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집│ 독일인의 행복에서 배운다 - 석차 없는 성적표, 초·중등 교육현장

“엄마, 나 오늘 ‘행복’ 했어요”


▎초등학생들이 과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독일 과학교육의 목표다. 학생들이 해부 모형을 놓고 신체기관의 명칭과 기능을 배우고 있다.



인간이 교육을 시작하게 된 본래 목적은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학교가 학생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의 원천으로 부각되어 교육의 근본 취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독일교육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교육의 근본 목적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인은 세계 어떤 나라 학교에도 존재하는 경쟁과 성적지상주의 교육에서 조금이라도 탈피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는 데 골몰한다.

아이가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들이 가장 자주하는 질문은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니?”다. 그런데 아이가 느닷없이 “나 오늘 행복했어요”라고 대답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 뭘 배웠냐니까?”라고 되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적지 않은 학부모들은 이런 대답에 익숙하다. 바로 학교수업에 ‘행복’이라는 과목이 있기 때문이다. “나 오늘 행복했어요”라고 대답하는 날은 ‘행복’ 수업이 있는 날이다.

지난 2008년 하이델베르크의 빌리헬파흐 학교에서 처음 시작된 행복수업은 현재 100여 개 학교에서 정규수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에서 최초로 ‘행복’을 학교에서 정식 과목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나라. 독일인에게 행복은 건강한 신체를 위해 고른 영양을 갖춘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건강한 정신을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요소다. 경제적으로 소유한 만큼 잃어버린 정신적 행복을 학습을 통해 다시 찾고자 하는 시도가 바로 이 수업이 만들어진 동기다. 청소년에게 행복의 순간을 준비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스스로 그 행복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수업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 참고할 만한 교과서나 정선된 교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인쇄기술이 발명되기 전 시대의 학교처럼 몸으로 배우고 느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과서가 없어요. 공부할 필요가 없어요.” 아이들은 이것 하나만으로 행복하다고 소리친다.

‘기회가 없는 인생’은 인간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명문대학에 가고 싶지만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영원히 기회를 얻을 수 없는 사람은 허다하다. “중고등학교 때 성적이 좋은 학생이 반드시 우수한 대학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많은 독일 교육학자가 아비투어(독일의 대학입학 자격시험) 점수를 가장 중요한 신입생 선발 기준으로 삼는 현 입시제도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자주 언급하는 내용이다. 독일의 대학 신입생 선발 기준에는 그러한 주장을 일부 인정하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학교에서 ‘행복’ 과목을 배우는 나라

엘리트 대학으로 지정받아 정부의 후원금을 받는 학교는 더러 있지만 독일은 절대 우위를 입증할 수 있는 명문대학이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의대나 법대와 같이 많은 학생이 선호하는 인기학과 중심의 입시경쟁이 나름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인기 학과 중 하나인 의대를 예로 들면 성적이 형편없는 학생도 이 학과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은 있다.

독일 의대는 지원자의 20%를 성적우수자 순으로, 60%는 그 대학만의 자율권으로, 나머지 20%는 대기자 중에서 선발하도록 되어 있다. 이 20% 대기자 할당이 흥미로운 제도다. 특히 의대는 대기자 중에서 20%를 무조건 선발해야 한다. 대기자의 선발 기준은 성적이 아니라 오래 기다린 순서다.

아비투어 성적이 부족한 학생 중에 꼭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성적이 충분하지 못한 사람은 처음부터 대기자로 분류되거나, 혹은 스스로 대기자로 지원한다. 대기자는 최장 6년까지 기다릴 수 있다. 보통 유명 대학 의대의 경우 5년 정도 기다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대기자는 기다리는 동안 독일 다른 대학에 등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유학을 가거나 ‘아우스빌둥’이라는 직업교육과 취업 등 다른 모든 활동은 허용한다. 의외로 독일 학생 중에는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고 그 직업에 필요한 사회적인 경력을 먼저 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등학교나 김나지움 저학년 학부모 회의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숙제가 너무 많다는 불만이다. 그러나 이 불만이 거론될 때마다 “그 학년에 맞는 적절한 숙제를 내주고 있다”는 담임교사의 의중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가 있다. 독일은 학교법에 학년에 따라 숙제의 분량이 이미 정해져 있어 교사가 임의로 숙제를 많이 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의 휴식에 대한 규정도 아주 구체적이다. 독일 학교법에는 학생의 휴식권을 위해 숙제의 난이도와 분량에 대해 “숙제는 개별 학생의 수준에 적절해야 하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숙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내주어야 하며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은 금지한다”고 규정한다.

또 숙제의 분량에 대해 구체적으로 “초등학교 1∼2학년은 30분, 3∼4학년은 40분, 5∼6학년은 90분, 7∼10학년은 1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분량이어야 한다”며 “적절한 숙제의 양을 위해서 담임교사는 담당교사와 의견을 교환하며 조절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해놓았다.


▎독일 학교는 모든 수업이 토론식으로 이뤄진다. 책상도 칠판을 바라보도록 일렬로 놓지 않고 학생들이 서로 마주 보게 배치한다.
이런 법규를 근거로 특히 초등학교 학부모는 교사에게 과중한 숙제가 아이들의 놀 권리를 침해한다며 문제삼는 것이다. 독일학생에게는 숙제가 방과후 공부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범한 아이들은 과외도 없고, 학원도 안 다니기 때문에 독일에선 휴식권을 이야기할 때 숙제 분량을 특히 강조한다.

학생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독일사람들은 사교육 때문에 고민하는 일이 거의 없다. 사교육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성적을 더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학기에 학년을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극소수 아이들만을 위한 위급처방이다. 독일학교 성적은 최고 1점부터 최저 6점까지 나뉜다. 만일 평균 3점 정도의 점수를 받는 아이에게 과외를 시키겠다고 상담하면 어떤 선생님도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니 상위권 학생들이나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까지 공부는 사실상 완전히 학교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교사는 학생의 선행학습을 금지시킨다. 예습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미리 배워서 알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선생님의 수업 진행에 방해가 된다고 간주한다. 결론적으로 한 반 30여 명의 학생은 모두 비슷한 여건에서 수업을 받게 되고 성적이 좋고 나쁜 것은 수업시간에 누가 더 집중을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 숙제와 시험 준비 기간 동안에 하는 한두 차례의 복습이 전부다.

세계가 주목하는 독일 직업교육은 대학졸업장이 없어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고, 원대한 포부를 가질 수 있는 제도다. 한국에 비해 독일은 고학력 사회가 아니다. 유치원 선생님도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대학을 나온 간호사도 없다. 은행을 봐도 지점장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졸자가 아니다. 직업학교 선생님도 대학에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또 관공서를 가봐도 고학력자는 흔치 않다. 이 사회가 이처럼 전문적인 직업인에게 불필요한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그들의 직업학교가 확실하게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졸업학년인 13학년까지 단 한 번도 석차를 알 수 있는 성적표를 받지 않는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스스로 점수의 분포를 계산해서 내린 판단이지 학교의 어떤 서류에도 성적이 상위권이라든지 몇 등이라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아비투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 함께 행복하기 위한 이들의 교육과정에서 지식의 평가만을 가지고 순서를 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성적처리에서도 시험성적 외에 수업태도와 사회성 등을 함께 평가하는 교사의 자율권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의 근본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독일도 최근엔 경쟁을 등한시할 수만은 없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지난 2000년 제1회 OECD 국제학업성취도 비교평가(PISA)에서 선진국 중 최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이 결과는 현재까지 ‘피사쇼크’로 불리고 있을 정도로 20세기 초 독일이 누렸던 학문적 명성에 찬물을 끼얹은 성적표였다.

인간교육 외면하면 위험한 종말 보인다

피사쇼크 후 독일은 교육 수준을 회복하기 위한 개혁을 단행했다. 2013년부터 김나지움 졸업학년을 13학년에서 12학년으로 낮추고, 각 학교별로 관장하던 아비투어도 중앙집중식으로 바뀌었다. 또 기존에 오전반이던 학교수업은 종일반으로 변경 중이다.

개혁의 핵심은 교육의 경쟁력이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인격교육에만 편중하고, 학교의 본분은 수학(修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라는 것이다. 독일 교육은 분명 활기를 잃었고 자타가 공인할 만큼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경쟁력을 내어주고 그들이 얻은 것은 참다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학교와 학생들의 행복이었다. 독일 교육의 실패를 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교육의 경쟁력에만 목소리를 높인다. 지나친 경쟁력 속에 묻혀버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그와 연관된 바람직한 인격형성을 위한 교육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다행인 것은 독일 사회 일각에서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20세기 초 유럽 최고의 산업국가로 발전을 거듭하던 독일이 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는지를 환기하고 있다. 인간 교육을 무시하고 경쟁에만 휘둘리는 학교가 얼마나 위험한 종말을 예고하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