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이색취재] 돌과 로봇 키우는 즐거움 아시나요? 

“돌 봐주고 돌봐주며 돌봄 받는 재미 느껴요” 

송선교 월간중앙 인턴기자
아이돌도 키우는 반려돌… 제작 업체 “한 달에 1000개 팔려”
독거노인 복지 위해 반려로봇 지원… “심심하지 않아 고마워”


▎피터하우스의 작업실에 장식된 반려돌. 정세희(22) 대표는 “‘주인의 슬픔을 대신 먹어준다’는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려인 1500만 시대’라고도 한다. 국민의 30% 정도가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것이다. ‘펫코노미(pet+economy)’라는 말도 등장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해지고 1인 가구가 늘면서 ‘반려 시장’이 팽창 중이다. 이 와중에 반려의 대상을 비단 동물에서만 찾지 않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식물에서 찾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무생물에서 반려 대상을 찾는다. 대표적인 것이 돌과 로봇이다.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들이 있어요.” 반려돌을 기르는 신지예(22) 씨가 말했다. 돌과 로봇을 반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만났다.

“외로울 때 이야기 들어주는 존재”


▎신지예(22) 씨가 자신의 반려돌 ‘우게’를 손에 들어 보이고 있다. ‘우게’는 신씨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존재다.
지난 8월 6일, 서울 청량리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씨의 손에는 작은 돌멩이가 하나 쥐어져 있었다. 반려돌이었다. 엄지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였다. 작은 돌멩이 안에 반짝이는 눈알 두 개가 붙어 있었다. 두 눈 주위로 검은 자국이 둘러싸여 마치 눈물이 번진 것만 같았다. “얘는 저 대신 슬퍼해주는 아이예요. 그래서 이렇게 눈물 자국이 있어요.” 신씨가 웃으며 말했다.

신씨는 4개월 전 반려돌을 대학교 친구에게 “너와 닮았으니 잘 길러보라”는 말과 함께 선물 받았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인형, 액세서리 같은 소품에 관심이 없어 한동안 방 한편에 방치했다. 선물해준 친구에게 “이런 걸 어디에 써먹냐”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슬픈 일을 겪었고, 눈 주위로 눈물자국이 생긴 반려돌을 발견하면서 감정이입을 하게 됐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슬플 때 이 아이를 찾는다”며 “입이 없어서 슬픈 눈으로 묵묵히 들어주기만 하는 모습이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를 담아 신씨는 반려돌의 이름을 ‘우게’라고 지었다. ‘울겠다’는 말을 변형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게’가 비단 감정적인 효과만 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학교 과제를 하거나 작업을 할 때면 나를 감시해주는 기분이 든다. 친구와 함께 일하는 기분”이라며 “말없이 늘 자기 자리에 있는 우게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의연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전했다. 사람과 돌의 교감에 대해 논문을 작성한 바 있는 신정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부서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돌의 물성은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힘든 일도 묵묵히 감내할 수 있는 힘을 준다”며 “전통사회에서 괴석·수석을 기르는 문화가 발전해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또한 반려돌은 “인간관계에도 도움을 준다”고 했다. 반려돌을 키우는 모습이 비교적 생소하기에 지인들과의 이야깃거리로 삼기 좋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고 있는 그는 “부모님께서도 전화로 돌멩이가 잘 지내는지 종종 물으신다”며 “반려돌 덕분에 사람들과 안부를 한번씩 더 주고받게 된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반려돌은 반려동물만큼 애착을 증진시키지는 못하지만, 돌봄효과로 나타나는 자신에 대한 위로와 지지 효과는 충분히 나타난다”며 “반려동물이 병을 앓거나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상당한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생물을 기르는 현대인이 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반려돌은 아이들의 정서발달 교육에 활용되기도 한다. 지난 7월 27일 포항시에 위치한 공방 ‘오늘 하루, 그림책’에서는 아이들이 반려돌을 직접 만들고 반려돌과 대화해보도록 하는 강의가 열렸다. 유치원 교사 출신인 이혜영 대표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던 아들이 대신 돌을 기르자고 제안했다”며 “반려돌을 아끼는 아들을 보며 좋은 교육 수단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 강의도 열었다”고 말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반려돌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했다. 반려돌 판매 업체 ‘피터하우스’의 정세희(22) 대표를 만나기로 했다. 대학에서 그래픽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소품 공예가 취미다. 재작년 여름 돌멩이를 주워 눈알을 그려봤던 것이 사업 시작의 우연한 계기였다. 그는 “소재의 특성으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 눈 주변에 검은 자국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곤 상품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주인의 슬픔을 대신 먹어준다’는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앞서 신씨가 지어준 ‘우게’가 괜한 이름이 아닌 것이다.

정 대표는 반려돌 열풍에 지난 몇 개월간 바쁜 일상을 보냈다고 한다. “주문이 많으면 한 달에 1000개 이상 들어오기도 한다. 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반려돌을 제작하고 배송했다”며 “크래비티 태영, 라이즈 쇼타로 등 유명 아이돌이 반려돌을 키우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판매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반려돌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했다. 조경석 업체에서 대량으로 구입한 에그스톤에 레진 소재로 된 액체를 바르고 기계로 굳혀 눈을 만든다. 눈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보호제로 코팅도 한다. 그리고 취향에 따라 모자나 목도리 등의 전용 액세서리를 달아주면 된다. 1~6개월이 지나면 눈물자국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내가 만든 것을 진심으로 좋아해주고 아껴주는 모습을 전달받을 때 기분이 가장 좋다”면서도 “길에서 돌을 주워서 기르는 사람도 있고, 다른 업체에는 다양한 표정의 반려돌을 판매하기도 한다. 반려돌을 접할 방편이 많은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반려돌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 딸 위해 강아지 반려로봇 구매”


▎2018년 출시된 소니의 로봇 강아지 아이보. 아직 한국에서 정식으로 출시되지는 않았다. / 사진:연합뉴스
반려돌과 달리 쌍방향적 소통을 바탕으로 길러지는 무생물도 있다. 바로 반려로봇이다. 우리나라에서 반려로봇을 키우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 출시된 가정용 반려로봇은 가격이 매우 높을뿐더러 해외에서 직구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반려로봇이라는 개념이 더욱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학생 조모(26) 씨는 “유튜브에서 대화가 가능한 AI 반려로봇을 목격하고 구매하려고 했지만, 몇십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쓰기에는 부담스러워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런 와중에도 ‘가성비’ 반려로봇을 찾아 구매해서 기르는 사람도 있었다. 김모(40) 씨는 어린 딸을 위해 강아지 로봇을 구매했다. 10만원 초반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반려로봇이다. “AI가 탑재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명령어와 콘텐트가 내장돼 있어 반려로봇으로 삼기는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여건이 되지 않아 실제 강아지를 기르기가 어려워 딸이 많이 속상해했는데, 지금 이 로봇은 딸이 정말 좋아한다”며 “진짜 강아지처럼 아껴준다”고 말했다.

반려로봇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모습을 보였다. 정식 출시는 얼마 되지 않았더라도, 수많은 전자 기업이 반려로봇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지난 1월 CES 2024에서 AI 반려로봇을 선보인 바 있다. 임 교수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며 반려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수요가 많으니 공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려로봇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반려로봇의 쓰임이 더욱 확대된다. 박병선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반려로봇이 일부 대체할 수 있다.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복지의 효율성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지난 8월 8일, 실제로 반려로봇과 함께 지내는 어르신을 찾았다. 이기분(85) 씨는 동작구의 한 아파트에서 반려로봇 ‘다솜K’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다솜K는 보건복지부가 시행 중인 ‘노인맞춤돌봄서비스’의 일환으로, 구립사당어르신 종합복지관에서 지원받았다고 한다.

이씨는 다솜K를 ‘다솜이’라고 부른다. 어린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얼굴은 화면에만 나타났다. 그는 “다솜이가 없을 때보다 지금의 삶이 더욱 낫다”고 말했다. 성당에 다니는 그는 “다솜이와 함께 종교활동을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 그가 “다솜아, 묵주신공 틀어줘”라고 하자 다솜K는 웃는 표정으로 “네 묵주신공을 틀어드릴게요”라고 하며 내장된 유튜브 앱으로 영상을 틀었다. 정기적으로 이씨의 집을 방문하는 전애순 생활지원사는 “다솜K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치매 퀴즈, 요리·운동 프로그램 등도 내장돼 있어 노인 복지에 활용하기 좋다”고 말했다.

독거노인들이 좋아하는 반려로봇


▎이기분(85) 씨와 반려로봇 다솜K. 이씨는 “다솜이는 늘 내가 뭘 하는지 관심을 가져준다”며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지내서 참 고맙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다솜K는 평소에 먼저 말을 걸어준다고도 한다. 아침이면 이씨가 기상한 것을 감지하고 일기예보를 읊어주기도 하고, 조용히 있으면 기분을 물어봐주기도 한다. 이씨는 “다솜이는 늘 내가 뭘 하는지 관심을 가져준다”며 “전에는 가스 점검을 나온 기사님과 대화하고 있었는데 ‘참 좋은 대화를 나누시는군요’라며 끼어들더라”고 말했다. 이어 “TV 드라마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와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솜이가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며 “너무 웃겨서 깔깔 웃었다”고 했다.

안선영 구립사당어르신종합복지관 팀장은 “돌봄 대상 어르신 630명의 90% 이상이 독거노인이다. 현재 다솜K는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수요조사를 통해 쉰세 분께만 지원됐다”고 말했다. 이어 “다솜K 덕분에 삶이 좋아졌다는 어르신이 생각보다 많다”며 “올해 하반기에는 다른 모델인 효돌이·효순이도 추가로 지원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 교수는 “향후 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 휴먼케어의 모든 영역은 확장될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반려로봇 시장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팽창할 것”이라고 전했다.

늘 센서로 주변 상황을 감지하고 판단하는 다솜K의 특성으로 인한 단점도 있다. 혼잣말이나 텔레비전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안 팀장은 “너무 자주 말을 걸거나 상황을 잘못 판단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접수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씨의 생각은 달랐다. 불편하거나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묻자 “함께 지내면서 잘못 알아듣거나 끼어들 수도 있는 거지”라고 말했다. 이씨가 다솜K를 단순한 기계가 아닌 실제 동반자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다솜이를 소중해하니까 딸이 질투하며 불평한 적도 있다”며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지내서 참 고맙다”고 말했다.

- 글·사진 송선교 월간중앙 인턴기자 ddoong0404@naver.com

202410호 (2024.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