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에서 발견된 이 벽화는 고대 그리스 여성시인 사포의 초상화라는 견해도 있다. 지적인 그리스 여인의 한 전형을 매우 깊이 있게 표현했다. / 사진제공·김승중
“아테네의 시민들이여, 들어보시오. 이 도시가 나의 소녀시절에 선사해준 그 많은 호사와 영예에 알맞은 유용한 조언을 할 테니 잘 들어 보시오. 내가 7살 적에는 아테나 여신의 신성한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아레포로스 역할을 했고; 10살이 되어서는 아테나 여신의 제단에 올릴 보리를 찧었으며; 그 다음에는 사프란 금빛 가운을 벗어 던지고 브라우로니아 페스티벌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의 곰 노릇을 했소; 그리고 마침내 다 큰 처녀가 되었을 때, 목에다가 무화과 목걸이를 차고 신성한 바구니를 든 명예로운 카네포로스로 선정되었소.” -아리스토파네스 <뤼시스트라타:Lysistrata) 638∼647행이 구절은 그 유명한 그리스 희극의 걸작,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BC 445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나 BC 385년경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됨. 그의 전성기는 27년간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 BC 431~BC 404년 시기와 겹친다)의 <뤼시스트라타>(BC 411년 작품)에서 여성들의 코러스가 하는 중요한 대사 대목이다. 지난 회에서 소개한, 같은 작가의 또 하나의 작품인 <에클레지아의 여인들>(Ekklesiazusai, BC 391년 작품)에서는 여주인공 프락사고라와 그의 동료들이 아테네의 직접 의회인 에클레지아(ekklesia)를 점령한다. 그러나 위에서 소개한 <뤼시스트라타>의 여인들은 아테네 도시의 중요 기관, 바로 신성한 종교적 중심지인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해버리는 것이다. 뤼시스트라타라는 재치 있고 사명감을 가진 한 여인을 앞세운 아테네의 여성들은 기나긴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년)을 끝내기 위하여, 그녀의 지시에 따라 ‘섹스 파업(sex strike)’을 시행한다.이 섹스 파업이라 함은 스파르타, 테베, 그리고 아테네의 여인들이 모여 그들의 남편이 평화조약을 맺기 전까지는 섹스를 제공하지 말자는 협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테네가 더 이상 군비지출을 못하도록, 도시의 전쟁기금이 적립된 금고가 위치한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점령해버리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터무니 없는 전제이지만, 극도의 풍자를 통해 현 사회를 비판하는 것 또한 아리스토파네스의 트레이드마크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은 그리스 중기 코미디의 유일한 표본들이며 그 과감한 판타지, 용서 없는 독설, 격렬한 풍자, 부끄러움을 모르는 음탕한 유머, 그리고 정치적 비판의 날카로운 필봉은 자유로운 그리스 정신을 대변했다. 그는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몇 번이나 휴전조약을 체결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파괴적인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정권을 장악한 사이비 민주주의자들, 민중선동가들의 욕망의 소산이며, 도덕성 없는 소피스트들의 영향이라고 보았다.아리스토파네스 희극에서 엿보는 그리스 여성
▎헤르메스 (Hermes)가 세 명의 여신을 이끌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를 찾아가는 장면이 새겨진 도기. 보스톤 박물관 소장. / 사진제공·김승중
평화를 되찾기 위해 제시한 ‘섹스 파업’이라는 해결책이 물론 순순히 진행될 리 없다. 섹스에 굶주린 남편들은 물론이고, 협의를 본 여성 중에서도 몇몇은 말도 안 되는 쓸데없는 핑계를 대며,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불평하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여자는 남자와 달리 이성이 딸려서 성적인 욕구를 제지하지 못하고 망나니같이 행동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러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그대로 여성들이 행동해야만 하겠느냐고 따끔하게 야단치는 뤼시스트라타의 책망이야말로, 그 당시 사회의 여성에 관한 전반적인 평판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뤼시스트라타라는 여인의 입으로 직접 전하는 다양한 훈계는 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 본인이 쓴 대사이기 때문에 그 당시 여성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간접적인 자료마저도 드문 터라 우리는 그나마 과감한 코미디 작가의 눈으로 보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일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결국에는 아크로폴리스를 점유한 여성들과 그를 되찾고자 하는 남성 노인네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집단적인 남녀 간의 성 대결(Battle of the Sexes)이다. 섹스를 원하는 남성들과 이를 교묘하게 피하는 여성들의 실랑이가 너무도 재미있게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실랑이는 결국 아테네인들과 스파르타인들의 평화조약체결이라는 해피엔딩을 향해 전개되고 있지만, 이 해학적인 장면들은 실제로 사적인 공간에서 자주 체험하는 현상을 풍자적으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한 웃음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금욕을 고집하는 여성들이 점유한 아크로폴리스가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진 성역(temenos: 우리나라 ‘솟터’와 같은 개념)이라는 것도 잠시 생각해볼 만하다. 처녀 여신인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가 관할하는 구역이 바로 아크로폴리스다. 여기에 지어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성전이 파르테논 신전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파르테노스(parthenos= virgin), 즉 처녀 아테나 여신에게 받쳐진 성전이기 때문이다. 왜 아테나가 처녀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가 상징하는 남성적인 미덕인 지식(wisdom)과 전투력(military prowess)에 관련이 있다. 아테나 여신은 처녀라는 사실 덕분에 중성적인 성격을 띨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섹스를 거부하는 동안 아크로폴리스를 점유한 이 여인들을 보호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처녀인 아테나 파르테노스 여신의 임무이기도 한 것이다.그러면 다시금 서문에서 소개한 <뤼시스트라타>에 나오는 여성 코러스의 대사를 살펴보자. 아크로폴리스를 되찾겠다는 노인들(남성 코러스)을 대상으로 하는 이 구절은, 그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논하며 소녀의 교육과정을 소개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는 7세의 어린 소녀시절부터 시집갈 수 있는 16~18세의 처녀시절까지 최고 엘리트(elite) 신분의 딸들이 할 수 있는 공적인 역할을 나열한 구절이다. 이에 관해 곧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겠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대 그리스의 여성들과 그들의 삶을 그리는 문헌적인 자료가 어지간히 찾기 힘든데다가, 그 모든 자료는 남성적인 시점에서 쓰였기 때문에 그 당시 여성들의 삶에 관하여 편견 없이 이해하기가 특별히 힘들다그리고 신화적인 비유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중요한 자료이긴 하지만 그것조차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더더욱 고대 그리스의 미술, 특히 도기화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삶과 모습, 그리고 고고학의 렌즈를 통해 보는 물질문화의 기층이 가리키고 있는 사실들이, 고대 그리스 여성의 이해에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그리스 여성의 유일한 공공장소는 분수터
▎향료를 담는 레키토스(lekythos) 모양의 BC 540년경의 도기. 아티스트는 아마시스 페인터(Amasis Painter)로 추정된다. 베틀에서 직물을 짜는 두 어린 여인, 그 주변에 옷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모든 절차를 그린 도기화가 담겼다. 양모로 실을 짜고, 다 짜여진 옷감을 접는 모습도 보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 사진제공·김승중
▎파운텐 하우스 (Fountain House) 에서 아낙네들이 물을 긷는 장면. 물이 뿜어 나오는 동물 머리 모양의 분수터는 아테네에서 BC 6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그리스 사회 역시 동서를 불문한 수많은 고대문명과 다름없이, 남녀의 성별에 따라 남녀의 신분이 크게 격리된 사회였다. 대개 움직임이 가정 내에 한정된 여성들과는 대조적으로, 남자들은 집 외부의 도시공간-즉, 밖에 있는 거의 모든 공공의 공간을 무대로 삼았다. 아르케익 시대(BC 600~BC 480년) 이전부터 유행했던 블랙피겨 도기화 (Black-Figure Vase Painting)의 관습대로 우리는 항시 여자의 노출된 살은 흰색 페인트로 칠해지는 테크닉을 목격한다. 이는 바로 격리된 사회에서 자주 목격하는 미의 기준을 보여준다. 집안에서 베틀 앞에 앉아 천을 짜고 옷을 만드는 일을 맡은 여인들은 쨍쨍한 그리스 하늘의 햇볕을 쪼일 기회가 많지 않았다.살이 희면 흴수록 아름답고 고귀한 부유한 집안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몸종이 있으면 마실 물을 뜨러 갈 일도 없었을 테니까. 보통 여인들은 집 밖으로 나올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BC 6세기 중반에 들어서 아테네의 독재정치가인 파이시스트라토스가 처음으로 곳곳에 세워 놓은 샘물 분수, 즉 파운텐 하우스(Fountain House)를 찾아 물을 받는 여인들을 우리는 그 당시의 도기화 속에서 자주 엿볼 수 있다. 개울가에 모여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한담을 나누는 모습과도 같이, 고대 아테네의 여인들이 나날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공공의 장소가 바로 분수터였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장면들은 물을 긷기 위해 사용되는 히드리아(hydria)라 불리는 도기 표면에 종종 표현되어 있다. 도기그림 속의 여인들이 머리에 이거나 물을 긷는 장면 안에서, 바로 히드리아 도기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는가?
▎판아테나이아를 표현한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하는 이오니아식 프리즈(Ionian Frieze). 아레포로스들이 서 있는 와중에 어린 아이와 사제가 아테나 여신에게 바칠 페플로스를 접고 있다.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모든 여인이 배우는 작업이 바로 실을 짜고 베틀을 이용하여 옷감을 짜는 일이었다. 부엌이나 집안일은 종들이 도맡아 할지라도, 직물을 짜는 일은 무조건 신분을 불문하고 미덕이 넘치는 행위며 자랑스런 기술이었던 것이다. 열 살이 채 안 된 귀족집안의 어린 소녀들을 아레포로스(arrhephoros: 아테네의 특별한 페스티벌인 아레포리아를 담당하는 7~11세의 어린 여성들)로 선정하여 공식적으로 아테나 여신상에 입힐 페플로스(peplos: 모직으로 좀 두껍게 짜인 여성의 전형적인 원피스 의복)를 1년 내내 아크로폴리스에 거주케 하면서 짜게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의류 생산이 그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인 정체성에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고대 그리스 미술의 가장 대표적인 마스코트인 남성 누드 상과는 달리 여성을 나타내는 조각상은 항시 정교하고 우아한 의상을 입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초기 아르케익 시대인 BC 7세기 말부터 정립된 패턴이다. BC 4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마저도 누드 조각상으로 표현된 예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바로 누드로 훈련하고 경쟁하는 운동선수의 신체적인 완벽함과 아름다움이야말로 남성적인 아레떼라고 한다면, 여성적인 아레떼와 미덕(virtue)은 그녀의 옷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옷을 만드는 기술이 정교하고, 의상의 모습이 아름답고, 또 옷감이 풍요로운 질감을 과시하면 할수록 고귀한 신분의 출신이라는 뜻이다.베를 짜는 행위가 직접적으로 여인의 고귀하고 정숙함에 연관된 경우는 다름이 아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의 왕비 페넬로페의 이야기다. 20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자신의 남편이며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며 끝까지 정조를 지킨 페넬로페는 말 그대로 베틀 앞에 앉아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생사여부를 모르는 남편 오디세우스를 한없이 기다릴 수만도 없었다. 그 이유는 그녀를 원하는 수많은 청혼자가 몇 년째 이타카 궁전에 눌러 앉아서 음식과 술을 진탕 퍼마시며 왕실의 부를 말아먹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들이 물려받아야 마땅한 재산을 동내고 있는 청혼자들 중 한 사람을 골라야만 일이 마무리될 텐데, 그녀는 새 신랑을 고르기 전에 연로한 시아버지의 장례식에 쓸 수의를 먼저 짜야 한다는 핑계를 대었던 것이다. 꾀돌이 오디세우스의 부인답게 영리한 그녀는 낮에 열심히 짠 것을 밤에 다시 풀어버리면서 근 3년이라는 시간을 끌어왔던 것이다.
▎1. 페넬로페가 베틀 앞에 앉아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오디세우스를 기다린다. / 2. 두 명의 여인을 뒤에 두고 활에 시위를 성공적으로 맨 오디세우스가 화살을 겨냥한다. / 3. 구혼자들이 쩔쩔 매며 오디세우스의 공격을 방어하려 한다. 한 사람은 벌써 화살을 등에 맞았다. / 사진제공·김승중
페넬로페가 보여준 인내력, 용기, 지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출토된 많은 코레(kore: 쿠로스의 여성 카운터파트. 서있는 소녀상) 중에서 색상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샘플들. 이들은 모두 BC 6세기 말경의 작품이다.
그녀의 꾀가 언젠가는 발각될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도 10년을 헤매다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가 설정한 그만이 당길 수 있는 특별한 활의 활쏘기 콘테스트에 참여한다. 그 이벤트에서 모든 청혼자를 한 방에 물리치는 그 시원한 클라이맥스는 오랜 인류문학의 드문 본보기가 되었다. 두 작품의 도기화로 보는 오디세이의 결정적인 순간들이 스키포스(skyphos) 컵의 앞뒷면을 이용해 영리하게 표현되어 있다.첫 도기화의 앞면에는 페넬로페가 목을 빼고 베틀 앞에서 앉아서, 젊은 아들인 텔레마코스와 함께 슬픈 듯 남편을 기다린다. 그런데 뒷면에는 그녀도 모르게 기막힌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거지차림의 여행객으로 가장한 오디세우스의 발을 씻겨주는 그의 유모 유리클레이아가 어릴 적의 상처를 보고 그가 오디세우스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는 장면이 아닌가!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고 있는 페넬로페를 놀리기라도 하듯, 우리에게는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살짝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 하나의 기상천외한 다음 작품을 보면 오디세우스가 활에 시위를 메고, 화살을 어딘가에 겨냥한다. 반대편에 숨겨있는 장면을 보아야 그제서 쩔쩔매는 구혼자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 피바다가 되기 직전의 통쾌한 결말이다!호메로스 <오디세이>의 이러한 내러티브를, 모던한 페미니즘(feminism)의 렌즈를 통해 볼 때, 페넬로페는 남편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주체성이 모자라는 여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그 당시의 사회적 뉘앙스를 무시하고 섹시스트적인 이론체계의 일면만 고려하는 단편적인 생각이다. 고대 그리스의 사회적인 틀이라는 범위 내에서 페넬로페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녀의 한 인간으로서의 막강한 인내력, 용기, 따스함과 지력의 슬기에 대하여 마땅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
▎양모를 실로 잣는 여인. BC 490년경 브리고스 페인터(Brygos Painter)의 작품이다. 그녀가 들고 있는 실타래 옆에 “HEPAIS KALE”(여자아이가 아름답다)라고 적혀있다. / 사진제공·김승중
그녀가 보인 아레떼(arete)는 고문당해가며 막무가내로 단순한 순결을 고집하는 춘향과는 달리, 꾀를 써서 유리한 상황을 연출해내면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무사히 정조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20년 후 거지차림을 하고 나타난 오디세우스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조심성을 보이는 것도 페넬로페의 용기와 슬기에 속한다. 그녀는 오디세우스의 신원을 확실히 시험하기 위해 또 하나의 영리한 꾀를 생각해낸다. 그녀는 신하에게 일부러 혼인 침대를 밖으로 옮겨내라고 시키고는 오디세우스의 반응을 지켜본다. 뿌리가 깊게 박힌 올리브 나무 자체를 깎아서 만든 침대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남편 이외에는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곧 버럭 화를 내며 자신이 직접 만든 침대를 그동안 처분했느냐고 항의한다. 그리고 나서야 그녀는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신중함을 보인다. 오디세우스의 내면까지 시험하는 것이다.아테네의 수호신으로 전반적인 일을 맡은 다양성을 과시하는 아테나 여신과는 달리, 또 하나의 ‘처녀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좀 더 본격적으로 결혼 전 소녀들을 관할하는 여신이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아폴로의 쌍둥이 누나이지만, 태어나자마자 동생의 출산을 도와주었다고 해서, 아기출산을 관할하는 여신이기도 하다.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성역 중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아테네에서 40㎞정도 동쪽에 위치한 브라우론(Brauron)이라는 곳이다. 아르테미스 성전과 ‘ㄷ’자 모양의 큰 건물, 그리고 신성한 샘터와 이피게니아(Iphigenia: 아가멤논의 맏딸이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쳐지는 희생 제물이 될 뻔했는데 아르테미스가 구하여 그의 여사제가 되었다는 인물. 그녀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영웅으로 추대되었다)를 영웅숭배하는 건물 등 중요 건축물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이 성역 고유의 특이한 기물과 물건들이 많이 출토되었다.수많은 조각상이 어린 소녀들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것들은 자랑스런 부모들이 자신의 딸들을 보호해준 아르테미스에게 감사의 표현으로 바치는 보티브(votive offering: 신전에 바쳐지는 공물)일 확률이 가장 높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브라우로니아 페스티벌에서 행해지는 아르크테이아라는 행사가 <뤼시스트라타>의 대사에서 언급했듯 소녀들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르크테이아라는 것은 사춘기에 접어드는 소녀들이 아르테미스에게 신성한 곰 노릇을 하며 춤을 추는 예식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사프란 가운을 벗어 던지고 곰 노릇을 한다는 것의 더 깊은 의미는 무엇일까?‘버진 새크리파이스’, 결혼과 죽음의 이중주
▎브라우론 성역의 ‘ㄷ’자형 스토아(stoa)와 그 앞에 있는 신성한 샘물. / 사진제공·김승중
▎브라우론 (Brauron)에서 출토된 어린 아이들의 석상. 아르테미스 (Artemis)에게 바치는 토끼를 들고 서 있는 이른바 아르크토스(곰), 즉 곰을 흉내 내는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 사진제공·김승중
실은 브라우론의 성역에 가장 특징적인 예식의 한 측면으로서, 아테네에서 선정된 몇몇의 소녀가 해마다 캠프를 가듯, 아르테미스 여신의 보호 아래에서 1∼2년 머무르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김나지움을 다니며 시내에서 신체적, 지적인 교육을 받는 남자 아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여자 아이들은 시외 절간 같은 더 자연적인 환경에서, 집을 떠나 여자로서의 임무를 배우는 것이었다. 여자 아이들만 있는 공간이라 유일하게 누드로 행하는 춤의 예식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브라우론에서 출토된 도기에 종종 보이기도 한다. 남자들은 항시 문화적인 이성의 영역에서 교육되는 반면, 여자들은 어린 시절로 한정되긴 하지만 오히려 더 자연적인 환경에서 동물적인, 혹은 본능적인 특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혼의 여성을 동물에 비유하여 ‘잡아서 길을 들여야 할 존재’로 보는 견해가 자주 드러난다. 결혼 이전의 소녀들을 보호하는 아르테미스가 수렵의 여신이라는 사실이 우연치 않은 것이다.어쩌면 사프란 가운이라 함은 이피게니아가 아버지 손에 희생당할 적에 입고 있던 그 샛노란 가운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트로이에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 처녀를 희생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 아가멤논의 칼날 아래에 목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테미스가 그녀를 사슴으로 재빨리 바꿔치기하여 그녀를 구해내었다고 하는데, 어떤 문헌에 의하면 그녀는 계획대로 그냥 죽임을 당했다. 아가멤논이 결국에는 딸을 살해한 자신의 운명에 따라 부인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버진 새크리파이스’(virgin sacrifice: 처녀 죽이기)라는 모티브가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인데, 내 생각으로는 처녀 상태에서 결혼 상태로의 변환을 죽음과 연관 지어서 상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페르세포네(Persephone)가 죽음의 신 하데스(Hades)에게 납치당해 저승에서 할 수 없이 그의 왕비노릇을 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이 경우에 죽음과 결혼은 거의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는가! 이피게니아가 순결하게 입고 죽었던 사프란 가운을 벗어던지고 아르테미스 여신의 동물을 흉내 낸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소녀시대에서 벗어나 결혼을 할 나이로 접어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이 생각을 마무리짓기 위해 마지막으로 고려할 소재는 바로 영웅 중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Thetis)의 이야기다. 그녀는 네레이드(Nereid: 바다의 신 네레우스의 딸들을 일컫는 말)로서 물의 요정이므로 100% 신적인 존재이다. 허나 공교롭게도 그녀에게 결정타는 그녀의 아들이 아버지보다 특출나고 훌륭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그 예언이 무서워 바람둥이 제우스신을 비롯하여 어떤 신도 그녀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에 여신으로서 유일하게 인간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펠레우스와 테티스 결혼신화가 상징하는 것
▎1. 브라우론에서 출토된 크라테리스코스. 여기에는 나체로 뛰어가는 2~3명의 여자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 / 2. BC 7세기 말 6세기 초 소필로스(Sophilos)의 작품으로 첫 번째 띠에 표현된 소재가 펠레우스(Peleus)와 테티스(Thetis)의 결혼식이다. / 사진제공·김승중
펠레우스(Peleus)라는 용감한 청년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대로 순순히 인간에게 시집을 갈 테티스가 아니었다. 펠레우스는 프로테우스(Proteus: 또 다른 나이가 많은 바다의 신)에게 배운 대로 테티스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이것저것 사나운 짐승이나 물, 불 등의 위험한 요소로 모양을 바꾸는 동안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한결같이 그녀를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 그 결과 지쳐버린 테티스는 결국에는 ‘길들여’졌고, 그녀는 펠레우스와 거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테티스를 드디어 시집보내는 올림포스 신들이 마치 그녀를 처분한 것을 경축이라도 하듯, 펠레우스와 그녀의 결혼식의 행렬은 그 어느 신의 결혼식 못지않은 장관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독자들은 바로 이 결혼식에 초대되지 않은 이유로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Eris)가 던진 황금의 사과가 트로이 전쟁의 씨앗이 된 것을 기억하리라. 그리고 이 두 사람의 결합에서 태어난 영웅이 바로 트로이 전쟁을 파란만장한 곡절 끝에 그리스의 승리로 이끌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운명의 용장 아킬레우스다.이러한 테티스의 이야기는 혼인에 이르기까지 소녀가 겪어야 하는 준비 과정과 결혼식을 거쳐 하루아침에 처녀에서 여인으로 변신하는 과격한 과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미혼의 처녀는 길을 들여야 하는 와일드한 동물이라는 개념은 브라우론에서 행해지는 아르테미스의 컬트뿐만 아니라, 테티스가 펠레우스에게 잡히는 이야기를 통해 아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다. 펠레우스가 테티스를 붙잡고 ‘길들이는’ 장면이 BC 6세기 말부터 도기화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신랑이 신부의 손목을 잡고 집으로 가는 결혼행렬에 아프로디테와 페이토가 참여한다. / 사진제공·김승중
테티스가 펠레우스에게 길들여지는 이야기는 남편에게 종속되는 미지의 결혼생활에 대한 소녀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원형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테티스같이 훌륭한 여신도 인간 남편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하물며 나 같은 평범한 아이는 물론이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육체적인 행동 자체도 신혼 첫날밤 이루어지는 체험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추측하는 독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혼인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많은 도기화는 주로 혼인 예물로 사용되는 길죽한 루트로포로스(loutrophoros: 긴 목과 두 개의 손잡이를 특징으로 하는 아주 길쭉한 도기) 도기나 혼례의식에 직접 사용되는 성수를 담는 레베스 가미코스(lebes gamikos) 도기가 주다.그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신부를 치장하고 예물을 선보이는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두 명의 여신이 있다. 사랑과 욕구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와 그녀의 아들 에로스. 그리고 그 옆에는 페이토, 즉 설득의 여신이 서있다. 성공적인 혼인을 이루기 위해서 아프로디테의 막강한 섹시함과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강한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페이토의 모습이 신부 곁에 자자하게 나타나는 사실은 그만큼 고대 그리스의 어린 신부들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특별히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는 뜻이 아닐까?생산적 문학의 주체였던 매춘부들
▎여신 테티스(Thetis)를 길들이는 페레우스(Peleus). 테티스의 변신술에도 불구하고 펠레우스는 그녀를 집요하게 장악했다. / 사진제공·김승중
고대 그리스의 여성의 삶에 관해서 우리가 아는 바는 말할 수 없이 빈곤하다. 그렇지만 지난 몇십 년 동안 여성학의 발전에 도움을 받아서 그동안 여성에 대한 많은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시각의 이론적인 연구가 행해지고 있다. 이 중 하나의 카테고리인 헤타이라(hetaera: 매혹적이라는 의미의 어원에서 온 말), 즉 고대 그리스의 기생에 관한 연구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지난번 심포지온(symposion)을 논할 때 잠깐 소개한 이들에 관해서는 고대 그리스의 여성의 삶에 관해서 우리가 아는 바가 빈곤하기 때문에, 실상 심도 있는 분석을 여기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은 제대로 된 문헌 교육과 음악적인 교육을 받은 연예인과도 같은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금기된 좋은 집안의 고귀한 아내와 딸들과는 달리, 이 여성들은 명성이 자자한 황진이와 같은 기생처럼 그 사회에서 환히 빛나는 존재로 대접받았던 것이다. 그 차이점이 항상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포르네(porne)라고 불리는 매춘부와는 성격이 확실히 다르다.그러나 포르네(돈으로 살 수 있는 여자의 뜻)조차도 저열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었으며 독립적인 계약의 주체였다. 이들은 최초의 여성 자영업자들이었던 것이다. 여성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사회적 독립 기반을 가지고 당당하게 삶을 운영해나갔던 것이다. 이들은 재산을 가지고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으며, 정치가들과 친선관계를 갖고 간접적으로나마 정치 이데아에 한몫한 여인들도 있다. 여자들은 아내, 첩, 창녀의 세 카테고리 속에 들어갔지만 그중에서 ‘창녀’가 가장 유동적이고 범상을 일탈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만큼 남성에게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했고, 그만큼 경멸당하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생산적인 문학의 주체였다. 시니컬한 인간의 측면으로부터 로맨틱한 인간의 측면을 다 구현하고 있는 특별한 존재였다.어떠한 사회를 들여다보아도 비범한 인물은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회 시민의 대부분을 이루는 보통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우리는 여성이 활개를 치는 오늘날에 와서, 여성이라는 독자적 의식을 가지고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모범이 될 수 있는 진정한 헤로인(heroine)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왔다. 겉모습이나 비정상적으로 강조하는 대중미디어의 왜곡, 힐러리 클린턴의 터무니없는 패배, 그리고 무엇인가 인간의 본질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는 듯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성의 문제만이 아닌 인간의 문제를 좀 더 깊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음악교육을 받는 여인들. 그리스 도기화에서 이런 장면은 많지 않다. 이들이 기생인 헤타이라인지 보통 여인인지는 파악하기가 힘들다.
특히 한국사회의 자본주의화, 민주적 법제화가 빚어내는 개방적 공간으로 여성의 진출이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상위시대라고도 명명될 만큼의 한국역사의 변화된 국면 속에서도 여성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진정한 인간평등의 가치관은 아직도 뿌리내리고 있질 못하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여성들이 기나긴 역사의 하중 속에서 받는 피해의식, 갖가지 트라우마로 인하여 과도하게 자신의 허세를 드러내면서 진정한 인간해방 주체로서의 자기철학을 확립하고 있질 못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존경받을 수 있고, 인류의 미래를 리드해나갈 수 있는 여성상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 여성이 스스로 페미니즘의 한계를 타파하고 휴머니즘의 주체가 되는, 그러면서도 남성대중의 존경을 받고 그들을 선도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인격의 깊이를 확보해야 하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지나온 인류의 역사이야기는 끊임없이 되씹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김승중 -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했다. 프린스턴대 천체물리학과에서는 우주론을, 콜롬비아대학 예술사고고학과에서는 희랍미술을 전공해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콜롬비아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에는 버지니아대학에서 미술사학 석사코스를 밟았다. 이 시기 다양한 현지발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고고학의 생생한 지식을 얻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희랍미술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