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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가 21세기 문명에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점 중 첫째, ‘평화 창출의 원천’, 둘째 ‘인간복권의 기축’이라는 지난 호에 이어)셋째, ‘만물이 공생하는 대지’라는 관점입니다.법화경에서는 수많은 비유를 설하는데, 그중에는 광대한 대지가 골고루 단비를 맞아 크고 작은 온갖 초목이 생생하게 싹트는 묘사가 있습니다. 한 폭의 명화를 보듯 웅대하고 역동적인 참으로 법화경다운 생명의 약동은, 직접적으로는 부처의 평등대혜(平等大慧)한 법에 감싸여 모든 사람이 불도(佛道)를 이루어가는 것을 나타냅니다.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부처의 생명을 호흡하면서 개성 풍부하게 생(生)을 구가하는 ‘만물이 공생하는 대지’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아시는 바와 같이 불교에서는 ‘공생(共生)’을 ‘연기(緣起)’라고 설합니다. ‘연기’를 ‘연하여(緣) 일어 남(起)’이라고 쓰듯이 인간계든, 자연계든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서로 연(緣)이 되면서 현상계(現象界)를 형성합니다. 다시 말해 사상(事象)의 참모습은 개별성이라기보다는 관계성이나 상호의존성을 근저로 삼고 있습니다.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서로 관계하고 의존하면서 살아 있는 하나의 코스모스(내적 조화), 철학적으로 말하면 의미연관(意味連關)의 구조를 이룬다는 것이 대승불교에서 바라보는 자연관의 골격입니다.일찍이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모든 것이 하나의 전체를 만들어낸다. 하나하나가 서로 살아 움직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불교적 식견에 관해 젊은 벗 에커먼은 “예감은 하지만 실증이 없다”라고 평했는데, 그 뒤 백수십 년이 지나면서 그 괴테의, 나아가서는 불교의 연역적 발상의 선견성이 꾸준히 입증되고 있습니다.인과율(因果律)을 예로 들면, 연기론(緣起論)에서 말하는 인과율은 근대과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주관으로부터 분리된 객관적인 자연계를 지배하는 기계론적 인과율과 전혀 다른 인간 자신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자연계에 걸쳐 있습니다.예를 들어 어떤 재해가 일어났다고 합시다. 그 재해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을까. 그 일정한 원인은 기계론적 인과율로 규명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거기에는 왜 자신이 그런 재해를 당했는가 하는 식의 물음은 결정적으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실존적 물음을 잘라낸 데서 성립한 것이 기계론적 자연관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통하는 상호의존 관계불교에서 설하는 인과율은 “무엇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는가?”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는 석존의 원초적인 응답이 나타내듯이, 그러한 ‘왜?’라는 물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깊은 사색을 통해 중국 천태대사 지의의 유명한 ‘일념삼천(一念三千)’론처럼 근대과학과도 충분히 정합성(整合性)을 갖는 웅대하고 정밀한 논리를 전개합니다. 이처럼 현대의 생태학, 트랜스퍼스널심리학, 양자역학 등은 각각의 관점에서 그러한 불교적 발상과 친근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관계성이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면 자칫 주체성이 매몰돼버리지 않을까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에는 오해가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불전에는 “나야말로 나의 주인이니 어찌 주인이 따로 있으랴. 자신을 잘 다스리면 얻기 힘든 주인을 얻으리라” “마땅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라. 자신에게 귀의(歸依)하고 법에 귀의하여 다른 데에 귀의하지 말라”라고 씌어 있습니다.두 구절 모두 ‘다른 것에 분동되지 말고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라’고 강하게 촉구합니다. 다만 여기서 ‘나’와 ‘자신’이라는 말은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작은 자신, 다시 말해 ‘소아(小我)’가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무한히 인과(因果)로 얽혀 있는 우주생명에 융합하는 커다란 자신, 다시 말해 ‘대아(大我)’를 가리킵니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다른 데에 귀의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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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케다 다이사쿠(1928~2023) - 국제창가학회(SGI) 회장 역임. 소카대학교·소카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등 24개국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409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의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