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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창업열전(4)] 김윤민 3옥타브장인 대표 

“고시원 달방에서 과학적 발성법 연구… 원리만 알면 누구나 노래 잘 부를 수 있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낮에는 해부학 전문서로 발성법 공부하고 새벽에 공원서 노래 연습
카센터 지하에서 첫 학원 열어… 지금은 전국에 수강생 1000명 넘어


▎김윤민(40) 3옥타브장인 대표는 고시원 달방에서 해부학을 공부하며 득음(得音)했다고 한다.
김윤민(40) 3옥타브장인 대표를 찾은 것은 누구라도 그를 통하면 시원한 고음을 내지를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는 “근력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지듯이 가창력도 마찬가지다. 고음이 막히는 지점에서 목의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못된 발성 습관을 가졌는지 등을 진단하고 개선하면 된다”고 했다. 그가 운영하는 음악학원 이름은 ‘3옥타브장인’이다. 일반 남성은 넘볼 수 없는 음역인 ‘3옥타브’를 안정적으로 뽑아내도록 가르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는 노래를 잘하기 위해 고시원에서 해부학 서적을 달달 외웠다고 했다. 원래 꿈은 가수가 아니었다. 지독한 가난 탓에 10대 때부터 어떻게 하면 하루를 버텨낼까만 고민하고 살았다. “학교 다닐 시간에 일용직을 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17살이 되자마자 부모님께 절하고 집을 나왔다.” 그는 고등학교도 자퇴했다. 믿을 건 몸뚱아리뿐, 복싱 선수로 돈을 벌겠다며 체육관에 갔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근력운동을 하고 산을 탔다. 그런 다음 일용직을 마친 뒤 저녁에 체육관에서 줄넘기 5만 개를 하고 스파링 뛰는 게 일과였다.”

그렇게 하면 쓰러진다.

“몸이 못 버텼다. 아침 등산을 한 번 빼먹고 일을 나갔는데 그날 저녁 체육관에서 쓰러졌다. 병원에선 발목 인대가 여러 개 끊어졌다고 했다. 이렇게 운동하면 평생 휠체어 신세 진다고 해서 관뒀다. 그러다 지인 소개로 경기 안산에 있는 광고 대행사 면접을 보게 됐다.”

중졸인데 자격이 됐나?

“돈 안 받아도 되니까 재워만 달라고 했다. 절박한 게 보였는지 다음날부터 나오라고 하더라.”

무슨 일을 했나?

“남들 출근하기 전에 회사 청소하고 근무 시간이 되면 인형 탈 뒤집어쓰고 행사장에서 춤을 췄다. 그 일 외에 온갖 잡무를 다 봤다. 인턴 같은 역할이었다. 사실상 공사장 일과 다를 바 없었다. 일이 고될 뿐이지 숙련도가 쌓여서 커리어가 되는 게 아니었다. 집 나온 지 4년 됐는데 몸은 망가지고 나아진 건 없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집 나와 대행사에서 인형 탈 알바 뛰며 생활

그래서 어떻게 했나?

“좋은 대우를 받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가만 보니 기획부가 가장 좋은 대우를 받더라. 돈을 벌어다 주는 부서였으니까 당연했다. 그래서 기획부가 쓴 각종 기획안을 출력해서 수십, 수백번 베껴쓰는 훈련을 했다.”

단순히 따라해 본 건가?

“사무직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통상 회사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규모나 인력, 자원이 얼마나 투입되고 각자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알고 싶었다. 21살에 그런 공부를 했으니 사업을 하기 전 사전 공부를 한 셈이다.”

좀 늦은 나이에 군 입대를 했는데?

“원래 최종 학력 때문에 면제였다. 하지만 검정고시를 보고 자원입대했다. 하루하루 살아갈 고민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경기 포천에 있는 공병대대에 갔는데 온종일 용접하고 벌목하는 게 다였다. 가끔 다른 부대 공사 지원을 나가기도 했다. 마음 편하고 좋았다. 포상휴가도 제법 받았는데 어차피 나와봐야 돈만 쓰니까 대부분 반납했다.”

제대한 뒤에는 뭘 했나?

“2년 전 유예했던 고민이 다시 되풀이됐다. 막막했다. 좀 방황하다가 회사로 돌아갔다. 마침 기획부에 티오(T/O)가 있어서 그리로 보내달라고 사장님께 부탁드렸다. 반신반의하길래 그날 지자체가 주관하는 행사 이벤트 기획안을 써서 보여드렸다. 오케이 사인이 나서 그때부터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추가로 받게 됐다. 그때 정말 열심히 살았다. 우리나라에 발굴 안 된 아동극단을 찾아내서 모 백화점 어린이센터와 연결하기도 하고 대형 가수 콘서트도 따내고…. 그런데 1년 후 사장님께서 급성 질환으로 돌아가셨다. 회사가 공중분해될 판이었다. 미련 없이 퇴사했다.”

다른 대행사로 이직을 준비한 건가?

“아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만 고민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 일을 10년을 더한다고 인생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사실 인형 탈 쓰면서 한창 몸을 굴릴 때 무대에서 몇 번 노래한 적이 있다. 그때 주변 반응이 좋았던 게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이번에 노래를 제대로 공부해보자고 결심해 안산 고잔역 부근의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고시원이라니, 득음(得音) 수행이라도 나선 건가?

“비슷하다. 고시원에서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었다. 거기서 해부학 책을 빌려서 달달 읽었다. 소리를 낼 때 인간의 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음의 높낮이에 따라 어떤 근육이 쓰이고 공명의 깊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공부했다.”

노래를 잘하는 방법으로 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창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물론 최상위권 가수들에 한해서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훈련으로도 노래를 ‘잘’ 부를 수는 있다. 가창력을 단순히 재능으로 치부하지 말고 과학적으로 원리를 파헤치자는 생각이었다.”

대학원생도 전문 서적은 무서워한다.

“그런가(웃음)? 처음에는 온종일 들여다봐도 한 쪽을 못 읽었다. 내가 아는 한글이 맞는지 의심되더라. 무슨 외국어도 아니고. 오기가 생겨서 사전을 구해다 옆에 끼고 읽었다.”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다닐 생각은 안 했나?

“스스로 깨우쳐야 했다. 대행사에서 일할 때 꽤 유명한 대학의 실용음악과 학생들을 자주 봤다. 그 친구들에게 하루 몇 시간 연습하느냐고 물었더니 2~3시간이라고 하더라. 내 기준에선 너무 적었다. 내가 하루 15시간씩 공부하고 훈련하면 그들을 앞지를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시원에서 노래 강의 영상 찍어 유튜브에 올려


▎김윤민(40) 3옥타브장인 대표는 구독자 11만 명의 노래 강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 사진:유튜브 3옥타브장인 캡처
가수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나?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때(운이 들어오는 시기)와 인연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학원을 차리고자 마음먹었다. 노래 잘하는 법을 전수하는 게 곧 돈이고, 사업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론 공부에 더 악착같이 매달린 면이 있다.”

하지만 실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고시원 앞의 공원에서 노래했다. 밤 10시면 가로등이 전부 꺼져서 어둡고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공원의 다리 위로는 전철, 화물차 등이 지나는 터라 마음껏 소리를 질러도 됐다. 간혹 마주치는 커플들을 제외하면 완전히 나만의 공간이었다.”

벌이는 없었나? 돈이 금방 떨어졌을 것 같은데.

“반년 지났을 때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 계산해보니 고시원 월세 34만원, 식비 3만~4만원, 휴대폰비 6만~7만원 해서 한 달에 약 50만원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매주 한 번씩 택배 상·하차 알바를 갔다. 그렇게 7년은 고시원에서 살았다.”

몸에 탈이 나야 ‘할 만큼 했다’고 만족하는 성격 같다.

“1평 고시원에서 ‘폐관(閉關) 수련’을 하다 보니 신경쇠약이 왔다. 정신은 깨어 있는데 눈앞이 번쩍번쩍했다. 침대에 누웠는데 머리에서 생각의 고리가 안 끊겼다. 병원에선 수면제를 처방해줬다. 그런데도 못 잤다. 입에는 혓바늘이 가득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은 없었나? 남들처럼 게임을 한다든지.

“사람과의 소통이 그리웠던 것 같다. 그때가 2015년이었는데 막 유튜브가 활성화됐을 때다. 카메라로 셀카로 촬영하면서 일상 얘기를 했다. 반찬이 없어서 라면수프를 밥에 뿌려서 연명했는데, 동네 술집 사장한테 반년 치 수프를 받아온 얘기나 리어카 끄는 할아버지에게 막걸리 얻어 마시며 인생을 배운 얘기…. 그런데 그게 유명해지게 됐다. 고시원에서 음악 공부하는 기인 정도로 알려진 건지. 구독자가 늘어날 시점에 커리큘럼도 완성돼서 노래 강의 영상을 찍었는데 내게 배우고 싶다는 구독자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이었나?

“다양했다. 인천의 중고차 딜러, 지방대 출신의 연구원 준비생, 보육원에서 하루하루 벌어 먹고사는 친구 등등. 그 친구들 데리고 공원 다리 밑으로 가서 맥주 한 캔씩 바닥에 늘어놓고 노래를 가르쳤다. 과연 내 공부가 헛일은 아니었는지, 과연 사람들에 통할지 그게 중요했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서 사람이 더 모였고 한 달이 지났을 때 고시원 월세는 걱정 안 해도 되는 수준까지 돈이 모였다.”

첫 학원은 카센터 지하를 빌려서 개업했다고 들었다.

“애당초 자본 없이 시작한 사업이었으니까 제대로 된 건물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수강생이 계속 모인다는 게 다행이었고 어느새 강의 예약이 두 달까지 밀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 정도면 혼자 가르치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처음 찾아온 세 명에게 강사를 제안했다. 본업이 있어도 매주 나를 찾아온 친구들이었으니까. 원래 벌던 것 이상의 수익을 안겨주겠다, 대신 내 커리큘럼을 완벽하게 이해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커리큘럼이 A4용지로 200장이다.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더라. 그 모습을 보고 다음 레벨로 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커리큘럼은 고시원 생활의 결실 아닌가. 그걸 쉽게 보여줬나?

“혼자서는 사업을 확장할 수 없다. 다음 레벨로 가기 위해선 내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커리큘럼은 내가 공부한 내용을 빠르게 이해시켜주는 지름길 역할이지, 거기에 내 음악 철학과 본질이 담겨 있지는 않다. 백종원의 레시피가 인터넷에 떠돈다고 해서 백종원의 존재감이 줄어드는 건 아니지 않나.”

“남들이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기술을 갖춰라”

듣기로 노래 강의 업계는 정직원 채용이 없다고 하던데?

“자신의 노하우를 강사들이 훔쳐갈까 봐 음대 출신이나 음원 경력이 있는 무명 가수에게 용돈 수준의 월급을 쥐여주며 시간제로 굴린다. 그래서 대다수 학원이 수강생에겐 로또다. 원장의 이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원장은 두 배, 세 배로 돈을 내는 VIP를 가르치지, 일반 수강생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배정받은 강사 수준에 따라 수강생의 교육 내용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솔직히 말해 그건 학원이 아니다. 그와 달리 우리는 정형화된 교육을 추구한다.”

모든 강사가 김 대표만큼 가르칠 수 있다?

“그렇다. 모두 정직원으로 채용하되 3개월은 인턴기간을 둔다. 그 시기에 인턴은 커리큘럼을 완전히 이해하고 남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 그래야 김윤민에게 배운 게 아닌 3옥타브장인에게 배우는 게 된다. 수강생은 담당 강사가 아닌 다른 강사에게서도 똑같은 수준의 강의를 받을 수 있다.”

지점을 3곳까지 늘렸다. 수강생이 몇 명인가?

“전국에 1000명가량 된다. 카센터 지하를 나와 강남에 본점을 차리고 인천과 부산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사업하면서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는가?

“원래는 사람 만나고 활동해야 하는 성격이다. 여행도 할 겸 서울과 인천, 부산을 돌면서 수강생들 피드백해주며 스트레스를 푼다. 최근엔 성남 백현동에 카페를 차렸다. 거기서 설거지와 매장 정리도 하고 팝아트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대학을 졸업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다. 취업만이 답은 아니라고 여기는 풍조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20대에는 기술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최소 10년은 투자해서 그 분야의 장인이 돼야 한다. 남들이 안하거나 숙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술일수록 좋다. 취업난이라고 프랜차이즈 창업에 눈을 돌리는데 남의 레시피로 운영하는 요식업은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 글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407호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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