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 호스>에서 앨버트는 야생마 기질이 있는 말 ‘조이’를 길들여 밭을 갈게 하는 기적을 만든다.
2011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워 호스(War Horse)>. 1946년생으로 고희를 눈앞에 둔 스필버그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준 수작(秀作)이다.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말 한 필을 놓고 경매가 벌어진다. 멋지게 생기긴 했으나 쟁기질보다는 경주에 더 어울릴 법한 말이다. 한 소작농이 경매에 참가했다가 객기가 발동하는 바람에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덜컥 말을 차지하게 된다.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엄청 구박을 받지만 외아들 앨버트(제레미 어바인)는 첫 눈에 말에게 빠져 버린다. ‘조이’라는 컨츄리풍(風) 이름도 지어주고 틈만 나면 들판을 달리며 형제와 같은 애정을 쌓아간다.근대적 경매의 시초는 소더비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다. 앨버트의 아버지는 극심한 가난 끝에 결국 조이를 영국군 기마대에 군마로 내다 판다. 소년과 말의 우정 따위는 먹고 사는 실존 앞에서 밀릴 수밖에…. 조이는 무거운 대포를 끄는 노역에 동원되고, 앨버트는 조이를 만나고 싶은 일념에 자원 입대를 감행한다. 혼돈으로 가득한 전쟁터에서 재회의 희망이 점점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병사들 사이에 ‘기적의 말’이 화제가 된다. 철조망에 온 몸이 찢긴 채 전쟁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왔지만 파상풍 때문에 곧 안락사시키기로 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앨버트는 순간 그 ‘기적의 말’이 조이일 거라고 직감한다. 안락사를 위해 조이의 머리에 권총이 겨눠지는 순간, 어디선가 귀에 익은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어릴 적부터 앨버트와 같이 놀면서 들었던 휘파람이다. 조이는 마지막 힘을 다해 고개를 쳐 들고 한 무리의 병사들 사이에서 휘파람을 부는 앨버트를 발견한다.앨버트와 조이의 첫 만남은 경매(Auction)에서 시작된다. 일상에서 대부분의 물품에는 표준 가격이 붙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밭에서 일을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운석 하나가 떨어진다.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은 것만도 고마운 판에 찾기 쉽게 발 옆에 얌전히 떨어져 주면 그야말로 조상의 음덕이다. 이걸 팔려면 경매 밖에 없다. 즉, 표준가격이 모호한 물품을 최고로 유리하게 팔려고 할 때 경매가 이루어진다.경매의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다. 혹자는 고대 바빌로니아나 로마 제국에서 전리품 거래를 위해 시작됐을 거라고 추정한다. 근대적 의미의 경매는 1744년 희귀 서적 판매로 출발한 영국의 소더비가 시초다. 지금도 소더비는 100여 개국에서 연 2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1766년에 문을 연 크리스티와 쌍벽을 이룬다. 골동품, 미술품, 심지어 타이타닉호 3등칸의 메뉴판에 이르기까지 희귀한 모든 물품이 경매 대상이다. 얼마 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은퇴 경기에서 씹었던 껌이 약 7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과 점심 한끼를 먹으려면 경매에서 이기면 된다. 금년도 낙찰가는 23억 원이었다.경매는 입찰(Bidding) 방식에 따라 공개경매(Open auction)와 밀봉입찰경매(Sealed bid auction)로 구분된다. 먼저 공개경매는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진행한다. 여기에는 다시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영국식 경매(English auction)는 낮은 가격부터 호가가 시작되는 우리가 흔히 보아 온 방식이다. 네덜란드식 경매(Dutch auction)는 그와 반대로 높은 가격부터 시작해 가격을 점점 낮추다가 가장 먼저 응찰한 사람이 낙찰되는 방식이다. 밀봉입찰경매는 경매 참여자들이 서로 얼마에 응찰했는지를 비공개로 한다. 미술품이나 농산물은 영국식 경매, 화훼나 수산물은 네델란드식 경매, 정부 입찰이나 건설공사 등에는 밀봉입찰경매가 주로 쓰인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영국식 경매보다는 네덜란드식 경매나 밀봉경매가 더 유리할 공산이 크다. 경매 참가자들의 위험회피 성향 때문에 (물품을 놓치게 될 위험을 피하고 싶기 때문에) 물품의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은 가격에 입찰할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얼마 전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에 대한 경매가 화제가 됐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10조5000억 원의 낙찰가를 놓고 한동안 호사가들의 뒷얘기가 무성했다. 현대차그룹이 오버한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고, 삼성그룹이 써낸 가격에 대한 추측도 많았다. 허나 덮은 패를 보자는 건 예의가 아니다. 중요한 건 공기업 한전이 큰 수익을 얻었다는 것이고, 그걸 국가 전력시스템을 개선하는데 잘 활용하면 된다. 현대차그룹은 승자, 삼성그룹은 패자라는 단순 도식도 곤란하다. 실제 부지 개발이 완료돼 수익이 날 때까지 여러 정치·경제·사회 변수들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기꺼이 감당하고 베팅을 한다는 데에 경매의 묘미가 있다. 그 득과 실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다.직장인 사이 식당 역경매 앱 인기이동통신 기술의 발달로 일상에서도 누구나 쉽게 경매에 참여 할 수 있다. 수요자가 먼저 구매의사를 밝히면 다수의 공급자들이 다양한 공급조건을 제시하는 ‘역경매(逆競賣)’도 가능하다.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식당 예약을 할 때 원하는 날짜·시간·장소·인원·예산 등을 적어 경매를 부치면 식당 주인들이 경매에 참여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다. 예를 들어 ‘광화문 반경 1㎞, 한식, 저녁 7시, 5명, 예산 15만 원’ 같은 조건을 등록하면 근처 식당들이 실시간으로 ‘30% 할인, 고기 3인분 추가, 음료 무료’ 등의 조건을 제시하는 식이다. 불황이 계속되면서 경비 절감인지 경비 폐지인지 헷갈리는 요즈음, 꼭 한번 써 볼 만한 앱이 아닐까 싶다.자, 다시 영화 이야기. 이 영화는 경매로 시작해서 경매로 마무리를 짓는다. 전쟁이 끝나고 조이는 군법에 따라 경매에 부쳐지고 앨버트는 전우들이 모아 준 돈을 가지고 (영국식) 경매에 참가한다. 우여곡절 끝에 재회가 이루어지고 앨버트와 조이는 자신들이 뛰놀던 고향 마을로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 이 영화는 영국 작가 마이클 모퍼그가 1982년에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미 영국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상연돼 큰 인기를 끌었고, 스필버그도 연극에 감동해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스필버그의 휴머니티 렌즈를 통과하면서 영화는 조이라는 말의 시각에서 전쟁의 참담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담담하면서도 더 극적으로 보여준다.자녀들과 함께 보면 딱 좋은 영화다. 간혹 영화를 보고 말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가 있다는데 조심해야 한다. 키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최근 제주도에서 열린 경주마 경매의 평균 낙찰 가격은 2500만 원이나 된다. 자녀가 계속 졸라대면 도심 근교의 유료 승마장이 좋다. 1시간 남짓 승마 체험에 4만~5만 원이면 된다. 한번 타 보면 말 사달라는 얘기가 쑥 들어간다. 왜냐고? 타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