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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피터 드러커가 유명해진 데는 한 사람의 노력이 지대했다. 바로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의 ‘역사에서 배우는 CEO 리더십’ 2기 과정의 둘째 연단에는 이 전 총장이 올랐다.그는 피터 드러커의 ‘지식 사관’으로 고대에서 21세기까지의 역사를 재해석했다. 다음은 강의 요약. 흔히 처칠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칭송한다.인류에 재앙을 가져오려는 히틀러를 처칠이 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에 물어보자. 인도의 대규모 식민지 개발 계획을 세운 처칠은 인도에서 결코 환영 받을 수 없다. 인도 입장에서는 처칠에 맞선 히틀러가 더 위대하다.역사를 보는 관점은 그만큼 중요하다. 무엇을 위주로 역사를 서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피터 드러커는 핵심 단어를 지식으로 놓고, 지식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유추’한 피터 드러커‘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미국의 독립 운동가 토머스 제퍼슨이 활동할 때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토지,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불가피했다. 지식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더 이상 전쟁이 필요치 않다. 핵심 생산요소는 지식이기 때문에 피 흘리지 않는 혁명이 시작됐다.한국의 30~50대 주부들은 의식하진 못하지만 지식혁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자녀가 사회인이 됐을 때 영어를 동시통역할 정도로 완벽해야 한다는 걸 느끼고 비싼 돈을 들여 외국에 보낸다. 농경시대에 사냥꾼이 짐승을 쫓아다녔듯 내 머릿속의 지식을 가장 비싸게 사줄 사람을 찾아다닐 이에게 영어는 필수다.피터 드러커는 도요타의 위기를 이미 예견했다. 10여 년 전 ‘일본은 등대가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일본은 미국을 따라잡겠단 목표와 인구 1억 명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목표, 두 가지를 1980년대 달성한 이후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데 실패했다. 혹자는 피터 드러커를 미래학자라고 한다.그래프 위의 두 점을 알아 그래프를 그리고 x값을 찾는다면 그래프가 어떻게 될지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는 함수의 그래프처럼 이미 일어난 일을 갖고 미래를 유추했을 뿐이다. 피터 드러커는 자신의 역사관인 지식에 따라 시대를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첫째, 산업혁명 이전.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은 실용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연마하고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수학에 능한 아르키메데스는 전쟁 무기를 개발하고 배를 설계했지만 주변에 확산시키지 않고 모두 부수어버렸다. 인간에게 보급되면 불행해질 걸 걱정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식이 활용되는 산업혁명 전까지 소득 변화가 거의 없었다. 둘째, 지식이 인간의 외부에 적용돼 자본생산성 향상을 이룬 산업혁명 시대다.기존 지식과 기발한 지식이 결합해 새로운 지식,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과 같은 발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당시 발간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어떻게 하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킬 수 있을까가 아닌 인간도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혁신적인 것이었다.그때까지 사람들은 기독교의 지배로 인해 기술 발전에 대해 체념하고 사후 하느님의 세상을 꿈꿨기 때문이다. 셋째, 지식이 생산방식에 적용돼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킨 노동생산성혁명 시대다. 프레더릭 테일러의 3S(표준화, 단순화, 전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고, 어떤 일이든 누구나 배울 수 있게 『백과전서』를 만들어 지식을 공유했다.마지막으로 지식혁명시대가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참전 군인들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만들어 지식근로자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식이 결합해 또 다른 지식을 만들어내는 발판을 마련했다.
스스로 계획 세우는 지식근로자가 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