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에서 경북 울진까지 총 길이 849㎞의 우리나라 최초 백패킹 장거리 트레일5개 시·도 경유하며 국가숲길 연결, 기업 기부 받아 구간 조성해 ESG 활동과도 연계
▎2024년 6월 산림청 주최로 올해부터 본격 궤도에 오른 동서트레일에 관한 전문가 협의회가 열렸다. 임상섭 산림청장(앞줄 오른쪽 다섯 번째, 당시 산림차장)도 참여하며 지속가능성을 탐색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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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trail)과 트레킹(trekking)의 차이를 아시나요? 트레일의 정확한 개념을 잡으려면, 트레킹의 뜻부터 알아야 감이 올 것입니다. 트레킹은 ‘비교적 장시간에 걸친 산길에서의 도보 여행’을 지칭합니다. 등산과 하이킹의 중간 단계 난이도로 이해하면 될 터입니다.트레킹은 원래 남아프리카의 네덜란드계 주민인 보어인의 언어라고 합니다. 여행, 이주, 출발의 의미로 활용됐습니다. 트레킹은 산의 정상을 정복하는 행위인 등산과 달리 산길을 따라서 오래 걷는 여정이라는 특징을 갖습니다. 일종의 도보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역마다 ‘트레킹’이라는 단어가 변형돼서 활용된다는 점입니다. 트레킹의 성지로 꼽히는 네팔을 비롯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남미 등에서는 주로 ‘트레킹’이라고 부릅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 나오는 세계 7대 트레킹 코스 등이 주로 이 지역에 편중돼 있습니다. 이를테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알프스 뚜르 드 몽블랑, 아프리카 사미엔 트레킹,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 칠레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미국으로 넘어오면 ‘트레일’이라는 단어가 보다 보편적으로 활용됩니다. 여기서의 트레일은 ‘넓은 땅을 걷는 도보 여행’이라는 범주에 가깝습니다. 소위 말하는 세계 3대 트레일인 미국 존뮤어 트레일, 캐나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어감을 떠올리면 트레킹과 구분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트레킹에 비해 트레일은 덜 험난한 편이지만, 광활한 대지를 걷는 뉘앙스에 가깝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그 둘의 의미는 포개집니다.
사회적 약자도 누릴 수 있는 숲길산림청은 트레킹길을 둘레길과 트레일로 구분합니다. 길을 걸으며 그 지역의 역사·문화를 체험하고 경관을 지키며 건강을 증진하는 길을 트레킹,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도록 산의 둘레를 따라 조성한 길을 둘레길, 산줄기나 산자락을 따라 길게 조성해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트레일로 각각 정의합니다. 하지만 세 가지 개념은 공히 수평적 선형이라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수직적 선형인 등산로, 복합적 선형인 산림 레포츠길·탐방로 등과 구별되는 요인입니다.언뜻 트레일에는 광활한 이미지가 들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일견 대한민국과는 사이즈가 맞지 않는 개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는 선입견,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산림청은 ‘팩트’로서 보여줍니다. 일례로 산림청은 2022년 6월 ‘운탄고도1330 관광활성화 포럼’을 국회에서 열었습니다. 강원도 영월, 정선, 태백, 삼척 폐광지역을 관광 자원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입니다. 과거 반세기의 세월동안 석탄을 운반했던 총 길이 173㎞의 운탄로를 폐쇄하는 대신 ‘휴양과 힐링의 숲길’로 개조하겠다는 프로젝트입니다.이미 산림청은 대한민국 국토 전역에 1만1000개 노선, 4만2000㎞에 달하는 숲길을 조성했습니다. 대표적인 숲길만 언급해도 지리산둘레길, 백두대간 트레일, DMZ펀치볼둘레길, 대관령숲길, 내포문화숲길, 울진금강송소나무숲길, 서울둘레길, 속리산둘레길, 한라산둘레길 등이 있습니다.트레일, 즉 숲길 도보 여행을 위한 산림청의 원칙은 확고합니다. 첫째 “남녀노소, 장애인, 사회적 약자 등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숲길”이어야 합니다. 둘째 “국가, 지자체, 지역주민이 협력해 함께 키우는 숲길”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셋째 “산촌의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해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숲길”을 지향합니다.이런 산림청의 비전이 집약된 결정판이 바로 ‘동서트레일’입니다. 2022년 9월 기획된 동서트레일은 충남 태안 안면도에서 경북 울진 망향정까지 대한민국 국토 동서를 가로지르는 849㎞ 숲길을 일컫습니다. 산림청은 “한국형 트레일에 관심을 가진 백패커들이 자발적으로 걸으면서 노선을 만들었고, 마을 주민들이 흔쾌히 길을 내준 덕분에 성사된 사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산림청이 우리나라 최초의 백패킹(배낭 도보 여행) 장거리 트레일인 동서트레일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한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현대인들의 여가 트렌드 변화에 편승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배어 있습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며 건강, 웰빙 등의 국민적 수요가 커졌다는 판단이 자리합니다.게다가 이미 산림청은 나름의 성공 경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충청권 내포문화숲길, 속리산둘레길, 경북권 낙동정맥트레일 등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주요 숲길들을 연결해서 국토의 동과 서를 관통하는 루트를 만들자는 비전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충청권과 경북권을 연결하는 숲길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도 뒤따라올 수 있습니다. 물론 동서트레일은 종교적 의미를 갖진 않지만, 잘 정착되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표 소나무인 안면도 소나무림과 울진금강소나무림을 연결한다는 상징성도 지닙니다.동서트레일은 충남에서 시작해 세종, 대전, 충북, 경북 등 5개 시·도를 지납니다. 그 사이에 21개 시·군, 87개 읍·면, 239개 마을을 통과하게 됩니다. 239개 마을 중 10가구 미만 마을이 74개, 10가구 이상 마을이 151개입니다. 10가구 이상 중 인프라가 갖춰진 마을은 14개입니다.동서트레일의 구간은 총 57개로 나눠져 있습니다. 본선 55개, 지선 2개입니다. 1개 구간의 평균 거리는 14.9㎞로 책정해놨습니다. 1개 구간마다 마을 2개를 통과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14.9㎞는 보통 체력의 사람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라고 합니다. 즉, 하루에 약 15㎞씩 걸으며 거점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잠도 잘 수 있는 구조입니다.
동서트레일 편익가치, 941억원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동서트레일 홍보 포스터. / 사진:산림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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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은 동서트레일에서 거점 마을을 90개 설치할 계획입니다. 또 야영장도 44개를 만들 방침입니다. 이 중 1개는 야영장 겸 대피소 용도로 활용됩니다. 워낙 규모가 큰 대형 프로젝트이니만큼 산림청뿐 아니라 5개 광역자치단체까지 관여합니다. 예산만 해도 5년간 604억원에 달합니다. 총 849㎞ 구간 중 123㎞는 국유림으로 산림청이 조성합니다. 나머지 726㎞의 공·사유림 구간은 해당 지자체에서 맡습니다.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동서트레일이 주로 어떤 콘텐트를 갖춘 코스로 구성될 것인지 살펴볼 차례입니다. 먼저 대전둘레산길입니다. 2005~2007년 조성된 138㎞의 이 길은 2022년 11월 국가숲길로 지정됐습니다. 계족산 계족산성, 삼국시대 질현성, 고봉산성 등을 품고 있으며 숲길에서 조망되는 대전시 전경과 대청호반의 수변 경관이 미려합니다. 세종시에는 세종시계둘레길이 있습니다. 159㎞ 거리로 2022년부터 조성을 시작해 2026년 완공 예정입니다. 매봉 등산로에서 바라보는 금강변과 세종시의 경관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충북에는 속리산둘레길이 대표적입니다. 201㎞ 거리로 2013년부터 지금까지 조성이 진행 중입니다. 2023년 국가숲길 신청을 냈고, 산림청에서 심의 중에 있습니다. 속리산둘레길은 삼국시대 삼년산성, 조선 세조가 머물다 간 마을 대궐터, 고려 태조 왕건이 넘나들던 말티재, 연풍순교성지, 호소사열녀각 등 역사문화 자원과 속리산 절경이 어우러지는 풍광을 자랑합니다. 속리산둘레길의 일부 구간(복선 노선 77㎞)은 동서트레일에 편입 요청을 해놓은 상황입니다.충남에는 내포문화숲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총 거리 320㎞에 달하며 2010년 시작해 2013년 조성을 완료했습니다. 이어 2021년 11월 국가숲길로 지정됐습니다. 이 길에는 불교의 발자취를 담고 있는 서산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 상가리 미륵불, 남연군묘, 원효암터 등과 복신굴, 쉰들바위, 무령왕릉, 공주 공산성 등 백제 시대 유적들을 특히 많이 품고 있습니다.그리고 경북에서는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을 꼽을 수 있습니다. 거리 79㎞로 2009년부터 2018년에 걸쳐 조성을 완료했습니다. 2021년 11월 국가숲길로 지정됐습니다. 보부상의 길인 십이령길, 조령성황사, 내성행상불망비, 산양서식지 및 금강소나무 등 산림생태 자원 등의 콘텐트가 풍부한 길로 유명합니다. 문화적 가치와 경치를 동시에 충족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기업의 ESG와 결합하는 국가숲길
▎2023년 11월 동서트레일 안면도 구간 조성사업에 우리금융 등 민간기업도 참여했다. / 사진:우리금융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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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외에도 우리 국토는 9개의 이름 난 숲길을 더 품고 있습니다. 이 중 서울둘레길(157㎞)을 제외한 8개의 지방 숲길은 국가숲길로 지정돼 있습니다. 하나씩 소개하면, 지리산둘레길(289㎞)은 전북 남원시와 전남 구례군 그리고 경남 산청군·하동군·함양군에 걸쳐 자리합니다. 강원도 인제군·홍천군·양구군·평창군·고성군에는 백두대간트레일(206㎞)이 지나갑니다. 또 강원도 양구군에는 DMZ펀치볼둘레길(73㎞)이 있습니다. 강원도 동쪽인 강릉시와 평창군의 대관령숲길(103㎞)도 빠질 수 없습니다. 이 길들은 2021년 5월 1일 순서대로 국가숲길로 지정됐습니다. 이후 2021년 11월 충남 내포문화숲길, 경북 울진의 금강소나무숲길, 대전 둘레산길, 제주도 한라산둘레길이 추가됐습니다.산림청은 숲길 조성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 효과에도 주목합니다. 산림청과 기업의 협약으로 국가숲길 중 일부 혹은 전 구간에 대해 일정 기간 기업이 관리에 참여하는 방안이 도입됐습니다. 동서트레일의 55구간에 해당하는 경북 울진의 20㎞ 루트를 ‘우리금융길’이라고 명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우리금융그룹은 ESG 경영의 일환으로 기부금 8억원을 산림청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에 기부했으며 이 기부금이 울진 망양정부터 하원리 중섬교까지 15.7㎞에 달하는 동서트레일 조성에 활용됐습니다.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고 평했습니다. 이 말을 변주하면,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숲길로 연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입니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