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억 聯鐵株 장학재단에 기부하겠다"

권철현 연합철강 창업주, “연철 빼앗긴 것은 JP 권유로 김형욱 만난 죄” 비화 첫공개.

권철현 연합철강 창업주
悲運의 알짜 철강기업 연합철강이 2002년 새해 거래소 증시에서 상장 18년 만에 사라질 운명이다. 2001년 12월까지 6개월간 월평균 거래량이 상장주식의 1%를 넘지 못하면 상장폐지될 수 있다는 거래소 규정 때문이다. 이 탓일까. 어느새 팔순을 앞둔 연합철강의 2대 주주인 권철현 창업주는 마치 애지중지해오던 자식을 잃은 것처럼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하다. 최근까지 연철 경영권을 두고 동국제강 측과 팽팽한 대결을 벌여왔던 그는 해묵은 대결로 심신이 지친 듯하다. 그를 만나 주인(국제그룹을 거쳐 현재 동국제강이 경영권을 갖고 있음)이 두번씩이나 바뀐 연합철강의 궤적 뒤에 얽혀 있는 스토리와 상장폐지 후의 소감 등을 들어봤다. 아직까지도 연합철강이 1977년 국제그룹 양정모씨에게 갑작스럽게 넘어간 것에 대해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 말 좀 들어보소. 74년 3~4월께 얘기입니다. 당시 내가 연합철강 사장으로서 미국에 업무차 갈 일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전부터 알고 지내던 JP(김종필 현 자민련 총재)가 ‘부탁이 있다’면서 나를 부르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미국에 가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만나서 한국으로 돌아와 달라고 말해 달라. 그가 들어오면 브라질 대사를 시켜주겠다.’ 당시 김형욱씨는 유엔주재 대사를 원했었지만 영어를 잘 못해서 일단 브라질 대사부터 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서울로 들어와서 신임장을 받아가란 말이었습니다.” 당시 김형욱씨는 미국에서 박정희 독재 반대활동을 하고 있어서, 박정권이 골머리를 썩고 있었을 때다. “뉴욕에 가서 김형욱씨를 만나기 전에 먼저 한병기씨(박정희씨의 사위)를 만나 JP 얘기를 상의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더군요.” 벌써 잊혀질 만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 그는 일기장 들춰 읽어내듯 당시 상황를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떠올려 냈다. 혀를 내두를 만한 놀라운 기억력아닌가. “뉴욕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18홀 규모의 명문 골프장 스카시데일 컨트리클럽에서 만나 오후 1시부터 약 4시간 동안 골프를 김씨와 같이 쳤습니다. 김씨는 서울에 가면 죽을 지도 모른다며 내 말을 곧이 듣질 않았습니다. 브라질 대사도 김씨 자신을 꾀어내서 서울로 들어오게 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이어 007 영화 스토리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골프장에서 계속 김형욱씨를 따라다니며 미행하는 괴한이 6명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김씨에게 그들을 물어보니, 김씨 경호원이 2명이고, 영사관에 소속된 중정요원이 4명이라고 합디다.” 당시 김형욱씨는 “브라질 대사로 정 보내고 싶다면, 대사 임명장을 뉴욕으로 보내달라”면서 “그것이 확인된다면 브라질로 부임하겠다”고 했다는 게 권회장 설명이다. 어쨌든 그일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JP의 밀사 역할을 했던 권철현씨가 김혁욱씨의 역제의에 대한 전달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내가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외교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요. 뉴욕을 떠나기 전에도 그를 설득하기 위해 2번이나 더 만났습니다. 맨하탄에 있는 팬암빌딩 1층 커피숍에서요. 웬만하면 한국에 같이 들어가자고 했지요. 그런데 그때도 이상한 게 괴한 4~5명이 미행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게 연합철강 문제의 발단입니다.” 아니 이것이 뉴욕에서 뿌려진 비운의 씨앗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JP의 권유를 단순히 전달하기 위해 만난 것이 대역죄라도 됐단 말인가. 그의 대답은 ‘그렇다’다. “당시 연합철강 권사장이 반정부 인물인 김형욱을 괜히 만나서 엉뚱한 얘기를 했다는 현지 중정요원 보고가 중정본부로 올라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 JP부탁을 받고 김씨를 만났다는 해명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부탁을 했던 JP는 사실 힘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권력의 눈밖에 나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업친 데 덮친 격인가-. 권철현 회장은, 오일쇼크가 터졌던 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미움을 단단히 사는, ‘결정적인 일’을 또 하나 하게 된다. ‘“연합철강은 74년에 우리나라에서 수출 1등을 한 기업입니다(이때 그의 목소리 톤이 한껏 높아졌다). 그러나 75년에는 일부러 수출을 하지 않았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출용 원자재인 일제 핫코일 가격이 급등해 팔면 팔수록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입니다. 손해 보면서까지 장사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시 톤당 1백80달러 하던 일제 핫코일이 2백20달러로 급등했습니다. 그런데 핫코일로 냉연강판을 만들어 팔면 톤당 1백9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적어도 관리비를 포함하면 2백70달러를 받아야만 수지를 맞출 수가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적자 수출을 하다간 회사가 곧바로 절딴’날 것이란 판단이 들었고, 그래서 불가피하게 수출중단 결정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정희씨는 이게 못마땅했었습니다. 연합철강이 수출을 안 하면 다른 업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죠.” 75년 당시 오일쇼크가 나면서 한국은행 내 달러가 ‘펑크’가 났었다. 달러가 거의 바닥이 났다. 이때 연합철강이 일부러 수출을 안 하고 있다는 KBS뉴스를 본 박정희씨가 대노를 했다는 후문이다. “김형욱씨 같은 박정권 기피인물이나 만나면서, 하라는 수출은 전혀 안 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았으니, 밉보일 수밖에 없었지요.” 이 때문에 권철현 당시 사장은 곤혹을 치룬다. 74년부터 75년까지 2년간 연철간부들이 중정·국세청·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어느 기업인이들 이 호된 매를 버틸 재간이 있을 순 없다. “74년에는 중정에서 연합철강 전무와 비서실장이 수출과 외환에 대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연합철강 세무사찰은 74년 말부터 75년 중반까지 받았습니다. 나는 75년에 중정조사·검찰조사를 받았습니다.” -75년 12월29일날 결국 조세포탈 및 외환관리법위반 혐의로 구속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김형욱씨를 만난 게 죄 였다고 봅니다. 이게 화근이 된 셈이라고 믿습니다. 중정에 가서 JP의 부탁으로 만난 것이고,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해명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중정에서 조사하다가 안되니까 검찰로 넘긴 겁니다. 영하 14도의 혹한에 검찰에 잡혀갔습니다. 그때 얼마나 추웠는지, 서울 시내 관상목이 다 얼어죽었을 정도였으니까요(그는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게 구속되었다면서 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습니까. 75년 국세청이 고발한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결국 80년2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도 그렇습니다. 74년에 미국갈 때, 딸애(작고함)가 미국에서 골수암으로 수술 및 치료를 받고 있어서, 달러가 필요했어요. 회사에서 나온 돈은 딱 1천 달러였어요. 턱없이 부족했지요. 그래 내가 불가피하게 1만4천2백50달러를 구해 나간 게 화근이 된 것이지요. 겨우 단돈 1만4천2백50달러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80년 2월에 1심에서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조세포탈 무죄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에까지 끌고 갔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아무튼 그는 당시 구속과 함께 일단 영어의 몸이 되어야만 했었다. 그가 76년 2월11일 감옥에서 병보석으로 나와 서울대병원·자택 등으로 주거제한을 받는 동안에 연철의 주인이 국제그룹으로 바뀌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연철주인이 바뀐 다음에야 그에게 가해진 주거제한이 풀렸다. -어떻게 해서 연철 주인이 국제그룹 양정모씨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까. 국제로 넘어갈 때의 실제 상황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김정렴씨가 대통령비서실장, 김용환씨가 재무부 장관을 지낼 때입니다. 77년 2월28일 연합철강 주총장에서 경영권이 국제그룹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당시 91.2%의 지분을 내가 갖고 있었는데, 이중 51%가 국제로 넘어간 겁니다. 당시 주거래은행인 서울신탁은행 행장이 압력을 가해왔습니다. 51%를 무조건 국제그룹 양정모씨에게 넘기라고. 만약 넘기지 않으면 연합철강 부도는 물론이고, 사장 이하 임원들을 모두 구속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은행장의 단독 압력이었겠습니까. 다 시켜서 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가 지금도 억울하게 생각하는 게 하나 있다. “은행측 강요 때문에 너무 헐값에 넘겼다는 사실입니다.”당시 연합철강만 국제로 넘어간 게 아니다. 연철을 비롯해 연합물산·연합개발. ”연합통운의 모든 주식·자산가치가 넘어갔는데, 당시 그가 국제로부터 받은 돈은 5억원이다. “그때 돈으로 4개사의 주식과 자산자치를 계산하면, 5백억원은 족히 넘습니다. 강요 때문에 1백분의 1에 해당하는 돈만 받고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헐값에 넘겨준것이 지금껏 분하고 억울한지 이 대목에서 그의 언성은 다소 높아졌다. 후려쳐도 유분수지 실제 가격의 1백분의 1이라니.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 아닌가. “74년에 연합철강은 세후이익 84억원을 낸 알짜회사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1천억원 정도 되는 엄청난 돈이지요. 당시 상장사 중에서 연철은 최고의 이익을 냈습니다. 은행 빚 2백50억원을 다 갚고 알찬 경영을 한 게 바로 연합철강입니다. 그런 회사를 단돈 5억원을 주고 빼앗아간 것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인 85년께 국제가 해체되면서 연합철강이 권회장에게 다시 넘어올 뻔한 적도 있었지요. 이 대목은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에 속한다. “그렇습니다. 85년 국제그룹 해체 후 당시 김만제 재무부 장관이 정영의씨를 보내서 ‘연합철강이 창업자인 권철현씨에게 돌아가는 게 순리’라면서 연합철강을 비롯해 연합물산·연합통운·연합개발 인수를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김만제씨가 한 가지 조건을 붙였습니다. 동서증권·원풍산업·양산 통도사골프장 등을 모두 같이 사가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때 ‘내가 빼앗긴 회사만 다시 갖고 가겠다. 남의 회사를 빼앗아 가면 빼앗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85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연철보고서가 올라갈 때 인수후보 1순위로 제가 올랐갔었습니다. 2순위가 부산파이프, 3순위가 동국제강었습니다.” 결과는 동국제강이 연철을 인수했다. 당시 언론들은 일제히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보도했다. . “엉뚱하게도 3순위인 동국제강이 연합철강을 인수하게 된 것이죠. 나중에 밝혀졌지만, 동국제강측이 5공측 심장재단. ”일해재단 등에 70억원을 내지 않았습니까. 전두환씨가 동국측에게 연철을 넘겨준 것이나, 또 전씨가 85년 당시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긴 것이나, 모두 괜한 게 아니었죠.” -과거 인수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동국제강측은 최근 권회장측이 수 차례에 걸쳐 연철 증자를 반대하면서 회사발전을 가로막았다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 또 상장폐지에 대비한 무슨 특단의 대책이 있는 것인지 물었다. “현재 우리가 주장하는 건, 2대 주주의 주식보유 비율(권회장측은 38.7%)만큼 연철경영에 참여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장부열람청구소송을 해서 승소를 해도 필요한 장부를 다 보여주질 않고 있어요. 경영이사를 참여하게 해달라, 정 안 되면 사외이사라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해도 모두 거절을 당했습니다. 주주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면 누가 과연 증자에 찬성을 하겠습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상장폐지에 대한 뾰족한 대비책도 사실 없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연철을 상대로 장부열람 청구소송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승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동국제강측이 공탁금 1억원을 건 다음에 다 보여주질 않습니다. 대법원에 상고가 된 상태입니다. 연철을 경영하는 동국제강측의 불법행위는 아주 많습니다. 그런 것을 뜯어고치기 위해 앞으로 소송을 더 많이 할 것입니다. 또한 사실 소송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권회장은 이어 ‘월1% 거래량’요건을 맞추는 것도 동국제강측 입장에서는 어려운 게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 “지분의 58.8%를 가진 동국제강측이 자전거래를 통해 월 1%거래량 요건을 맞추는 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1년에 6만2천주를 돌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부러 안 하고 있습니다. 동국제강측이 지난 4월 연합철강 주식의 공개매수를 통해 확보한 9만5천6백주(5. 08%)도 마찬가지입니다. 동국제강측은 일단 확보한 다음에 하나도 풀지 않고 계속 들고 있지 않습니까. 상장폐지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한 마디로 말해 상장폐지는 동국제강측이 고의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권철현이를 고사시키기 위해 일부러 하고 있다는 말입니.” 이 대목에서 그는 분한 듯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동국제강측이 공개매수한 가격(6만4천원)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동국제강측이 낸 연철 감사보고서를 보세요. 자체 장부가로 26만원 정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선 장부가의 4분의 1에 불과한 6만원에 내가 갖고 연합철강 주식을 갖고 가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비추고 있습니다. 그건 말이 안됩니다.” -하지만 연철주식을 권회장께서 영원히 갖고 있을 수도 없고, 상속문제도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동국제강측에서 내가 죽으면 장부상 주당 26만원이 나가는 연합철강 주식을 상속하면서, 세금을 많이 물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우리측 지분율이 떨어질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공언을 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연합철강 주식은 모두 장학재단 재산으로 출연할 것이라고. 상속은 안 합니다. 지분율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상장폐지되면 1, 2대 주주가 다 손해 아닙니까. “맞습니다. 나는 상장폐지도 상장폐지지만, 연합철강의 앞날이 더 걱정입니다. 상장폐지로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자금조달이 어려워져 연철 자체가 넘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동국제강측의 고 장상태 회장과는 젊었을 때부터 아는 사이입니까. 모두 부산 신 기업인이라서 교분이 있었을 법한데요. “장상태씨의 장형이며 외교관인 장상문씨와는 나너 하는 친구 사이입니다. 하지만 장상태씨의 경우 젊었을 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내 나이 50, 60 되어서 겨우 알았으니까요.” -국제와 동국측에 연철이 넘어간 다음에도 연철 사장들이 2대 주주의 예우 차원에서 사전에 2대 주주와 회사경영에 대한 논의를 했다면서요. “양정모씨에게 넘어간 다음에도 연철사장들이 상의를 해왔습니다. 국제로 넘어간 다음에 양정모씨가 국제 계열사의 헐값 주식을 연철에 비싼 값에 넘기려는 것을 내가 반대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연철이란 회사가 못 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 은 2대 주주 예우 전통이 동국으로 넘어간 다음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95년 이철우 사장이 취임한 다음부터는 달라졌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연철 사장들이 2대 주주의 입장을 고려해서 비교적 공정하게 연철을 운영을 해왔지만, 95년 이후부터는 일관되게 2대 주주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운영해 왔기 때문입니다." 장남인 권호성 중후산업 사장이 이끄는 미국계 투자 컨소시엄인 AK캐피탈이 얼마 전 한보철강 최종 인수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권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연철주식을 팔아서 한보철강 인수대금으로 사용할 것이란 얘기를 하고 있다. “그 투자 컨소시엄은 전적으로 내 아들이 하는 것이요. 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심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갖고 연철주식을 팔아서 한보철강 인수하는 데 사용한다는 소문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한보철강의 매각과 관련, 97년 8월 포철과 동국제강 컨소시엄이 한보철강을 2조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의한 바 있었지만 불발에 그쳤다. 2000년 3월 당시 권호성 사장이 이끄는 미국 네이버스컨소시엄이 본 계약을 맺긴 했지만 역시 불발에 그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