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토종 자동차 회사 짝짓기 조짐

중국 자동차 업계의 지각변동





6월 29일 중국 장수성 창수시. 중국 10대 자동차 업계 거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중국 자동차 T10 서미트(China Automobile Top 10 Summit)’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참가 기업은 이치그룹·상치그룹·둥펑기차·창안·베이징기차·광치그룹·치루이·충칭기차·쟝화이·화천 10개사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완성차 업체들이다.

중국 토종업체들 외화내빈

이 회의는 2009년 7월 처음 열렸다. 이후 매년 두 번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를 비롯해 공업정보화부·과학기술부 등 관련 정부 부처의 수장도 참석하는 민관 합동의 고위 회담 성격을 가진다.

이 모임이 관심을 모으는 건 이 자리에서 중국 자동차산업 현황과 문제점을 논의하고 정부에 건의해 자동차산업 정책 수립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회의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건 자동차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의 자동차산업 중장기 발전 전략이 집중 논의된 때문이다.

‘중국 자동차 강국 발전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지 않았다. 그러나 7월 15일 개최된 이치그룹 설립 60주년 기념좌담회에 참가한 공업정보화부 먀오웨이 부장의 발언에서 큰 줄기는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자동차 강국이 되기 위한 3대 요소로 세계 시장을 선도할 핵심 기술의 확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유명 브랜드 구축, ‘두 개의 자원(중국 및 해외 자원)과 두 개의 시장(중국 및 해외시장)’의 효과적 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현재 ‘자동차 생산대국’에서 명실상부한 ‘자동차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창조와 혁신, 자체 브랜드 확립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 강국으로 부상하자는 의제가 새로운 건 아니다. 지난해 9월 열린 T10회의에서도 ‘자동차강국 건설발전 전략’이 토의됐다. 당시 회의의 최대 성과는 자동차산업 발전 계획이 산업 차원의 전략에서 국가 차원의 발전 전략으로 승격됐다는 것이다.

사실 올해 회담에서 이런 주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배경은 토종 자동차 기업의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외화내빈의 형국에 처해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은 외형적으로만 보면 거칠 것 없이 성장하는 모습이다. 자동차 산업 부가가치는 1990년 121억 위안에서 2011년 7452억 위안으로 급증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 0.65%에서 1.60%로 확대됐다.

1997년 중국 자동차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3%에도 못 미쳤지만, 지난해에는 23%로 늘어났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4대 중 한 대는 중국산인 셈이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의 자동차 생산 및 판매대수는 최초로 각각 1000만대를 돌파했다. 이 중 승용차 생산 및 판매량은 각각 866만대를 기록, 미국을 제치고 전 세계 1위 자리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본토 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이들의 승용차 판매대수는 772만7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17.2% 증가했다. 겉으로 보기에 양호한 성적표인 것 같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중국 기업이 가진 위기감은 우려에서 현실로 바뀌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 토종 브랜드 승용차 판매량은 356만6700대를 기록했다. 이는 승용차 판매량의 41.2%를 차지하는 것이지만, 점유율은 0.23%포인트 감소했다.

중국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를 과거 스페인 무적함대에 빗대며 체계적이고 강력한 전투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이와 달리 중국 본토 자동차메이커는 소형 포함을 이끌고 각개 전투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초창기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 토종 브랜드 자동차가 판매에서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외국계 합자 브랜드 차량이 기존 중저가 토종 브랜드 시장까지 치고 들어오면서 본토 기업은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T10 정상회담 참석자들은 토종 브랜드 간 협력을 좀 더 강화해야 하고 핵심 부품인 엔진과 변속기 등도 공동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분산·중복 투자되던 연구개발비를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감을 얻었다.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국 기업 간 합종연횡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광치그룹과 치루이 간의 짝짓기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사례가 토종 자동차 기업 간 대표적 협력모델이 될 것이며, 앞으로 확산될 것으로 본다. 지난해 11월 광치그룹은 치루이와 전략적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기술 협력과 연구개발 자원 공유, 동력전달장치 등 부품 분야에서의 상호 협력 강화가 주요 내용이다.

두 회사는 앞으로 3년 간 완성차는 물론, 동력장치 등 핵심부품 공동 개발, 연구개발 자원 공유, 독자 친환경자동차 개발과 함께 생산관리 분야에서 힘을 모으기로 했다. 치루이의 이통웨 사장은 “치루이는 엔진·기어박스를 비롯한 각종 핵심 부품에서 우수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광치그룹은 선진적인 관리 시스템과 경영 이념을 갖고 있다”며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자동차 기업 구조조정·인수합병 활기

일각에서는 지방정부의 견제와 비협조 때문에 자동차 기업 간 손잡기가 실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중앙정부는 자동차 기업 간 구조조정과 상호 협력을 지지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방 자동차 회사가 소재지 정부의 돈줄이자 일자리 창출 기반이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이런 협력 모델을 외면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광치와 치루이의 짝짓기 성사를 계기로 이런 걸림돌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업계는 본다. 이통웨 사장 역시 “중국 남부와 중부에 있는 두 기업 간의 협력은 보이지 않는 지역 간 장벽을 뛰어 넘어 상호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중국 자동차 기업 간 새로운 협력모델을 제시할 것”이라고 평했다.

자동차 관련 기업 간의 구조조정과 인수합병도 큰 이슈다. 5월 16일 둥펑동차는 푸치그룹에 대한 출자를 감행했다. 이를 통한 합자회사 설립으로 둥난자동차의 지주회사가 됐다. 업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자동차 기업 간 인수합병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중국 토종 자동차 기업 간 활발한 협력과 함께, 인수합병·구조조정 등 매머드급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선전한 우리 자동차 업계로서는 중국 업계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하고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