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뉴 랜드마크를 찾아서 - 문화공원 24시간 돌아가는 예술 창작소

베스터 가스공장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의 전경. 네덜란드의 베스터 가스공장은 수십 년간 방치돼왔지만 2003년 녹지와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친환경 공원으로 거듭났다.



유럽에서 가장 창조적인 나라를 꼽으라면? 여러나라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 으뜸은 네덜란드가 아닐까. ‘낮은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네덜란드는 전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기 때문에 운하의 나라 혹은 물의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를 여행하다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은 상상력이 참으로 뛰어나구나’ 하는 생각을 심심치 않게 한다. 길을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건물과 시설, 제품 하나하나가 저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선을 사로잡는 독특함을 벗어나 혁신적인 실험정신을 담고 있다는 설명이 보다 적절한 듯하다.

국토 면적이 4만㎢가량 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작은 국토마저도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온전한 땅과는 전혀 다르다. 둑을 쌓아 물을 막고, 말뚝을 박아 물 위에 땅을 만들고, 하나하나 다리를 놓아 수많은 섬을 이어서 만든 것이 오늘날의 네덜란드다.

그야말로 나라 자체가 변화와 창조의 상징이라 부를만하다. 지난 700여 년 동안 네덜란드 사람들이 스스로 일궈낸 땀의 결실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지구는 신이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우리가 만들었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이 얼마나 강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표현인가. 신이 들으면 노여워하겠지만, 오늘날 네덜란드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2003년엔 수도인 암스테르담에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Westergasfabriek Culture Park)’이 문을 열자 전 세계인은 끊임없는 네덜란드의 변화와 이를 이끄는 높은 수준의 창조력에 탄성을 질렀다.


100여 년 전에 조성된 거대한 가스공장 부지가 문을 닫자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 녹지와 문화예술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친환경 공원을 만들어낸 것이다. 완공된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이 공원은 암스테르담의 매력을 발산하는 새 명소로 떠올랐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오염된 가스공장이 100년 만에 시민 품으로

19세기 말 암스테르담에는 가로등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두 개의 석탄가스공장이 건립됐다. 19세기 중반에 런던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세계 최초로 가스등이 등장했을 때 유럽인들은 새로운 밤의 풍경을 창조하는 가스등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은은한 가스등에 비춰진 고전건축의 위용은 달빛에 의존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이후 너 나 할 것 없이 많은 도시가 거리에 가스등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가스등에 안정적인 가스공급을 위해서는 대규모의 가스공장이 필요했다.

암스테르담에 건립된 두 개의 가스공장 중 ‘베스터 가스공장’은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북서쪽으로 약 15분 거리에 세워졌다. 1885년 공사를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완공된 이 가스공장은 운하, 기차길, 도로와 인접한 암스테르담의 교통 요충지에 건립됐는데 전체 부지가 4만3000여 평에 이르렀다. 특히 가스공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가스저장고가 1903년에 완공되었는데 직경이 60m에 달했다.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했던 신고전주의 건축가인 아이작 고샬크(Isaac Gosschalk)는 베스터 가스공장 부지 내의 건물들을 디자인하면서 단순한 공업용 건물로 여기지 않았다. 고샬크는 부지 내의 대부분의 건물을 다른 용도의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고전적 건축 어휘를 기본으로 디자인했다.

이로 인해 가스공장 관련 시설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벽돌을 사용하여 엄격한 대칭과 장식을 지닌 건물은 종교 건물이나 관공서 건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디자인이다. 당시에 제작된 부지전체의 조감도를 살펴보면 학교나 수도원이라고 해도 믿을 법하다.

한때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석탄가스는 20세기 중반 이후 대체 연료가 등장하면서 점차 사용량이 줄기시작했고, 천연가스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쓸모 없게 되어버렸다. 호황을 누렸던 베스터 가스공장도 1967년 완전히 문을 닫았다. 이후 약 20여 년간 거대한 가스공장 부지와 남은 건물들을 적절히 사용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됐다. 몇몇 건물만이 화물을 쌓아두는 창고로 활용됐을 뿐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가스공장이 문닫자 대지 오염의 실상이 드러났다. 공장 부지 자체는 물론이고 주변의 토양과 물이 기름과 타르 등으로 뒤덮여 주변 일대가 거의 죽은 땅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오염이 심각했다. 당시 부지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조직된 환경조사단의 보고서의 따르면 발암물질인 석면까지 대량으로 발견됐으니 최악의 상황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전까지만 해도 비슷한 경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오염을 예방할 수 있는 기술도 충분하지 않았기에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라 할 만했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공장을 헐고 건물을 새로 짓거나 이 지역을 다른 용도로 재생하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기존 건물은 문화공원 내 시설로 변신했다. 베스터 가스공장 여기저기서 시민들이 편히 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십 년간 방치된 죽음의 땅

정치인,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베스터 가스공장 부지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를 토대로 논의의 논의를 진행한 끝에 1981년 암스테르담시는 베스터 가스공장부지 일대를 문화공원으로 조성한다는 의외의(?) 계획을 발표했다. 주변 일대를 오염시킨 주범인 가스공장을 포함해 대부분의 건물을 재사용한다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시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만 해도 이처럼 심각하게 오염된 지역을 공원으로 바꾸는 계획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오늘날이라고 해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베스터 가스공장 부지가 정확히 100년 전인 1881년에 이미 공원부지로 거론된 바 있었다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 이 지역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과 녹지가 부족했기에 이 일대에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었고, 이 공원 조성 계획은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지만 최종적으로 실현이 좌절됐다.

이후 이곳에 시민들의 의지와 전혀 무관한 가스공장이 일방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이후 정확히 100년 만에 돌고 돌아서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셈이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심각한 오염으로 최악의 땅이 된 상태였다.

암스테르담 문화공원 조성이라는 파격적인 결정에는 두 가지 배경이 깔려있었다. 첫째,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오염된 넓은 부지를 한순간에 탈바꿈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환경복원 계획이 필요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단계적인 계획을 수립해 문화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 판단했다.

둘째, 아이작 고샬크가 주도해 디자인한 주요 건물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공장 부지 내의 시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전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암스테르담 시는 부지 안에 있는 13개의 건물을 산업유산으로 지정해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이는 비록 가스 공급을 위한 산업용 건물로 건립되었지만 적절한 리노베이션을 통하여 충분히 문화시설로 재활용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독특한 지역적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 베스터 가스공장 재활용 작업을 주도한 암스테르담 시의 관계자들이 산업유산을 재활용한 성공적인 모델로 등장한 독일의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비록 규모, 시설, 기능 등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산업유산을 활용해 시민들을 위한 공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벤치마킹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질적 측면에서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이 베스터 가스공장을 탈바꿈하는 데 많은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보면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이 산업유산을 재활용하는데 있어서 유럽에서 직ㆍ간접으로 많은 긍정적 영향을 끼쳤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21세기형 도시재생

결론적으로 암스테르담 시는 베스터 가스공장 재활용 프로젝트를 통하여 ‘환경’과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비록 베스터 가스공장이 암스테르담 시의 가로등을 밝히기 위해 건립되었고 충분히 그 역할을 다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부터 이 일대는 오염이 시작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스공장이 조성되면서 주변은 더 이상 시민들이 편안하게 걷거나 즐길만한 지역이 아니었다. 결국 암스테르담 시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오염되고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은 공간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산업혁명의 문을 연 영국을 선두로 유럽에서 대규모 산업단지나 발전소 부지를 조성하지 않은 나라는 거의없다. 거대한 굴뚝과 그곳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경제발전과 자존심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 나라들 중에서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문을 닫은 발전소 부지를 문화공원 혹은 시민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 시킨 경우는 과연 얼마나 될까?

산업용 건물 하나, 둘을 문화예술 관련 시설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사례는 제법 되지만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바꾼 경우는 유럽에서도 흔하지 않다. 그러므로 베스터 가스공장을 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은 땅에서 건물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으로 평가할 수 있다.

베스터 가스공장을 문화공원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작업에서 디자인보다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끈기’였다. 암스테르담 시는 부지 내에 우선적으로 사용 가능한 장소와 건물을 예술 작업장 및 전시공간으로 임대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부지의 오염원을 차근차근 제거하고 녹지를 새롭게 조성했는데 이 작업이 10년 넘게 지속됐다. 검은 기름과 찌든 때로 뒤덮인 장소들이 차츰 맑은 물이 흐르는 연못으로 바뀌었고, 생기를 되찾은 땅에는 여느 공원 못지 않는 생기 있는 나무와 잔디가 아름답게 펼쳐졌다.

이러한 기초 작업을 토대로 전체 부지를 일관된 개념 하에 최고 수준의 친환경 공원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 암스테르담 시는 12명의 세계 최고 조경건축가를 지명 형식으로 초청해 현상설계를 진행했다. 현상설계를 통해 미국의 캐서린 구스타프슨(Kathryn Gustafson)의 안이 1등을 차지했다.

낙후된 산업용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조성하면서 도시계획가나 건축가가 아닌 조경건축가에게 디자인을 맡겼다는 점은 큰 상징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시민들을 위한 최고 수준의 공원을 조성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즉 독창적 아이디어를 동원해 기존에 방치된 산업용 건물을 새롭게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가스공장 부지 전체의 변화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구스타프슨은 기존의 공장건물과 자연이 적절히 어우러진 가운데 시민들이 편안하게 걸으며 자연을 한껏 즐길 수 있는 환경공원을 제안했다. 그녀는 진정한 의미의 환경공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으로만 뒤덮인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적절히 어우러져야 함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자연을 감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통하여 한 차원 높은 수준의 환경공원이 창조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암스테르담 시가 베스터 가스공장을 문화공원으로 조성하려는 근본적인 목적이 시민들이 편안하게 머물고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기에 구스타프슨의 제안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도시계획가 아닌 조경건축가가 디자인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베스터 가스공장을 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하는 일련의 과정에 지역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시 관계자와 개발업체가 시민들에게 정기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진행 과정을 설명했고, 시민들에게 의견과 아이디어를 물어 적극 반영했다. 이는 곧 시민들이 베스터 가스공장 공원화 과정에 단순한 관심 이상의 애정을 갖도록 유도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의 성공을 이끈 보이지 않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공간 활용과 개선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방식이 성공적이었음은 1993년에 확인됐다. 그해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페스티벌(Holland Festival)’을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7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는 가장 오래되고 큰 규모의 문화예술 축제로 유럽 전체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이와 같은 권위 있는 국가 행사를 개선 작업이 한창인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에서 개최함으로써 이곳을 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하려는 작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베스터 가스공장 내의 건물들을 문화예술인들에게 짧은 기간 동안 저렴하게 대여함으로써 부지가 자연스럽게 활성화되도록 유도했다. 예를들어 영화나 연극 팀이 리허설을 하거나 사진 작가나 화가들이 임시로 사용하기 위한 스튜디오로는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공간을 장기로 계약 할 필요가 없으므로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았기에 작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도시에 방치된 베스터 가스공장 안의 건물들을 적절히 사용함과 동시에 점진적으로 개조하는 과정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방식의 도시재생이라 평가할 수 있다.

구스타프슨이 디자인한 베스터 가스공장의 조경은 자연스러움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구스타프슨은 영국식의 자연스러운 공원이 베스터 가스공장 환경공원을 위한 적절한 모델이라 판단했다. 그는 아름다움보다 편안함을 더 중요하게 고려해서 디자인한 것이다.

먼저 부지에 들어서서 맨 오른쪽 아래의 운하에 인접한 기존 건물들은 카페, 가게, 스튜디오 등으로 활용하도록 조성했고, 자연스럽게 주변 일대는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를 거행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가스저장고를 포함한 지역은 대규모 공연장을 위한 공간으로 설정했다. 사실상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의 주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가스저장고가 수목과 잔디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연과 어우러진 가스저장고는 어색하기보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새로운 문화공원의 아이콘처럼 당당하게 서있다. 위의 두 영역 사이에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 정원, 놀이터를 조성해 특별히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마지막으로 보행자축을 따라 걷다 보면 나타나는 부지의 맨 서쪽 아래 편에는 새로운 건물을 지어 예술가들이 다양한 활동과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아름다움보다 편안함 우선한 예술공원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 전체를 걷다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곳곳에서 편안하게 쉬는 모습과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불과 몇십 년 전만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다. 특히 한여름에 수영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어린이가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에서 한때 기름으로 얼룩졌던 가스공장의 모습은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베스터 가스공장 내의 모든 건물은 건축가 프란신호우벤(Francine Houben)의 주도 하에 새로운 목적에 어우러지도록 모두 리노베이션됐다. 그중에서 원형의 가스저장고가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다. 구조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원형 공간의 장점을 활용해 콘서트, 파티, 뮤지컬, 패션쇼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하도록 거듭났다. 특히 패션 주간에 진행되는 쇼는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각광받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검붉게 녹슨 원형 가스저장고가 햇빛을 받으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조각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가스저장고의 변신으로써 이곳은 현재 네덜란드에서 가장 각광받는 복합 문화예술 공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통계에 따르면 매년 200여 개의 행사가 이곳에서 진행된다고 하니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행사가 열린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부지 안에 있는 13개의 건물은 각각 극장, 전시장, 식당, 커피숍 등으로 모두 탈바꿈했고, 새로 건립한 건물에는 다양한 문화예술인의 창작 터가 자리를 잡았다.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이 현재와 같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곳이 단순이 관람하고 즐기는 공원을 넘어 문화예술을 중심으로한 창조산업의 아지트로 확고하게 자리 잡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 시는 초기부터 이곳에 예술가들의 작업실 및 연관된 상업시설을 유치해 24시간 내내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했다. 오랫동안 멈추었던 버려진 산업지역에 왕성한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했다고 할까.

이와 같은 독특한 시도는 그야말로 대성공이다.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친환경 공원,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공간, 각종 공연과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문화공간, 가족ㆍ친구ㆍ연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카페, 각종 파티와 모임을 할 수 있는 연회장 등 그야말로 이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연상케 한다. 이쯤 되면 21세기 도시형 공원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