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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뛴다] 요즘 핫한 ‘러닝크루’ 체험기 

“건강 지키고 사람도 만나고… 한강공원에만 수십 개 러닝크루” 

송선교 월간중앙 인턴기자
달리기 초보 ‘런린이’에 최고의 환경… 시원한 맥주로 뒤풀이하는 재미도
‘한강런’만큼 인기 많은 게 도심 달리는 ‘시티런’… ‘페이서’ 없으면 위험


▎M러닝클럽 소속 러너들이 여의도한강공원에서 무리지어 달리고 있다. 여의도한강공원은 러닝의 성지로 통한다.
요즘 MZ들 사이에서 러닝(달리기)이 인기다. 9월 2일 저녁, 러닝을 즐기는 이들이 많이 모인다는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을 찾았다. 서울 모 대학원에 다니는 김용환(30·남) 씨는 매일 저녁 학교 연구실에서 퇴근한 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서울 광화문으로 다시 출근한다. 광화문광장에서부터 홍제동에 있는 집까지 4㎞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어간다. 유례없는 올해 초가을 폭염도 러닝을 향한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하루의 마무리로 러닝을 하면 모든 스트레스가 땀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차를 타는 것보다 달려서 귀가하는 게 더 편하다. 러닝은 이제 내 삶의 일부다.” 김씨의 말이다.

그가 이날 여의도한강공원을 찾은 것은 러닝크루(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에서 뛰어보기 위해서다. 김씨는 “혼자 공원을 뛰다 보면 함께 모여 달리는 러닝크루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며 “사람들과 함께 뛰는 느낌이 궁금해져 오늘 일일 회원으로 왔다”고 말했다. 김씨가 러닝크루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올해 건강과 즐거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유행이 한몫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MZ들이 즐기던 인기 스포츠가 골프·테니스였다면, 최근 유행의 첨단은 단연코 러닝이다. 러닝크루의 수와 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런린이 그룹’과 ‘페이스 그룹’으로 구분해 달려


▎여의나루역 역사 안에 ‘러너스테이션’이 들어섰다.
기자도 김씨의 도움을 받아 일일 회원으로 뛸 수 있는 크루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스마트폰을 이용해 앱 ‘소모임’에 접속했다. 서울 도심권 러닝 테마로 만들어진 모임 100여 개가 검색됐다. 회원 수는 대개 100명 안팎이었다. 이런 소모임 외에 각종 카페, 커뮤니티, 대학 동아리에서 만들어진 러닝크루도 많다고 했다. 러닝크루의 인기가 스마트폰 터치 몇 번만으로도 확연히 느껴졌다. 기자는 스마트폰 앱이 소개하는 여러 소모임 중에서 29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M러닝클럽에 가입했다.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정기 러닝이 약속된 9월 4일, 여의나루역에 내리자마자 러닝크루의 인기를 체감했다. 여의도한강공원은 서울에서 러닝의 성지로 통한다. 가장 가까운 역인 여의나루역 역사 안에 ‘러너스테이션’이라는 공간이 마련됐을 정도다. 러너스테이션은 러닝을 하러 온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마련한 체험공간이다. 체험장에 마련된 신발장에는 화려한 색상의 러닝화가 사이즈별로 있었다. 한쪽에는 러닝화를 신고 달려볼 수 있도록 트레드밀도 비치돼 있다. 여의도 러닝 코스, 서울시 러닝크루 참여 방법 등이 대형 화면에서 소개되고 있었다.

방문객을 맞이하던 러너스테이션 직원은 “직장인들이 몰려오는 저녁 7시부터 바빠진다”며 “여름이 지나가면서 러닝을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체험공간 옆에 마련된 탈의실과 파우더룸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탈의실에서 나온 박모 씨는 “정장을 입고 다니는 일이 많은데, 러너스테이션이 생긴 후로 옷 갈아입기가 편해졌다”며 “늦게 오면 줄을 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을 따라 공원으로 이동했다. 삼삼오오 모인 러닝크루들이 10개 팀도 넘게 준비 운동을 하고 있었다. 기자가 가입한 M러닝클럽 회원들은 오후 7시 50분쯤부터 모임 장소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약 50명이 둥글게 모여 가벼운 준비운동을 한 후 그룹별로 모였다. 이날 러닝은 초보들을 위한 ‘런린이(런+어린이의 합성어) 그룹’과 각자의 페이스에 맞춰 달릴 수 있는 ‘페이스 그룹’ 둘로 나뉘었다. 기자는 6’00” 페이스 그룹으로 들어갔다. 1㎞를 6분에 주파한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주는 밝은 에너지가 장점


▎서울 명동의 한 신발 판매점에 진열된 러닝화.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강을 바라보며 함께 달리자 얼굴에 시원한 강바람이 느껴졌다. 나무와 풀 향기도 났다. 빠르게 달리면서도 옆에서 달리는 사람과 대화가 가능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건너온 직장인 이모(31·남) 씨는 3년 넘게 여러 러닝크루를 경험해 본 베테랑이었다. 이씨는 “모든 러닝크루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밝은 에너지”라며 웃었다. 이어 “처음에는 건강관리를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러닝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 러닝을 하는 이들의 목적은 다양했다. 어떤 이는 “러닝 끝나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뒤풀이가 좋아서 매주 나오는 사람도 있고, 연애하려고 나온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뛴다”는 이씨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3㎞를 쉬지 않고 달리고 나니 숨이 차올라 더 이상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4㎞를 지나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씨는 “러닝을 따로 경험해본 적이 없으면 처음부터 ‘페이스 그룹’에서 뛰는 것은 무리”라며 초보자는 3~4㎞가 고비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총 5.6㎞를 달렸더니 온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가쁘게 숨을 고르는 기자에게 이씨는 “혼자 달렸으면 분명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라며 “이렇게 다 같이 달린 덕분에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거다. 이것이 러닝크루의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시티런’ 행사 하면 10분 안에 신청 마감될 정도


▎러닝크루 회원들이 여의도한강공원에 모여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함께 모여 뛰는 러닝크루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런린이 그룹’에서 뛰었다는 직장인 최한슬(30·여) 씨는 “얼마 전 혼자 달릴 때는 관절이 아프더라. 오늘 러닝크루에서는 아프지 않게 달리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러닝의 좋은 점으로 ‘접근성’을 꼽았다. “시간·장소·장비에 구애받지 않아 진입장벽이 낮다. 신발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러닝크루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 모이는 것이 기본원칙이었다. 시·공간적 제약이 있는 셈이다.

러닝 장소는 한강공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강런’만큼이나 요즘 인기가 많은 게 ‘시티런’이다. 9월 3일 오후 8시, 서울 명동의 한 빌딩을 찾았다. 건물 1층을 가득 채운 50여 명이 준비 운동에 한창이었다. 남산·경복궁 등 도심 명소를 기준으로 하는 코스가 여럿 마련돼 있는데, 이날은 숭례문 코스를 달리는 날이었다. 서로 안면이 있는 듯 삼삼오오 대화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같은 러닝크루에서 함께 왔다고 했다. 대학생 김모 씨는 “원래 한강공원이나 숲공원에서 크루 모임을 하는데, 시티런을 경험해 볼 좋은 기회 같아 크루원들과 함께 신청했다”고 말했다. 따로 활동하는 크루가 있는데도 러닝 행사에 참가할 만큼 러닝에 진심인 그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씩 뛴다”거나 “새로 산 러닝화가 기대된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김씨는 “시티런이 절대적으로 (다른 러닝에 비해) 재미있다. 볼거리도 많고, 교통 상황에 따라 중간중간 멈추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러닝을 다양하게 즐기고 싶다면 시티런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시티런 그룹은 5’30”, 6’00”, 6’30” 등 3개의 페이스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러닝 경력이 없는 기자는 가장 느린 6’30” 그룹에 합류했다. 명동 거리에서 시작해 숭례문까지 달렸다가 다시 뒤돌아 약 5㎞ 거리를 달리는 코스였다. 김씨의 말처럼 시티런이 더 재미는 있었다. 불 꺼지지 않은 고층 건물, 탁 트인 광화문광장의 야경, 숭례문의 운치가 눈에 쏙 들어왔다. 파이팅을 외쳐주거나 하이파이브를 건네는 행인들도 있었다. 마치 도심의 축제 퍼레이드에 참여한 것 같았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한 페이서(Pacer·페이스메이커)는 “요즘 러닝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시티런 행사를 하면 선착순으로 10분 안에 신청이 마감되곤 한다”며 “경복궁 코스를 달리면 서울 시티런의 진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러닝 인기에 러닝화도 패션 아이템으로


▎시티런 행사 참여를 위해 모인 러너들. 매주 남산·경복궁 등 도심 명소를 달린다.
하지만 재미만을 만끽하기에는 위험 요소도 있었다. 한강에서 달릴 때보다 천천히 달렸는데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훨씬 많았다. 달리는 길이 수시로 좁아지고 넓어졌기 때문에 무리 지어 달리는 것이 어려웠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늘 차량을 조심해야 했다. 바닥이 울퉁불퉁해 발끝이 걸리기 십상이었고, 횡단보도 앞 차량 진입 방지 기둥에 허벅지가 부딪히기도 했다. 페이서들의 통제가 없었다면 단체 시티런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안전을 위해 페이서들은 수신호와 구호로 장애물이 있는 곳을 앞에서부터 알려왔다. 김씨는 “시티런이 위험하긴 하지만 그게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하다”며 “만약 러닝 자체가 목적이라면 한강이나 운동장을 가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페이서들의 역할은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산악인들을 안내하는 셰르파의 역할과도 같았다. 그들은 장애물 정보를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의 안전을 위해 앞장서서 안내했다. 한 페이서는 “시티런을 하다보면 차량 운전자들이나 행인들로부터 불평을 듣기도 한다”며 “참가자들이 다치지 않는 동시에 최대한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행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닝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러닝화도 인기다. 러닝화는 러닝을 할 때 필요한 거의 유일한 장비다. 이씨는 “짧은 거리를 느리게 달리는 초보자들은 아무 신발이나 신어도 무리가 없겠지만,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러닝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안 좋은 신발을 신고 오래 달리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5만2000원을 주고 구입한 보급형 러닝화를 신고 달렸을 때와 비교적 고가의 러닝화를 대여해 신고 달렸을 때의 착용감과 발목 통증은 완전히 달랐다.

요즘 러닝화는 패션 아이템으로도 인기가 많다. 명동의 한 신발 판매점에서 만난 20대 박모 씨는 “러닝을 해본 적이 없지만 요즘 유행하는 룩과 잘 어울려 새로 나온 러닝화를 샀다”며 “요즘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인기 신발은 늘 품절 상태라서 중고로 사는 이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 글·사진 송선교 월간중앙 인턴기자 ddoong0404@naver.com

202410호 (202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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