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김준태의 ‘세종과 정조의 가상대화’ (7) 독서론

좋은 책 골라 여러 번 읽어라
언제나 부족함을 깨닫고, 끝없이 경청하고 배워야


정조 ‘전하께서는 어렸을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병이 났을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시자, 몸이 상할까 걱정하신 부왕(父王:태종)께서 독서를 금지하고 책을 다 거두어 가셨는데도 병풍 뒤에 떨어져 있던 책 한 권을 찾아내 천 번을 읽으셨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태종18.6.3/연려실기술3). 그리고 ‘정사(政事)를 보느라 고단하셨을 터인데도 매일같이 한밤중까지 책을 읽으시고, 경서는 백 번을, 자사(子史:제자백가의 저술과 역사서)는 서른 번을 넘게 읽으셨다는 기록도 보았습니다.’(세종32.2.22). 대체 독서의 효용이 무엇이기에, 전하께서 이토록 책 읽기에 심혈을 기울이신 것입니까.

새로운 책 읽을 때마다 희열 느껴

세종
네가 “지혜를 넓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이 듣고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책을 읽는 것 만한 것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더냐(홍재전서 권49). 그 말이 곧 답일 것이다. “과인이 비록 성리학에 능통하지는 못해도 이미 대부분의 책을 보았고, 사학(史學)에 익숙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러 책을 읽어서 의문점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또 새로운 책을 접하게 되면 그 때마다 생겨나는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세종8.12.10). 이 궁금증을 마주하고, 그것에 대해 성찰하며 해답을 찾아갈 때마다 나는 한없는 희열을 느꼈다. 또한 학문이란 본래 무궁한 것이지만, 임금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끝없는 것이다. 바른 정치를 향한 뜻은 임금의 수양(修養)을 통해 확립되고, 나라와 백성을 위한 정책은 임금의 배움을 거쳐 더욱 밝아지니, 어찌 잠시라도 독서를 멈출 수 있겠느냐. 내가 “늙어서 기억력이 쇠잔해지는 순간까지도 책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니, 글을 읽는 동안에 번잡했던 마음이 정리되고 새로운 생각이 일깨워져서 여러 가지로 정사에 도움 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세종20.3.19).

정조 그렇다면 독서를 잘 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나이까.

세종 너의 생각은 무엇이냐. 내 너의 생각을 듣고자 한다.

정조 소손은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그 내용을 성찰하지 않았으면서 대충 짐작으로 책의 뜻을 헤아리려 드는 것은, 책 한 장 읽지 않고 방탕을 일삼는 것보다 오히려 해로움이 더 크다고 생각하옵니다.”(홍재전서 권129). 따라서 책을 읽을 때는 “정밀하게 살피고 명확하게 분별해 내어 몸과 마음으로 체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날마다 다섯 수레에 실을 분량의 책을 읽고 암송한들 그게 제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글 속에 있는 이치가 자신 안의 이치와 하나하나 부합되어야 비로소 참으로 터득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홍재전서 권162).

세종 참으로 그러하다. 모름지기 책은 나 자신과 맞닿아야 한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의 내용을 나의 경험과 연결 지어 성찰하고, 책을 통해 내 안의 긍정적인 가능성과 가치를 촉발시키고 이끌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책이 주는 감동이라는 것도 결국 내 마음이 움직여야 오는 것이 아니더냐. ‘겉으로 드러난 내용에만 얽매이고, 글귀에나 집착하며 책을 읽어서는 학문에 아무런 도움 되는 바가 없을 것이니, 독서에는 반드시 성찰 공부가 뒤따라야 함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세종0.10.12). 아울러 책을 읽을 때는 “한 가지라도 오로지 하여 지극히 자세히 보고 깨우쳐 가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이것저것 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독서를 하고 연구를 해도 도무지 얻는 것들이 없다.”(세종15.2.2).

정조 소손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한도 끝도 없는 책을 읽느라고 혼란만 겪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 진정으로 얻는 것이 있는 쪽이 낫지 않겠사옵니까.”(홍재전서 권165) “물론 넓게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1만 줄의 글을 10번 읽는 것은 10줄의 글을 1만 번 읽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옵니다. 많은 책을 널리 읽는 것보다는 좋은 책 한권을 거듭 읽어 정밀하게 생각하고, 세밀히 파고드는데 힘써서 근본을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홍재전서 권178).

세종 좋은 말이구나.

정조 아울러 소손은 전하께서 치열하게 독서에 임하시는 모습을 보고 시간이 없어서 독서를 하지 못한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함을 깨달았사옵니다. “진정 부지런히 공부하고자 하는 정성이 있다면 어찌 책 볼 겨를이 없겠사옵니까. 글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으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홍재전서 권162). ‘그렇다고 따로 독서할 시간을 구하고자 한다면 그 때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핑계가 생길 테니까요. 하여 공무를 보느라고 여가가 적기야 하겠지만, 하루 한 편씩의 글을 읽고자 한다면 그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이렇게 계획을 세워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해 나간다면 하루 동안 읽는 양이 비록 많지 않아도 종국엔 읽지 못할 책이란 없을 것입니다.’(홍재전서 권162).

역사책 많이 읽어야

세종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너는 경서(經書:유교경전)를 위주로 읽는 것 같던데, 역사책(史書)도 많이 읽도록 해라. ‘역사에는 권선징악의 생생한 사례와, 뭇 인간과 나라가 흥하고 쇠락하며 보전되거나 멸망하는 과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지 않더냐. 그것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거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임금이 좋은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앞 시대의 치란(治亂:나라가 올바로 다스려지고, 잘못 다스려짐)의 자취를 보아 경계로 삼아야 한다. 그 자취를 보는 방법은 오로지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뿐이다.’(세종23.6.28).

정조 명심하겠나이다. “이 세상은 변화가 무궁하여, 옛날과 오늘날 사이의 차이점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 비슷한 데가 있기 마련이라 생각하옵니다. 사람의 천성과 감정의 작용이 같고, 시대가 융성과 쇠퇴하는 흐름도 대개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잘 관찰해 보면 오늘의 일은 옛 사람이 일찍이 겪었던 일이요, 옛 사람이 남긴 말은 지금도 마땅히 되새겨야 할 말인 것 같사옵니다.”(홍재전서183).

세종 그러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내 끝으로 한 가지 더 당부한다. 임금은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임금은 모든 일을 관장해야 하고, 임금의 판단과 결정에 곧 나라와 백성의 안위가 달려있다. 그러나 임금이 그 모든 일에 하나같이 완벽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끝없이 경청하고 배우라. 쉬지 않고 학문을 닦고 책을 읽어 자신을 계발해야 한다. 모르는 게 있어야, 의심이 가는 바가 있어야 그 부분을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결국엔 더 깊이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니냐. 나는 모르는 게 없다고 자신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니, 이들에게는 더 이상 진보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음을 깨닫고, 인정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채워나가길 바란다.’(세종14.12.22).

정조 가슴 깊이 새기겠나이다.

[※이 글은 『세종실록』과 『정조실록』, 그리고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 등 원전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다.(예: 세종8.5.11 → 세종 8년 5월11일자 실록) “ ”표시는 원문의 직접 인용(단, 대화체로 변형함), ‘ ’표시는 원전을 바탕으로 각색한 것이다. 나머지는 필자의 창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