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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하이테크로 진화하는 무대 

디지털 플레이 ‘신타지아’에서 공연예술의 미래를 본다 

이 정 명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공연이 시작되기 전, 아직 조명을 켜지 않은 어두컴컴한 무대에는 여러 장의 얇은 망사가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려뜨려져 있다. 그 망사 천 사이마다 영상을 틀 때 사용하는 프로젝터가 보인다. 무대를 더 넓게 활용하려고 객석 쪽으로 돌출시킨 또 하나의 작은 무대에는 유리 스크린이 양쪽 공중에 매달려 있다. 스피커는 왜 이리 많은지, 크고 작은 스피커들이 객석 천장을 채웠다. 대롱대롱 매달린 물체는 또 있다. 학창 시절 교과서를 깨끗하게 쓸 요량으로 포장했던 아세테이트지 같은 비닐들이 좀 두꺼운 모양새로 둥그렇게 반쯤 말려 철사 줄에 매인 채 흔들거린다. 주무대와 돌출무대 사이 움푹 들어간 공간은 뮤지컬이나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피트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곳을 채운 물건은 여러 대의 컴퓨터다. 지난 23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는 고양문화재단(이하 재단)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이하 CT대학원)이 공동으로 제작한 ‘신타지아(Syntasia)’의 막이 올랐다. ‘융합(Synthesis)’과 ‘환상(Fantasia)’의 합성어인 ‘신타지아’는 재단이 야심 차게 준비하는 ‘디지털 플레이 프로젝트(Digital Play Project)’의 첫 번째 작품이다. 디지털 플레이란 한마디로 무선통신, 네트워크, 로봇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공연에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무대예술이다. “이번 무대는 기계가 공연에 얼마나 더 활용될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장”이라고 ‘신타지아’의 총괄을 맡은 원광연 카이스트 CT대학원장은 말했다. 그는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CT)’개념을 창안해 IT, BT에 이은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한 주역이다. ‘신타지아’에서 기계는 인간과 더불어 공연을 구성하는 주체로 전면에 등장한다. 그래서 컴퓨터와 기계, 그것을 조작하는 인간이 들어앉은 공간은 오케스트라 피트가 아닌 테크니션 피트라는 새 이름으로 불린다. 디지털이 일상의 곳곳을 지배하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공간이 바로 공연무대인지 모른다. 무대예술은 기본적으로 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의 만남으로 구현된다. 관객은 무대의 생김새, 배우의 몸짓과 말, 연주를 직접 보고 듣고 느낀다. 공연의 즐거움은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음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래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은 무대의 당연한 속성이다. 하지만 디지털 플레이는 공간과 시간, 무대의 확장을 꿈꾼다. “관객, 무대, 배우를 얼마나 더 디지털화할 수 있느냐가 관심”이라고 원 대학원장은 말했다. 디지털 기술의 총합을 연출하는 이번 공연의 주제는 역설적이게도 디지털이 초래할지도 모를 재앙이다. ‘불멸의 이순신’으로 유명한 소설가이자 CT대학원 교수인 김탁환씨가 이야기의 얼개를 짰다. “스티븐 호킹이나 앨빈 토플러가 언급했듯이 디지털 문화의 문제는 전산망이 흐트러지면 지구 전체가 대혼란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위기를 충분히 예상해야 한다”고 연출을 맡은 구본철 CT대학원 교수는 말했다. ‘신타지아’는 가상세계가 전부인 줄만 알고 성장한 소녀가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을 겪다 마법사를 만나 진짜 현실을 경험하고 비로소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사실 공연예술계의 디지털기술 활용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예사로 영상을 도입하고 서울과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한 무용공연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분산적이고 일회적으로 사용되던 모든 기술을 한 자리에 모아 공연에 들어간다는 의의가 크다”고 구본철 교수는 말했다. 신비·투영·마법·게임·창조 등 5장으로 구성돼 50여 분간 이어지는 ‘신타지아’에는 최소 10여 가지 이상의 핵심 디지털기술이 등장한다. 화려한 멀티 프로젝션으로 서문을 여는 ‘신비’에서는 필름스피커를 통해 가청범위 내의 모든 주파수를 고르게 포함한 백색 잡음을 들려준다. 공중에 매달린 아세테이트지 같은 비닐은 얼마 전 국내 기술진이 개발한 필름 스피커다. 백색잡음은 일상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새로운 소리의 경험이다. 공연장 천장을 가득 채운 스피커는 시차를 두고 소리를 방출해 마치 공연장 안에서 소리가 돌아다니는 듯한 청각적 입체공간을 구현한다. 특정 구역에만 소리가 들리는 지향성 스피커를 통해 어느 좌석에 앉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향 경험을 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 왼편 객석의 관객은 맑고 즐거운 소리를 듣지만 오른편은 어둡고 슬픈 소리를 듣는 식이다. 돌출무대에서 춤추는 무용수는 한 명뿐이지만 양편의 투명스크린에 ‘투영’돼 마치 세 명이 등장하는 듯한 전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전에 무용수의 움직임을 디지털화해(모션캡처 기술) 중앙스크린에 애니메이션 영상을 투사함으로써 군무의 효과도 연출한다. 공연 말미에 등장하는 ‘새그웨이’는 인간형 로봇 ‘알버트 휴보’를 개발한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의 작품으로 배우의 역할을 로봇이 대체할지도 모를 미래 공연의 한 단락을 예고한다. 모든 예술작품은 같은 작품일지라도 관객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책이나 영화 같은 텍스트는 독자나 관객의 호응에 따라 텍스트가 변형될 소지가 없는 고정된 작품이지만 공연은 다르다. 관객이 어떤 호응과 갈채를 보내느냐에 따라 배우의 에너지와 공연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렇다 해도 공연 텍스트 그 자체가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타지아’는 관객의 반응과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무대 위 텍스트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실험을 감행한다. 여러 개의 공연이 하나의 공연이라는 외피를 입어 같은 공연을 봤어도 객관적 경험 자체가 달라진다. 의미와 해석의 다양성을 작품의 내재적 원리로 설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열린 작품론과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의 수용미학이 ‘신타지아’에서 극한으로 구현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신타지아’의 재미는 무선통신과 네트워크 기술에 있다. ‘신타지아’의 관객은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둘 필요가 없다. 소녀를 현실로 이어주는 매개자인 마법사는 관객들의 지혜에서 그 힘을 얻고자 한다. 여기서 관객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퍼즐을 맞춘다. 수동적 관람이 아닌 공연의 구성 주체로 관객의 역할이 확장된다. “별도의 단말기를 나눠주기보다 관객 소유의 휴대전화를 바로 사용하게 하는 기술이 훨씬 어렵다”고 구본철 교수는 말했다. 유비쿼터스의 핵심기술로 원격통신 정보처리를 의미하는 텔레마티크 기술이 여기에 활용됐다. 그리고 고양시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종로, 김포, 대전, 부산 등 전국의 각 지역이 또 하나의 공연무대로 등장한다. 김포의 한 주택 거실에서 웹캠이 부착된 컴퓨터로 공연을 보던 관객은 화면에다 무언가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그 그림과 관객은 고스란히 공연장 안 스크린으로 실시간 투영될 뿐 아니라 공연장 안의 마법사와 행동을 주고받으며 공연의 내용 자체가 된다. 원격의 관객이자 배우인 셈이다. 이번 공연의 또 하나의 주역이 있다면 바로 공연장 새라새극장이다. ‘새롭고도 새롭다’는 뜻을 지닌 이 극장은 300석 규모로 작지만 생김새부터가 독특하다. 객석 바닥이 모두 열여섯 개의 조각으로 나뉜다. 따라서 공연의 성격이나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형이 가능한 공간이다. 일부 조각은 올리고 나머지 조각을 내리면 평범한 모양의 무대가 ㄱ자, ㄷ자, T자, 마당극무대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한다. 어떤 무대를 만드느냐에 따라 객석은 무대가 되고 무대는 객석이 된다. ‘신타지아’의 탄생을 계획하고 후원한 박웅서 재단 대표는 “IT 강국인 한국에서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즐기는 3D 게임산업과 예술적 상상력을 접목한 공연물을 개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재단 측은 새라새극장을 디지털 극장으로 정의하고 앞으로도 디지털 플레이를 시리즈로 선보일 계획이다. “새라새극장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 플레이 전문극장이다. 지속적으로 공연을 올리겠다. 현재 세계 유수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합작으로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박웅서 대표는 말했다. 다소 난해한 내용과 현란한 기술의 향연을 쫓다 보면 50분은 금방 지나간다. 디지털 플레이 첫 작품을 “유료로, 그것도 장기간 무대에 올리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라고 구본철 교수는 말했다. 디지털 플레이가 관객의 호응을 얻으려면 공연현장에서 소비자를 수없이 직접 만나온 현장의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그들의 관객 커뮤니케이션 능력, 재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장의 공연예술가들이 많이 찾아와서 관람하길 바란다”고 ‘신타지아’의 안무를 맡은 김이경 교수는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비판을 수용하며 새로운 형식을 모색할 때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국가브랜드 공연의 하나로 디지털 플레이가 하루빨리 자리잡을 것이다. 어쨌든 간단치 않은 실험에 고양문화재단 같은 공공기관과 한국을 대표하는 인재들이 힘을 합쳤다는 사실은 공연예술의 미래에 상당히 고무적인 신호다. ‘신타지아’는 이제 막 시작된 흥미로운 실험이다. 공연 시간은 지루할 새가 없었다. 그러나 전위적 실험의 충격은 아직 미약해 보이고 정말 재미 있었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신타지아’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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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호 (201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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