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 쇠똥구리, 길거리의 청소부


▎호주·뉴질랜드로 이주한 영국인들은 쇠똥구리를 본국에서 공수하기도 했다



소는 똥을 가리지 못하니 아무데나 마구잡이로 싼다. 꼬리를 살짝 들고 똥을 깔기는데, 땅바닥에 찰싹찰싹, 떡떡! 떨어지면서 둥글넓적하게 쌓인다.

겨울엔 김이 몽개몽개 나는 것이, 큰 양푼 하나 가득 담을 정도는 된다. 풀이 소화된 것이라 구린내는 거의 없지만 특이한 쇠똥 냄새가 날뿐이다. 반들반들 거무죽죽한 색을 띠는 쇠똥은 썩 미끄럽다.

이와 관련해 ‘쇠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코 박은 셈이다’란 속담이 있는데, 대단치 않은 일에 연거푸 실수만 하여 기막히고 어이 없는 상황을 이른다.

쇠똥이 있는 곳에는 쇠똥구리가 우르르 몰려든다. 풍뎅잇과(科)의 딱정벌레(갑충, 甲蟲) 중에 쇠똥이나 말똥을 먹고 사는 놈들이 있으니 이를 보통 쇠똥구리(dung beetle, tumble bug)라 부른다.

쇠똥구리를 ‘소똥구리’ 혹은 ‘말똥구리’라고도 한다. 미리 말하지만 똥구리들은 목장에 똥 치워주고, 땅바닥에 굴 파서 공기 잘 통하게(통기)하며, 똥이 썩어 땅을 걸게 해주는 점에서 익충(益蟲) 중의 익충이다.

이들은 굳은 딱지날개를 갖는 풍뎅이(딱정벌레)로 세계적으로 2만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46종이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고작 10여 종만 남았다고 한다. 발에 밟힐 정도로 널렸던 쇠똥구리족들이 사라진 까닭은 확실치 않으나, 일부에서는 관절염에 좋다 하여 다 잡아먹어 씨가 말랐다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가축에게 풀이 아닌 인공사료를 먹인 탓에 쇠똥구리애벌레가 자라지 못해 그렇다고도 한다. 이래저래 홍역을 치르고 있는 쇠똥구리로다.

이들 중 대표적으로 왕쇠똥구리(Scrabaeus sacer)가 있으니, 몸길이 25~37㎜ 정도로 몸 빛은 윤기 없는 검은색이다. 전체 모양이 마치 불도저(bulldozer) 꼴로 머리끝에 돌기가 나 있고, 쇠스랑 같은 넓적한 앞다리에 가운데와 뒷다리 끝에 톱니가 있어 땅을 파거나 똥을 둥글게 자를 수 있다. 북아프리카·남부유럽·아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사람만의 비밀도 간파?

쇠똥구리의 먹이는 쇠똥·말똥 등 순수 초식동물의 변인데, 하루에 보통 제 몸무게만큼을 먹어치우며, 갓 배설한 것보다는 분해되기 시작한 분뇨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놈들의 코(후각)도 알아줘야 하는데 몇㎞ 밖에서도 똥냄새를 맡고 눈썹을 휘날리며 날아온다. 눈이 좋지 않은 대신 코가 발달해 있으니 이는 보상현상(補償現狀, compensation)이다.

역사상 사람이 발명한 것 중에서 인터넷·전기·바퀴 셋을 최고로 친다는데, 쇠똥구리 놈이 어찌 둥글면 굴리기가 쉽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것은 사람만이 아는 비밀인데 말이지. 어쨌거나 쇠똥구리는 목장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곤충으로 똥 치우기가 전공이다.

필자도 한때는 못나고 하찮은 쇠똥구리 신세였다면 아마도 다들 어리둥절하겠지. 어릴 때 겨울 논바닥에 꽝꽝 얼어붙은 개똥을 망태기에 주워 담았고, 여름이면 바소쿠리로 쇠똥을 들어 날랐다. 말 그대로 ‘똥이 금’인 세상이었던 터라, 들판에 놀다가도 집으로 달려가 대소변을 보는 그런 애옥한 시절이었다. 그땐 다 그랬다.

아무튼 쇠똥은 목축하는 사람들에게 곤란하고 귀찮은 골칫덩어리다. 소들이 먹은 만큼 갈겨대 목초를 눌러 죽이므로 그때그때 치워주지 않으면 목장이 망가지고 만다. 헌데 사람 대신 ‘똥구리’들이 똥을 먹어치우고, 번듯하게 토막 내 멀리멀리 굴려 말끔히 치워주니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영국인들이 처음 호주·뉴질랜드에 이주했을 적에 이 목장청소부가 없어 곤욕을 치르다가 결국 이들을 본국에서 공수해왔다고고 한다.

‘똥을 주물렀는지 손속도 좋다’란 속담은 똥을 주무르면 재수가 있다는 데서, 노름판에서 운수 좋게 돈을 잘 딴다는 뜻이다(‘손속’은 노름할 때 손대는 대로 잘 맞아 나오는 운수를 이른다). 다음 글은 아프리카 케냐국립공원에서 쇠똥구리를 전공하는 한 생물학자의 관찰 기록의 일부다.

“똥이 약간 가슬가슬 마를라치면 바글바글 모여들어 서로 질세라 머리를 처박고 넓적다리 놀려 쇠톱으로 아스팔트 자르듯 파고 내려간다. 가로세로 깊이의 길이 잼 없이도 사방팔방으로 재단한 듯, 동글동글 둥근 경단(瓊團)을 빚듯 한다. 본능이란 지능을 뛰어넘은 뭣이 있는 것일까. 덩어리 하나 만드는데 빠른 놈은 1분6초, 느린 놈은 53분이 걸렸다.”

아프리카에는 풍뎅이가 2천 종이 넘는다고 하니 종에 따라 이렇게 경단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모양·크기도 각기 다르다. 이 경단을 굴려가서 거기에 알을 낳는 까닭에 ‘혼례 공(nuptial ball)’이라고도 부르는데, 빗대어 말하자면 ‘사랑의 똥덩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이제 공을 굴려 옮길 차례다. 당찬 수놈은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고 뒷다리에 잔뜩 힘을 모아 공을 세게 뒤로 밀어 제치고, 암놈은 바로 서서 앞다리로 끌어당기니 협력은 이런 것. 말 그대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식이다(가장 빠른 기록은 1초에 약 23㎝).

가풀막진 곳에서는 죽을힘을 다하니, 힘든 오르막이 있으면 편한 내리막도 있는 법! 그런데 어떤 종은 수놈이 젖 먹은 힘을 다해 끙끙 밀어 굴리는데 암놈들은 가마 타듯 올라타고 마냥 즐긴다거나, 쫄래쫄래 뒤따라온다고 한다. 어서 빨리빨리 굴려야 하는 것도 모르는 바보 암컷들이다. 그 녀석들 세상에도 드센 놈이 우격다짐으로 뺐고 날치기하며, 성가시고 귀찮게 구는 찌그렁이 붙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수컷의 살신성인

애벌레(유생)의 먹이가 될 경단은 종에 따라 크기가 달라서, 콩알만 한 것에서 사과만 한 것도 있다는데, 서둘러 안전한 곳에 옮겨 놓고는 다부지게 굴 파기를 시작한다. 집 파기는 주로 밤에 하는데, 천적에게 잡혀 먹히지 않겠다는 심사일 것이다.

땅굴파기는 암놈이 도맡아서 하지만 흙을 내다버리는 등 뒤치다꺼리는 수놈 몫이다. 어떤 무리는 1m 깊이로 판다는데, 암놈은 굴속에 있으니 안전하나 땅 위의 수놈은 더러 암놈 대신 천적에게 잡아먹히니 살신성인이 따로 없다. 아무튼 집 아가리는 좁고 안은 둥글넓적한 달항아리를 빼닮았다고 한다.

힘든 굴 파기를 끝마치면 경단을 굴려 넣고는 짝짓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암놈은 쇠똥을 질겅질겅, 어석어석 씹어 먹으니 꽤나 보기 드문 기습(奇習)이라 하겠다. 쇠똥구리 암컷은 알 하나를 똥덩이 하나에 슬고(보통 평생 6개를 낳음)는 풀숲이나 돌멩이 아래를 찾아들어 시나브로 일생을 마감한다.

덩이 속의 새끼손가락만한 굼벵이(유충)는 어미 아비가 준 똥을 먹고 자라나 번데기 되었다가 성충이 되어 굴 밖으로 짝꿍을 찾아 나선다. 이들도 별수 없이 어미 세대의 한살이(일생)와 같은 삶을 줄곧 살겠지. 우리가 이전 어른들의 모진 세월바퀴를 밟아 막장에 다다르듯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月)도 차면 기우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