를 찾아 가나안을 거쳐 이집트까지 남하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집트에는 그렇게 아시아에서 흘러들어와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기후 난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이집트 역사에서는 기원전 17세기부터 세력을 키워 100여년 이집트를 통치한 힉소스(Hyksos)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말을 잘 다뤄서 기마병이 우수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이집트인들은 말을 타고 싸울 줄을 몰랐기에 쉽사리 정복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들이 바로 기후 때문에 이집트로 떠밀려온 아시아인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 유성운 - 중앙일보 기자.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기후환경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저서로 [걸그룹 경제학], [리스타트 한국사도감], [사림, 조선의 586]이 있으며 [당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세계사 속 중국사도감] 등을 번역했다.

202306호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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