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포커스 | CJ그룹 경영권 승계작업 신호탄?

이재현 회장, 경영수업 중인 외아들 선호 씨에게 280억원 상당 주식 증여…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율 11.3% 3대 주주로 올라서


▎CJ그룹의 지난 3년은 가시밭길이었다.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패소에 이어 이재현 회장마저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등 고초가 계속됐다. 서울 중구 소월길에 있는 CJ그룹의 본사.
2012년 2월 재계가 들썩였다. 기업인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흐릿해진 이맹희(84) 전 제일비료 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아버지의 유산 중 차명재산인 4조849억 원 상당의 주식과 배당금을 돌려달라”며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비운의 황태자’로 불렸던 이 전 회장은 삼성가(家)의 장손이자 이재현(55) CJ그룹 회장의 아버지다.


▎이재현 회장의 외아들 선호 씨(왼쪽). 신병 치료차 미국에 있는 이미경 부회장.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이 전 회장은 1심과 2심에서 연달아 패소하자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고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 전 회장 측은 상고 포기 이유에 대해 “재산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간의 관계”라고 밝혔다. 변호사 선임 비용, 인지대 등 100억 원 이상의 부담을 떠안았다.

아버지의 패소, 건강 악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아들 이재현 회장도 그에 못지않은 고초를 겪었다. 이 회장은 1600억 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기소 됐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조세포탈 251억 원, 횡령 115억원, 배임 309억 원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이 회장 측은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구속 이후 이 회장의 건강은 많이 나빠졌다고 전해진다.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그는 2013년 8월 부인 김희재(55) 씨의 신장을 이식받았지만 면역거부반응과 바이러스 감염 등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이 회장의 건강과 관련해 CJ그룹은 “수술 이후로도 부작용으로 인해 여전히 좋지 않다”고 밝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지난해 11월 19일 이 회장에 대한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오는 3월 21일까지 4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이 회장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 및 공황을 겪고 있다. 현재 건강상태에 비춰보면 구치소 등에서의 구금생활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호전됐다는 등의 사정 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돌아보면 CJ그룹의 지난 3년은 가시밭길이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소송에서 패소, 회장의 구속수감과 건강 악화로 가슴을 졸여야 했다. CJ의 한 부장급 간부는 “다들 말은 아끼지만 오너 부재 상태가 길어지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며 “오너리스크(Owner Risk)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가슴 졸였던 3년


▎이재현 회장이 지난해 8월 1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구속수감 후 이 회장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설상가상으로 이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경영일선에서 고군분투하던 이미경(57) CJ그룹 부회장도 건강이 악화되면서 경영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 회장의 누나인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구나비치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12월 홍콩에서 열린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MAMA) 행사 참석차 잠시 귀국했지만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이 부회장의 미국행에 대해 CJ그룹은 “지병 치료와 요양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20대 때부터 ‘샤르코마리투스’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 병은 운동신경과 감각신경 이상으로 다리를 절게 되는 유전성 신경질환이다.

이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는 가운데 이 부회장마저 경영 현장을 비우게 되자 자연스럽게 이 회장의 2세들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이 회장 부부에겐 장녀 경후(30·기혼) 씨와 아들 선호(25·미혼) 씨 1남1녀가 있다. 경영 전면에 나서기엔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이들이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처럼 CJ호(號)의 ‘투톱’이 될 거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거의 없다.

경후 씨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데 이어 같은 학교에서 조직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2011년 7월 CJ주식회사 사업팀에 입사한 뒤 CJ오쇼핑으로 자리를 옮겼다. CJ오쇼핑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경후 씨에 대해 “요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부 재벌가 2, 3세들과는 많이 다르다. 겸손하고 예의 바르다”고 귀띔했다.

선호 씨는 누나와 같은 대학에서 금융경제학을 공부한 뒤 2013년 6월 CJ그룹 인턴사원으로 입사했다. 2012년 CJ제일제당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등 방학 때마다 현장경험을 쌓아왔고 현재는 CJ제일제당 바이오부문 사업관리팀 사원으로 일하고 있다.지분 2%만 정리해도 규제대상 제외


이런 가운데 얼마 전에 재계의 이목이 선호 씨를 향했다. 지난해 12월 2일 CJ그룹 계열 시스템 통합업체(SI)인 CJ시스템즈와 헬스·뷰티 스토어 CJ올리브영이 합병해 CJ올리브네트웍스로 태어났다. 이 과정에서 선호 씨가 처음으로 회사의 주주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친인 이 회장이 합병 전날인 12월 1일 선호 씨에게 주식을 증여한 결과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와 CJ그룹에 따르면 이 회장은 CJ시스템즈 지분 31.88%(29만8667주)의 절반 정도인 15.91%(14만9천 주, 280억원 상당)를 선호 씨에게 줬다. 이에 따라 선호 씨는 일약 CJ올리브네트웍스 전체 지분의 11.3%를 보유한 3대 주주가 됐다. 이 회사의 1대 주주는 CJ시스템즈와 CJ올리브영의 지분을 각각 66.3%와 100% 소유해온 지주회사 CJ(지분 76.07%, 주식 100만2738주), 2대 주주는 이 회장(11.35%)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 이외에 선호 씨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CJ그룹 계열사로는 CJ E&M(0.68%, 26만4984주), 씨앤아이레저산업(37.9%, 144만 주), 씨제이파워캐스트(24%, 24만 주) 등이 있다. CJ E&M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상장사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은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함께 지분을 출자해 ‘무인경비회사’를 차린 투자회사다. 재계에서는 CJ시스템즈와 CJ올리브영의 합병, 이 회장의 주식 증여 등 일련의 과정을 선호 씨의 경영권 승계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전신인 CJ시스템즈는 1995년 3월 창립 이후 주로 계열사 수주 물량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2013년 CJ시스템즈의 매출액(3571억원) 가운데 75.5%가 CJ제일제당, CJ헬로비전, CJ E&M 등 계열사를 통해 이뤄졌다. 반면 편의점 형태인 CJ올리브영은 매출액(4570억원)중 1.3%만이 내부거래를 통한 수입이었다.

아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CJ올리브네트웍스가 CJ그룹의 핵심사업(식품·서비스, 유통,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바이오) 중 하나라는 점도 선호 씨의 ‘경영권 승계작업 시작’ 해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CJ올리브네트웍스의 지분은 향후 오너 일가의 지분율 강화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단숨에 CJ올리브네트웍스의 3대 주주가 됐지만 선호 씨는 이 회장이 지분 42.2%를 갖고 있는 지주회사 ㈜CJ의 지분은 거의 없다. 이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는다 하더라도 그에 따른 상속세를 내야 하고 그러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 회장의 주식 증여가 증여세 납부를 감수하면서까지 사실상 사전 상속을 한 것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CJ그룹은 “주식 양도로 발생한 세금은 이선호 씨 개인재산으로 나눠서 납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호 씨의 CJ올리브네트웍스 대주주 등극은 경영권 승계와는 또 다른 측면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CJ시스템즈와 CJ올리브영의 합병으로 이 회장과 선호 씨의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율은 모두 합쳐서 22.65%가 됐다. 지분을 2% 남짓만 정리해도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비상장사는 총수 일가 지분 20% 이상 때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다.“반드시 건강 회복해서 돌아오겠다”


▎검찰 관계자들이 2013년 5월 CJ그룹 본사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물을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선호 씨에게 대량의 주식을 양도하긴 했지만 이를 곧 경영권 승계작업으로 보는 것은 ‘앞서가는’ 생각이라는 게 CJ 측의 해명이다. 현재 이 회장이 자유롭지 못한 데다 건강까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나이가 50대 중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영권 승계를 거론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는 것이다.


CJ그룹은 “선호 씨는 CJ주식회사와 핵심계열사의 지분이 전혀 없다. 또한 이제 만 25세에 불과하며 현재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만큼 (주식 양도를) 경영권 승계의 시작으로 보기엔 이르다”며 “이재현 회장 역시 제일제당에 입사해 오랜기간 동안 과장·부장 등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은 후 경영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 회장은 얼마 전 “반드시 건강을 회복할 테니 그룹 매출 100조원을 위해 정진해달라”는 메시지를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이 회장이 그룹경영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지난해 8월 항소심 공판 최후 변론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1월 2일 이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CJ제일제당, CJ푸드빌 등 전 계열사를 상대로 한 신년사에서 당초 원고에 없던 이 회장의 말을 임직원들에게 전했다. 이 회장은 “여러분이 너무 보고 싶다”며 “여러분이 보내주는 응원과 기원, 마음을 에너지삼아 반드시 건강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내가 반드시 건강을 회복할 테니 여러분은 내 걱정은 말고 우리의 공동목표인 ‘그레이트 씨제이(Great CJ)’, 2020년 매출 100조원·영업이익 10조원을 위해 중단 없이 정진해달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탈세 등의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됐으나 만성 신부전증이 악화돼 3개월 구속집행정지를 받아 서울대병원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뒤 투병 중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말 퇴원해 통원치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11월 거대 세포바이러스가 발견돼 다시 입원했다. 이 회장은 올해 3월 21일까지 구속집행정지 연장을 허가받은 상태다.

CJ그룹은 “이 회장은 말기 신부전증으로 2013년 8월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 거부반응, 감염, 신기능 저하 등 반복적 부작용으로 인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체중도 51㎏에 불과하다”며 “이식수술 후 평생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가 기존 유전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 치료와 서로 악영향을 미치는 관계라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항소심 6차 공판 최후변론에서 “살고 싶다”는 말과 함께 눈물로 호소해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모든것이 제 잘못이고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모든것을 책임지겠습니다. 다만 사실관계와 저의 진정성을 살펴 억울함이 없게 해주십시오. CJ를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으로 완성시키는 것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선대회장 유지를 받드는 것이고 또 저의 짧은 여생을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책무, 저의 진정성을 보셔서 최대한의 선처를 간곡히, 간곡하게 간청 드립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