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테러에는 경악하고 시리아 내전에는 무관심한 이유

2017년 6월 12일 2017.06.12[1276]

피해자 얼굴이 그 수보다 더 강한 유대감 유발하고 개인에게 갖는 관심은 비극의 규모가 더 커질 때 오히려 줄어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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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후 시리아 내전의 십자포화 속에서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됐지만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 사진·AP-NEWSIS

지난 5월 22일 잉글랜드 맨체스터 공연장에서 테러 공격이 발생해 또 다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대중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수년간 잔학행위가 되풀이되다 보니 많은 사람이 갈수록 둔감해진다. 대학살과 파괴를 목격할 때 분명 놀람과 분노의 감정이 생길 텐데도 무덤덤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유럽에서 테러가 일어날 때는 즉각적으로 폭넓게 동정심을 드러내지만 시리아 내전 같은 더 대규모의 잔학행위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왜 우리는 일부 잔학행위에만 유독 더 강한 반응을 보이는가? 인간의 비극에 대한 우리의 연민은 어떤 인지과정으로 형성되는가? 그리고 이런 내부 메커니즘을 이해할 가치가 있을까?

폴 슬로빅은 미국 오리건대학 심리학교수이자 민간 연구기관 ‘결정 연구소(Decision Research) 설립자이자 대표로서 수십 년 동안 위험과 의사결정을 연구해 왔다. 인간이 비극에 왜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지 슬로빅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세계가 왜 모든 인명을 똑같이 중시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도발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왜 비극에 따라 우리의 반응이 달라지는가?

맨체스터 테러 같은 잔학행위는 규모와 장소를 바꿔 가며 되풀이된다. 우리는 일면 어떻게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나라에의 테러 공격에는 아주 강한 반응을 보이지만 일체감이 그만큼 강하지 않은 나라에서의 국가 후원 테러에는 극히 미약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관심이 금방 식어버리는 편이다.
시리아의 현 상황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인 반응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시리아는 극단적인 경우다. 2011년 이후 시리아 내전의 십자포화 속에서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됐지만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바닷가로 떠밀려 올라온 시리아 난민 어린이 사진이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켰지만 한 달도 못 돼 잊혀졌다. 1년 뒤 시리아 사람들은 모두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에 매일 폭격당하는 삶으로 ‘원상복귀’했다.

몇 주 전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공격이 자행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격의 피해 사진을 보고는 한 공군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지시했다. 그런 공격으로 무고한 어린이들이 살해당하는 데 대한 집단적인 분노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 직후 아사드 대통령은 그동안 하던 대로 자국민에게 배럴 폭탄(드럼통 같은 용기에 화약과 못 등의 금속을 채운 폭탄)을 투하했다. 그로 인한 비극은 어떤 특별한 관심도 끌지 못했다.

우리 모두가 테러에 노출됐다고 느낀다. 무고한 사람들, 특히 맨체스터의 아리아나 그란데 공연 관람객 같은 청소년을 죽이는 데 자기 목숨을 바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똑같이 경악할 만한 다른 잔학행위는 그만큼 관심을 끌지 못한다.

반응이 그렇게 다른 이유는 뭔가?

우리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원인은 그래 봤자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에 있다. 아무런 대응조치도 취할 수 없는데 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생각으로 스스로 괴로워하는가?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사실상 머리에서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계속되는 비극에 대한 우리 반응의 배경에는 이 같은 엄청난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시리아에서의 학살보다 영국 내 테러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건 이해할 만하지만 그래도 그런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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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로 떠밀려 올라온 시리아 난민 어린이 사진이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켰지만 한 달도 안 돼 잊혀졌다. / 사진·DHA-AP-NEWSIS

피해자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능력이 우리의 반응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

그런 능력은 분명 큰 역할을 한다. 시리아 내전의 하고 많은 참상 사진 중에서 바닷가에 쓸려온 소년 사진이 왜 더 돋보였을까? 그 사진이 처음도 아니었고 다른 많은 사진도 그 못지 않게 생생하고 충격적이었지만 그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바닷가의 소년은 서방 스타일 옷차림에 피부가 다소 흰 편이었으며 얼굴이 안 보였다.

얼굴이 안 보이는 게 왜 중요한가?

우리 조사에선 피해자 얼굴이 그 수보다 더 강한 유대감을 유발했다. 개별적 특성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특이성 효과(singularity effect)로 알려진 현상이다.

그러나 얼굴이 보이면 정반대 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근접 이미지를 보고는 피해자가 ‘우리와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평가가 내려지면 거리감이 생길 수도 있다. 바닷가의 어린이는 우리 아이들 같은 생김새였다. 그리고 ‘우리와 다르다’고 판단할 만큼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 밖에도 우리의 관심을 일깨운 다른 사진이 몇 장 있었다.

우리가 주는 관심은 선택적이며 특별하거나 특이한 뭔가가 있지 않는 한 반복적인 이미지에는 둔감해진다. 먼지와 피로 뒤덮인 채 초점 잃은 아이의 사진은 정신이 번쩍 들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이전 사진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

우리의 공감능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 같은 과정과 관련해 이른바 ‘연민의 산술(arithmetic of compassion)’이라는 개념에 근거한 사고방식이 있다. 연민을 유발하는 산술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의 정보 처리 방식이 두 가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니얼 카너먼이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논하듯이 빠른 사고와 느린 사고다.

빠른 사고 시스템은 뭔가를 보거나 들을 때 일어나는 아주 순간적이고 직관적인 느낌을 토대로 한다. 우리의 감각 시스템이 정보를 우리의 관심으로 유도하고 그에 따른 인식이 감정을 유발한다. 반면 우리의 느린 사고 시스템은 주도 면밀한 분석으로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한다. 이는 감정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상당한 인지적 노력이 전제된다.

카너먼이 지적하듯 인간의 본성은 게으르다. 우리는 그런 감정 시스템에 의지하기 쉽고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고방식으로 설정돼 있다. 그러나 빠른 사고 시스템은 산술 문제에서 실수를 범한다. 셈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그리고 우리 얼굴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 당장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에 반응할 뿐 심볼과 숫자에는 둔감하다. 따라서 우리의 감정은 인간의 잔학성 같은 큰 규모의 문제에는 이성적으로 반응하지 못한다.

연민의 산술을 이루는 구성요소는 무엇인가?

첫째, 우리가 왜 둔감해졌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개인에게 갖는 관심은 비극의 규모가 더 커질 때 오히려 줄어든다. 사람은 피해자가 단 1명일 경우 가능하다면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85명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빠른 사고 시스템은 1명의 죽음과 85명의 죽음에 다르게 반응하지 않는다. 잔학행위의 규모가 커질 때 그들의 삶은 가치를 잃는다.

우리 조사에선 고통 받은 사람이 두 명일 때부터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관심 대상이 두 사람일 때는 한 사람일 때만큼 주의 깊게 집중하지 못한다. 따라서 두 명의 피해자에는 한 사람일 때만큼 동정심이 유발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단 2명인데도 공감능력을 잃기 시작하는데 시리아나 수단 다르푸르에서처럼 관심의 대상이 수천 명에 달할 때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건 말하나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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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와 피로 뒤덮인 채 초점 잃은 시리아 어린이의 사진은 정신이 번쩍 들만큼 충격적이었지만 더 빨리 잊혀졌다. / 사진·ALEPPO MEDIA CENTER

그러나 테러 공격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그런 패턴을 따르지 않는다.

이 법칙에서 테러는 예외다. 우리가 반응하는 이유는 직접적으로 테러의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변화를 줬고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잘 알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가 실시한 리스크 조사에서 우리는 이런 반응을 ‘공포 위험(dread hazard)’으로 불렀다. 특정 사건이 공포감을 유발한다. 핵기술과 독성 화학물질 같은 잠재적인 위험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때 아주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오늘날 테러리즘은 공포 위험의 대표적인 사례다.

동정심을 떨어뜨리는 그 밖의 요인은?

그 방정식의 또 다른 요소는 그래 봤자 효과가 없다는 착각이다. 감정의 속임수에 넘어가 우리 도움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실험에서 첫째 그룹에는 굶주린 어린이들을 대표하는 어린 소녀에게 기부할 기회를 줬다. 참가자들은 소녀의 이름, 얼굴 사진, 나이를 본 뒤 기부 여부를 결정했다. 둘째 그룹에게는 같은 어린이의 사진에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기아 통계를 같이 보여줬다. 이 그룹의 기부 건 수는 사진만 보여준 그룹의 절반에 그쳤다. 둘째 그룹에선 굶주린 어린이가 수백만 명 중의 하나로 간주돼 그녀를 돕는 게 그만큼 효과가 없다고 받아들여졌다는 점이 달랐다. 실제로는 가능한 일인데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일종의 환상이다.

그런 환상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전쟁, 그리고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이후 모든 인류가 한 목소리로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고 외친 뒤에도 대량 학살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응의 일부다. 지난 50~60년 동안 민간인을 상대로 상상을 뛰어넘는 잔인한 공격이 수시로 발생했다. 그리고 대부분 테러범들의 소행이 아닐 경우엔 비교적 거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의 피해자에게는 반응하고 다수에게는 반응하지 않는 데는 생존과 관련된 원시적인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 빠른 사고 시스템은 고대의 사고방식에 속한다. 분석적·통계적·수학적인 ‘느린 사고’ 능력은 인간의 두뇌에서 비교적 최근에 발전한 기능이다. 두뇌의 빠른 사고 영역은 생존에 필수적이며 당면 환경 내에서 자신과 가족의 보호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에서 발달했다. 가족은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빠른 사고 시스템은 경험적 시스템으로도 알려졌다.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흐르는 강물을 마셨더니 병이 생긴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샘플을 분석해줄 독물학자가 없었다. 오늘날에는 독극물 분석 기술이 존재해 물의 성분 그리고 그것이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낼 수 있다.
빠른 사고 시스템이 왜 생존에 더 도움이 될까?

감정 시스템에는 게이트키퍼(gatekeeper, 정보를 검열하고 취사선택하는 기능)가 없다. 따라서 무관한 정보가 필요한 정보·관심사와 뒤섞일 수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그런 기능은 일리가 있다. 예컨대 소음에 재빨리 반응해야 할 경우 그 소음이 어디서 나오는지 분석할 시간이 없다. 소음이 섬뜩하게 들리면 재빨리 달아나 자신의 두려움이 맞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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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테러처럼 청소년들을 죽이는 데 자기 목숨을 바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 사진·EMILIO MORENATTI-AP-NEWSIS

왜 그런 빠른 사고 시스템이 세계적인 비극에의 반응 상황에서도 통하지 않는가?

현대 세계에서 이처럼 구멍 숭숭 뚫린 시스템을 통과하는 정보는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쳐 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느린 사고 시스템이 정보를 더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는 필수적이다.

예컨대 빠른 사고 시스템은 가짜 뉴스에는 무기력하다. 허위 보도는 우리의 감정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런 감정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확실한 게이트키퍼가 없다.

그런 반응을 바꿀 수 있나?

그렇다. 반응의 변화는 인간의 사고가 어떻게 작용하고 때때로 어떻게 우리를 속이는지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가치가 어떻게 우리의 행동을 형성해야 하는지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스스로 학습해야 한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한 명 이상일 때, 그리고 그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지리적 또는 문화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들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 책임은 무엇인가와 같은 가치의 문제다.

더 대규모, 가령 한 국가 전체의 비극에 대한 반응도 바뀔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눈 앞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인명의 보호에 관한 우리의 의무를 인식하도록 촉진하는 법률 메커니즘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화학공격에 맞서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화학공격 희생자들도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배럴 폭탄 공격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모순이다. 각국 정부가 충동적인 반응뿐 아니라 느리고 신중한 사고에 기초해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정책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제네바 협약은 시리아 내전에서와 같은 잔학행위를 저지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엔은 그런 잔학행위를 심사하고 저지하도록 설립된 기관이지만 갖가지 이유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예컨대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이 유엔의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화학공격에 대한 최근의 대응조치를 포함해 시리아와 관련된 8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엔은 그들의 시스템에 인질로 잡혀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든 국가 차원에서든 이 같은 실태를 바꾸는 것은 사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사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비극을 겪은 뒤 감정이 무뎌지는 건 모두 인정한다. 따라서 숫자를 인지할 수 있는 느린 사고가 더 많이 필요하다.

– 제시카 웨프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