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김일호 오콘 대표 - 뽀로로가 중국 문 열고 디보가 돈번다


“디즈니보다 잘 만들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김일호(44) 오콘 대표가 지금까지 캐릭터를 창조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김 대표는 1996년 오콘을 설립해 뽀로로, 선물공룡 디보 등을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캐릭터와 영상을 잘 만드는 것과 함께 비즈니스 인프라를 갖추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오콘은 라이선스에서 한 발 더 나가 직접 사업에 나섰다. 지난해 뽀로로의 공동기획사인 아이코닉스와 절반씩 투자해 뽀로로 테마파크 ‘뽀로로파크’를 오픈했다. 현재 다섯 곳에 뽀로로파크가 있다. 오콘의 캐릭터 선물공룡 디보를 테마로 한 ‘디보빌리지’도 여섯 군데 운영 중이다.

김 대표는 “국내 뽀로로 로열티가 연간 130억 원”이라며 “뽀로로파크 두 군데서 한 해에 벌 수 있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뽀로로파크를 계속 늘릴 예정이다.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다. 20개가 되면 한 해 로열티로 벌어들이는 금액의 10배 가까운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김 대표는 세 단계 사업모델을 설명했다. 1단계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방송사 등에 파는 것이다. 그는 “텔레비전 방영권료는 별게 아니다”며 “브랜드를 알릴 목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단계는 라이선스 사업이다. 완구나 옷, 생활용품에 캐릭터 사용권을 주는 대신 로열티를 받는다. 따로 자본이나 인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익률이 높은 편이다. 세 번째는 직접 사업을 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캐릭터가 성공하고 사업이 커지면 원권자가 직접 해야 하는 사업이 생긴다고 했다.

“테마파크나 게임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콘텐트에 가깝습니다. 콘텐트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주면서 관리하려면 원권자가 직접 사업을 해야죠.” 장기적으로 관리하며 사업을 키워나갈 경우 라이선스 사업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오콘은 뽀로로파크를 계기로 세 번째 사업 단계에 들어섰다. 오콘에서 만든 캐릭터 제품을 파는 오콘숍과 캐릭터를 활용한 교육 게임도 계획하고 있다. 오콘숍은 올해 하반기, 게임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꼼꼼히 준비해 왔다.

내 아이가 첫 고객

뽀로로는 오콘과 아이코닉스가 공동기획하고 오콘·아이코닉스·EBS·SK브로드밴드가 공동으로 사업에 참여한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이다. 2003년 첫 선을 보인 이래 120개국에 진출했다. 어린이들 사이에 ‘뽀통령’으로 통할 만큼 인기가 높다. 국내에서 한해 팔리는 뽀로로 제품은 8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오콘은 김 대표가 1996년 만든 애니메이션 창작스튜디오다. 그가 처음 회사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한국 애니메이션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때였다.

“해외 마켓에 가면 ‘한국도 애니메이션을 만드냐’는 반응이 많았어요. 한 번은 유럽에 갔는데 ‘너희 나라는 핵무기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애니메이션도 만드냐’고 하더라고요. 그들이 남한과 북한도 구별 못할 정도로 변방이었죠. 그러니 우리 애니메이션이 통할리 있겠습니까. 디즈니 애니메이션 하청을 25년 했다는 걸로 유명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하청은 누구에게도 줄 수 있는 거지요.”

그는 뽀로로를 만들기 전 5년 동안 CF등 관련 영상을 만들며 제작 노하우를 쌓았다. 1999년 SBS에서 방영됐던 ‘나잘난 박사’라는 3~4분짜리 코너는 700회 넘게 방영되며 인기를 끌었다. 나잘난 박사는 경제문제는 물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독설을 날리는 ‘사이버 방송인’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시사 문제를 다루다 보니 하루하루가 급박했다. 그날의 상황에 맞춰 스크립트를 짜고 제작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악몽 같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런 노하우가 쌓여 뽀로로를 제작하는 밑거름이 됐다.


뽀로로가 태어날 때 김 대표의 큰 아들은 두 살이었다. 당시 김 대표는 물론 파트너사, 창작 스태프 중 두 살 에서 다섯 살 아이를 가진 부모가 많았다. 뽀로로의 타깃 연령은 2세~7세. 김 대표는 “각 개발자의 아이가 첫 고객이었다”며 “못 만들면 당장 내 아이에게 망신을 당할 참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부모의 마음으로 자극적인 것보다 평범함을 택했다. 김 대표는 “평범한 게 뽀로로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지만 당시로는 큰 모험이었다”고 털어놨다. 보통 아이들은 자극적인 것에 눈길이 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자극적은 것을 만들어 잠깐 반짝하기보다 덤덤하더라도 오래 사랑받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뽀로로는 ‘내가 닮고 싶은 친구’이기보다 ‘나와 닮은 친구’다. 장소가 북극 마을이지만 일어나는 일들은 일상적이다. 실수투성이인 주인공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에피소드를 만들며 성장한다. 유아들을 생각해 프레임 역시 다른 애니메이션 보다 10% 느리게 만들었다. 뽀로로와 캐릭터들은 최대한 간략하고 정확히 말하고 상대방이 말하고 나면 잠깐 기다려 준다.

‘고맙다’는 팬레터 받고 성공 예감

김 대표는 “종종 언제 뽀로로의 성공을 예감했냐는 질문을 받는다”며 “50개국에 진출했을 때도, 뽀로로 매출이 1000억원이 넘었을 때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성공을 예감했다고 한다. 이런 반응은 뽀로로를 선보인 1년 후부터 꾸준히 늘어 2~3년이 됐을 때 눈에 띄게 많아졌다. 맞벌이를 하는 한 남성은 아이가 뽀로로를 보는 동안 집중하기 때문에 자신도 책을 읽을 시간이 생겼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한 아이 엄마는 아이가 뽀로로를 볼 때 설거지를 맘 편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해왔다. 해외 교포들은 자신의 아이가 뽀로로를 보면서 한국말을 배우게 돼서 고맙다고 했다. 지난해 주전자에 몸이 낀 아이는 119 구조대가 주전자를 잘라낼 동안 얌전히 뽀로로를 시청했다. 김 대표는 “DVD든 뭐든 대가를 지불하고 보는 것일 텐데도 고맙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선물 공룡 디보 시즌 3는 내년 중반에 선보인다. 김 대표는 “시즌 3부터 디보는 중국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디보 시즌3는 중국 정부와 50대 50으로 투자해 제작했다. 디보는 이미 90개국에서 방영됐지만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현지 파트너와 함께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다. 중국은 자국 콘텐트 보호 차원에서 외국산 콘텐트 방영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애니메이션보다 디보빌리지가 먼저 중국 땅을 밟는다. 디보빌리지는 중국에서 80곳 이상 매장을 두고 있는 대형 쇼핑몰 완다광장에 들어간다. 올해 9월 중국 부자들이 많이 사는 장인(江)에서 첫선을 보인다. 김 대표에게 사업가인지, 아니면 개발자인지 물었다.

“저는 회사 대표이기 때문에 투자금도 끌어와야 하고, 직원들이 더 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해요. 하지만 제 본질은 크리에이터입니다. 회사의 근간도 결국 창조적 작업이고요. 여기서 커나가는 비즈니스 파트 후배들이 앞으로 잘 해나갈 거라 믿습니다. 저는 크리에이터로 남고 싶습니다.”

크리에이터로서 김 대표의 계획은 뭘까. 내년 중반쯤 새로운 캐릭터로 만든 애니메이션 두 가지를 선보인다. ‘토니&키키’ ‘수퍼잭’이다. 토니&키키는 뽀로로 보다 낮은 연령대(1세~4세)를 타깃으로 한다. 주 내용은 아이들의 일상생활이다. 시즌별로 보조 테마를 가져가는데 첫 번째는 ‘수 개념’이다. 수퍼잭은 어딘가 엉성한 엉터리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다.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가 대상이다.

타깃은 어린이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2분짜리 애니메이션도 구상 중이다. 대상은 10대 이상이다. 사랑에 대한 코믹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