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은 직설적이다. 에둘러 말하는 법이 거의 없다. 지난 2월 10일 취임하는 날 3%를 고집하던 정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마이너스 2%로 낮춰버렸던 그다.
아직 단언할 수는 없지만 윤 장관이 솔직했다. 이번엔 어떤가? 지난 16일 윤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800조원은 분명 과잉 유동성”이라고 밝혔다.
수퍼추경을 비롯한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선 정부의 경제 수장이 직접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과잉 유동성이면 긴축을 해야 한다. 즉각 한국은행이 유동성 흡수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시장도 너무 이른 ‘과잉 유동성 논란’에 놀랐지만 더 당황한 것은 정부였다. 이튿날 재정부는 “유동성 수준은 과도하지만 경기부양 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 말이 더 모순이다.
달리 말하면 “시중에 돈이 너무 풀려있지만 계속 돈을 풀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증시와 부동산 단기 과열을 막기 위한 의도된 구두개입이건, 한은이 국채를 매입해 돈을 풀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이었건, 사실 윤증현 장관은 적절한 때에 정확한 지적을 했다.
실제로 시장엔 돈이 넘쳐 있다. 지난 2월 부동산담보대출 잔액은 전달 대비 3조원이나 늘었다. 총 유동성은 전달에 비해 27조원 증가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퍼붓는 통화공급 확대로 해외 유동성까지 국내 증시로 들어오면서 외국인이 주도하는 유동성 장세가 연출됐다. 불과 넉 달 전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지난해 12월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역대 최대인 1%포인트 내린 직후 이성태 한은 총재는 “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에는 비상수단을 쓸 수 있는데 지금은 (수축기의) 경계선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작 필요한 곳 돈줄 끊겨 더블딥 우려
2000년 1월 이후 지난 2월까지 98개월간 한국은행이 본원통화를 한 달 만에 10% 이상 올린 것은 2006년 12월뿐이었다(정부가 은행 지급준비율 인상조치를 시행한 달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통화량 지표라고 할 수 있는 M2(광의통화)는 오히려 줄었다.
금융기관 유동성(Lf)과 광의유동성(L)도 소폭 줄었다(그래프 참조). 순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나 신용의 양이 감소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분석 결과 지난 98개월 동안 전월 대비 본원통화가 늘어날 때 광의통화가 줄어든 경우는 14차례였다.
하지만, 대부분 본원통화 증가율이 소폭이었기 때문에 12월 현상과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지난해 5월 이후 통화량 증가율 둔화를 주시하고 있던 중앙은행로서는 심각한 신용경색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준 금리 1%포인트 인하는 그런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물론 당신만 해도 잠복해 있던 700조원 상당의 유동성은 주목되지 않았다. 이 돈이 시중에 추가 공급된 돈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가 바라는 실물경제 회복과는 상관없이 자산 버블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긴축 압박을 받고 정작 돈을 풀어야 할 곳에 돈을 풀 수 없다. 경기가 본격 회복되기 전에 이렇게 부푼 거품이 다시 빠지면 바로 더블딥이다. 이 점을 윤 장관이 지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