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하 정보경찰 1만명,대한민국 정보 흐름의 총괄 통제자

자리연구 - 경찰청 정보국장

정보를 가리켜 이 시대의 ‘황금알’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세계 각국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며 이 ‘황금알’을 낚아채기에 주력하고 있다. 정보를 모르면 9·11테러 등과 같은 엄청난 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본청 건물 10층에는 경찰 정보의 사령탑이 있다.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전국 산간 오지까지 구석구석 ‘돌아가는 삼각지’를 체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경찰청 정보국(국장 김병준 치안감)은 시골 마을 한켠에서 발생하는 농민들의 집회부터 국회 안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의 내막까지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모 인사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났다’거나 ‘이번 정부가 발표한 정책에 대해 여론이 좋지 않다’ 또는 ‘모 단체가 언제 어디서 집회를 가질 예정’이라는 식으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매일같이 쏟아진다.

국가정보원이 국가 안보와 관련된 국내외 보안정보 등을 담당한다면 경찰청 정보국은 동(洞) 단위의 지역정보부터 정당·기업·공항·노동·시민단체·언론사 등 사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리얼타임으로 민심의 동향을 읽는다. 정치인이나 일반 공직자들이 경찰 부서 중 가장 무서워하는 곳이 경찰청 정보국이라는 얘기도 바로 이때문이다.

정보국장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국가 치안정책의 방향타를 정해 준다는 면에서 요직 중 요직으로 꼽힌다. 정보국장은 매일 1만명에 가까운 전국 정보과 소속 경찰이 수집한 정보를 취합한다. 또 각종 집회나 대학가 반미시위 등 사회 전반의 정보를 수집하고 경찰의 대응방안 등 치안대책을 마련한다.
무엇보다 정보국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청와대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정보국장은 매일밤 밀봉된 봉투를 경찰청장 이름으로 청와대에 올리며, 대통령은 다음날 집무실에 놓인 이 보고서를 훑어보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대통령에게 올리는 보고서는 국정원·기무사 등 다른 정보기관에서처럼 이른바 ‘A급 정보’다. 여기에는 전국 경찰망이 수집한 정보 중 중요한 것만 간추린 말 그대로 알짜배기 정보들만 있다. 물론 정보국장은 직접 대통령을 독대하지는 않지만 보고서를 통해 대통령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보국장의 ‘파워’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정보국장은 경찰 조직에서 경찰청장(치안총감)과 경찰청 차장·경찰대학장·서울경찰청장(이상 치안정감)에 이어 치안감 21명 가운데 한명으로, 경찰 간부 직제표상에서는 서열 8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업무의 중요성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경찰청장 다음 가는 핵심 요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정보국장에게는 경찰 내의 다른 실무국장보다 청와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다.


정보경찰 1만여명, 최대의 정보조직

경찰의 알짜배기 정보는 방대한 경찰의 정보 조직으로부터 나온다. 경찰의 정보 조직은 전·의경과 일반 행정직 공무원을 제외한 9만여명의 경찰 중 10% 가량을 차지한다. 인원만도 1만명에 육박한다. 국정원의 정보요원보다 많다.본청 정보국을 사령탑으로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를 비롯해 전국 13개 지방경찰청 정보과 그리고 240개 일선 경찰서에 정보과를 두고 있다.

본청 정보국에는 치안감급 정보국장을 비롯해 경무관급 기획·정보심의관 1명과 총경급 과장 5명이 포진해 있다. 정보1과는 서무 분야를, 정보2과는 정치 분야를, 정보3과장은 사회·경제 분야를, 정보4과는 학원·언론·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정보 과는 정보 분석을 담당한다. 청와대 보고서는 바로 정보5과에서 작성한다. 특히 이 가운데 본청 정보2과는 대현동에 정치분실을, 정보3과는 한남동에 경제분실을 별도로 운영한다.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도 수도 치안을 담당하는 만큼 본청 정보국 못지 않게 규모가 크다. 경무관급인 정보관리부장의 지휘 아래 2개의 정보과와 7개의 정보계가 움직이고 있다.
나머지 13개 지방경찰청에는 총경급 정보과장 밑에 4∼5계의 조직이 있다. 일선 경찰서는 경정급 과장 1명씩을 두고 있으며, 서무인 정보1계와 외근부서인 정보2계로 나뉜다. 소위 우리가 ‘정보과 형사’라고 부르는 경찰은 바로 정보2계에 배속된 직원들이다. 통상적으로 일선 정보과 형사들은 대개 관할하는 읍·면·동이나 주요 시설에 한명씩 배치돼 있다.

정보과 형사들의 하루 일과는 현장에서 시작해 현장에서 끝난다. 근무 형태나 시간은 뚜렷하게 고정돼 있지 않다. 자신이 맡은 출입처에 나가 하루를 보낸다. 기자들의 하루 일과와 유사한 면들이 많다.
기자들이 매일 출입처에서 취재해 기사를 쓴다면 정보 형사는 매일 자신이 담당한 출입처에 나가 정보를 듣고 일일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알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터줏대감으로 머무르며 깊은 친분관계를 맺어야 한다.

일선 경찰서의 정보과에 10년 이상 된 붙박이 형사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명동성당을 담당하는 서울 중부경찰서 정보과 담당 형사는 20여년째 명동성당을 맡고 있다. 명동성당은 노동·학생 집회 시위의 메카로서 쉽게 정보형사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본청 정보국 직원이나 서울경찰청 정보과 직원들은 주로 정부기관이나 대형 시민단체, 언론사 등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출입한다. 이들은 일선 경찰서에서 능력을 검증받아 스카우트됐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반면 일선 경찰서의 정보는 ‘…카더라’식의 루머성 정보가 많아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현장성 정보가 많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내고 있다.
정보 경찰은 보안을 생명으로 여긴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정보 문건을 유출시켰다 파면되기도 한다. ‘이용호게이트’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에는 제주경찰서 정보과 임모(56) 경사가 김홍일 의원이 가족, 지인들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한 내용을 포함한 ‘김홍일 의원 관련 동향보고’ 문건을 한나라당 제주도지부 관계자에게 슬쩍 건네주었다가 공무상 비밀누설죄의 철퇴를 맞았다.

물론 임경사에 대한 구속영장은 정보문건이 관행적으로 이뤄진 정보 교환이고,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법부에 의해 기각됐지만 파면 등의 중징계당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에는 서울청 정보1과장을 지낸 허남석 총경이 이용호씨의 G&G그룹 주가조작 루머와 관련, 동생 옥석씨와 G&G그룹측의 청탁을 받고 일선 경찰서에 루머 유포자 수사 지시를 하는 등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으며, 이후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정보 형사들은 감시 대상인 재야인사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20년 가까이 담당했던 전 마포경찰서 정보과 이열씨는 지난 1997년 김대통령과의 인연을 엮어 ‘김대중 보고서’라는 책을 출간했다.


정보국장은 정권 향배에 민감

정보국장은 대부분 역대 정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동안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출신이 수십년간 정보국장을 독점해 왔다. 1980년대 이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까지 치안본부의 4부장이나 4차장, 또는 경찰청 정보국장을 지낸 16명 중 호남 출신은 1명에 불과했다.
1990년대 이후 정보국장을 지낸 유상식(兪相植)·이기태(李起泰)·이수일(李秀一)·조성빈(曺聖彬)·김덕순(金德淳)·성희구(成熙丘)·전병룡(田炳龍)씨 등 7명 중 호남 출신은 전북 완주출신의 이수일씨가 유일하다.

국민의 정부 들어 임명된 이대길(李大吉)·박희원(朴喜元)·박진석(朴珍錫)·성락식(成樂式)·박일만(朴日萬)·현 김병준(金炳俊) 국장 등 6명은 모두 호남 출신이다.
지난해 11월말 이무영(李茂永) 경찰청장 후임에 충북 출신인 이팔호(李八浩) 청장을 임명했지만 정보국장은 호남 인맥을 계속 이어갔다.

과거 경찰청 정보국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지난 1999년 1월 김세옥 전 경찰청장 후임에 영남 출신인 김광식 경찰청장이 임명될 당시에도 정보국장은 박희원·박진석씨 등 호남 인맥이 기용됐다”면서 “정권 차원과 정치권에서 볼 때 경찰청장은 ‘차관급’ 인사 정도로 분류되지만 정보국장은 사실상 경찰청장보다 더 신경쓰는 중요한 자리”라고 술회했다.

이 인사는 “정보국장 인사는 주로 청와대와 정치권의 의견을 따르는 경우가 많으며, 과거에는 정치권에서 ‘키우는 사람’이 무리하게 진급돼 임명된 경우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정보국장 못지 않게 경찰청의 정보심의관이나 서울경찰청의 정보관리부장, 또 일선 경찰서의 정보과장 등도 요직이라는 점 때문에 인맥과 출신지가 고려된다. 본청 김병준(金炳俊) 정보국장과 문경호(文京鎬) 기획·정보심의관은 모두 호남 출신이다. 정보1∼5과장을 맡고 있는 이경필(李敬弼)·양성철(梁性喆)·김도식(金道植)·이성규(李聖揆)·조길형(趙吉衡) 총경 중에서는 양성철 과장이 전남 출신이다. 정보심의관을 거친 배성수(裵星洙)방범국장이나 최광식(崔光植) 경기 1부장도 각각 전북과 전남 출신이다.

서울청 정보관리부장에는 충남 출신인 박범래(朴範來) 경무관, 그리고 이길범(李吉範) 총경과 가세노(賈世魯)총경이 각각 1∼2과장을 맡아 뒤를 받치고 있다. 이 중 이길범 과장이 전남 출신이다. 본청과 서울청 정보담당 과장급 이상 간부 중 영남권 인사로는 경북 출신인 이성규 과장이 유일하다.
과거 정보국장은 거의 예외 없이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 등 요직을 거쳤고, 이후에도 장관과 도지사 등 공직자로 변신하거나 국회의원 등 정계로 진출했다.

1980년대 이후 4부장, 4차장을 지낸 인물중 이해구(李海龜)·박배근(朴培根)·강민창(姜玟昌)·권복경(權福慶)·김우현(金又鉉)·이종국(李鍾國)씨 등 6명은 치안본부장을 지냈고, 김원환(金元煥)씨는 초대 경찰청장을 역임했다.
이해구씨는 1981년 치안본부 4부장, 1983년 치안본부장을 역임했다. 이어 안기부 제1차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낸 뒤 1988년 경기도 안성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86년 치안본부 4차장을 지낸 주병덕(朱炳德)씨는 비록 경찰대학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지만 1990년 관선 충북도지사와 1995년 초대 민선 충북도지사를 지냈다. 1990년 치안본부 4차장을 지낸 김종일(金鍾一)씨도 경찰대학장을 지냈다.

경찰청으로 독립한 1991년 8월 이후에는 ‘정보국장→경찰청장’이라는 공식이 다소 주춤해졌지만 대부분 치안정감급인 서울경찰청장과 경찰대학장까지는 무난히 승진했다.
초대 경찰청 정보국장을 지낸 유상식씨는 해양경찰청장과 경찰청 차장을 역임했고, 이수일씨는 경찰대학장에서 옷을 벗었지만 1999년 감사원 사무총장과 지난해 감정원장을 거쳐 11월 국정원 2차장에 임명됐다.
또 경찰청 차장으로 옷을 벗은 조성빈씨는 경찰공제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전병룡씨도 경찰대 공안문제연구소장을 역임했다.

1998년 정보국장을 지낸 이대길 서울경찰청장은 국민의 정부 초대 정보국장을 지냈다. 이대길 서울청장은 정보국장을 지낸 뒤 전남·경남·경기지방경찰청장을 거쳐 치안정감급인 경찰대학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11월 서울경찰청장에 임명됐다.
1999년 정보국장을 지낸 성낙식 경찰청 차장은 2000년 12월 경남지방청장을 지낸 뒤 2년만에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찰청 차장에 임명됐다. 2000년 12월부터 정보국장을 지낸 박일만씨는 부산경찰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간부후보 23기인 박부산청장은 경무관급인 부산경찰청 차장에서 1년10개월만에 치안감으로 고속승진한 뒤 곧바로 정보국장에 임명돼 눈길을 끌었다.

현 김병준 국장은 ‘외사통’이다. 김국장은 경정시절이던 지난 1988년과 경무관 시절이던 1997년 두차례 미국 로스앤젤레스 주재관을 지냈다. 또 지난 해에는 ‘가정폭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동국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보국장에 임명되자마자 지난 1999년 경찰청 외사관리관 시절 ‘수지 김’사건과 관련해 곤욕을 치렀다. 김국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무영 전 청장이 국정원 협조사항에 대해 검토해 보라고 지시해 사건을 국정원에 이첩한 뒤 구두보고했다”고 진술, 결국 이 전 청장이 구속되는 계기가 됐다.

1996년 정보국장을 지낸 성희구씨는 호텔사장이라는 특이한 직업으로 변신했다. 대구·경북청장을 지낸 성씨는 1998년 퇴직한 뒤 교통방송 대구본부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5월 문을 연 대구 유일의 특1급 호텔 ‘인터불고’의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현재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로도 근무 중이다.
반면 운이 따르지 않아 경찰청장 직전에 낙마한 경우도 많다. 1993년 정보국장을 지낸 이기태씨는 서울경찰청장 재직시 전림선암으로 타계했다.
김덕순씨는 정보국장을 마친 뒤 경기청장으로 재직중 탈옥수 신창원(申昌源) 사건이 터져 중앙경찰학교장으로 좌천된 뒤 옷을 벗었다. 당시 경기경찰청이 탈옥수 신창원을 붙잡기 위해 충남청의 협조 없이 검거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박희원씨는 지난 1999년 5월 정보국장 재직시 뇌물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뒤 옷을 벗었다. 박씨는 당시 모 주택관리업체로부터 2,200만원을 받은 것이 화근이 됐다. 하지만 당시 검찰과 경찰이‘수사권 독립문제’로 갈등을 빚어 경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수사권 문제로 경찰의 사실상 2인자나 다름없는 간부를 구속한 것은 수사권 독립문제가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라는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정보과 형사라는 이미지는 국민들에게 아직까지도 부정적으로 남아 있다. 굴곡이 많았던 우리 현대사에서 경찰의 정보분야는 민간인 사찰과 재야인사 감시 등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보기구의 하나로 자리매김해왔기 때문이다. 그 역사는 일제시대 고등경찰로 거슬러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