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삶의 양식이자 태도”라고 말하는 남훈 대표는 지난해 남성 편집매장 알란스를 오픈해 패션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골목. 2층짜리 하얀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아담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곳은 남훈 대표가 종로점과 두타점에 이어 지난해 9월 세 번째로 문을 연 알란스 강남점이다. 재킷, 셔츠, 구두는 물론 가방, 넥타이, 벨트, 안경, 스카프, 시계, 우산, 향초, 피규어 등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제품을 갖췄다. 해외에서 수입한 제품이 20%, 국내 제품이 80%를 차지한다. 2층에는 슈트와 셔츠를 맞출 수 있는 테일러링 공간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1·2호점이 대중적인 남성을 위한 가성비 좋은 국내 브랜드 위주였다면 강남점은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해 좀 더 고급스런 아이템을 추가했다. 여기에 남 대표가 직접 제작하는 의류와 액세서리도 함께 선보인다. 남 대표는 “대한민국 평균 남성들의 패션 감도를 조금이라도 올려주자는 차원에서 ‘알란스’를 기획하게 됐다”며 “가격에 대한 부담 없이 누구나 쉽게 매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고 말했다. 해외출장을 다녀왔다고 들었다.이태리 밀라노에 열흘 있었다. 내 업무의 반은 컨설팅이다. 남성복 분야에서 내 도움이 필요한 회사들을 선별해 일하고 있다. 주요 파트너는 신세계백화점, 현대카드 등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브랜드나 제품을 소개하는 일을 한다. 나머지 반은 매장을 운영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해외는 얼마나 자주 나가나.해외출장은 주로 1, 2월과 6, 7월에 몰려 있다. 보통 한 달에 두 번 정도 나간다. 1, 2월에는 올해 가을·겨울 제품을 주문하고 6, 7월에는 내년 봄·여름 제품을 주문한다. 시즌보다 6, 7개월 정도 빠르게 움직인다. 지금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옷들은 1년 전에 기획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패션 비즈니스는 리스크가 크다.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같지 않고 옷이라는 것이 규격화된 제품이 아닌지라 변수가 많다. 패션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심리도 잘 읽어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알란스는 남자들을 위한 선물가게 다른 매장과 차이점이 있다면?매장의 정확한 이름은 ‘ALAN’S HOUSE OF GIFT’, 즉 선물가게다. 남자들이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는 곳, 여자들이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줄 선물을 살 수 있는 곳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누구나 부담 없이 선물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재미있는 아이템을 발굴해서 선보인다. 1년 사이에 매장을 3개 오픈하고 신세계에 팝업 스토어도 열었다. 반응도 좋은 것 같은데 비결이 뭔가?비결이라기보다는 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들의 기호가 변하고 취향이 변하고 있다. 백화점에 가면 다양한 제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지만 나만의 제품을 찾기는 힘들다. 고객의 테이스트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착한 가격에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매장에 실력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제품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브랜드를 선정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을 것 같다제품의 가격보다 그 이상의 가치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그런 니즈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포브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브랜드는.특정 브랜드보다는 맞춤복을 권하고 싶다. 여기저기 치수를 재고 옷 만드는 과정을 접하다 보면 쏠쏠한 재미도 느껴진다. 완성된 옷을 입어 보면 기성복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매장을 추가로 오픈할 계획이 있는지.올해는 내실을 좀 더 다지고 기회가 되면 내년쯤에 백화점에 입점을 하고 싶다. 지방에도 매장을 하나 정도 오픈할 생각이다.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남 대표는 패션업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유명인사다. ‘엠포리오 아르마니’ 브랜드 매니저를 시작으로 ‘캘빈클라인’ ‘에스카다’ ‘던힐’ 등의 바이어를 거처 제일모직의 ‘란스미어’ 팀장을 지내면서 남성 클래식 패션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2007년에는 성공하는 남자들의 패션 원칙을 담은 ‘남자는 철학을 입는다’를 출간한 바 있으며, 삼성그룹을 비롯해 국내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클래식 복식에 대한 강의도 하고 있다. 2011년 7년간 몸담았던 ‘란스미어’를 떠나 2012년 더 알란 컴퍼니를 설립한 남 대표는 현재 패션 컨설턴트, 패션 칼럼니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활동 중이다.클래식 스타일 전도사답게 인터뷰 당일에도 남 대표는 네이비 컬러의 더블 브레스티드 스트라이프 슈트에 검정색 타이와 구두를 멋스럽게 매치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복장인가?”라는 질문에 남 대표는 대답 대신 주변에 있던 매장 직원에게 눈을 돌렸다. 그에게 “매일매일 풀 착장으로 새롭게 변신하는 남 대표를 보는 것이 즐겁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남 대표는 “클래식은 삶의 양식이자 태도”라고 말한다. “클래식이란 오래도록 가치를 존중받는 문화를 대하는 애티듀드다. 그런 생각이 복장에 이르면 유행을 타는 옷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 스타일을 선호하게 된다.”네 살 때부터 양복 맞춰 입어
▎알란스 강남점에서는 실용적인 해외 브랜드와 국내 디자이너들의 감각 있는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언제부터 옷에 관심을 갖게 됐나.외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내가 네 살 때부터 양복을 맞춰 주셨다. 그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옷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거 같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옷보다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클래식한 옷에 더 끌렸다. 친구들이 운동화에 열광할 때도 나는 구두에 관심이 더 갔다. 항상 양복을 갖춰 입고 구두를 신고 있는 내 모습을 친구들은 어색해 했다. 하지만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으면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더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부터 2011년까지 패션업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러다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고 국내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브랜드를 만날 수 있었다. 뉴욕에는 비싸고 좋은 제품도 많았지만 싸고 좋은 제품도 정말 많았다. 그것들을 국내에 소개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지금의 매장을 구상하게 됐다. 슈트만 강조하면 자칫 고루해 보일 수도 있을 거 같다.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슈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더 문제인 거 같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성인이 되고 직장에 들어가게 됐을 때 비로소 양복을 처음 접한다. 당연히 어색하고 제대로 입는 방법을 알리 없다. 이런 상황은 나이가 들고 임원이 돼서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슈트를 멋지게 차려 입은 나이 지긋한 CEO를 많이 만날 수 있다. 단순히 겉멋이 아닌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 남성들이 슈트에 관심을 갖고 즐겼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패션 전문가로서 항상 옷을 잘 입어야 한다는 부담은 없는지.제일모직 시절, 회사에 보타이(bow tie)를 하고 출근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인사과에서 얘기하길 회사 창립이래 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평소 이렇게도 입어 보고 저렇게도 입어 보며 다양한 시도를 한다. 물론 내 스타일에 대해 호불호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슈트를 입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내 원칙은 나와 슈트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옷만 튀는 것은 곤란하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 로고가 박혀 있는 화려한 넥타이나 신발, 벨트를 좋아하지 않는다.올봄에는 포멀한 슈트가 인기 올봄 슈트 트렌드는.지난 5~6년 동안 비즈니스 캐주얼이 유행했다. 타이를 풀고 양복 대신 재킷을 입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것 같다. 사실 캐주얼은 양복보다 변수가 더 많은 차림이다. 위, 아래가 달라 입기도 더 어렵다. 캐주얼이란 원래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었다. 요즘 같은 경기 불황 속에서 캐주얼을 제대로 입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앞으로 포멀한 슈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기업에서도 비즈니스 캐주얼 대신 슈트를 권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슈트를 더욱 멋스럽게 만들어줄 추천 아이템이 있다면.한 가지만 꼽으라면 단연 구두다. 구두는 전체적인 스타일을 살릴 수도 망칠 수도 있다. 정말 질 좋은 가죽구두 하나는 장만하라고 권하고 싶다. 올봄 분명히 멋쟁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슈트란 어떤 의미인가.남자를 대변해주는 명함이다.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준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내 궁극적인 목표는 가르치는 것이다. 패션 비즈니스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은 많은데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생생한 경험들을 그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글 오승일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이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