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절체절명 위기… 대통령과 각 세우는 여당 대표 상상하기 어려워”
“韓 당무개입 발언은 박근혜 전 대통령 연상시켜… 尹과 정면충돌 결심한 듯”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나경원 의원은 “무한한 소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 의원이 지난 7월 7일 경북 경주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나경원 의원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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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나경원 의원은 초록색 정장을 입고 당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국민의힘 당색인 빨간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출마 선언을 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장관이 빨간색 넥타이를 맨 모습과 대비됐다. 나 의원의 ‘결기’가 느껴졌다. 지지자들이 ‘보수를 지켜온 나경원’이라는 글귀가 적힌 카드를 들고 연신 “나경원”을 외쳤다. 그로부터 2주 뒤인 7월 7일, 나 의원과 마주 앉았다. 포항과 경주, 영천, 의성, 안동, 영주를 방문하는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는 날이었다. 나 의원은 비장했고 간절했다. 그는 “진심을 다해 당원들을 만나고 있다.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마 선언 당시 당색인 빨간색이 아닌 초록색 정장을 입은 게 눈에 띄었다.“초록색 정장은 내게 특별하다. 특별한 자리에만 입는 정장이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시절인 2019년 3월, 당시 보수 진영은 무기력했다. 문재인 정부가 분명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에도 ‘잘못하고 있다’고 외칠 용기가 없던 시절이다. 당시 원내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달라”고 외쳤다. 나름대로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때 입었던 옷이 초록색 정장이다. 이후 중요한 자리에는 늘 초록색 정장을 입는다.”
2022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도 초록색 정장을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맞다. 연판장 사태로 물러날 때도 초록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중요한 자리에는 항상 초록색 정장을 입었다. 참고로 난 단벌신사다. 한 벌밖에 없다(웃음).”
초록색 정장을 다시 꺼내 입을 만큼 이번 전당대회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그렇다. 솔직히 처음 (전당대회) 출마를 결심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절실하다. 처음 나올 때는 ‘최선은 다하지만, 만약 선택 안 받으면 할 수 없지’라는 생각도 조금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선택받지 않으면 정말 당이 힘들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크다. 무한한 소명감을 느낀다.”
“한동훈은 尹 대통령과 정면충돌 선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주요 행사마다 초록색 정장을 입는다. 나 의원이 지난 6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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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위기인 이유는?“대통령과 각을 세우려는 후보가 있기 때문이다.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의견은 다를 수는 있으나, 공개적으로 정면충돌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저격으로 들린다.“그렇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당대표가 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 결과는 한 전 비대위원장이 유력하다.“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여당 대표는 위험하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대표가 되면 당정 모두 어려움에 빠질 거로 확신한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대통령과 정면충돌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한 전 비대위원장이 김건희 여사와 오고 간 텔레그램 메시지 논란을 두고 ‘당무 개입’이라고 언급한 것을 의미하는가?“그렇다. 한 전 비대위원장은 그 누구보다 ‘당무 개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한 전 비대위원장은 검사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당무 개입 혐의로 수사, 기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결국 당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지난 2018년 11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한 전 비대위원장은 김 여사와 오고 간 텔레그램 메시지 논란에 대해 “지금이 시점에 이런 얘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비정상적인 전당대회, 당무 개입으로 많은 분이 생각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검사 시절 당무 개입 혐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한 것을 의미하는가?“그렇다. 사실 당무 개입으로 기소한 것 자체가 ‘무리한 기소’였다고 생각한다. 당무 개입으로 기소했다는 것 자체가 정치를 모른다는 거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한 전 비대위원장이 당무 개입을 언급한 거다. 대통령과 정면충돌하겠다는 선언이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당무 개입을 언급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하는가?”
“김건희 여사 사과했다면 총선 결과 달라졌을 것”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2019년 3월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중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자 홍영표(오른쪽)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단상으로 나가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와 마주 선 이는 정양석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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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 비대위원장이 이전에도 당무 개입을 말한 적이 있는가?“공식적으론 처음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봐라. 윤 대통령과 한 전 비대위원장의 충돌이 표면화된 시점이 언제인가?”
이관섭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 전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지난 1월이다.“그렇다. 그때부터 ‘당무 개입’이란 단어를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다고 본다.”
나 의원은 최근 김건희 여사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김 여사가 4·10 총선 이전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면 우리 당 후보들이 총선을 치르는 데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최근 텔레그램 메시지 논란이 더욱 뼈아픈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비대위원장으로서 한동훈 후보는 책임 있는 행동을 했어야 했다.”
김건희 여사 텔레그램 메시지 논란이 전당대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텔레그램 메시지 내용이 논란인 이유는 한 전 위원장이 김 여사와 소통할 기회를 날린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방금 언급한 대로 당시 총선을 치르는 입장에서 저도 김 여사의 사과를 기대했다. 대권 열망이 강한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은 물론 우리 당도 위험에 빠질 것으로 저는 확신하다. 반면 나경원이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의 성공은 물론, 보수의 재집권도 이뤄낼 수 있다.”
지난 4·10 총선으로 돌아가보자. 한 전 비대위원장에게 10점 만점 중 몇 점을 주겠는가?“총선에서 패했다는 것 자체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어떤 아름다운 말로 포장해도 패장은 패장이다.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총선이 끝난 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우리 당은 여전히 아프다. 당 도처에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위기를 의미하는가?“알려진 바와 같이 ‘줄서기 문화’가 강해지고 있다. 특정 계파에 속한 분들이 특정 캠프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는 국민의힘 내 계파 정치가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과감히 대권 꿈을 접은 이유다.”
“당선되면 당명 교체로 당 재건 앞장”수도권 5선 의원이다. 대권 꿈을 접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나까지 대권 운운하면 ‘줄 세우기 정치’가 더욱 강해진다. 지금은 당이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하는 시점이다. 지금부터 계파 분열이 시작되면 우리 당에 해가 된다. 당대표 후보가 대권 열망을 버리지 못하면 당을 사당화하는 위험이 생긴다. 사실 대권 불출마 선언이 되레 전당대회에서 표를 받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는 우려도 컸다. 그렇지만 한 전 위원장, 원 전 장관과 달리 나는 국민의힘 재건만을 위해 출마했다는 점에서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당을 재건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간단하게 당명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현 당명(국민의힘)에는 문제가 있다.”
어떤 문제가 있나?“공당이라면 당연히 당의 가치가 당명에 녹아 있어야 한다.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은 심지어 영어로 ‘People Power Party’다. 진보적 느낌이 든다. 변화와 개혁의 출발은 우리 당의 정체성을 보다 정확히 규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대표가 되면 당명부터 교체할 생각이다.”
보수의 가치를 보다 선명하게 하겠다는 건가?“그렇다. 중도를 바라보더라도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중도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우리 자체의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당 자체가 흔들린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당명을 바꿔야 한다.”
보수정당이 오랜 기간 간직한 빨간색을 버리고 초록색을 택하는 날이 올까?“아직 생각은 안 해봤다(웃음). 다만 불가능은 없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현 정치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현재 야권은 ‘기승전 탄핵’을 이야기한다. ‘대표 나경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다. 저는 엄혹한 시기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한 전 위원장과 원 전 장관과 달리 현역 의원이기도 하다. ‘대표 나경원’만이 윤 대통령에 대한 야권의 탄핵 위협을 저지할 수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선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정치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당적을 옮긴 적이 없다. 당에 뿌리가 있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당원들과 축적된 시간이 많다. 당원들의 선택이 꼭 여론조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원들이 ‘나경원’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본다. 특히 위기일수록 ‘나경원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