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영어사전(OED)의 존 심슨 편집장은 내가 만나본 출판계 인사 중 디지털 혁명에 대해 가장 낙관적인 인물이다. 이 사전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OED 편찬자들은 1858년 사전 편찬 사업에 착수하면서 이 일이 10년 정도 걸릴거라고 예상했다.하지만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우편으로 보내온 용례문을 참고해 초판 10권을 발간하기까지 7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증편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 작업은 진화하는 언어를 따라잡는 끊임없는 경주였다. 하지만 새로운 판을 발간하는 데 수십 년씩 걸리다 보니 변화를 따라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심슨 편집장은 1993년 OED의 디지털화 작업을 감독했다. 100여 명의 타이피스트가 20권 전집의 내용을 일일이 타이핑해 입력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심슨의 말을 들어보자. “궁금한 단어가 있을 때 한번 찾아보고 덮어두는 과거의 사전 개념에서 훨씬 더 발전했다. 온라인 사전의 이용은 언어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인터넷은 OED의 터전으로 안성맞춤이다. 19세기 중반 편찬 작업 초창기부터 크라우드소싱(생산·서비스 등 기업활동의 과정에 일반대중을 참여시키는 방법)을 이용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고대 영어의 종말기인 12세기 이후 모든 영어 단어의 쓰임을 기록하는 것이 임무였다. 워낙 방대한 작업이다 보니 자원봉사자의 도움에 크게 의존했다.자원봉사자들은 단어의 용례를 색인 카드에 적어 편집자들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거기에 비하면 오늘날 구글 북스와 기타 검색 가능한 텍스트 데이터베이스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심슨은 요즘도 어떤 단어를 조사할 때 가장 먼저 색인 카드 파일을 뒤진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그렇지 않다.“요즘 우리 작업은 데이터베이스 검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그는 말했다. 사전의 개정 또한 디지털화 덕분에 훨씬 더 쉬워졌다. OED는 새로운 단어가 생겨날 때뿐 아니라 이미 알려진 단어의 다른 용례가 발견될 때마다 수정이 필요해 사실상 끊임없이 개정작업이 요구된다. 심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루는 게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라는 사실을 잘 안다. 사전은 영어의 묘비가 아니다.” 지난 37년을 OED에서 보내고 이제 퇴임을 앞둔 심슨은 다음 개정판이 나올 때 종이 사전이 출판될지는 알수 없다고 말했다.인터넷은 사전의 내용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LOL(laughing out loud, 큰 소리로 웃다), OMG(Oh My God, 놀라움이나 흥분을 나타내는 감탄사), WTF(What the Fuck?, 불신이나 짜증을 나타내는 표현) 등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서 쓰이는 약어들이 포함됐다. 하트 기호(♡)도 등재됐다(이 기호가 ‘사랑한다’는 뜻의 동사로 쓰인 용례가 소개됐다).심슨은 OMG가 쓰이기 시작한 시기를 흔히 1980년대로 보지만 1917년에 쓰인 예도 발견됐다고 말했다. 영국의 한 퇴역 해군장성이 윈스턴 처칠 당시 군수부 장관에게 보낸 편지가 그것인데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다. “새로운 기사 작위가 생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상에![O.M.G. (Oh! My! God!)] 모쪼록 그 작위가 해군에 많이 주어지길!!”심슨은 6만 개의 새로운 단어와 의미를 추가하는 작업을 주관했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과 이메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에 디지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 단어들에 특히 관심이 많다. OED는 10년 전엔 어떤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단어들을 싣기 시작했다. 심슨의 말을 들어보자.“우리는 어떤 단어가 생겨났을 때 바로 등재하지 않고 6~10년 동안 기다리는 일종의 방어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 단어가 영어 안에 들어와 처음 몇 년 동안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보고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지 판단한다.” 일례로 ‘플레이밍(flaming)’은 처음엔 ‘누군가에게 감당 못할 정도로 많은 이메일을 보내는 행위’를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 타인에게 욕설과 비방을 퍼붓는 행위’를 뜻한다.물론 이런 새로운 표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심슨은 그렇지 않다. 그는 언어가 표류하고 변형되는 방식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아이젠하워·카터·클린턴·부시 등 몇몇 미국 대통령은 ‘nuclear(핵)’라는 단어를 사전에 있는 대로 ‘뉴클리어’라고 발음하지 않고 ‘뉴큘러(nucular)’라고 잘못 읽곤 했다. “언어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심슨은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사전에 ‘nuclear’ 대신 ‘nucular’라고 써넣게 되진 않을 듯하다.학술적으로나 일반적으로 흥미있는 일이기 때문에 양쪽 용례에 관한 자료를 모두 보관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잘못 쓰인 표현이 관용어구로 굳어지는 경우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break the mold’ 같은 표현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표현은 원래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단 한번밖에 일어나지 않을 일을 하다’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뭔가 과감하고 남다른 일을 하다’는 뜻으로 쓰인다.‘beg the question’도 그런 예다. 원래 ‘미증명 사항을 사실로 가정하다’는 뜻이지만 단순히 ‘의문을 제기하다’는 뜻으로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다.(조 바이든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고 심슨은 말했다. “그것이 바로 언어가 진화하는 방식이다.”‘evolution’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예다. 이 단어는 자연과학에서 ‘진화’라는 의미로 쓰이기 전에는 군대나 군함 대열의 ‘선회’를 의미했다. “그동안 이런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게 참 재미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어떤 단어라도 역사를 훑어보면 재미있는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