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WORD] The Spy Who Knew Everything

'미국의 중동정책 이제는 바꿔야 할 때'
베테랑 CIA 요원 브루스 리델이 말하는 파키스탄과 이집트 정책의 오점


▎부토는 가장 근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지도자였다.

CIA 요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바로 적절한 시기, 적절한 장소에서 중요한 순간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브루스 리델은 이런 기준에 비춰 최고 요원이라고 할 만하다.

CIA 요원으로 임명된 리델이 맨 처음 배치된 나라는 이란이었다. 때는 무함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의 통치가 막을 내리기 시작한 1978년이었다. 그 이듬해인 1979년에 이란 혁명이 발발했고 주이란 미국 대사관 직원들은 444일 동안 인질로 붙잡혔다. 이와 함께 중동에서 미국의 활동 영역과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다음으로 리델이 배치된 국가가 바로 이집트다. 이집트 담당관으로 임명된 리델은 1981년 가을 이스라엘과 중동의 평화협상을 이끈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암살을 경고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당시 부통령의 정치적 부상을 예상한 리델의 보고서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리델이 보고서를 제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6일,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을 받아들이지 못한 일부 군인이 군사 퍼레이드 도중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다.

이집트에서 다시 혁명이 시작돼 정정이 혼란에 빠졌던 지난주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리델은 “악몽 같은 날이었다”고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되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백악관의 주인이 네 번 바뀌는 동안 리델은 국방부와 백악관, 랭글리에 위치한 CIA 본부에 근무하면서 미 정계와 중동의 유력 인사들과 관계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요즘에는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파키스탄을 담당하면서부터다.

“파키스탄에서 사상 처음으로 원리주의 이슬람 세력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생겼다”고 리델이 말했다. “파키스탄의 과격 이슬람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미국은 21세기 최대의 악몽을 겪게 된다.”

리델의 저서 ‘죽음의 포옹: 파키스탄과 미국, 글로벌 지하드의 미래(Deadly Embrace: Pakistan, America, and the Future of Global Jihad)’가 이번 주 브루킹스 연구서에서 출간된다. 격동의 파키스탄 역사를 다룬 입문서로 발간되는 이 책에서 리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행정부가 파키스탄 민간 정부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군사 독재를 지원하고, 결국 국내외에서 미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극단주의 이슬람 운동의 부상을 촉진하게 된 원인”을 설명한다.

리델은 파키스탄에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꿈꿨던 민주주의에 관해 설명한다. 영국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파키스탄으로 돌아와 변호사로 활동했던 진나는 칵테일을 즐겨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는 멋쟁이 신사였다. 리델은 파키스탄이 건국됐던 1947년부터 인도-파키스탄 전쟁, 전쟁 이후 이어진 군사 독재 시절까지 파키스탄의 역사를 독자 앞에 펼쳐놓는다. 이 중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세계 최초의 극단주의 이슬람 정권을 이끌었던 지아 울 하크 장군의 이야기다.

파키스탄 역사에서 가장 미래가 밝았다고 할 만한 시기는 최초의 여성 총리 베나지르 부토가 당선됐던 순간이다. 부토 전 총리 또한 리델과 교류하는 유명 인사 중 한 명이었다.

“파키스탄의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정치인을 한 명 꼽으라면 단연코 부토 전 총리를 선택할 것”이라고 리델은 말했다. “부토 총리를 잃은 건 엄청난 비극이다. 일부 정책이 실패하긴 했지만, 부토는 당시 가장 근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지도자였다. 부토 전 총리의 사망은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오바마 행정부의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정책팀 수장으로 임명된 2009년부터 책을 쓰기 시작한 리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핵무기 보유고를 늘리는 파키스탄에서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통제 불가능한 이슬람 극단주의가 정권을 잡을 때 발생할 위협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리델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국제 정치는 이상과 현실 정책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요소가 뒤범벅돼 나오는 결과물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정부가 중동과 남아시아의 군사독재 정권을 지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지 몰라도, 파키스탄의 과거와 이집트의 현재는 미국이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모습에서 탈피해 정책 노선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지미 카터의 이란 정책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조지 (W) 부시의 대 파키스탄 정책 또한 효과적이지 못했다. 미국은 독재자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이 파키스탄 국민의 신망을 잃은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정권 유지를 도왔다”고 리델이 말했다.

혁명은 그 성격상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집트 민주주의의 성장을 원한다면 미국 정부는 혁명보다 훨씬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격동의 소용돌이를 감당하는 일이야말로 지금 오바마 행정부 앞에 던져진 과제”라고 리델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