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2024 투란도트’의 유일한 한국인 소프라노로 출연 확정메트로폴리탄·볼쇼이 오페라단 등 세계 최정상 프리마돈나 활약
▎소프라노 박미혜 교수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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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린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아하면서도 힘 있는 소리는 소프라노 박미혜의 장점이다.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프리마돈나답게 극적인 요소를 잘 표현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가 12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대형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이하 ‘투란도트’)에서 리우 역을 맡게 되면서, 이번 공연의 유일한 한국인 성악가로 다시 한번 이슈의 중심에 섰다.소프라노 박미혜는 서울대 음대 졸업 후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내셔널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고, 오페라 인덱스 콩쿠르와 오페라 MBP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플로렌틴오페라 컴퍼니, 코네티컷 오페라 컴퍼니, 사라소타오페라 컴퍼니 등에서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활동반경을 넓혀왔다. 이어 뉴욕시티오페라단과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로 세계 최정상 소프라노로 인정받으며, 최근까지 러시아 볼쇼이오페라단 주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한국에서는 2002한·일월드컵 기념공연에서 ‘빅3테너’로 불리는 호세 카레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의 합동 공연을 통해 유명해졌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열리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라보엠, 리골레토,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라인의 황금, 춘향전, 시집가는 날 등 고전과 창작 오페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해 왔다. 현재는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박미혜 교수는 “얼음공주 투란도트가 진실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바로 리우의 죽음”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투란도트의 진정한 주인공은 리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내면에 사랑이 싹틀 때 비로소 사람답게 된다고 말하는 소프라노 박미혜 교수를 만나 그의 인생과 음악관을 들어보았다.
‘리우’ 역은 비극적 캐릭터로 알려져 있는데…“투란도트는 해피엔딩인데 반해, 유일하게 리우 역할이 죽음을 당하기 때문에 비극적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리우는 비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투란도트를 한 차원 높게 승화시키는 배역이 아닐까 한다. 리우가 아니었다면 얼음공주 투란도트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테니까.”
리우 캐릭터의 해석이 남다른 듯하다.“마지막에 투란도트가 왕자의 이름을 알아냈다면서 칼라프가 아닌, 사랑이라고 답하는 부분이 굉장한 반전이다. 그 반전의 핵심이 바로 리우라고 생각한다. 사랑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굉장한 에너지를 지닌 인물이 리우고, 그 리우가 죽음으로써 극의 반전을 맞이한다. 인간 같지 않던 얼음공주 투란도트를 비로소 인간답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저는 이 오페라는 리우의 오페라고, 리우가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리우는 아리아도 3곡이나 된다(웃음). 그렇게 생각하면서 역할에 몰입할 것이다.”
이 ‘투란도토’로 인해 지금 세계 오페라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고 들었다.“그렇다. 오페라 대가들이 한국이라는 한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정말 기념비적인 일이다. 마침 학교가 방학 중이어서 외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현지 음악가들도 만나고 있는데, 다들 ‘무슨 일이야’ 하면서 의아해하고 있다. 세계적 음악가들이 한국 무대에 선다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시대가 됐다. 지금 한류나 K-문화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데,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이유도 있다.”
파바로티의 공연 관람이 인생의 전환점
▎푸치니 서거 2년 뒤인 1926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한 오페라 ‘투란도트’ 오리지널 포스터. / 사진:2024투란도트문화산업전문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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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또 무언가 흉내 내는 걸 좋아했다. 친척들이 모여 “미혜야, 노래해 봐라” 하시면 즉석에서 공연을 하곤 했다. 그러다 아버님이 “네가 예술을 하려면 예원학교라는 데에 가야 한다더라” 하셔서 예원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다닐 때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내한공연을 왔는데, 그때 인간의 소리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하고 감동했다. 그의 무대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것이다. 그 뒤로는 아주 열심히, 모범생처럼 오직 성악 한 길로만 갔다. 노래 연습하는 시간들이 즐거웠고, 연습할수록 하나하나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즐겼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각이 열리고 귀가 열리는 느낌도 받았다.”
줄리어드 음대에서의 유학 생활은 어땠나?“대학 졸업 후 줄리어드 석사과정으로 갔다. 부모님께 손 안 벌리려고,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허리띠 졸라매고 지냈다. 당시 줄리어드 음대생들은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스탠딩 티켓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리허설을 공짜로 볼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다. 매일 그들의 무대를 보면서 행복했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와서 마스터 클래스를 열 때면 그게 또 그렇게 행복했다. 거장들을 보면서 깨달음과 지식과 마인드를 배웠다.”
오페라 공연 도중 앙코르 받아 열창… 전무후무프로로서 첫 무대는 어땠나?“줄리어드를 졸업하고 경험을 쌓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메트로폴리탄 콩쿠르에 참가했다가 최종 우승자가 됐을 때 얼떨떨했다. 그렇게 메트로폴리탄극장 데뷔 무대를 가졌다. 사실 그 전에 플로리다 사라소타 오페라 컴퍼니에서 오디션을 통해 ‘질다’ 역을 맡은 것이 프로 무대 데뷔라 할 수 있다. 당시 유색인은 질다 역을 맡은 동양인인 저와 리골레토 역을 맡은 흑인 바리톤 단 둘뿐이었다. 지역 신문에 공연 홍보 기사와 출연진의 인터뷰 기사가 줄줄이 실릴 때에도, 나에 관한 기사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초보인 데다 데뷔 무대니까 사람들이 나에게 별 관심이 없나 보다, 그럴 수 있지, 이렇게만 생각했다. 당시 플로리다가 인종차별이 좀 있던 지역이었다. 어쨌든 공연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그런 상황인 줄도 몰랐는데, 공연 중에 제가 아리아를 끝마치자마자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오페라 무대는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공연 중간에 앙코르를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당시 이탈리아 지휘자는 나에게 공연 중 아리아를 한 번 더 부르라고 시켰다. 사람들의 환호와 기립박수가 끝나지 않으니, 지휘자가 즉석 앙코르 무대를 마련해준 것이다. 제 인생의 오페라 무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공연 이후로 반응이 달라졌나?“공연 후 무대 뒤로 지역 주민들, 특히 보수적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찾아와서 사인을 요청하며 “오늘 질다가 최고였다”, “앞으로 너의 팬이 돼서 너의 무대를 찾아 듣겠다”라는 말들을 남겼다. 울컥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공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직접 말은 않지만 ‘네가 감히 어떻게 주인공이야’하는 뉘앙스가 느껴졌기에 더 감동이었다.”
교수로서,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다면?“가장 강조하는 건 언어적인 능력을 키우라는 거다. 유럽이나 미국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딕션 등에서 원어민만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변방에서 온 목소리 좋은 가수에 그치게 될 거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 언어적 능력을 바탕으로 원활한 소통 능력을 갖추라고 한다. 음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협업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갖추라고 말한다. 나만의 템포, 나만의 표현법, 나만의 것… 마지막으로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함께하는 동료들의 의견을 잘 듣고 내 캐릭터를 한 차원 높이기 위한 양식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덧붙여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도전하라고 한다.”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에게도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을까?“사실 무대공포증이 심했다. 다만 수많은 노력을 통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극복하려 한다. 백지에 내가 바라는 모습들, 예를 들면 ‘나는 컨디션이 최상이어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줄 거야’, ‘내 노래로 모두가 행복해질 거야’ 같은 내용들을 자기암시처럼 죽 쓴 다음 시간 날 때마다 소리 내어 읽는 거다. 그렇게 하면서 무대공포증을 차츰 이겨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효과가 커서 지금 제자들에게도 권하고 있는 꽤 좋은 방법이다.”
얼마전 예술의전당 오페라 합창단원 모집 공고문에 게재된 열정페이에 준하는 출연료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정책적인 부분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도적인 부분이나 지원 정책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글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park.sena@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