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한자 이야기 ⑫ 도로(道路)] 국가와 사회의 근간이 되는 도로

머리로 헤아리는 길 ‘도(道), 사람이 밟고 다닌 흔적 ‘로(路)’… 길이 막히면 물자는 이동을 멈추고 사람 사이도 멀어지게 마련이다


▎길은 국가와 사회의 근간으로 길을 제대로 닦지 못하면 모든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 / 사진·중앙포토
도로(道路). 이 말 뜻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우리가 늘 밟고 다니는 길을 한자로 일컬을 때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낱말이다. 단어를 이루는 두 글자 道(도)와 路(로)는 새김이 거의 같다. 그러나 차이도 있다.

앞의 道(도)는 추상적인 의미를 많이 간직하고 있어 路(로)와는 조금 다르다.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는 首(수)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자. ‘머리로 헤아리는 길’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공자(孔子)와 노자(老子) 등 중국의 선철(先哲)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진리의 길을 이 글자로 표현한 이유다.

그에 비해 路(로)는 의미가 더 구체적이다. 유희(劉熙)가 펴낸 <석명(釋名)>에는 이 글자를 ‘드러내다’라는 새김을 지닌 한자 露(로)로 풀었다. 사람이 밟고 다녀 ‘드러난’ 흔적, 그런 의미에서의 ‘길’이라고 본 셈이다.

길은 국가와 사회의 근간이다. 사람이 오가고, 물자가 넘나들며, 마소와 수레가 움직이며, 싸움이 붙어 군대가 이동한다. 이 길을 제대로 닦지 못하면 사람의 움직임, 물자의 이동이 불가능하거나 크게 움츠러든다. 그래서 옛 왕조에서는 이 길을 닦고 보전하는 데 국력의 상당부분을 쏟았다.

중국 고대 왕조인 周(주, BC 11세기~BC 5세기)는 도로를 매우 엄격하게 관리했던 모양이다. 관련 기록을 보면 “길이 단단하고 화살처럼 쭉 뻗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아울러 수도에 해당하는 곳과 그 바깥의 교외지역 도로를 구분했다. 당시 도회지와 시골의 경계는 성벽으로 갈랐다. 성벽 안쪽을 國中(국중)으로 표현했고, 그 바깥을 鄙野(비야)라고 적었다. 아울러 그곳의 도로를 經(경), 緯(위), 環(환), 野(야)로 구분했다.

經(경)은 남북으로 낸 길, 緯(위)는 동서로 뻗은 길이다. 도회지 외곽을 두른 성벽을 따라 낸 길이 環(환)이고, 성벽 바깥인 지역의 길을 野(야)라고 적었다. 서양인들이 지구를 longitude(경도)와 latitude(위도)로 나눴고, 동양에선 이를 經度(경도)와 緯度(위도)의 한자로 번역했다. 성 바깥인 鄙野(비야) 지역의 도로에도 등급을 매겼다.

路(로), 道(도), 塗(도), 畛(진), 徑(경)이다. 가장 작은 길인 徑(경)은 사람이 겨우 다닐 만큼 좁은 길, 畛(진)은 마소가 다닐 수 있는 길이다. 그보다 큰 길이 塗(도), 다시 더 넓은 길이 道(도), 가장 큰 길이 路(로)였다고 한다.

街(가)도 매우 큰 길을 가리킨다. 行(행)과 圭(규)의 합성 글자인데, 사전적인 풀이에 따르면 行(행)은 ‘가다’라는 새김 외에 ‘네 갈래 길’의 의미가 있으며 圭(규)는 ‘평지’의 뜻이라고 한다. 평지에 네 갈래 길이 맞물려 있는 꼴이다. 일반적으로는 양 옆에 민가와 상점 등이 즐비한 큰 거리를 가리킬 때 이 글자 街(가)를 썼다는 설명이다.길이 뚫려야 소통도 가능해져

이 行(행)이라는 글자가 부수로 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글자가 여럿이다. 衝(충)이 그 한 예인데, 이 글자를 우리는 “충격적이네”라면서 많이 쓴다. 왜 ‘충격’일까. 한자로는 衝擊이다. 衝(충)은 고대 싸움터에 등장했던 전차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주로 상대의 성벽을 허물 때 등장하는 거대한 전차였다. 그런 전차가 때리는(擊) 일이 바로 衝擊(충격)이다.

이 글자 衝(충)은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큰 길’의 의미를 얻었다. 대단한 크기의 수레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길이라는 뜻이다. 그런 길이 모여 있는 곳은 어딜까.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要衝(요충)이라는 말을 쓴다. ‘전략적 요충’이라고 표현할 때다.

강구연월(康衢煙月)이라는 성어를 한때 자주 썼다. 평화로운 모습을 표현하는 성어다. 康衢(강구)라는 두 글자 모두 아주 큰 길이다. 사통팔달(四通八達)의 성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을 가리킨다. 煙月(연월)은 은은하게 내(煙)가 끼어 있는 상태에서 비추는 달빛을 표현했다. 따라서 전쟁이 없어 평안한 상태를 가리키는 성어다. 衢(구)라는 글자에도 行(행)이 들어가 있는 점에 주목하자.

일반적인 길을 가리키는 글자 중에는 途(도)가 있다. 우리 쓰임도 제법 많다. 이 글자는 塗(도), 涂(도)와 통용했었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쓰는 한자는 途(도)다. 道(도)와 路(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수레가 다닐 수 있는 제법 넓은 길에 해당한다. “중도에서 뜻을 접었다”고 할 때의 ‘중도’는 한자로 中途다. 길을 가던 중이라는 뜻이다. “별도로 해라”고 할 때의 별도는 한자로 別途, 쓰임새를 가리키는 ‘용도’는 한자로 用途다.

좁은 길도 많다. 앞에서 소개한 徑(경)이 대표적이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가는 길이다. 蹊(혜)와 徯(혜)도 모두 같은 뜻이다.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오솔길 정도가 이에 맞을 듯하다. 지름길을 한자어로 적을 때는 捷徑(첩경)이다. 가로질러 빨리 목표에 이르는 길이니 아주 좁을 것이다. 그래서 徑(경)으로 표현했다.

阡陌(천맥)도 좁은 길이다. 논이나 밭이 있는 시골지역의 작은 길을 일컬었던 한자다. 앞의 阡(천)은 남북으로, 뒤의 陌(맥)은 동서로 난 작은 길이다. 중국에서는 ‘낯설다’는 말을 陌生(맥생)으로 적는데, 원래는 작은 길을 걷다 마주친 생소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 그런 사람을 陌路人(맥로인) 또는 陌路(맥로)라고 적었던 데서 유래했다.

이렇듯 길의 종류는 많다. 넓은 길, 좁은 길 모두 사람의 통행을 위한 시설이다. 이런 길이 막히면 물자는 유통을 멈추고, 사람의 사이도 멀어진다. 국정교과서를 비롯해 사사건건 대립과 반목을 벌이는 우리 정치권의 길은 막혀 있는 듯하다. 정파적 이익이나 협소한 주장만으로 상대를 이기겠다는 생각이 가득해서 그렇다. 그래서 떠올려본 길에 관한 낱말들이다.유광종 -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중국연구소 부소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뒤 홍콩에서 중국 고대 문자학을 연구한 중국 전문가로 <중앙일보> ‘분수대’ 칼럼을 3년여 동안 집필했고, ‘한자로 보는 세상’도 1년 동안 썼다. 저서로 <연암 박지원에게 중국을 답하다> <장강의 뒷물결> <제너럴백-백선엽 평전> <지하철 한자여행 1호선> 등이 있다. 현재 출판사 ‘책밭’ 고문으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