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달인⑤ - 자연 벗 삼아 선비춤 추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의 초은당에서 권오춘 이사장이 장단에 맞춰 선비춤을 추고 있다.



“청사안 리이~ 벼억계에 수우 야~” 대금 반주가 낮게 깔리면서 느린 가락의 청산리벽계수 시조 한 수가 대청마루를 울린다. 깊은 상념에 젖어 초연히 앉아 있던 선비가 문득 머리를 들어 산천을 둘러본다. 이어 손에 들고 있던 합죽선을 활짝 펴며 사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음악이 굿거리 장단으로 이어지자 어깨가 들썩인다. 흥겹지만 기품이 묻어나고, 학이 날개짓하듯 가벼운 듯 묵직하다. 장단이 속도를 더한다. 도포자락을 툭 치고, 넓은 소맷자락이 휘돌며 선비의 춤사위가 빠른 휘몰이 장단에 녹아든다. 덩실덩실, 사뿐사뿐, 너울너울….

도포와 갓을 갖추고 선비춤을 추는 사람은 초은(招隱) 권오춘(63) 국어고전문화원 이사장이다. 해동경사(海東經史)연구소 이사장을 겸한다. 연구소는 경서와 사서를 연구하고 번역하는 사단법인이다. 권 이사장은 경북 안동 권씨 부정공파 35대손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천자문·명심보감·소학을 뗐다. 이쯤하면 그가 선비춤을 춘다는 게 별나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궤적은 의외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흥미롭다. 그는 검은 베레모의 특전사 공수부대 출신이다. ‘하면 된다’를 외치며 천리행군과 공중 낙하훈련을 거듭 하며 강인한 정신을 길렀다. 제대 후에는 증권가에 몸을 담았다. 하루하루가 시세에 울고 웃는 살얼음판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30대에 지점장을 달 정도로 인정 받았다.

그가 돌연 귀향을 결행했다. 직장생활의 절정을 구가하던 45세 때 일이다.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시간에 식사는커녕 숙면을 취하지 못할 정도로 시달렸지요. 이젠 결연히 환상을 깨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안동으로 돌아왔다. 한학과 경전에 빠져들었다. 고전을 정독하면서 술·담배는 물론 바둑과 골프마저 끊었다. 모든 것을 버리니 새로운 삶이 보였다.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보급이었다. 선조의 가르침을 연구·번역하고, 이를 가르치는 교육에 헌신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유년시절에 부모 손에 이끌려 전통제례를 찾을 때는 감흥이 없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우리 것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30여 년 방황기를 거쳐 다시 전통으로 회귀한 것이다.

원기 회복하고 관절 관리에 도움

선비춤은 2007년 배우기 시작했다. 경남 교방청춤을 대표하는 운파 박경랑이 스승이다. “선비춤은 한량춤이라고 하지만 실은 선


▎한 동작에 365개의 관절이 움직이는 선비춤은 기혈을 순화시키고 체형을 바로잡는다.
비의 건강체조입니다. 앉아서 공부만 하다보니 관절이 굳고, 기가 약해지죠. 근육을 이완시키고, 기혈을 순환하기 위해 춤을 활용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퇴계 선생의 활인심방(活人心方)이 그것이다. 모든 병은 기(氣)가 쇠약했을 때 침범하니 선비춤이 곧 원기를 보하고 사기(邪氣)를 몰아내는 처방이라는 것이다.

권 이사장이 선비춤을 배우게 된 배경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유유자적 혼자 하는 걸 배워야 합니다. 불교경전에도 ‘외뿔소처럼 혼자 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서양춤은 파트너가 있어야 합니다. 또 동작이 크고 격해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지요. 골프 역시 짝을 맞춰야 하고 부킹을 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편측운동으로 허리와 손의 모든 관절에 부담이 되죠.” 선비춤은 혼자, 언제든지, 어느 공간에서든 음악을 배경으로 출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안빈낙도가 없다 싶었다.

선비춤을 선택했지만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간단한 동작 같은데 한 번 춤을 추고 나면 땀이 비 오듯해요. 한 동작에도 관절 365개가 움직이고, 발을 한번 떼어놓는데도 우주를 들어 올리듯 해야 합니다.” 하지만 춤을 배우고 나서부터 몸에 청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첫째는 체형의 변화다. “책상이 오래 앉아 있다 보니 허리가 굽었는데, 춤을 추고부터 허리가 반듯이 펴졌지요.” 게다가 고전무용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온몸을 고루 쓴다. 모든 관절과 근육을 모두 활용하다 보니 균형감각이 생기고, 체형이 바로 잡힌다는 것이다.

둘째는 호흡이다. “단전은 인체의 왕입니다. 단전의 에너지가 위로는 어깨, 아래로는 엉덩이 관절로 전해지고, 이어 팔과 무릎·손목과 발목, 손·발가락으로 확산됩니다.” 정중동의 춤사위를 펴기 위해선 응축된 에너지를 단전에 담을 깊은 호흡이 필요하다.

셋째는 기혈의 순환이다. 춤을 추는 동작은 굽혔다가 펴는 굴신(屈伸)의 반복이다. 하지만 한국무용의 춤사위는 서양처럼 직선 아닌 곡선이다. 맺고 끊음이 없이 모든 동작이 이어지고 순환한다. 모았다가 뿌려주는 춤사위가 우리 몸의 기와 혈을 모으고, 자극하며, 확산한다. 잔병이 없어지고, 사기가 들어오지 못하는 강한 체력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편안함이다. “춤은 음악과 어울리며 마음의 적요(寂寥)를 가져옵니다. 고요함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선비춤은 혼돈스런 정신을 맑게 하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선비춤은 남성 특유의 풍류와 기품을 보여준다. 사대부의 기개와 절개도 담고 있다. 긴 소매 깃이 하늘을 향해 뿌려질 땐 하늘을 나는 새와 같다. 하늘지향적인 인간의 소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가 기거하는 초은당은 행정구역으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다. 한옥으로 지어진 초은당 대청마루에 서면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이 내려다보인다. 그의 호를 딴 초은당이 요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문화예술계 또는 인문학계 인사나 외국사절단에 간간이 공개되긴 했었다. 앞으로는 문화공간으로, 고택 체험장으로, 또 예술공연장과 고전 강연장은 물론 웨딩하우스로도 탈바꿈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초은당을 돌아보면 집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과 안목을 알 것 같다. 개인 소유의 한옥이지만 그 규모와 위용이 사위를 압도한다. 본채가 27칸, 별채 3칸을 합해 모두 30칸에 이른다. 대청마루는 100여 명이 앉아 공연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긴 처마는 사찰의 대웅전을 방불케 한다. 하늘을 향해 비상하려는 새의 날개를 닮았다.

초은당은 인간문화재 74호 대목장 최기영의 작품이다. 문화재 전문위원인 명지대 홍은옥 교수(공예학)가 박물관 용도로 쓰려고 최 대목장에게 각별히 부탁했으니 그동안 기울였을 공력을 짐작할만하다. 그 뿐인가. 칠장 중요무형문화재 11호 보유자인 정수화가 옻칠을 했다.

마룻바닥은 아홉 번, 기둥은 다섯 번, 벽·문·외벽까지 옻칠을 했으니 천년 고택을 기대할 만하다. 정원의 돌 하나, 풀 포기 하나에도 정성을 쏟고,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는 이 집을 2004년에 인수했다. “운이 좋았지요. 돈을 떠나 전통문화를 계승하겠다는 제 뜻을 전달했더니 흔쾌히 넘기셨습니다.”

권 이사장은 고향 안동에도 50칸 한옥을 보유하고 있다. 풍천면 구담리에 위치한 이 고택의 역사는 300년이 넘는다. 광산 김씨 담암공 종택을 인수해 터를 넓히고 새단장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어머니의 미수(米壽, 88세)를 기려 ‘구담무담-잃어버린 잔치를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옛 잔치를 재현했다. 지금은 고택체험장으로 많은 사람에게 한국 건축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그의 한옥 예찬론은 끝이 없다. “집은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그런데 아파트는 사방이 밀폐된 공간이죠. 집이 숨을 못 쉬니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한옥은 사통팔달로 트여있습니다. 또 마루는 한옥만이 갖는 독특한 건축구조입니다. 방과 외부 공간을 이어주며 공기와 온도를 조절하지요. 처마 역시 비와 눈, 그리고 햇빛을 적절히 조절해 최적의 주거환경을 만들어줍니다.” 한옥이 바로 건강 주택이라는 것이다.

옻칠 또한 한옥의 매력. 옻은 방수·방습·방화·방충에 탁월하다. 한방에선 옻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을 가지고 항암제로 쓴다. 이렇게 큰 집을 지으면서도 쇠못하나 쓰지 않았다. 건축재료가 자연에서 얻은 흙과 나무이니 해체를 하면 모두 자연으로 돌아간다.

“처마 밑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음악으로 듣고, 대청마루에 벌렁 누워 자연에 동화되던 어린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를 보니 채근담에 나오는 글귀 ‘唯自得之士 無喧寂 無榮枯 無往非自適之天’가 떠오른다. 깨달은 선비는 시끄러움과 고요함을 가리지 않으며, 영화와 쇠락에 초연해 가는 곳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