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계속됐던 ‘한국경제 3월 위기설’은 달력이 4월로 바뀌고 나서야 사라졌다. 하지만 ‘3월 위기설’의 자리를 며칠 만에 경기회복론이 차지했다. 이번에는 소멸 기간이 비교적 빨랐다.
경기회복 논란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경기지표 개선 기미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이르다”가 대세기 때문이다. 경기회복론은 시작 주체도 정부고 진화에 나선 것도 정부였다.
4월 3일 기획재정부는 경제동향 보고서(그린북)에서 “지난해 말 이후 침체 국면이 지속되고 있으나 올 들어 일부 지표를 중심으로 경기 흐름이 소폭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긍정적 언급이 그린북에 등장한 것은 본격적으로 경기가 내리막을 탄 지난해 말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에 반향이 컸다.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은 런던에서 열린 G20 금융정상회의에서 “한국도 예외 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회복기를 맞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시중에선 경기회복론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런 발언의 근거는 최근 나온 국내 경기 관련 지표였다. 먼저 무역수지의 흑자기조가 큰 몫을 했다. 3월 무역수지는 46억1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면서 월간으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시장의 안정세가 지속된 점도 작용했다.
3월 이후 코스피지수는 북한 로켓 발사 등 악재에도 26%나 상승해 현재 1300대를 유지하고 있다. 2월 산업활동 동향도 호전됐다. 경기선행지수는 14개월 만에 상승했고 주요 지표인 광공업 생산도 1월보다 6.8% 증가했다. 제조업 재고출하 비율은 지난해 12월보다 16.1% 낮아진 113.1이다.
“단기자금의 증가세 일단 멈췄다”
하지만 경기회복론이 탄력을 받은 지 6일 만인 4월 9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나섰다. 윤증현 장관은 “몇 가지 긍정적인 신호가 있지만 지금은 낙관도 비관도 하기 힘든 혼조세”라고 말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기준금리를 2%로 동결하면서 “상반기에 경기가 바닥을 치고 올라간다는 것을 뚜렷이 느끼긴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경기회복론 진화세력’의 무기도 회복론에 쓰였던 것과 같은 경기지표다. 무역수지가 최대 폭의 흑자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내실이 문제라는 주장은 여전했다. 3월 무역수지에서 수입은 전년 동월 대비 -36%를 기록해 수출 감소폭인 -21.2%보다 더 컸다.
생산을 위해 수입하는 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불황기에 잘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광공업생산 증가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2월 광공업생산 증가율이 1월보다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1, 2월 평균은 여전히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4%나 줄어든 상태기 때문이다. 고용시장의 악화도 경기회복론을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증거자료로 쓰인다.
2월 취업자는 전년 동기보다 14만2000명이나 감소하면서 6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주식시장의 선방도 저금리 시대를 맞아 시중 자금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렸다고 풀이하는 전문가가 많다. 박동순 금감원 거시분석국장은 “단기자금의 증가세는 최근 멈췄지만 그렇다고 감소세로 바뀌었다고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1월 설비투자와 국내 기계수주율이 모두 전년 동기보다 25.3%, 47.8%나 줄어든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금융시장분석과장은 “기계수주 등 기업의 투자와 관련한 지표가 살아나야 경기회복을 가늠할 수 있는데 아직은 바닥권”이라고 말했다. 경기회복론이 어려운 상황에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성급한 경기회복론은 화를 불러올 수 있다. 현재 한창 진행 중인 산업계 구조조정에 자칫 차질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자업계의 한 CEO는 “버틸 수 없는 기업들이 경기회복론에 기대 일단 버텨나 보자며 사채 등으로 연명하려 하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