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 교육의 체계를 정립하고 미래 지도자 양성하는 초석 다질 것”“후손 처우 개선 위해 현행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 필요”
▎독립운동가 유만수 선생의 직계후손인 유민 광복회 학술원 초대원장이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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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AI가 그린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올라왔다. 그림 속에서 유관순 열사는 또래 10대 친구들과 함께 교복 차림으로 떡볶이를 먹고, 윤봉길 의사는 앞치마를 두른 채 가족을 위해 도시락을 싸는가 하면, 안중근 의사는 퇴근 후 동료들과 대화하며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이후 한 AI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독립투사들을 기념하고자 제작했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교과서를 통해 독립운동가 이름을 외우기만 했던 딱딱한 역사가 젊은 감각과 만나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운 창의적인 역사 콘텐트가 된 것이다.광복절 79주년을 앞두고 만난 유민 광복회 학술원 초대원장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면서 “실제로 독립운동가들은 예술·교육·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었고, 개인사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라는 말로 반겼다. 그의 말대로 독립운동가들은 본래의 직업이 있었다. 교사, 시인, 과학자, 사업가, 농부, 자영업자… 역사의 한 부분으로 묶여 있지만, 그들의 개인사 하나하나를 풀어서 들여다보면 독립운동 스토리텔링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 그 지점에 유민 학술원장은 주목했고 “요즘 세대에 맞춘,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독립운동 관련 콘텐트를 만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유 원장 역시 독립운동유공자 후손이다. 1945년 7월 24일 일어난 ‘부민관 폭탄 의거’의 주인공인 유만수 선생이 그의 부친이다. 당시 대한애국청년당 소속이었던 유만수·강윤국·조문기 선생이 현재의 서울시의회 건물인 부민관에서 열린 ‘아세아민족분격대회’ 행사장에 폭탄을 터뜨린 사건이다. 사실상 일제강점기의 마지막 의거로, 유만수 선생은 의거에 사용할 다이너마이트를 구하기 위해 서울수색변전소에 잠입해 매일 소량의 다이너마이트와 뇌관을 몰래 집으로 가져와 의거에 사용할 폭탄을 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광복회 대외협력국장을 겸직하고 있는 유 원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와 정책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를 졸업하고 서울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모스크바 특파원,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주LA총영사관 영사, 주러시아대사관 공사참사관,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국제대학교(KIUC) 총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와 6월부터 광복회 대외협력국장을 맡아왔다. 그는 광복회 학술원 초대원장으로서 “후손 교육의 체계를 정립하고 국가의 미래 지도자를 양성하는 초석을 다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을 거 같은데, 어땠나?“생전에 아버님께선 주로 병원이나 요양원에 계셨기에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었다. 당시 제가 많이 어렸기도 했고. 어렴풋이 나라를 위해 뭔가 하셨다고만 알고 있었지 그게 독립운동인 줄은 몰랐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였는데, 어느 날 아버님이 저를 동네 포장마차로 부르셨다. 그때 처음 당신이 독립운동하셨던 걸 직접 얘기해주셨다. 어린 마음에 제가 ‘우리집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정부에 도움을 청해도 되지 않느냐’고 했는데, 굉장히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셨다. 아버님께선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놓고 그걸로 보상을 바란다면 절대 안 될 일이다’라고 하셨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 후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그게 아버님과의 마지막 기억이다.“
“선열들의 업적에 부응하는 미래 지도자 양성”광복회 학술원 초대원장을 맡게 됐다. 소감은?“광복회에 오기 전 저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국제대학을 설립해 10년간 운영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 경험을 잘 살려 학술원이 제도적으로 탄탄하게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고 싶다. 선열들처럼 나라를 위해 헌신할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체제를 세워가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세대를 이어 학술원이 잘 뿌리내려 운영되도록 제도화시켜놓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학술원의 비전과 목표를 소개한다면?“광복회는 지금 선열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후손 시대가 열렸다. 새 시대를 맞아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체계적으로 정립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 독립선열들의 업적에 부응하는 후손 미래 지도자들을 키우는 것을 비전으로 한다. 학술원을 통해 인재로 양성된 후손들이 지도자가 돼 사회나 국가공동체에 선열처럼 헌신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지금은 아카데미 형태지만 제도권으로 들어가 2년 뒤 평생교육원, 다시 준비가 되면 대학원대학교 설립이 목표다.”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는가?“크게 세 가지다. 학술대회, 논문공모사업, 콘텐트제작사업은 여느 학술원과 다를 바가 없다. 그중 아카데미 사업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아카데미 과정 중엔 1:1 멘토링도 있는데, 현재 대한민국을 이끄는 각 분야의 지도자들과 만나 ‘도제식’ 개별 수업을 받는 방식이다. 정치, 사회, 경제 등 분야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하고 격려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독립영웅 아카데미’, ‘청년 헤리티지 아카데미’ 제1기 사업이 시작됐는데, 거는 기대가 무척 크다.”
초대원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당장은 2026년 지방선거에 우리 학술원을 거친 후손 인재들을 많이 진출시키는 것이다.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사회에 꼭 필요하면서도 전문성과 다양화에 부응하도록 설계하고, 유력인사의 멘토링을 강화함으로써 미래세대를 이끌어갈 리더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독립운동가 스토리, 콘텐트로 개발
▎학술원 개원식에 참석한 우원식 국회의장, 강정애 장관이 남긴 축하 메시지들. / 사진:광복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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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등 다른 기관에서도 독립운동과 관련한 학술·교육·발굴 사업 등을 이미 진행하고 있는데, 학술원만의 차별점이 있다면?“광복회 학술원은 독립선열들의 후손을 대상으로 한다. 이 부분이 여타 독립운동 연구기관과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양한 기관에서 이미 진행 중인 독립운동 역사 발굴과 연구 업적을 한데 모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센터’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우리 학술원은 이제 막 시작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역사연구기관,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등 기존의 훌륭한 연구기관들과 협업을 통해 더욱 위상을 넓혀갈 계획이다. 그래서 독립운동에 관한 한 우리 광복회 학술원이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최종적인 권위’를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
시대 변화에 따라 교육 방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듯한데, 어떤가?“그동안 독립운동 역사 교육 방식이 좀 어렵고 딱딱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시대의 흐름이나 요즘 세대에 맞게 어떻게 변화해야 할 건지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다. 현실적인 방법 중엔 우선 독립운동가의 개별적 스토리를 좀 더 들여다보고 콘텐트로 개발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독립운동가들 중엔 문학가, 음악가, 과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분들이 많다.”
어떤 분들의 이야기가 있나?“윤봉길 지사에 대해 사람들은 ‘도시락’, ‘폭탄’ 정도만 알고 있지만, 그는 굉장한 연극 애호가였다. 윤 지사가 직접 이솝우화 ‘토끼와 여우’를 각색해 연극 상연을 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을 빌미로 일본 경찰이 덕산주재소로 소환해 조사한 적이 있었다. 토끼와 거북이가 빵을 나눠먹으려는 데 여우가 나타나 똑같이 반씩 나눠준다는 핑계로 빵조각을 야금야금 혼자서 다 먹어버린다는 내용인데, 윤 지사가 일본을 이 여우에 빗댄 것을 일본 경찰이 알아낸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윤 지사는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었고, 계몽운동이 성공하려면 우선 민족의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독립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과학자인 황진남 지사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22년, 아인슈타인을 최초로 만난 조선인 과학자가 바로 황진남 지사다. UC버클리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독립운동에 합류했던 황 지사가 베를린에서 유학 중일 때의 일이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동아일보에 상대성 이론을 해석한 기사를 총 4회에 걸쳐 연재했다. 당신도 이론의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조선의 과학 발전을 위해 후대에 알려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사를 작성하셨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세대의 숙제가 됐다. 해법을 제시한다면?“‘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 해결될 일이다. 해방 후 이승만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어느 정부도 주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진정으로 예우한 적이 없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아나? 1996년이다. 독립운동이 끝난 시점인 해방 후 반세기가 넘어서야 그 법이 나왔다는 게 무얼 의미할까? 더 놀라운 사실은 1973년 유신정부가 국회도 아닌 비상각료회의에서 ‘독립유공자유족의 범위가 넓다’면서 일방적으로 독립유공자 손자녀를 보상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일단, 이 법률을 유신 전으로 되돌려 수권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후손 예우와 복지문제 등이 일거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尹 정부, 일본 군함에 꽂힌 욱일기 외면해선 안돼”
▎6월 17일 광복회관에서 광복회 학술원 개원식이 열렸다. 왼쪽 두 번째부터 유민 학술원장, 김희곤 임시정부기념관장, 이종찬 광복회장, 우원식 국회의장,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전광삼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한시준 독립기념관장, 허동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 사진:광복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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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현충일에 한 아파트에서 욱일기를 내건 사건 등 젊은 세대 일부에선 왜 ‘친일’이 문제인지를 되묻기도 한다.“단순히 친일행각을 떠나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개인이 한 행동으로서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 문제는 정치지도자들부터 교육을 담당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본다.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이다. 욱일기를 게양하는 것은 일본인 중에서도 일부 극우 성향의 사람만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걸 한국인이 한다는 것은 역사를 아예 모르기 때문이라 믿고 싶다. 그러니 그 사람만 탓할 수도 없다.”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건가?“예컨대 북핵 대비 명분으로 한·미·일 해상훈련을 실시할 때, 우리 정부가 일본 군함에 꽂힌 욱일기를 보고도 ‘외면’한다는 것이다. 한 번의 항의조차 없었다는 게 큰 문제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광복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 목소리만 크게 높일 게 아니라 왜 욱일기를 반대하는지, 욱일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해 잘 알려야 한다. 이제 학술원이 개원했으니, 광복회가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훈계’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글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park.sena@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