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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예측하지 말고 스스로 만들라 

피터 드러커의 ‘지식 사관’
드러커는 ‘지식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설파
역사에서 배우는 CEO 리더십 

정리=경계영 인턴기자 gykyung@joongang.co.kr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

한국에서 피터 드러커가 유명해진 데는 한 사람의 노력이 지대했다. 바로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의 ‘역사에서 배우는 CEO 리더십’ 2기 과정의 둘째 연단에는 이 전 총장이 올랐다.

그는 피터 드러커의 ‘지식 사관’으로 고대에서 21세기까지의 역사를 재해석했다. 다음은 강의 요약. 흔히 처칠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칭송한다.

인류에 재앙을 가져오려는 히틀러를 처칠이 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에 물어보자. 인도의 대규모 식민지 개발 계획을 세운 처칠은 인도에서 결코 환영 받을 수 없다. 인도 입장에서는 처칠에 맞선 히틀러가 더 위대하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그만큼 중요하다. 무엇을 위주로 역사를 서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피터 드러커는 핵심 단어를 지식으로 놓고, 지식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유추’한 피터 드러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미국의 독립 운동가 토머스 제퍼슨이 활동할 때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토지,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불가피했다. 지식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더 이상 전쟁이 필요치 않다. 핵심 생산요소는 지식이기 때문에 피 흘리지 않는 혁명이 시작됐다.

한국의 30~50대 주부들은 의식하진 못하지만 지식혁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자녀가 사회인이 됐을 때 영어를 동시통역할 정도로 완벽해야 한다는 걸 느끼고 비싼 돈을 들여 외국에 보낸다. 농경시대에 사냥꾼이 짐승을 쫓아다녔듯 내 머릿속의 지식을 가장 비싸게 사줄 사람을 찾아다닐 이에게 영어는 필수다.

피터 드러커는 도요타의 위기를 이미 예견했다. 10여 년 전 ‘일본은 등대가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일본은 미국을 따라잡겠단 목표와 인구 1억 명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목표, 두 가지를 1980년대 달성한 이후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데 실패했다. 혹자는 피터 드러커를 미래학자라고 한다.

그래프 위의 두 점을 알아 그래프를 그리고 x값을 찾는다면 그래프가 어떻게 될지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는 함수의 그래프처럼 이미 일어난 일을 갖고 미래를 유추했을 뿐이다. 피터 드러커는 자신의 역사관인 지식에 따라 시대를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첫째, 산업혁명 이전.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은 실용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연마하고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학에 능한 아르키메데스는 전쟁 무기를 개발하고 배를 설계했지만 주변에 확산시키지 않고 모두 부수어버렸다. 인간에게 보급되면 불행해질 걸 걱정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식이 활용되는 산업혁명 전까지 소득 변화가 거의 없었다. 둘째, 지식이 인간의 외부에 적용돼 자본생산성 향상을 이룬 산업혁명 시대다.

기존 지식과 기발한 지식이 결합해 새로운 지식,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과 같은 발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당시 발간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어떻게 하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킬 수 있을까가 아닌 인간도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기독교의 지배로 인해 기술 발전에 대해 체념하고 사후 하느님의 세상을 꿈꿨기 때문이다. 셋째, 지식이 생산방식에 적용돼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킨 노동생산성혁명 시대다. 프레더릭 테일러의 3S(표준화, 단순화, 전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고, 어떤 일이든 누구나 배울 수 있게 『백과전서』를 만들어 지식을 공유했다.

마지막으로 지식혁명시대가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참전 군인들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만들어 지식근로자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식이 결합해 또 다른 지식을 만들어내는 발판을 마련했다.

스스로 계획 세우는 지식근로자가 돼라


애덤 스미스는 ‘산업을 움직이는 필수적 요소가 사치이기 때문에 비난 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반기업정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정신의 이상을 ‘삶, 자유, 그리고 행복’으로 삼았다.

‘행복’을 위해 물질적 풍요가 기반이 돼야 하고 이는 물질적 소비수준을 높이는 기업의 성공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J B 세이(Say)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을 통해 진정한 기업가정신을 제시했다.

이는 조셉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를 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피터 드러커는 경제학 분야에만 머무르던 이론을 경영학으로 확장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지식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 활동했기 때문에 지식을 먹고사는 데 활용할 생각을 못했다. 잘사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못사는 사람에게 나눠줌으로써 자유와 평등을 이루고자 했다.

동시대의 인물인 카를 마르크스와 프레더릭 테일러, 함께 잘살자는 생각을 했다. 마르크스는 남의 걸 뺏어 평등해지고자 했지만 테일러는 노동생산성을 높여 노동자들이 임금을 더 받도록 했다. 케인스는 사유재산은 인정했지만 국가가 나서서 경제를 운영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우수한 정책을 내세우면서 부패하지 않은 사람이 정치하길 바랐다.

그러나 실제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포퓰리스트의 몫이다. 계획은 케인시안이 하더라도 연임을 목적으로 한 정치인이 실행에 더 잘 옮길 것이다. 이를 안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강조하며 개인에게 맡길 것을 주장했다. 고객을 만족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건 기업의 몫이다. 국가는 거대하기 때문에 정부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분배 오류를 지니고 있다.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지식혁명 시대의 지식근로자는 육체노동자와 다르다.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어떤 일을 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지식혁명은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고 조용히 진행된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국경이란 개념 없이 내 지식을 이용해줄 사람을 찾아가는 신유목민이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하느님이 개인을 구원할 것이라 믿었다. 카를 마르크스는 사회(국가)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했다. 이제 피터 드러커는 ‘지식이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테러가 빈발할지 모른다. 지식과 지식이 연결된 사회라도 인간끼리 연결된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한 번에 터질 것이다. 소영웅주의의 등장이다.

지금 새로운 미래사회를 만드는 변화기다. 어떤 미래사회가 좋은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피터 드러커가 말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create it!). 그리고 그게 바로 기업가정신이 아닐까.

1033호 (201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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