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 외길 30년, 흑자경영 30년 동아화성…"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

임경식 동아화성 사장.
고무’라는 단어를 들으면 1970~80년대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신발산업’을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발산업에서는 ‘사양산업’이라는 단어도 함께 오버랩된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채산성을 맞출 수 없게 되자 대부분의 신발 생산업체들은 동남아로 생산시설을 옮겼다. 한때 경제 성장의 역군으로 각광받던 신발회사들이 말 그대로 ‘헌신짝처럼’ 버려진 것이다. 이제 ‘고무=신발=사양산업’이란 등식까지 생겼다. 한발 더 나아가 ‘고무’하면 코를 찌르는 강한 냄새와 지저분한 작업환경, 고무 가루가 묻어 검어진 얼굴도 같이 연상된다. ‘3D 업종’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그렇다면 고무와 같은 사양산업은 정말 ‘탈출구’가 없는 것일까? 경남 김해에 위치한 고무부품 업체인 동아화성은 사양산업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설립 이후 30여 년 동안 고무라는 한 우물만 팠다. 게다가 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30년 외길, 30년 흑자경영’이라는 금자탑을 사양산업이라는 척박한 토양 위에서 꽃피운 것이다. 도대체 어떤 비결이 있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명료했다. 임경식 동아화성 사장은 “고무산업 자체는 사양산업일지 모르지만, 세월이 흐르고 첨단 제품이 쏟아져도 고무는 꼭 필요한 부품입니다. 수요가 항상 있다는 얘기죠”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수요만 있다고 해서 길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임 사장은 강조했다. “단순히 고무 생산 관련 기술을 흉내 내거나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면 언제든지 사양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쫓아 가느냐 하는 겁니다. 첨단 부품이 쏟아지고 있는데 예전에 만들던 것만 고집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죠. 사양기업은 있지만 사양산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관 산업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는 게 임 사장의 생각이다. 최첨단 자동차가 등장하고 가전제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신발에 들어가는 고무 소재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선 경쟁이 될 턱이 없다는 얘기다. 고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라 “고무 관련 업체들이 동남아 등지로 이동한 것은 인건비 상승 등 비용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용이 올라가는 만큼 부가가치를 높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단순 조립·가공 수준에 머물러서는 인건비나 부대비용이 싼 중국이나 동남아를 절대 따라갈 수 없죠.” 동아화성은 고무를 이용한 자동차 및 가전제품용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1974년 설립됐다. 자동차 고무부품 업체 중에는 국내 최대 규모다. 현재 자동차 엔진오일의 누수를 막아주는 도어개스킷과 외부 유입물과 소음을 차단하는 웨더스트립 등 1000여 가지의 자동차 고무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쌍용차 등에 주로 납품한다. 최근에는 미국의 대형 자동차 부품업체인 페더럴 모골(GM의 주요 부품 공급업체)과 자동차 고무부품 합작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지난해 566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20% 이상 증가한 7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임 사장이 동아화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설립 15년이 지난 89년이었다.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임 사장에게 뜻밖의 제의가 왔다. 임 사장은 “회사를 경영하던 집안 친척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인수 제의를 받았는데 고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고민을 참 많이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인수 제의를 받은 임 사장은 동아화성이 만드는 제품이 자동차 관련 고무부품이라는 데 주목했다. 80년대 말은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올림픽이 끝나고 한창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고무 관련 소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부품을 만든다면 자동차 ‘붐’이 일어날 경우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총동원했습니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올인’한 셈이죠. 다행히 예상대로 자동차 판매가 늘면서 고무부품 수요도 같이 늘어 그럭저럭 꾸려올 수 있었습니다.” 겸손한 대답과 달리 자동차 산업에 대한 임 사장의 시장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격언처럼 ‘고무’를 본 게 아니라 ‘자동차’에 대한 비전을 보고 투자한 것이 적중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저희 회사가 현대차 등 주요 메이저 업체와 거래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굴러가는 줄 압니다. 하지만 메이저 자동차일수록 입맛이 까다롭습니다. 특히 신차 개발 시점마다 적합한 부품을 제공하지 못하면 (거래가) 끝입니다. 동남아나 중국 등지에 얼마든지 더 싼값에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널려 있기 때문이죠. 경쟁업체의 낮은 가격을 상쇄할 수 있는 하이테크 제품을 내놓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기술 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기술 개발에 대한 목마름은 97년 고무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현재 연구원 28명이 근무하고 있는 고무연구소는 내구성 테스트를 비롯해 원료 배합, 약품 선정, 신소재 개발, 설계 등 고무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고 있다. 지금도 연간 매출액의 10% 이상을 R&D 비용으로 투자하고 있을 정도다. 드럼세탁기 부품으로 다각화 “초창기에는 고무의 배합비율이나 경도가 맞는지 잘 몰라 입에 넣고 씹어 보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기도 하지만 그런 게 다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가만 있으면 뒤처지는 게 아니라 ‘죽는다’라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또 새깁니다.” 동아화성은 지난해 또 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사업다각화를 통한 매출구조 다변화에 성공한 것이다. 자동차에만 기댄 매출 구조는 경기가 나빠질 경우 언제라도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이런 고심 끝에 내놓은 것이 바로 드럼세탁기용 도어개스킷이다. 드럼세탁기 보급이 늘어나면서 문을 여닫을 때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해주는 도어개스킷은 필수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드럼세탁기를 생산하는 국내 가전업체를 비롯해 일본의 도시바·샤프·산요, 중국의 하이얼 등에 납품하고 있다. 동아화성의 변신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차세대 성장엔진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과 투자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및 공동주택의 층간 소음을 방지해 주는 ‘건축용 층간 차음재’와 식기세척기의 진동 흡수 및 소음을 차단해주는 ‘식기세척기용 고무부품’, 연료전지용 고기능성 고무개스킷 등이 그 주역이다. “건축용 층간 차음재는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연료전지용 고기능성 고무개스킷 역시 발전 효율이 높은 연료전지에 들어가기 때문에 산업용 열병합 발전소에서부터 가정용 보일러까지 응용분야가 넓어 시장성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생산기지의 현지화 전략도 적극 펼치고 있다. 2002년 현대차와 인도에 동반 진출한 데 이어 2003년에는 LG전자와 손잡고 중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올해는 LG전자와 함께 러시아에도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임 사장은 “해외 진출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대기업과 동반 진출하고 있다”며 “신규 시장에 진출하면 시장 선점은 물론 물류수송비와 인건비 절감 등의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