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만 축내는 기초의회 해체하라”

의원 자질 부족이 가장 큰 문제…일 안하며 해마다 의정비 올려 달라고 요구

지방의회가 지방자치의 꽃이라면, 기초의회는 지방의회의 뿌리다. 요즘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234개 기초의회가 담합이라도 한 듯 일제히 ‘의정활동비 인상’에 나서자 민심이 들고 일어났다. “도대체 뭘 했다고 연봉을 올리느냐”는 성토가 전국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질타를 받는 것일까. 이코노미스트가 기초의회의 문제점을 집중 분석했다.
올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날, 부산 금정구 주민들은 또 하나의 선거를 한다. 구의원 재선거다. 속사정은 ‘황당함’ 그 자체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해 5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부산 금정구 마 선거구에서 박 모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박씨는 선거기간 내내 유세장은 물론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후보 등록 역시 가족들이 대리로 했다. 그런데 선거 열흘 후 구의원에 당선된 박 모 후보는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자살이었고, 경찰이 추정하는 사망일은 입후보 등록개시일 전이었다. 이미 사망한 후보가 선거에서 당선된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후 대법원은 “당선된 사람이 후보등록 전에 사망한 사실이 발견된 경우 차점자에게 당선인 자격이 승계되는 것이 아니라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부산 금정구 선거관리위원회는 12월 19일 재선거를 결정했다. 지방의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씁쓸한 사건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방자치를 전공한 학자들에게 ‘지방의회를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이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들은 암울했다. ‘유명무실’ ‘좌충우돌’ ‘무위도식’ 등. 압권은 ‘반식재상(伴食宰相)’이었다. 자리만 차지하는 무능한 재상을 빗대 이르는 말이다.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다닌다’로 직역되는 ‘금의야행(錦衣夜行)’으로 표현한 학자도 있었다. “지방자치를 도입한 것은 커다란 성공인데 막상 그 제도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지방의원들이 밤길(?)을 다니니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뜻”도 함축돼 있다. 지방의회가 부활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실은 참담하다. 뿌리를 내리기는커녕 ‘아예 뽑아 버리자’는 지방의회 무용론이 무성한 실정이다. 지방의회 재편에 대해서는 논란이 한창이다. 특히 ‘기초의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공공자치연구원이 올 9월 ‘지방의회 체계 개편’과 관련, 행정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7개 광역시의 자치구의회(기초의회)는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16개 광역의회는 존속시키고 234개 기초의회는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15%였다. 기초의회 폐지와 관련, 박기록 대구대 도시행정과 교수는 “기초의회는 없애고, 도와 광역시의 통합, 기초자치단체 폐지 등 새로운 지방자치제를 모색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정일섭 인하대 교수는 “특별시, 광역시의 자치구의회는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자치구 간 지역적 특성이 그리 크지 않고, 자치구 단위로 처리해야 할 일보다는 대도시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시·군 기초의회는 지역적 특성도 있고, 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의회가 존속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견은 엇갈리지만, 지방자치 전문가 모두 지방의회를 심각한 눈으로 보고 있음은 분명하다. 최근 ‘지방의회 의정비 인상’ 논란을 보면 일반 시·군·구민들 역시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데 합의가 된 듯한 분위기다. 지방의회 제도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지방의원 자질에 대한 불신’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난해 한 연구기관이 현직 기초단체장 1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10명 중 7명은 “기초의원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초의원 수준에 대해서는 10점 만점에 5.28점을 줬다. 낙제점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의 한 구청장은 “의원님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분이 꽤 여럿”이라고까지 했다. 김세호 한양대 교수는 “본인의 신분상승과 이권개입에 신경을 쓰거나 책임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채 주민들 민원 해결사 역할만 하는 의원이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익명을 부탁한 한 지방대학 교수의 지적은 더 적나라하다. “기초의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의원들의 자질 문제입니다. 그들이 지방의원을 하는 목적은 자신이 하는 사업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합니다. 의원이라는 관직을 갖고 싶어하고요. 상당수 의원은 알게 모르게 이권에 개입하고, 개발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공적인 마인드도 부족하죠. 주민들은 기초의회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현대판 완장들이 너무 많습니다. 무식한 기초의원도 많고요.” 선량하고 열의를 다하는 지방의원들이 듣는다면 가슴을 칠 말이지만 “지방 행정가들은 빠르게 전문화되는데, 이를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해야 할 의회의 능력은 부족하다(정정목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적은 대체로 타당하다. 최근 한 지방의원이 이례적으로 낸 보도자료는 일종의 양심선언이다. 경기도의회 소속 송영주 의원은 “의정비 인상에 반대한다”면서 “지방의원들이 의정비 인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전문성 강화와 지방의회의 견제기능 강화, 주민참여 제도의 즉각적인 도입 활동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기초의회 의장협의회는 기초의원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 인상을 건의하면서 “지방자치의 활성화와 기초의원의 전문성 확보가 시급한 실정에서 원활한 의정업무 추진을 위한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공통된 점이 있다.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만 송 의원은 “의정비와 전문성 강화는 관계없다”는 쪽이고, 기초의회 의장협의회는 그 반대다. 지방의회에 유급제가 도입된 것은 ‘전업 정치인으로 전문성을 강화해 지방의회 역할을 다해 줄 것’이란 점이 전제된 것이다. 무보수 명예직 시절이 아마추어였다면, 프로답게 일해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의회와 의원은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전직 구의원은 “의원들이 예산안을 읽지도, 따지지도 못해 심의 때마다 회계사를 불러다가 하는 지경이었다”며 “단체장이 내놓은 조례들이 대부분 원안가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의원들의 전문성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거의 의회를 찾아오는 일이 없지만, 한 번이라도 방청해 본다면 의원들의 수준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방의원들은 ‘전문성 부족’을 늘 돈과 연결시켜 왔다. 충북참여자치연대가 최근 도내 의원 38명을 대상으로 ‘유급제와 의원 전문성의 관계’를 물었더니 95%가 ‘상관 있다’고 답했다. 반면 같은 질문을 500명 주민을 대상으로 했더니, 43%는 ‘약간 관련’, 40%는 ‘관련 없다’고 답했다. 사실 “지역에 봉사하기 위해 지방선거에 출마했다”면서 “봉사하기 위해 월급을 올려 달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의정비를 올려야 자질 좋은 의원들이 지방의회로 들어온다”고 말한 한 기초의회 의장의 말은 제 발등 찍기다. 역으로 ‘의정비가 적어 자질 좋은 의원이 부족하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봉사 잘하게 돈 올려 달라” 고액 유급직이 된다고 지방의원의 수준이 더 올라갈 것이라는 보장도 물론 없다. 차라리 지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본인들이 일해 온 데이터라도 제시하면서 점진적 의정비 인상을 주장했다면 ‘후안무치’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수도 있었다. “유급보좌관제도 도입과 개인사무실을 제공하고, 모든 의원에게 복지카드를 지급해 달라”고 행정자치부에 요청하기 전에, ‘총액인건비제도’ 등을 조례로 도입해 각 지자체 예산에 합당한 의정활동비를 지급받겠다고 했다면 어떠했을까? 일부 의원의 급격한 의정비 인상 주장을 막기 위해 전년도 대비 인상폭을 스스로 제한하는 노력부터 했다면 또 어땠을까? 정기적으로 핵심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지표를 개발해 합리적으로 평가한 결과에 근거해 의정비 인상을 요구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수 있다. 관광성 해외연수를 자제하고, 연수를 다녀왔다면 충실히 보고서를 작성해 지역주민들에게 설명회를 수시로 개최했다면, “뭘 했다고 월급을 올리겠다는 거냐”는 질책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지역 국회의원에 줄서기 하고, 대선 정치판에 주민들을 동원하고, 조례 개발은커녕 집행부가 내놓은 조례와 예산안에 딴죽 걸지 않는 것을 당연시 여기면서 주민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면, 그 자체가 ‘자질의 문제’다. 아울러 지방자치를 통치하려는 중앙정부와 국회에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의원도 의원이지만, 지방의회가 불임의회처럼 된 데는 지역 대표 일꾼을 뽑는 유권자의 의식도 문제다. 선거 전에 이미 사망한 후보가 당선된 사례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설명할 도리가 없다. 이점에서 정당 공천제는 우리나라 지방의회 민주주의를 두세 걸음 후퇴시킨 일로 평가된다. 2005년 6월 30일, 대한민국 국회는 ‘기초의원 유급화’와 함께 ‘기초의회와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를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다수의 국회의원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지방자치를 더욱 중앙정치에 예속시킬 우려가 높고, 아울러 정당공천에 따라 젊고 역량 있는 신진인사의 진입이 곤란해지고, 고비용 선거구조, 공천을 둘러싼 잡음의 우려는 국가 발전의 초석인 지방자치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대리 선거판이 됐고, 지방의회는 ‘당장 해체하라’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