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에서 한·일 사진교류전 '길 위의 파롤' 개최한·일 사진가 20인의 눈에 비친 130개의 풍경 소개
▎한일사진교류전 '길 위의 파롤'이 인천 강화에 자리한 해든 뮤지움에서 열리고 있다. |
|
인천 강화도에서 사진 애호가들의 관심을 끄는 독특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한·일 양국의 실력파 사진가들이 의기투합해 선보인 교류전이다. 인천 강화도 해든 뮤지움에서 4월 5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리는 ‘길 위의 파롤’ 이야기다.한국 사진가 5인과 일본 사진가 15인이 수놓는 이번 전시의 방점은 제목에 나오는 단어 ‘파롤(parole)’에 있다. 파롤은 언어학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언어는 크게 규범적 언어인 ‘랑그(langue)’와 행위적 언어인 '파롤'로 구분되는데, 쉽게 말해 파롤은 의도가 담긴 언어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즉 화자의 의도가 들어간 '말' 그 자체다. '길 위의 파롤'에 출품된 작품들은 거리의 변화무쌍한 풍경을 우연히 포착한 장면들이지만, 그 우연의 결정체 안에도 작가의 '말', 즉 파롤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독창적인 작가 개개인들의 '발화'가 모여 하나의 전시로 어우러졌다.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좋은 사진’이란 본인의 심정, 즉 개성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일본에서 스트리트(street) 사진의 대가로 꼽히는 스즈키 타츠오를 비롯한 나카무라 쿄킨, 오니시 타다시의 지론이 그렇다. ‘스트리트 사진’은 거리의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 예술 장르다. 스즈키 타츠오는 스트리트 사진가 그룹인 '보이드 도쿄(Void Tokyo)를 결성해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4월 6일 전시회가 열리는 해든 뮤지움에서 이들을 만났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작가들. 왼쪽부터 오니시 타다시, 스즈키 타츠오, 나카무라 쿄킨. |
|
전시 공간이 마음에 드나?스즈키 타츠오(이하 '스즈키'): “해든 뮤지움의 멋진 외관에 놀랐다. 규모도 인상적이다. 특히 넓은 전시 공간에 놀랐다. 덕분에 관람객들이 작품을 하나씩 몰입해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의 프린트 퀄리티 역시 만족스럽다. 함께 참가한 일본 사진가들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처럼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데 사의를 표한다.”이번 전시의 배경이 궁금하다. 원래 한국 작가들과 개인적인 연이 있나?스즈키: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자 한국 작가진의 대표인 신웅재 작가의 제의로 시작됐다. 일본 긴자에서 열린 ‘보이드 도쿄’의 전시를 본 신 작가가 한·일 상호 간 사진과 전시를 통한 교류를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듣자마자 ‘좋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일 간 교류를 더욱 깊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전시 참가를 결정한 이유다.”전시에 참여한 일본 사진가 15명은 모두 보이드 도쿄 소속인가?스즈키: “모두는 아니다. ‘보이드 도쿄’ 외에도 일본에서 스트리트 사진을 찍는 작가들이 많다. 보이드 도쿄 멤버를 비롯해 다른 작가들이 더해져 일본에서만 총 15명의 사진가가 참가했다. 한국 측에서 5명의 사진가가 참가해 총 20명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한·일 간 사진예술 교류가 활발한 편인가?“그동안에는 일본의 스트리트 사진가와 한국 사진가의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한·일 사진가 간 교류의 장이 마련됐으면 한다. 알다시피 전시의 제목이 ‘거리의 파롤’이다. ‘파롤’은 ‘가교’라는 뜻도 있다. 이 전시가 한·일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한국 사진가와 일본 사진가의 작품을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특징이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오니시 타다시(이하 '오니시'): “한국 작가마다 개성이 다르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각 사진마다 작가의 사유나 감각, 즉 작가의 ‘point of view(관점)’가 짙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임에도 작가의 관점이 녹아들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나카무라 쿄킨(이하 '나카무라'): “비슷한 점을 느꼈다. 사진가의 독창성이 매우 잘 녹아들어 있다. 사진을 한 번 보면 어떤 작가의 사진인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다. 사진가의 관점이 강하게 투영돼 있다.”예술이란 자신의 사유나 관점 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진’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사진 말고도 그림, 음악, 글 등 많은 것이 있지 않은가.스즈키: “대학생 때 펑크록 밴드 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를 했던 기억이 있다. 졸업 이후에는 일반적인 회사원 즉 ‘샐러리맨’으로 약 25년간 일했다. 표현이란 행위를 망각한 채로 말이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카메라와 만났다. 사진을 촬영하다 보니 과거 ‘나를 표현하던 시절’이 떠올렸다. 회사도 그만두고 사진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25년 샐러리맨 생활 접고 전업 사진가로 전향
▎전시 기획자 신웅재 작가가 리셉션에 참석해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
|
오랜 직장 생활을 그만둘 정도로 사진에 매력을 느꼈나?스즈키: “거리의 풍경을 촬영하다 보면 몇십만, 몇백만 장까지 사진이 모인다. 이후 사진들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거리의 풍경과 나의 심정이 합치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이런 ‘표현’의 행위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이 ‘수단’으로서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진 덕분에 바다를 건너 한국에 와서, 이렇게 좋은 뮤지움에서 전시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웃음).”오니시: “사진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친근한 미디어다. 이 때문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누구나 휴대전화나 콤팩트 카메라 등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시대와 사회를 한 장의 사진에 담고 싶다. 오늘날 사진을 찍는 이유다.”나카무라: “사진을 찍는 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주신 콤팩트 카메라가 계기였다.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내게 사진을 찍는 목적 중 하나는 ‘기록하기 위함’이다. 앞서 말했듯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함과 더불어 내가 본, 또 내가 좋아하는 세계의 광경을 기록하고 남기고자 하는 측면이 있다.”한 장의 사진 안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오니시: “좋은 질문이다. 중요한 건 ‘자신’이다. 사진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안에는 무엇보다 ‘자신’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사진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나카무라: “할 수 있는 일이 사진 찍는 것밖에 없어서다.(웃음) 어떤 이들은 사진 찍을 기력이 없다고 한다. 또, 개인 사정이 있어 못 찍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그 상황을 찍고 싶다. 어떤 상황이든 그 상황의 나를 사진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 ‘사진을 찍는 것밖에 남지 않은’ 게 원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스즈키: “사진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가령 전시를 구상할 때, 좋은 사진은 나의 마음이 얼마나 담겨 있느냐로 결정된다. 외부 요소를 의식하는 건 좋지 않다. 타인에게 자랑하기 어려운 사진이 좋은 사진이기도 하다.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사진 안에는 나름의 ‘미(美)’가 존재한다. 그것이 스스로 일어서서 자신의 심정에 합치되면 좋은 사진이다.”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스즈키: “예를 들면 이렇다. 사진에 처음 입문할 때는 ‘구도가 좋아야 한다’라거나 ‘한가운데에 사람이 오면 안 된다’ 혹은 ‘빛이 꼭 있어야 한다’ 등을 배운다. 물론 입문 과정에선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빛은 제대로 들어와 있지만, 나의 심정에는 방해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을 신경 쓰기보다는 사진의 미와 나의 심정이 합치된다는 느낌이 왔을 때 비로소 좋은 사진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스트리트 사진의 일인자 스즈키 타츠오는 해든뮤지움의 넓은 전시 공간을 장점으로 꼽았다. |
|
이번 ‘길 위의 파롤’ 전시를 보며 관객들이 어떤 인상을 받기 바라나? 각자가 생각하는 ‘관전 포인트’가 있다면?오니시: “스트리트 사진가는 평소 우리가 느끼는 일상을 찍는다. 대부분 사진가의 주 무대는 도쿄지만 오사카에서 활동하는 사진가도 있다. 일본과 일본의 일상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고, 또 많이 알아주셨으면 한다.”나카무라: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사진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를 보며 지역이 다르다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는 바가 있음을 느꼈다. 그러니 한국 관객분들도 일본의 사진이지만 그 장소에 자신을 투영해서, 사진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스즈키: “두 분의 생각과 같다. 첨언하자면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한국 관객분이 스트리트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꼈으면 한다. 스트리트 사진이란 사진가가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를 한 폭의 사진에 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카무라 말처럼 각자의 도시를 비추어 봄으로써 한·일 간 교류가 깊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사진을 통한 한·일 간 교류를 통해 기대하는 점은?스즈키: “사진에는 언어가 필요 없다. 시각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나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우리가 이 사진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점들이 많다. 드넓은 미술관에서 사진을 관람하며 언어를 초월한 상호 교류의 장이 펼쳐지고 있지 않나. 앞으로도 그러길 희망한다.”김도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vvayawa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