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담보로 펀드 거래한다

월가 배회하는 ‘죽음의 상인’
보험료 대신 내주고 보험금 챙겨 … 가입자 빨리 죽을수록 수익률 높아

‘죽음의 상인’들이 월가에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형 금융기관들이었던 이 죽음의 상인들이 소형 헤지펀드까지 퍼져나가면서 죽음에 이르게 될 당사자와 이들이 사망해 이득을 보는 투자자들이 대면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점도 월가를 더 으스스한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죽음의 상인은 말 그대로 죽음을 판다. 누군가 빨리 죽으면 더 많은 수익률을 올린다. 이들은 생명보험을 든 노인들에게 계약금을 일시불로 지급하고 노인들의 보험증서를 산다. 그리고 보험료를 대신 내주다가 노인이 사망하면 보험금을 대신 받아 챙긴다. 고상한 말로는 생명보험 담보부 증권(life settlement backed security)이라고도 한다. 노인이 일찍 사망하면 투자 대비 수익률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고 이들이 암과 같은 불치병에만 걸려도 그 즉시 원래 계약금의 2~4배를 더 챙길 수 있다. 죽음의 상인의 활동 반경은 월가 도덕성의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지금 월가는 좁은 골목길부터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보험업계는 생명보험 담보부 증권 시장이 지난해 150억 달러에 이어 올해도 성장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노년화에 힘입어 올해 65세 이상 보험증권 잠재 판매자의 보험금 총액은 1000억 달러가 넘는다. 미국의 전체 65세 이상 인구가 소지하고 있는 생명보험금 5000억 달러의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사망 채권(Death bond)’ 혹은 ‘사망 펀드(Death fund)’라고도 하는 생명보험 담보부 증권은 다섯 단계를 거쳐 펀딩한다. 먼저 생명보험 가입자가 있고 이들의 보험증권을 매입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브로커를 거쳐야 한다. 브로커는 자신의 목숨 값을 팔 노인들(주로 70세 이상)을 모집해 생명보험모집회사(Life Insurance Settlement Provider)에 판다. 때로 생명보험모집회사가 직접 투자자들을 음성적으로 모집해 보험료를 결제해주기도 하지만 대개 이 생명보험 증서들은 수백 개씩 묶여서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에 넘어간다. 그러면 이들은 이를 담보로 (모기지파생상품이 그랬듯) 금융파생상품을 발행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망 채권은 대부분 기관투자가들 혹은 워런 버핏과 같은 큰손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 끔찍한 투자상품은 지난해 상반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시장에 문제가 감지됐을 때만 해도 대형 투자은행들의 독무대였다. 당시 죽음의 상인들은 지금은 없는 베어스턴스, 현재 파산설이 돌고 있는 리먼브러더스, 미 국세청의 집요한 조사로 역외계좌 조세포탈 방조죄를 인정한 스위스은행 UBS 등이었다. 최근 별세한 존 템플턴과 함께 가치투자의 양대 산맥으로 뽑히며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워런 버핏도 누군가의 ‘죽음’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사망 펀드가 붐을 탄 이유는 생명보험업계의 이윤을 나눠 먹자는 월가의 집요한 구애 때문이다. 2006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체 생명보험 가입자의 88%가 보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험업계의 이익 구조로 파악했다. 초기 중도해지가 9.5%나 됐고 노년층 가입자 가운데 20%만이 생명보험을 11년 이상 유지했다. 생명보험업체들은 고객이 보험을 해지하는 데서 이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 보험정보협회는 지난해 미국 보험회사들이 생명보험 가입자 1980만 명이 보험을 해지해 1조100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생명보험금을 수취한 고객은 220만 명에 불과했다. 그러니 보험사들은 막대한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고 월가도 체질상 돈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금융상품이 사망 펀드다. 하지만 최근 몇 개월 사이 상황은 변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규모와 여파가 상상을 초월해 월가 대형 투자은행들이 흔들렸다. 베어스턴스가 넘어갔고 국책 모기지 금융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일반 모기지 대출 은행들의 자금 순환을 돕느라 사실상 파산에 이르렀다.
7월 23일 현재 의회는 이 두 국책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퍼붓는 데 합의한 상태다. 시장 상황이 이처럼 최악으로 내닫자 대형 금융업체들은 사망 펀드에서 한 발을 뺐다. 평균 수익률 8%로 해볼 만한 투자였지만 자산의 3분의 1이 하루아침에 장부에서 사라져버린 대형 월가 은행들에는 더 큰 대박상품이 필요했다. 죽음이 선사하는 한 자릿수 수익률에 매달리는 데 자원을 허비하느니 대형 먹거리를 따내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생명보험 담보부 증권을 대놓고 취급하는 회사들은 주로 작은 규모의 헤지펀드들이다. 그린위치 애널리틱스도 이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노리는 곳은 한인 교포 시장이다. 한국어로 ‘황혼 정착금’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죽음의 상인들이 규모가 작은 헤지펀드가 되고 이들이 좁은 시장을 타깃으로 바닥을 훑는 저인망식 영업을 하게 되면 문제점이 크게 늘어난다. 개인과 회사의 거래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거래가 돼 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자산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이 회사 K부사장은 “케이스가 1 대 1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가 자신이 투자(생명 보험료를 내주는)하는 사람의 개인신상을 알 수도 있다. K부사장은 “(자산 유동화 전 단계인 만큼) 당연히 서로 알 수도 있지만 누가 굳이 알려고 하겠느냐”고 강조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일찍 사망하면 수익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 회사는 70세 이상 200만 달러짜리 생명보험 증서를 3만 달러가량에 매입한다. 직접 투자자를 모집해 이들이 2년 동안 타인의 보험료를 내주다가 이 사람이 사망하면 25만 달러 상당의 이득을 올린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정확한 투자금액은 보험료에 수수료를 더한 것이지만 정확한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만약 이 노인이 2년 내에 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리면 투자자는 기존 수익의 4배인 60만 달러 상당을 챙긴다. 사망 펀드는 전통 있는 금융상품 사망 펀드는 미국에서는 전통 있는 금융상품이다. 1980년대 에이즈 환자들이 발병 후 2년 이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자 월가는 사망보험에 든 에이즈 환자를 상대로 영업을 개시했다. 월가의 관심이 70대 이상 노인에게 돌아간 것은 그로부터 약 5년 후다. 의학의 발달로 에이즈 환자들의 2년 후 사망률이 크게 줄자 상품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월가를 배회하는 죽음의 상인들을 보는 미국인의 시선은 나쁘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이 펀드의 시스템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단점을 지적했지만 이로 인한 장점, 즉 노인들의 은퇴 자금 마련에 기여하는 점도 비중 있게 소개했다. 일부에서는 사망 펀드가 최근 한국에도 소개된 역모기지와 비슷한 개념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꺼내 쓰는 역모기지를 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모기지 융자금을 다 갚은 집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망 펀드는 담보가 집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이다. 도덕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직접적인 사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그린위치 애널리틱스처럼 1명의 생명보험 가입자와 1명의 투자자가 연동되고 이들의 개인정보가 차단되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더욱 위험하다. 사망 펀드는 언뜻 화려하고 선진화된 듯 보이는 월가의 야만적인 이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와튼스쿨의 데이비드 커민스 교수는 “보험 가입자가 늘고 있기 때문에 (사망 펀드가 구입해야 하는) 보험증서의 가격도 동반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수익률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사망 펀드를 다루는 헤지펀드의 규모와 수준도 현재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