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와 포르테 하이브리드, 프리우스 등 준중형차가 주도하던 국내 하이브리드 시장에 중형차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5월과 6월 기아차 K5와 현대차 쏘나타가 중형 하이브리드 시장의 문을 열었다. 지난해 말까지 각각 5279대와 7193대를 팔아 나름 선전했다. 여기에 올 1월엔 토요타의 뉴캠리 하이브리드, 2월엔 포드의 퓨전 하이브리드가 가세했다. 국내 중형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한국, 미국, 일본의 대표 차종 간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지난해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 경쟁에서는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조금 앞섰다. 2000대가량 더 많이 팔았다.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는 성능과 가격이 거의 비슷하다. 두 차량 모두 2000cc급 배기량에 L당 21km의 공인연비를 지녔다. 가격 역시 3000만원대로 비슷해 소비자 사이에선 쌍둥이 차량이란 별명까지 나왔다. 비슷한 두 자동차의 판매량을 가른 건 디자인이었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겉모습은 가솔린 모델과 확연하게 다르지만 K5는 거의 흡사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운전자는 자신의 환경을 생각하는 에코 드라이버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K5는 가솔린 모델과 하이브리드 모델의 디자인이 같아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뉴캠리는 최고급 사양만 출시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지금부터는 외국 자동차 브랜드와도 경쟁을 벌여야 한다. 특히 이번에 맞붙는 자동차는 각국을 대표하는 차종이다. 쏘나타는 국내 자동차를 대표하는 자동차로 이미 어느 정도 검증 받았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지난해 월평균 판매량이 1000대를 웃돌 정도로 시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뉴캠리는 하이브리드 강국인 일본의 대표적인 차로 높은 연비와 고성능을 자랑한다. 공인연비는 L당 23km로 쏘나타·K5·퓨전보다 높다. 퓨전은 포드의 기존 베스트 셀링 차량인 가솔린 모델의 기술과 장점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하이브리드 차량만의 특색을 더했다는 게 장점이다.경쟁이 치열한 만큼 각 브랜드는 다양한 전략으로 소비자 잡기에 나섰다. 쏘나타와 K5는 가격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모델에 따라 뉴캠리(4290만원)보다 500만~1000만원까지 저렴하고, 퓨전(4760만원)보다는 최대 1500만원 더 싼 가격에 차량을 구입할 수 있다. 쏘나타는 2월 1일 추가로 보급형 모델인 ‘쏘나타 하이브리드 스마트’를 출시해 가격을 더 낮췄다. 기존 프리미어 차에서 가죽 자동변속기 손잡이나 뒷자석의 중앙 팔거치대 같은 일부 편의사양을 제외한 모델이다. 세제혜택까지 포함하면 2865만원에 중형 하이브리드 차량을 구매할 수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성능은 다른 차량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에선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했다.포드는 첫 하이브리드에 기대뉴캠리는 고급차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췄다. 토요타 측은 뉴캠리를 출시하며 국내 시장의 경쟁 차종으로 그랜저를 지목했다. 비슷한 배기량(2500cc급)을 가졌다는 이유에서다. 뉴캠리가 그랜저급의 고급 자동차라는 것을 소비자에게 강조하려는 포석을 깔고 있다. 최고급 사양의 한 가지 모델만 국내에 출시해 고급차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또 기존의 캠리 하이브리드의 연비(L당 19.7km)보다 더 높은 연비를 보이는데도 가격은 300만원 정도 저렴하게 책정해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포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내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2012년형 퓨전 하이브리드는 포드가 올해 국내에 출시하는 첫 차량이다. 포드에서 최초로 개발한 하이브리드 차량이기도 하다. 그만큼 포드가 거는 기대와 관심이 크다. 포드 측은 국내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의 잠재력이 풍부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퓨전 하이브리드를 필두로 점진적으로 국내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늘려 나가는 전략을 세웠다.이들 중형 하이브리드 차량이 국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내에선 아직 하이브리드 차량의 인기가 크게 높지 않다. 지난해 10여종의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출시됐지만 큰 성공을 거둔 모델은 없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토요타의 프리우스가 국내에선 큰 재미를 보지 못한 게 대표적인 예다.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 역시 출시 초반에는 인기를 끌었지만 지난해 말부터는 판매량이 다소 감소하는 부진을 겪었다. 유럽 브랜드가 내세우는 디젤차의 인기에 밀렸다.올해는 하이브리드 시장이 확대될 것인지 이대로 주춤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해다. 소형 또는 준중형 중심에서 중형 하이브리드까지 모델이 더욱 다양해져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하이브리드 강국인 일본에서도 하이브리드 차량이 시장에 제대로 자리잡기까지는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며 “국내 시장에서도 장기적으로는 하이브리드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솔로몬투자증권 공정호 애널리스트는 “일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하이브리드에 대한 관심이 기대만큼 크지 않다”면서도 “쏘나타와 K5 밖에 없었던 국내 중형 하이브리드 시장에 다양한 경쟁 차종이 등장하면서 하이브리드 시장에 대한 전체적인 관심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sampark2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