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특별기획 | 한국프로야구 야수 출신 MLB 진출 1호 강정호 - “성공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은퇴해야죠”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5년 최대 1650만 달러에 계약… 입단 3년차부터 발돋움, 지난해엔 유격수 최초 40홈런


▎‘목동 나훈아’ 강정호가 ‘해적’으로 변신했다. 강정호는 미국프로야구 진출 첫해인 올해 1루수를 제외한 내야 전 포지션을 커버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한국 팬들이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MLB)와 친숙해진 것은 20년 전쯤부터다. 1994년 한양대 3학년이던 박찬호(42)가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와 인연을 맺었다. 박찬호는 92학번 동기생 가운데 임선동(은퇴), 고(故) 조성민에 이어 ‘넘버 3’ 정도로 평가됐지만 다저스는 박찬호의 가능성에 후한 점수를 줬다. 박찬호가 받은 계약금 120만 달러(약 13억 원)는 지금 가치로는 수십억 원 이상이다.

‘원석(原石)’이었던 박찬호가 세공 과정을 거쳐 보석으로 거듭나자 메이저리그는 한국야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당대를 대표하던 유망주들이 앞다퉈 미국으로 건너갔다. 박찬호 이후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한 한국선수는 모두 58명, 이 가운데 실제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른 선수는 14명이었다.

신년벽두 야구팬들에게 또 하나의 낭보가 전해졌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유격수 강정호(28)가 1월 17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5년 최대 1650만 달러(약 175억 원)에 계약했다. 5년째 접어들면 앞선 4년간의 성적에 따라 강정호가 팀 잔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에 앞서 피츠버그는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최고 입찰액 500만 2015달러를 적어내며 ‘강정호 모시기’에 적극 나섰다. 500만 2015달러는 한국선수로는 2012년 다저스와 계약한 류현진(28)의 2573만7737달러33센트에 이어 둘째로 높은 액수이고, 아시아인 야수로는 2000년 스즈키 이치로(1312만5천 달러), 2010년 니시오카 쓰요시(532만9천 달러, 이상 일본)에 이어 셋째에 해당한다.

강정호는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두 번째 선수이자 야수로서는 1호로 기록됐다. 투수와 야수를 통틀어 메이저리그 직행 선수 1호는 류현진으로, 그는 2013년과 지난해 2년 연속 정규시즌에서 14승을 올렸다.

1월 중순 ‘친정’인 넥센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담금질을 해왔던 강정호는 2월 6일(한국시간) 플로리다로 떠났다. 그곳에서는 2월 18일부터 피츠버그의 2015시즌 스프링캠프가 열릴 예정이다. 캠프의 실전훈련에 앞서 강정호는 본격적으로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플로리다로 이동한 것이다.위기에 더 강했던 ‘목동 나훈아’


▎강정호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대만과의 야구 결승전에서 홈런을 친 뒤 환호하고 있다. 이 대회의 금메달로 강정호는 병역특례혜택을 받았다.
[월간중앙]은 강정호가 플로리다로 이동하기 하루 전날인 2월 5일 30여 분 동안 그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강정호는 “넥센을 떠나 플로리다로 간다고 생각하니 이제 정말 메이저리거가 됐다는 실감이 난다”며 “솔직히 기술적으로는 자신 있다. 좋은 성적으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는 10여 년 전부터 강정호와 여러 차례 만났고 전화통화를 해봤지만 이번처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한국프로야구를 경험한 야수로는 MLB 진출 1호가 된 강정호이지만 그가 늘 ‘아스팔트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야구 인생 20년 동안 숱한 위기가 그를 가로막았다. 야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심각한 일을 겪은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강정호는 특유의 정신력과 집중력을 발휘해 위기를 넘었다.

광주일고 3학년이던 2005년 강정호는 기로에 섰다. 연고 구단인 KIA 타이거즈가 초고교급 투수라는 동성고 한기주를 1차 지명한 데 이어 2차 1라운드에서도 청주기공 잠수함 투수 손영민을 낙점했다. 당시 이런 상황을 맞은 강정호가 “포지션에 관계없이 KIA 유니폼을 입고 싶었는데…”라며 고개를 떨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정신적 충격이 작지 않았다.

KIA로부터 외면받은 강정호에게 손을 내민 구단은 넥센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였다. 현대는 박진만(SK)의 뒤를 이를 유격수로 강정호를 선택했다. 현대와 함께 고려대도 강정호를 탐냈다. 강정호로서는 둘 다 놓치기 아까운 카드였다. 현대와 고려대 사이에서 갈등하던 강정호는 “어차피 갈 프로라면 당장 가겠다”며 계약금 1억4천만원, 연봉 2천만원에 도장을 찍고 현대행을 택했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입은 프로 유니폼이었지만 그 벽은 예상외로 높았다. 고교 때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던 강정호지만 프로에서는 유격수에만 전념키로 했다. 하지만 공격도 수비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김재박 전 감독의 보이지 않는 지원 속에서도 그가 1군 경기에 출전한 것은 단 10경기에 그쳤다. 이듬해인 2007년에도 강정호는 희망을 안고 새해를 맞았다. 지난 1년의 쓰라린 경험이 보약이 될 것으로 믿었다. 김재박 감독에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김시진 전 감독도 “강정호에게 기회를 많이 주겠다”고 공언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서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훈련 도중에 동료의 타구가 얼굴을 강타해 강정호는 오른쪽 눈 아래 뼈가 완전히 함몰되는 사고를 당했다. 장정석 매니저는 “야구는 고사하고 정상적인 얼굴을 되찾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강정호의 프로 2년차 성적은 20경기 출전에 15타수 2안타(타율 0.133)가 전부였다.

강정호는 그때를 떠올리며 “죽을 만큼 아팠지만 경기 중 타구에 맞은 게 아니라 공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2년차 때 경기에 나가지 못했던 대신 죽도록 웨이트트레이닝에 매달렸다. 그때 힘이 많이 붙었다”고 말했다.

프로 입단 후 2년 동안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강정호에게 2008년은 그의 선수 운명을 좌우할 해였다. 만약 3년차마저 허송세월하게 된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변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고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유고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던 현대 유니콘스가 구단 운영을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우리 히어로즈가 탄생 했지만, 새 구단은 선수들의 연봉을 후려치는 바람에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전지훈련도 해외로 나가지 못하고 2월에 제주에서 보름가량 소화한 게 전부였다.새로운 시작, 넘어야 할 산들


▎넥센의 김성갑 코치는 수비와 관련해 강정호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
강정호는 그해에도 결국 2군에서 개막전을 맞아야 할 처지인 듯했다. 그런 때 강정호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이가 장채근 배터리코치(현 홍익대 감독)였다. 장 코치는 당시 이광환 감독에게 “주전 포수 김동수의 나이가 많으니 뒤를 이를 선수가 필요하다. 강정호가 포수로 뛴 경험은 많지 않지만 어깨가 워낙 강한 데다 방망이에 소질도 있으니 1군에 데리고 다니면서 키우자”고 파격적인 건의를 한 것이다.

당시 이 전 감독도 “보아하니 가수 나훈아를 닮은 게 인물도 남자답고, 힘도 좋아 보인다. 장 코치 뜻대로 하라”며 강정호를 개막전 1군 엔트리에 올려줬다. 나훈아의 열렬한 팬인 이 전 감독은 강정호를 두고 “잘 봐라, 잘 봐. 나훈아랑 꼭 닮았다. 인물값 할 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이때부터 강정호의 별명은 ‘목동 나훈아’가 됐다. 어렵사리 1군 엔트리에 올랐지만 그에게 머잖아 기회가 찾아왔다. 주전 내야수 정성훈(LG)이 부진한 틈을 타 3루 자리를 대신했고 곧이어 동기생 황재균(롯데)을 밀어내고 유격수를 맡게 된 것이다. 입단 3년차에 주전자리를 꿰찬 것은 운에 가까웠다. 하지만 강정호는 그 후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팔팔 뛰었고, 2012년부터는 3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한국프로야구의 간판 유격수로 우뚝 섰다.

강정호는 올해 목표를 묻자 “수치로 말하기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격수로 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황에 따라 유격수, 2루수, 3루수 등 빈자리가 생길 때 백업요원으로 나갈 것 같다. 계약 후 면담할 때 닐 헌팅턴 단장도 그렇게 귀띔해줬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강정호에게 넘어야 할 산도 만만찮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될 강적은 팀내 주전 유격수인 조디 머서(29)다. 머서는 지난해 팀이 치른 162경기 가운데 14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55, 12홈런, 55타점을 기록했다. 데뷔 후에 첫 번째 풀타임 시즌치고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MLB.COM’은 머서를 지난해 메이저리그 ‘베스트 유격수’ 6위로 꼽았다.

하지만 머서가 넘어야 할 산의 끝은 아니다. 2루에는 닐 워커, 3루에는 조시 해리슨이 버티고 있다. 탬파베이에서 이적해온 션 로드리게스도 수비가 탄탄하다. 강정호로서는 누구 하나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노릇이다.

2월 4일에도 별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피츠버그가 볼티모어 오리올스로부터 내야수 스티브 롬바르도치(27)를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온 것이다. 롬바르도치는 1루를 제외한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전문 선수로 꼽힌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피츠버그가 강정호를 당장 주전으로 쓰기 위해 스카우트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며 “그렇다고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 모든 팀, 모든 시즌에서 그렇듯 부상 등 예상치 못했던 변수는 반드시 생긴다.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헌팅턴 피츠버그 단장이 최근 미국 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그는 “지금 당장 강정호의 자리는 없다. 스프링캠프에서 강정호는 2루수와 3루수로도 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송재우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팀내 주전선수들을 존중해주면서도 새로운 도전자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며 “메이저리그 단장들의 전통적인 리더십이 반영된 발언”이라고 해석했다.“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 될 것”


▎강정호와 류현진은 절친이자 라이벌이다. 2012년 10월 4일 강정호가 류현진을 상대로 첫 홈런을 터트린 뒤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강정호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목동구장보다 훨씬 큰 규모의 피츠버그 홈구장인 PNC 파크에 적응하는 일이다. PNC 파크는 강정호처럼 장타력을 보유한 오른손타자에게 불리하다고 알려졌다. 왼쪽 펜스가 멀기 때문이다. 홈에서 외야 펜스까지 거리는 중앙이 122m, 왼쪽 99m, 오른쪽 98m이지만, 좌중간은 125m로 굉장히 길다. 목동구장(113m)과는 무려 12m나 차이가 난다.

강정호는 “헌팅턴 단장도 당장 성적에 신경 쓰기보다 매 경기 열심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생각한 목표는 없다. 잘 준비하면서 한 경기, 한 경기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결국은 적응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을 좀 주면 잘할 자신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넥센에서 뛰면서 강정호는 개인 기록에서 신기원을 열었다. 포수와 더불어 수비 부담이 가장 큰 유격수를 맡으면서도 117경기에서 타율 0.356, 40홈런, 117타점의 대기록을 이룬 것이다. 40홈런은 52홈런을 기록한 옛 동료 박병호에 이어 홈런 랭킹 2위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격수로서는 최초로 이룬 위업이었다. 강정호 이전 유격수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은 그의 광주일고 17년 선배인 이종범이 기록한 30홈런(1997년)이었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강정호의 잠재력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한 시즌 풀타임으로 뛸 경우 타율 0.270에 15홈런 이상 가능할 것”이라며 “모든 선수에게 다 해당되는 말이지만 팀에서 강정호가 잘 적응할 수도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광주일고 시절 강정호의 은사였던 허세환 인하대 감독도 비슷한 전망을 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미국에 진출한 선수들보다 한국프로야구를 9년이나 경험한 강정호의 성공가능성이 더 크다”며 “고교 때도 그랬던 것처럼 강정호는 팀이 필요로 할 때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소화하는 선수였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유격수·2루수·3루수 등 구멍이 생길 때 나가서 잘해준다면 생각보다 일찍 주전 기회를 꿰찰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긍정 마인드가 성공 밑거름 될 것”


강정호의 고교시절 타격·수비코치였던 김선섭 광주일고 감독 역시 강정호의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성품, 기술, 파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대체로 한국선수들은 파워가 뛰어나면 유연성이 떨어지고, 유연성이 좋으면 파워가 부족한데 강정호는 둘 다 갖췄다. 한마디로 말 근육이다. 그게 강정호 힘의 원천”이라며 “(강)정호가 고3 때 팀이 우승하기 위해 투수, 포수, 3루수로 번갈아 기용했다. 다른 선수들 같았으면 볼멘소리를 냈을 텐데 정호는 늘 오케이였다.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미국에서도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인드 면에서는 강정호에게 더 주문할 게 없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세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는 한국프로야구와 비교해 힘과 기술이 한 차원 높다. 투수들은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를 쉽게 뿌릴 뿐 아니라 다양한 변화구까지 갖추고 있다.

타자들의 타구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태극마크를 달았던 김종국(현 KIA 코치)은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다이빙캐치를 시도하다 왼쪽 어깨근육을 크게 다쳤다. 당시 김종국은 “타구의 속도가 엄청났을 뿐 아니라 글러브에 들어온 순간 강하게 드라이브가 걸렸다. 국내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타구였다”고 말했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강정호는 외다리타법을 연상시킬 정도로 타격 시 왼 다리를 높게 들어 오른 다리까지 끌어오는데 바로 이 부분이 약점이 될 수 있다”며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변화구에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프링캠프 기간 왼 다리의 높이와 움직임을 조금 조정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선섭 감독은 수비와 관련해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는 동작은 매우 간결한 데다 어깨도 강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다만 타구가 정면으로 왔을 때 너무 과감하게 대시한다는 점과 타구를 조금 급하게 처리하는 점이 아쉽다. 그 부분만 보완한다면 더 말할 것이 없다”고 조언했다.

여러 전문가와 은사들의 애정 어린 충고에 대해 강정호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선수’인 만큼 반드시 성공해서 좋은 모델로 남고 싶다고 했다. “사실 야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미국을 꿈꿨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야구가 어느 정도 제 생각만큼 되면서 ‘기회가 되면 나도 미국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프로야구 출신으로 메이저리그 직행 1, 2호인 류현진과 강정호의 맞대결에도 큰 관심이 모아진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속한 다저스와 중부지구 피츠버그는 올해 두 차례 3연전을 벌인다. 8월 8일부터 피츠버그의 홈에서 3연전을 펼친 뒤 9월 19일부터는 다저스타디움에서 재대결을 갖는다. 맞대결이 성사되려면 류현진의 선발등판 로테이션과 강정호의 주전 도약이 맞아떨어져야 한다.“현진이와 대결? 홈런 치고 싶어요”

2006년 프로입단 동기생인 두 사람은 국내 리그에서도 여러 번 맞대결을 펼쳤고, 결과는 류현진의 압승이었다. 강정호는 류현진을 상대로 타율 0.176(34타수 6안타) 1홈런 2타점에 그쳤다. 하지만 마지막 대결이 펼쳐진 2012년에는 강정호가 10타수 3안타 2타점으로 강세를 보였다.

강정호는 “서로에 대해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승부가 될 것 같다”면서도 “(류)현진이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지만 승부는 승부다. 만나게 된다면 홈런을 치고 싶다”고 승부욕을 숨기지 않았다. 강정호는 광주일고, 류현진은 인천동산고를 나왔지만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둘은 고3이던 2005년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때 태극마크를 달았고 류현진은 에이스, 강정호는 중심타자로 팀을 이끌었다.

1월 중순 류현진은 한국에서 휴식을 취하다 넥센의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애리조나 서프라이즈를 찾아 강정호를 만났다. 류현진은 “(강)정호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 붙박이 주전을 꿰차 풀타임을 뛴다면 한 시즌에 홈런 20개는 넘길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만 28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프로야구를 평정한 뒤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서게 된 강정호의 꿈은 뭘까? 추신수(33·텍사스 레인저스)가 갖고 있는 한국인 타자의 여러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일까, 한국인 선수 중 최장수를 기록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백만장자가 되는 것일까?

“한국에서 9년 동안 뛰면서 개인적인 아쉬움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한 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한 게 한이라면 한입니다. 30대 후반까지 10년 정도 메이저리그에서 잘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서 넥센에서 은퇴한다면 많이 행복할 것 같아요. 넥센의 우승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테고요.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도 한국에서 보낼 겁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