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책 읽는 영화관’ | 스릴러 무대가 된 결혼생활의 파국

소비에 중독된 현대 메가시티의 맨 얼굴 고발… 수퍼우먼 신드롬에 시달리는 현대 여성을 포착한 영상사회학


▎<나를 찾아줘>에서 결혼기념일에 갑자기 실종돼 거대한 파문을 몰고 오는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 그가 남긴 일기는 사건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닉은 아직도 내 앞에서 연기를 한다. 우리는 둘 다 연기를 한다. 우리가 행복하고 근심 없고 사랑하는 척. 하지만 나는 그가 밤늦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쓰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는 안다. 나는 안다. 정신 없이 쏟아지는 말들.”

영화 <나를 찾아줘>의 원작이 되는 길리언 플린의 소설 <나를 찾아줘>의 마지막 부분, 돌아온 아내는 남편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그 아내는 대체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소설 <나를 찾아줘>는 남편 닉 던이 화자로 등장해 사건을 전달하는 부분과 아내 에이미 엘리엇 던이 서술하는 일기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닉이 현재의 사정을 이야기하면 에이미가 일기를 통해 남편이 모르는 과거를 서술하는 형식이다.

닉은 행복한 생활을 살았노라고 경찰관에게 말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폭력적이며 심지어 외도를 했다고 써둔다. 두 사람의 서술이 엇갈리며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인지 헷갈리게 된다. 문제는 이 엇갈린 서술들이 에이미가 사라진 이후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남편이 산책을 나간 동안 아내가 사라졌다. 아내가 사라진 집안은 루미놀 검사결과 온통 피바다였음이 드러난다. 이제 남편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쯤 되면 이 엇갈린 진술이 왜 위험한 것인지 짐작될 것이다. 만일 남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내는 단순 실종이지만, 아내가 진술해놓은 불성실하고 폭력적인 남편의 모습이 사실이라면 이건 실종사건이 아니라 1급살인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나를 찾아줘>는 이 흥미로운 진실게임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영상화의 주인공은 바로 데이빗 핀처, 그는 흥미로운 소설을 어떻게 영화화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1급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읽는 영화관’에서 소개하는 첫 번째 작품이 <나를 찾아줘>인 이유다.코드 변환의 귀재


▎소설 <나를 찾아줘> 영화화 이전에 베스트셀러로 명성을 날렸다.
<나를 찾아줘>는 영화화 이전에 이미 베스트셀러로 명성을 날렸다. 2012년 최고의 베스트셀러였고 평단의 평가도 높았다.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가장 까다로운 점은 바로 이 서술자 부분이었다. 소설이 가진 매력과 서스펜스 그러니까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어떤 진술이 사실인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지탱하는 구조가 바로 서술자의 교환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적 기술로 따지자면, 교차편집과 같은 방식일 것이다. 즉, 한 사람이 이야기하고 난 후 다음 사람이 바통을 받아 이야기하고, 다시 전자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교차편집은 지나치게 교과서적이고 한편으로는 진부하다.

스릴러의 생명력은 바로 긴장감의 유지에 있다. 뻔하게 수건 돌리기를 하듯 순서를 기다려 자신의 연설문을 낭독하는 교차편집의 방식으로 이 새로운 스릴러를 소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데이빗 핀처는 아예 원작의 줄거리만 남기고 새롭게 플롯을 짜는 방식을 택한다. 여기서 신의 한 수라고 한다면 바로 원작자 길리언 플린을 각색자로 선정한 것이다. 650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에서 거의 대부분을 베고 잘라낼 수 있는 각색자는 엄밀히 말해 원작자 외에는 없다.

한편 원작자인 길리언 플린은 만일 내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그 감독이 바로 데이빗 핀처였으면 한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바람대로 데이빗 핀처가 영화화를 맡게 됐고 영화는 원작 이상의 에너지를 품게 됐다.

데이빗 핀처 <나를 찾아줘>가 지닌 에너지의 근간은 바로 탁월한 캐스팅이다. 여기서 유의할 대목은 탁월한 캐스팅이 꼭 스타 캐스팅을 의미하진 않다는 점이다. <나를 찾아줘>의 가장 큰 매력은 속을 알 수 없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여성 캐릭터의 특이성에서 비롯된다.

여주인공 에이미 엘리엇 던은 복잡하면서 섬세하고 까다로우면서도 주도면밀한 인물이다. 그의 부모는 이 아름다운 금발 소녀를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아동 시리즈물의 주인공으로 극화해 그의 이미지를 판매했다. 다시 말해 에이미는 어린 시절부터 꽤나 스타였고 만들어진 이미지에 익숙한 소녀였던 셈이다.

보여지는 에이미와 실제 에이미 사이에 갈등을 겪는 소녀, 하버드 출신의 완벽한 뉴요커로 일생을 살아 온 독신여성, 유명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와 같은 이름들은 그가 흔히 말하는 ‘엄친아’의 삶을 살아왔음을 보여 준다. 잘 정돈된 머릿결, 늘 같은 사이즈를 고수하는 몸매, 차분한 말투와 우아한 표정까지, 그녀는 드라마에 나오는 우아한 여성의 표본처럼 등장한다.

데이빗 핀처가 선택한 에이미는 의외로 크게 알려지지 않은 여배우, 로자먼드 파이크였다. 사실 배우에겐 미지의 이미지 즉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라는 점이 미스터리한 장점이 되기도 한다. 로자먼드 파이크의 경우가 그랬다. <오만과 편견>과 같은 영국식 영화에서 남자와 이야기만 나눠도 볼이 붉어지는 요조숙녀를 연기했던 로자먼드 파이크는 대중에게는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선물과도 같았다. 포장을 뜯고 상자를 열기까지 그 내용물을 알 수 없듯이 로자먼드 파이크는 요령부득의 에이미라는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연기한다.무릎을 치게 만드는 캐스팅


▎<나를 찾아줘> 남편 닉은 갑자기 실종된 아내 에이미를 찾기 위해 공개 기자회견을 한다.
무엇보다 강렬한 것은 바로 영화 후반부의 캐릭터 반전 부분이다. 소설이 에이미와 닉의 교환 서신처럼 구현됐다면 영화는 닉의 전반부, 에이미의 후반부 그리고 둘이 다시 함께 있는 종결부라는 좀 더 심플한 방식으로 구성된다. 전반부에서 에이미는 수수께끼를 내는 주체로 마치 안개나 연기처럼 존재한다. 그녀는 안개처럼 동네 곳곳에 스며있고 연기처럼 닉의 일상 곳곳을 파헤쳐 놓는다.

문제적인 것은 닉이 아닌 에이미가 스스로 자신을 보여주는 후반부다. 우리가 닉에 의해 안내받았던 에이미에 대한 기대감은 거의 하나도 남김없이 배반된다. 그녀의 깔끔한 외모는 지긋지긋한 강박적 자기관리의 결과였음이 드러나고 남편의 불륜에 대해 알고 난 후 치밀하고도 끔찍한 복수극을 꽤나 오랫동안 준비해왔음도 밝혀진다. 한마디로 그녀는 너무 똑똑할 뿐만 아니라 무시무시하리만치 철두철미한 여자였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은 에이미라는 여성 캐릭터가 소설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삶은 곧 남들이 보기에 그럴 듯한, 남들이 시샘하기에 알맞은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이상적인 삶이다. 가령 남편은 아내만 사랑하며 아내는 절대로 남편을 닦달하거나 잔소리로 괴롭히지 않는다. 결혼 초 그들은 에이미가 계획한 아름다운 가정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치면서 그들이 실직을 하고 나서부터 이 이미지 놀이는 타격을 입게 된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지면의 필자이자 기자였던 그들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고 그 후로는 돈을 비롯한 실질적 문제들이 대화 주제에 오르기 시작한다.

에이미가 유지했던 아름다운 결혼 생활의 이미지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그 연극을 지탱할 수 있는 유지비, 돈이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결혼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 화장을 지운 맨 얼굴, 닉과 에이미는 그렇게 서로의 맨 얼굴을 보고는 질려하면서 결혼 생활은 하나의 미스터리이자 스릴러의 무대로 바뀌고 만다.

결국 <나를 찾아줘>가 매혹적인 이유는 경제력과 부부, 돈과 결혼의 안정성이라는 동시대적 사회문제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데이빗 핀처는 음악감독에게 고급 스파에서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듯한 그런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 <나를 찾아줘> 전반에 흐르는 나른한 음악은 관객들에게 마치 뉴욕의 고급 스파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고급스러운 느낌이 최후에 갖게 될 당혹감을 갑절로 높여준다는 점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스릴러의 거장이라고 불린다. 이는 그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알 수 있다. 데이빗 핀처에게 첫 번째 유명세를 선사해준 영화 <세븐>만해도 그렇다. <세븐>은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연옥의 7가지 죄악의 명목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 살인마를 다루고 있다. 영구 미해결 사건으로 남은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조디악>, 브래드 피트의 악마적 매력이 돋보인 <파이트 클럽> 역시 범죄를 다루고 있다.리얼리티에 대한 탁월한 해석

데이빗 핀처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파이트 클럽> 역시 척 팔라니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나를 찾아줘>가 뉴욕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한 부부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면 <파이트 클럽>은 대도시의 말기암 환자 동호회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잭은 이케아 조립식 가구와 출장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다. 삶의 아무런 동인(動因)도 찾지 못한 채 일에 매달려 살아가는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살아가는 이유를 찾고자 말기암 환자 모임에 나가게 된다.

쇼핑을 하듯 환자 모임을 돌아다니던 그는 우연히 타일러 더든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그는 잭에게 파이트 클럽을 만들고 폭발물을 제조해서 세상을 뒤집어 엎자고 설득한다. 결국 그들은 성형외과 의사들이 여자들의 몸에서 흡입한 지방을 훔쳐 최고급 수제 비누를 만들어 그 여성들에게 되팔거나, 폭발물을 제조해 다국적 커피 판매기업을 없애고 신용카드 회사의 서버를 공격하려고 한다.

매우 문제적으로 보이는 인물 타일러 더든의 실체를 밝혀가는 것이 영화가 추구하는 스릴러의 골자이지만 여기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대목은 소비에 중독된 채 흘러가는 현대 메가시티의 맨 얼굴이다. 무척 급진적이며 무법적이기는 하지만 욕망의 산폐물인 지방으로 비누를 만들어 재판매한다거나 신용카드 기록을 없애겠다는 시도는 분명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을 공격하는 것이다.

데이빗 핀처가 관심을 갖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는 범죄에 관심을 갖고 범죄영화, 스릴러 영화를 만들지만 그 범죄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모순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범인은 한 사람의 개인이지만 그의 범죄는 우리의 사회, 우리의 욕망, 우리의 모순과 깊숙이 연관돼 있는 것이다.

<나를 찾아줘>에서도 이러한 분석은 유효하다. 가장 이상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단속하는 에이미 같은 캐릭터는 슈퍼우먼 신드롬에 시달리는 대도시의 여성들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의 가능성을 오히려 폭력이나 이데올로기적 강제로 여기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결국 선택을 통해 나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이상한 자기 연출의 논리와 맞닿는다. 자기 연출의 하나가 되고만 결혼을 통해 선택의 노예가 된 불쌍하고도 이상한 현대인의 모델이 에이미로 나타난 것이다.

데이빗 핀처는 소설의 명민한 독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현실을 책처럼 읽어내는 뛰어난 현실 독자라 할 만하다. 그가 소설 원작의 영화화와 범죄, 살인을 소재로 한 스릴러 장르의 연출을 즐기는 것도 작품이란 곧 현실의 거울이자 반영이라는 믿음의 결과일 것이다.

그가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드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는 점도 그 예시 중 하나일 것이다. 21세기 영웅이라고도 할 수 있을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담아낸 <소셜 네트워크>에 담긴 데이빗 핀처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SNS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상, 그 세상을 만들고 거기서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 대한 호기심과 애착,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또 만들어내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결국 소설을 읽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열정적 시도이기 때문이다.강유정 - 영화·문학평론가. 전 고려대 연구교수. 2005년 3개 신문사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등단했고, 지은 책으로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스무 살 영화관>이 있다. 현재 <김C의 뮤직쇼>에서 ‘거꾸로 걷는 영화관’을, KBS <문화공감>에서 ‘거울나라의 사람들’을 진행하고 있으며 강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