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 중국, 숨긴 발톱 드러내다


▎2012년 8월 홍콩 주민들이 중국 오성홍기와 타이완 청천백일기를 들고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가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 속한 한 무인도에 상륙하고 있다.



동아시아가 방공식별구역 갈등으로 들끓고 있다. 중국이 2013년 11월 23일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한·미·일은 물론 타이완과 필리핀 등 주변국들은 이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 경쟁도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미국 공군 소속 B-52 전략폭격기 두 대가 11월 26일 오전 11시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했다. B-52 전략폭격기 대대는 공군 지구권타격사령부(Global Strike Command)의 직할 부대다. 지구권타격사령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B-2스텔스 전략폭격기, B-52 전략폭격기를 운용하면서 핵억지와 지구권 타격의 임무를 맡고 있다. 미국은 유사시를 대비해 앤더슨 기지에 B-52 6대를 항상 배치해왔다.


지구권타격사령부의 명령을 받은 B-52는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지역을 포함해 동중국해 상공을 비무장 상태로 훈련 비행하고 오후 1시22분 귀환했다. B-52가 초계 비행에 나선 것은 중국이 동중국해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11월 23일 전격 선포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B-52를 출격시킨 것은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방공식별구역이 뭐길래?

B-52는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함께 미국이 핵공격을 할 수 있는 전략무기다. 전 세계에서 B-52와 같은 막강한 무장력을 갖춘 폭격기는 없다. 미국 국방부는 이날 B-52의 비행은 정규 훈련의 하나로 오래전에 계획된 것이라면서, 중국에 사전에 비행 계획을 통보하지 않았고 주파수 등도 등록하지 않은 채 임무를 완수했다고 밝혔다.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은 영공 방위를 목적으로 영공과 연결된 바깥 상공에 설정하는 지역이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비행물체를 식별해 위치를 확인하고 필요할 경우 군사상의 위협을 평가해 대응하기 위한 공간이다. 국제법상 인정된 영공이 아니고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지역이다. 미국이 1951년 최초로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이후 각국이 동일한 조치를 취해왔다.

방공식별구역의 지리적 범위와 대상이 되는 항공기의 종류와 목적, 방공식별구역을 위반한 항공기에 대한 대응방안 등은 나라별로 다르다. 각국은 방공식별구역이 영공이 아니므로 타국 항공기가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이유만으로 격추할 권리는 없다. 보통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등 대응조치를 취한다. 한 국가가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는 타국은 항공기 진입 때 이를 사전통보해 허가를 받는다.

중국 정부는 11월 23일 오전 10시를 기해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고 공식 시행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는 1997년 제정된 국방법을 비롯해 1995년 제정된 민간항공법, 2001년 만들어진 비행 기본규칙 등 국내법에 근거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했다.

센카쿠 열도 영토주권 회복이 1차 목표

구체적인 범위는 동중국해의 여섯 곳을 연결한 선과 중국 영해선 사이의 공중구역이다. 여섯 곳은 북위 33도 11분과 동경 121도 47분, 북위 33도 11분과 동경 125도 00분, 북위 31도 00분과 동경 128도 20분, 북위 25도 38분과 동경 125도 00분, 북위 24도 45분과 동경 123도 00분, 북위 26도 44분과 동경 120도 58분이다. 센카쿠열도를 포함해 일본·한국·대만 등으로 둘러싸인 동중국해 상공 대부분이다. 한국도 이에 대응해 2013년 12월 8일 이어도 상공을 포함한 지역까지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했다.

중국 국방부는 방공식별구역 운영규칙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방공식별구역을 지나는 항공기는 사전에 중국 외교부나 민간 항공국에 비행 계획을 통보해야 한다. 또 무선통신을 갖춰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관리기구인 중국 국방부와 쌍방향 통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국제기준에 따른 국적 표시도 해야 한다.

양위쥔(楊宇軍) 국방부 대변인은 “타국 항공기가 방공식별구역 관리기구의 통제에 응하지 않으면 무장력을 동원해 방어적 긴급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 대변인은 “방공식별구역 운영은 국가 주권과 영토 안전을 도모하고 항공 질서를 유지하려는 조치”라면서 “특정 국가를 겨냥하거나 특정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선포가 동중국해는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전략적 목표는 무엇보다 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토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센카쿠 열도와 오키나와 인근 지역으로 군용기를 자유롭게 보내고, 일본이 센카쿠 열도 쪽으로 보내는 군용기를 막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저우융성(周永生) 중국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교수는 “일본이 댜오위다오에서 부단히 도발을 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주권을 지키는 차원에서 이번 조치를 취한 것”이라면서 “중국으로선 댜오위다오를 방어하는 데 법적인 근거를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2012년 9월 센카쿠 열도 국유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는 댜오위다오의 영해기선을 선포하고 해경선과 함정 및 항공기를 동원해 댜오위다오 순찰에 나서는 등 일본의 실효지배를 무력화하려는 행동을 계속해왔다. 영해기선은 한 국가의 영해를 결정하는 기준선이다. 중국 정부가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것은 영해기선에 이어 영토주권을 주장하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두 번째 전략 목표는 제1다오롄(島鍊·Island Chain)이라는 가상의 해상 경계선을 돌파하는 것이다. 제1다오롄은 일본열도-난사이 제도-타이완-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으로 이어지며, 중국 연안에서 1천㎞ 정도 떨어졌다. 제2다오롄은 중국 연안에서 2천㎞ 거리의 오가사와라 제도-이오지마 제도-마리아나 제도-야프 섬-팔라우 제도-할마헤라 섬으로 이어진다.

중국은 제1다오롄을 내해화(內海化)하고, 제2다오롄의 제해권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제1다오롄을 돌파하지 못하도록 군사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해왔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바로 제1다오롄을 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이 중국 함정이 태평양 진출 때 통과하는 미야코 해협을 겨냥한 것으로 지적한다.

제1다오롄에 놓여 있는 미야코 해협은 오키나와와 미야코 지마의 중간에 있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할 주요 통로 중 하나이다. 미야코 해협은 미군이 중국 근해로 진입하는 중요 항로이며, 일본은 중국 해군을 견제하려고 미야코지마에 대함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전략은 새로운 외교정책에서 비롯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은 더 이상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키운다)의 외교·안보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광양회는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인 덩샤오핑이 추진해온 정책이었다. 시 주석과 중국 지도부는 이제는 이 정책에서 탈피해 보다 공세적으로 외교 목표와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했다.

위안징둥(袁勁東) 호주 시드니대 교수는 “중국 지도부는 지금 시점이 저자세 외교정책인 도광양회를 끝낼 때라고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중국 지도부가 추진하는 새 외교정책은 ‘주동작위(主動作爲: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다. 이 정책은 중국 외교부 발행 주간지 <세계지식(世界知識)>에서 언급했다. 이 잡지는 2013년 2월 1일자에서 중국 외교정책이 앞으로 도광양회에서 주동작위로 바뀔 것으로 예고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2013년 6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2회 세계평화포럼에서 “중국은 더욱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외교적 실천을 통해 국제사회가 중국에 거는 기대에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도 2012년 12월 공산당 정치국 제3차 전체 학습에서 “중국 외교가 세계 규칙의 추종자(追從者)에서 세계 규칙의 제정자(制定者)로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감안하면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중국 지도부가 추진하는 새 외교정책의 틀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인민해방군이 몇 년 전부터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건의해왔다. 그리고 시 주석이 2012년 11월 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한 이후 이를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시 주석은 그 이전 9월부터 해양권익 유지공작소조의 조장을 직접 맡아오면서 댜오위다오 문제를 챙겨왔다. 시 주석은 2013년 9월 동중국해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과 대립이 갈수록 증폭되자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결심했다.

▎2013년 11월 23일 중국의 선포한 방공식별구역 선포 후인 12월 2일 한국 해군 해상초계기(P-3C)와 이지스함인 율곡 이이함이 이어도 상공과 해역에서 해상경계작전을 펼치고 있다.



일본과의 오랜 갈등과 대립이 직접적인 배경

시 주석은 2013년 10월 24∼25일 베이징에서 열린 주변국 외교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외교공작좌담회에서 방공식별구역 설정 계획을 언급했지만 당시 시 주석의 발언은 비밀에 부쳐져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시 주석은 2013년 11월 열린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 폐막 이후 방공식별구역 선포 결정을 공표하도록 지시했다.

시 주석과 중국 지도부가 새로운 외교정책을 추진한 배경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천명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은 2013년 6월 캘리포니아 휴양지에서 노타이차림으로 만나 마오타이주로 건배하며 ‘신형 대국관계’를 맺자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당시 두 정상은 기존 강대국과 부상하는 강대국이 필연적으로 충돌해온 역사를 교훈 삼아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이 제기한 댜오위다오가 중국의 ‘핵심이익’이라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오히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내세우는 ‘아웃소싱’ 전술을 선택했다. 미국은 2013년 10월 도쿄에서 일본과 안전보장협의회(이른바 2+2회의)를 개최하고 일본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재검토,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 국가안보전략 수립, 방위예산 증액 및 신 방위대강 작성 등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집단 자위권이란 한 국가가 공격받지 않아도 동맹국이 제3국으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는다면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무력으로 공동 방어에 나설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그동안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고는 일본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할 수 없다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적극적 평화주의’라고 포장해왔다. 아베 총리의 속내는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국방예산 축소에 따라 힘의 공백이 생기는 것을 막는 동시에 일본의 군사력을 강화시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에서 유지돼온 전후체제가 바뀌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대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로선 미국과 일본이 군사동맹을 더욱 강화하면서 자국을 포위하려는 의도를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3중 전회에서 외교와 안보는 물론 공안과 정보까지 총괄하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신설하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과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가 중국의 ‘주동작위’ 전략과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의 제1 목표가 된 일본은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베 일본 총리는 “힘을 배경으로 한 현상 변경 시도에 맞서 영해와 영공을 결연하게 지키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설정을 센카쿠 열도의 영공이 마치 중국의 영공인 것처럼 표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일본은 이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천명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예상하지 못한 사태를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면서 “영공침범 등이 발생하면 국제법과 자위대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일본은 미국과 긴밀 협력체제로 대응

일본 정부는 앞으로의 대응 조치와 관련해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중국 항공기가 진입하는 경우 자위대 전투기를 긴급 발진하는 등 종래의 대응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방공식별구역 범위에 태평양의 오가사와라 제도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가사와라 제도는 도쿄에서 남쪽으로 1천㎞ 떨어져 있는 30여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방위성은 오가사와라 제도에 긴급 발진할 수 있는 자위대 전투기 부대를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또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양국은 2013년 11월 28일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벌인 대규모 해상 훈련 현장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하면서 군사진·중앙포토사 협력을 더욱 긴밀하게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당시 훈련에는 미국의 핵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함을 비롯해 양국 해군 함정 20여 척과 각종 항공기 수십 대가 참가했다. 그리고 양국은 적군과 아군으로 역할을 나눠 해상 작전상황을 가정한 훈련까지 벌였다. 양국 정부는 센카쿠 열도 주변에 대한 경계감시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일본 자위대는 E2C 정찰기 상설 부대를 내년 오키나와현 나하 기지에 신설할 계획이다. 미군도 무인 정찰기 글로벌호크를 이르면 내년 봄 아오모리현 미사와 주일미군기지에 전개, 센카쿠 열도를 비롯한 일본 주변 경계 감시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미군은 현재 글로벌호크를 괌에 배치해놓고 있다. 양국 정부는 또 내년에 개정할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군과 자위대의 협력방안을 보다 구체화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국제사회에 대한 여론전도 전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3년 11월 30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회에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한 대응책 검토를 제안했다. 일본 정부는 또 2013년 12월 중순 열리는 아세안 회원국들과의 특별정상회의에서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과 필리핀과 함께 공동 대응도 모색할 방침이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이 아베 총리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일본의 재무장 계획을 돕는다는 분석도 있다. 미치시타 나루시게 일본 국립정책대학원대 교수는 “중국은 공격자(Aggressor)라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일본이 국가 안보에 더 힘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어떤 면에서는 아베 총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는 아베 총리에게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 위협을 명분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과 군사력 증강, 미·일 군사동맹 강화의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10개년 방위계획인 신방위대강에 주변 바다와 상공에 대한 상시감시 체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신방위대강에는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충돌 상황을 상정해 낙도(본토에서 떨어진 섬) 공격에 대응키 위해 신속하게 상륙·탈환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한다는 내용도 포함시킬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연말께 신방위대강을 확정할 계획이다.


▎괌에 있는 미 공군 앤더슨기지를 이륙하고 있는 B-52 전략 폭격기. 미국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일방 선포 직후 동중국해 상공에서 B-52의 훈련비행을 실시해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 중국 방공식별구역 무시 전략

일본 정부는 2013년 12월 4일 출범한 국가안전보장회의(일본판 NSC)의 첫 현안으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 문제를 논의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11월 27일 법안 통과로 새로 만들어진 외교·안보의 총괄기구다. 중장기 국가전략 수립과 위기관리, 정보 집약 등을 담당한다.

총리가 의장으로서 운영을 총괄하며, 총리·관방장관·외무상·방위상으로 구성된 상설 협의체인 4인 각료회의가 외교·안보정책의 기본 방침을 결정한다. 또 내각 관방(총리 비서실 성격) 산하에 사무국 성격의 국가안보국도 신설됐다. 국가안보국은 외교·안보·테러·치안 등과 관련한 정보를 취합해 4인 각료회의에 보고하며, 부처 간 조율 및 정책 입안도 담당한다. 이를 통해 일본 정부는 앞으로 일사불란하게 국가안보문제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무엇보다도 중국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는 중국이 선언한 방공식별구역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 요구의 적법성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중국의 조치는 동중국해의 현 정세를 일방적으로 바꾸려는 도발적 시도이고 해당 지역에서 오판과 대치, 사고의 위험을 높이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이 같은 입장을 조 바이든 부통령을 통해 중국 정부에 분명히 전달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2013년 12월 4일 베이징을 방문해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미국은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할 수 없으며 중국의 조치를 우려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기존의 질서를 변경시키려는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다.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와 동남아를 잇는 고리에 해당한다. 미국이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할 경우 남중국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부통령은 “미국은 경제적·외교적·군사적으로 태평양 파워였고, 태평양 파워이며, 앞으로도 태평양 파워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전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반(反)접근/지역거부(Anti Access/Area Denial·A2/AD)’의 일환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이 전략은 제1다오롄의 서쪽 바다를 자국의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고 미국 항공기와 함정 진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범위에는 동중국해를 비롯해 서해와 남중국해가 들어간다. 미국이 동중국해는 물론 서해와 남중국해까지 중국의 지배권을 인정한다면 아시아·태평양에서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마이클 오슬린 미국기업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은 매일 전투기·폭격기·정찰기 등을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보내 무력 시위를 벌일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이 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승리로 아시아의 세력균형이 바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중국의 조치는 역내 정세를 변화시키는 시도라면서 이 지역에서 미군의 작전 수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헤이글 장관은 “센카쿠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제5조의 적용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미·일 안보조약 5조는 어느 한쪽이 무력공격을 받으면 이를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 미·일이 공동 대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바이든 부통령도 2013년 12월 3일 도쿄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갖고 양국이 중국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해 인정할 수 없으며 미·일 동맹을 강화해 긴밀하게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미·일 동맹은 아·태지역에서뿐만 아니라 양국 안전 보장의 주춧돌(cornerstone)”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미·일 동맹을 강조한 것은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막기 위해선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미국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 문제로 자칫하면 우발적 충돌 상황이 벌어져 역내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우려는 2001년 하이난 섬 인근 상공에서 일어난 우발적 충돌 같은 사태가 재발하는 것이다. 당시 미 해군의 EP-3 정찰기가 하이난 섬 남동쪽 공해상에서 중국군 전투기와 충돌해 추락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시 주석과 아베 총리에게 각각 위기관리체제 구축을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정부로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이 단기간에 풀릴 사태가 아닌 만큼 우선은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바이든 부통령은 “의도된 갈등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의도되지 않은 갈등”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중·일 간에는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핫라인조차 없다. 하지만 중·일 양국은 서로 팽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미국의 위기관리체제 구축 제의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중·일은 그동안 센카쿠 열도를 놓고 힘겨루기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양국의 다툼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한 이후 2012년 10월부터 지난 7월 말까지 9개월 동안 항공자위대가 중국 군용기의 자국 방공식별구역 침입으로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킨 것은 306회에 달해 전년 동기(88회) 대비해 3.5배나 증가했다. 중국도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만큼 센카쿠 열도 영공에서 양국 전투기가 조우할 횟수가 늘어나고 이 과정에서 예측 불허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국은 현재 해군력과 공군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해군력은 이지스 구축함 6척을 비롯한 수상전투함 48척과 잠수함 16척 등이다. 일본은 경항모 5척, 1만5천t급 상륙지원 항모 3척, 2만t급 대잠 헬기항모 2 척을 갖고 있다. 대잠 헬기항모는 유사시 수직이착륙 전투기 10여 대를 운용할 수 있다. 또 일본은 22DDH라는 2만4천t급 경항모 두 척을 건조 중이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이지스함을 8척으로 늘리고 3천t급 호위함 8척을 추가로 확보하고 잠수함도 22척으로 늘릴 계획이다. 반면 중국은 항공모함 1척, 수상전투함 73척과 함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초계함과 연안 전투함 253척, 잠수함 63척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함정 수만으로는 중국이 일본을 압도하지만 성능은 일본이 중국보다 우세하다. 하지만 중국은 해군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는 2013년 11월 20일 의회에 제출한 연례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2020년까지 서태평양 지역에서 현대식 잠수함과 전투함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중국군의 현대화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세력균형과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군력은 해군의 단독 작전으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공군력은 해군력에 어마어마한 힘을 보태준다. 중국은 폭격기 365대, 전투기 1100대, 조기경보기 20대 등이 있다. 일본은 전투기 360대, 조기경보기 17대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항공자위대의 주력 전투기는 F-15J이다. 일본 방위성은 최신형 스텔스전투기 F-35를 2016년까지 4대를 도입하고, 앞으로 20년에 걸쳐 38대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다.

동아시아 군비경쟁도 본격화 조짐

중국 공군의 주력전투기는 젠(殲)-10(J-10)으로, 한국 공군의 F-16과 대등한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은 또 J-11과 러시아로부터 도입한 Su-27과 Su-30MKK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J-20과 J-31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J-20은 현존 최고의 스텔스기인 미국의 F-22에 비교되는 스텔스 전투기이다. J-31은 F-35급 스텔스 전투기다. 공군력만으로 볼 때 중국이 일본보다 우세하지만, 전투기에 장착되는 공대공 미사일과 레이더를 비롯해 전자 장비는 일본이 중국보다 성능이 우수하다.

중국은 유사시 센카쿠 열도에 상륙할 해군 육전대(우리나라의 해병대)도 보유하고 있다. 현재 2개 여단 1만2천 명으로 구성된 해군 육전대는 전쟁 때에는 2만8천 명으로 증원된다. 해군 육전대는 중국 인민해방군에서도 가장 정예병으로 구성됐고, 전투력도 최강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수륙양용 공기부양선인 호버 크래프트를 보유하고 있어 어느 곳이나 신속하게 상륙 작전을 감행할 수 있고, 낙하산을 이용해 공수작전을 전개할 수 있다.

일본도 센카쿠 열도 방어와 탈환을 담당할 3천 명 규모의 수륙 양용단을 2015년 육상자위대에 창설할 방침이다. 일본 방위성은 병력수송용 수륙양용차 AAV7와 수직 이착륙기 MV-22 오스프리 도입도 추진 중이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는 6월 미국 서부 해안의 샌디에이고 앞바다에서 중국의 센카쿠 열도 상륙을 상정한 대규모 낙도 방어 공동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이 국지전을 벌일 경우 미국은 개입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이 중·일간 무력 충돌의 발화점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