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로 거부가 된 22살 팔머 럭키



수 년 전만 하더라도 팔머 럭키(Palmer Luckey)의 엄청난 성공은 불가능했을 지 모른다. 오큘러스(Oculus)는 지난 10년간 이어진 모든 창업 트렌드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처음에는 오픈소스를 이용해 어떤 법적 의무도 없이 무료로 2루 혹은 3루까지 나아갔고, 그 다음에는 크라우드소싱을 추진했다. 그가 만든 프로토타입 6대는 모두 온라인상의 열렬한 가상현실 팬들에게 도움을 받아 개선되었고, 기술적 문제도 이들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포럼 회원 중 적어도 한 명은 가상현실을 취미로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1991년 아이디 소프트웨어(id Software)를 공동 창업한 존 카맥은 창업 후 10년간 퀘이크(Quake)나 둠(Doom)등의 게임 개발을 주도한 프로그래머로 전설적 입지를 쌓았다. 2012년 4월 그는 소니의 헤드 디스플레이 장치(HMD)를 개조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글을 올렸다. 럭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우리는 가상현실 구현이 왜 그리 어려운 지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했다. 일주일 뒤 그가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만든 프로토타입을 구입하거나 대여할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럭키는 그가 만든 모델 리프트(Rift) 프로토타입 중 하나를 보냈다. 2개월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E3비디오게임 엑스포에서 카맥은 둠3 게임을 럭키가 보내준 하드웨어로 선보이며 만나는 사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리프트를 찬양했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게임 스트리밍업체 가이카이(Gaikai) 최고상품책임자였던 브렌든 이리브는 럭키가 만든 데모를 시연해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투자를 제안했다. 이리브가 투자한 수십만 달러를 종자돈으로 삼아 2012년 7월 오큘러스 VR(Virtual Reality)이 탄생했다.크라우드펀딩으로 투자자 모아 성공

그러나 프로토타입 업데이트 완성을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럭키는 당시 막 시작 단계에 있던 새로운 전략,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했다. 모금은 킥스타터(Kickstarter)를 통해 진행했다. 가상현실의 열혈팬들로부터 총 25만 달러를 모집하겠다는 목표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오큘러스 VR은 크라우드펀딩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면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회사 중 하나가 됐다. 럭키는 300달러 이상을 투자한 사람 모두에게 리프트 프로토타입을 준다고 약속했다. 이를 이용하면 리프트와 연동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식 배분은 약속에 포함되지 않았다(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주식 매도는 아직 불법이다).

킥스타터에서 자금을 모집한 지 2시간 만에 투자 총액은 목표금 25만 달러를 초과하기 시작했다. 자금모집 첫 날, 럭키는 텍사스 댈러스에서 열린 퀘이크콘 게임 컨벤션에 참가해 리프트의 데모 버전을 선보이고 있었다. “표지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달랑 검은 테이블만 놓았는데 주말 내내 테이블 앞에 2시간은 족히 넘는 긴 줄이 항상 늘어서 있었다. 이걸 보고 ‘세상에, 이거 대단한 물건이 되겠군. 공상과학 마니아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가상현실에 흥미를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 럭키는 9522명의 투자자로부터 240만 달러의 돈을 모집했다. 이들은 나중에 오큘러스 VR이 페이스북에 인수되자 분노했다. 그래도 문제는 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가상현실이 실제 벤처사업으로 시작된 것이다. 30대 미만 파워피플에 뽑힌 다른 많은 사람들과 달리, 럭키는 자신의 경영자적 한계를 잘 알았다. 그래서 종자돈을 투자해준 브렌든 이리브를 CEO로 영입했다. 오큘러스를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알려준 존 카맥은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됐다.

입소문과 크라우드펀딩 등으로 럭키와 오큘러스 리프트는 슈퍼스타가 됐다. ‘사우스바이 사우스웨스트’ 회의부터 ‘게임개발자회의’까지 사람들은 가상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수 시간씩 줄을 섰다. 그러자 벤처 캐피탈 업계도 오큘러스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오큘러스는 총 1600만 달러의 자금을 모집했다. 6개월 뒤에는 안드레센호로위츠가 오큘러스의 기업가치를 3억 달러 가량으로 추산한 뒤 75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B 투자금 모집을 진행했다.

22살짜리가 만든 프로토타입 헤드셋의 가격이 3억 달러로 측정되다니, 너무 들뜬 반응 아니냐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천재적 투자 결정이었음이 1년도 지나지 않아 증명됐다.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크가 자신이 선호하는 경로, 즉 이메일을 통해 럭키와 연락을 시도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천재 소년’들은 기술과 공상과학 이야기를 나누며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2014년 1월, 주커버그는 오큘러스 사무실을 방문해 리프트를 테스트했다. 럭키는 말했다. “주커버그는 가상현실의 열혈팬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가상현실을 경험해야 한다는 우리의 비전을 그도 지지했다.” 설명을 듣던 주커버그는 단순히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새로운 통로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보게 됐다고 럭키와 이리브에게 말했다.페이스북이 20억 달러에 오큘러스 인수

그 후 2개월간 두 팀은 함께 계약 조건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오큘러스는 총 20억 달러에 페이스북이 인수했다. 4억 달러는 현금으로 선지급되고 나머지 금액은 페이스북 지분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3억 달러의 인센티브가 주어졌다. 페이스북의 회사 인수로 럭키는 부자가 됐다. 포브스 추산으로 럭키는 오큘러스VR 지분 25%를 보유하고 있다. 5억 달러에 해당하는 지분이지만, 최근 페이스북 주가 급등에 발맞추어 가치는 6억 달러로 상승했다. 물건을 팔지도 않고 프로토타입을 만지며 연구하는 동안 돈이 불어난 것이다.

성공에 도취되어 우쭐거릴 만도 하다. 그러나 럭키는 티를 내지 않는다. 그는 친구 7명(1명만 빼고 전부 오큘러스 직원)과 함께 그가 ‘코뮌’이라 부르는 캘리포니아 부촌 애서튼에 있는 집에서 산다. 이 곳에서 그들은 ‘슈퍼스 매쉬브라더스’ 같은 대규모 다중 사용자 토너먼트 게임을 함께 즐긴다. 그가 즐겨 입는 옷은 카고 반바지와 티셔츠, 혹은 하와이안 패턴이 들어간 셔츠다. 신발은 신는 일이 거의 없다. 갑자기 생긴 엄청난 돈을 썼다는 증거는 오직 하나, 전기차 테슬라 모델 S(Tesla Model S)다. 그는 테슬라를 싸구려 붉은색 카펫이 깔린 1986년형 GMC 컨버전밴과 번갈아 탄다.

그가 사는 ‘코뮌’은 페이스북 본사가 위치한 멘로 파크와 동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멘로 파크에서 엔지니어들 옆에 앉으면 럭키는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다. “오큘러스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는 모르더라”고 그는 말했다.

주커버그는 오큘러스를 인수했지만 럭키와 그의 팀에 상당한 자율권을 주었다. 페이스북은 행정 지원이나 자금 확보 등만 담당하고 나머지는 럭키와 그의 팀이 모두 알아서 한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 뿐”이라고 럭키는 말했다. 그는 멘로파크와 로스앤젤레스에서 남쪽으로 1시간 떨어진 도시 어빈(Irvine)에 있는 오큘러스 본사를 오가며 업무를 진행한다.

빌 게이츠나 주커버그처럼 천재에서 CEO로 가는 노선을 거부했을지는 모르지만, 자동차 영업사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본능적으로 이들보다 뛰어난 쇼맨십을 가지고 있다. 10월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포브스 30세 미만 파워피플 회의에서 그는 다양한 농담과 장난스런 몸짓(쿵푸 동작을 하기도 했다), 간결하고 명료한 대답으로 미국 최고의 청년 기업가 1500명을 매료시켰다. 연설 뒤 무대를 퇴장하면서도 그는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고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차림으로 체조선수처럼 1.5미터 높이 연단에서 뛰어내렸다.

럭키의 다음 행보는 지금까지 활동 중 가장 규모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삼성은 오큘러스와 함께개발한 휴대용 가상현실 헤드셋 장비를 199달러에 출시했다. 갤럭시 스마트폰과 함께 사용하도록 개발한 기기다. 소비자 시장에 완제품으로 내놓게 될 리프트 완성 버전의 출시 일정에 대해서 오큘러스 측근들은 올해 안에 출시될 것이라 예상한다.

개발 노력은 이곳 저곳에서 진행 중이다. 가장 먼저 도입될 분야는 물론 게임산업이다. “게이머들은 얼리 어답터”라고 럭키는 말했다. “100% 실감형 3D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산업이기도 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원과 호환되는 장비를 6월 공개할 예정이다. 3월에는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 4 비디오게임 콘솔로 사용할 VR 헤드셋 개발을 위해 ‘모르페우스 프로젝트’를 시작 한다고 발표했다.

그 뒤를 바싹 좇는 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댄펑 데니스 감독이 오큘러스 리프트용으로 360도로 촬영한 첫 영화 ‘Zero Point’를 개봉했다. 캘리포니아 라구나 비치에 위치한 넥스트VR은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라이브 공연을 가상현실 영상으로 제작했고, EON 스포츠라는 다른 회사는 프로 미식축구의 전설 마이크 디트카가 출연하는 가상현실 훈련 영상을 제작 중이다. 버추얼리얼포르노라는 스페인 벤처회사는 사용자들이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더욱 실감 나는 영상을 볼 것”이라고 약속하며 리프트와 호환 가능한 3D 동영상 사이트 유료회원을 모집 중이다.

이밖에 메리엇 호텔은 최근 리프트를 이용해 잠재 고객을 하와이 해변 혹은 런던 도심 한가운데로 보내주는 ‘가상현실 경험’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미 국방성 방위고등연구기획국은 헤드셋을 일종의 네트워크 시각화 도구로 활용해 해킹 공격을 예방하려 한다. 성공한다면 3D 인터넷속에서 ‘콘솔을 든 카우보이’ 같은 옛 공상과학의 꿈이 실현될 지도 모른다.휴대용 가상현실 헤드셋 삼성이 출시

이렇게 많은 개발 노력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하드웨어 표준으로 자리잡기 위한 경쟁은 곧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구글 글래스와 같은 증강현실(현실 세계와 융합된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온 구글은 지난 여름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스스로 구축할 수 있는 저렴한 가상현실 뷰어 개발을 위해 ‘구글 카드보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지난 달에는 애플이 “가상 현실 시스템 프로토타입 제작 및 사용자 테스트를 위한 고성능 앱을 개발할 엔지니어를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럭키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우리와 견줄 수 있는 상품은 지금 당장은 없는 걸로 안다”고 그가 호언했다. 그의 말이 과장은 아니다. ‘크레센트 베이’라는 암호명이 붙여진 리프트 최신 프로토타입의 경우, 가상현실의 체험이 물 흐르듯 이어져서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에픽 게임즈가 제작한 데 모 제품에서는 중무장한 군인들이 거대한 로봇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담고 있는데 이를 리프트로 경험하면 혼란스러운 전장 한가운데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용자는 영화 ‘매트릭스’ 주인공처럼 슬로모션으로 날아드는 총알을 피할 수 있고, 위를 올려다 보면 자동차가 머리 위로 뒤집어지며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병사들 사이를 걸어 다니거나 이들이 손에 든 무기를 살펴보고, 심지어 몸을 굽혀 이들이 손에 든 라이플총의 가늠장치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은 아마도 90년 전 TV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처음 들여다보며 느꼈을 평범한 사람들의 경이감과 비슷할 것이다. 팔머 럭키는 TV를 대중화하고 RCA에 엄청난 돈을 벌어준 데이빗 사르노프가 될까, 아니면 전자식 TV를 발명했지만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진 필로 판즈워스가 될까? 22세의 럭키는 어떻게 되든 만족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큰 회사를 세운 천재 소년이 바로 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 대신, 수백 개의 가상현실 업체가 헤드셋 수십억 대를 판매하는 걸 더 보고 싶다.”

- DAVID M. EWALT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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