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때 독창적인 마술쇼를 선보여 천재로 불린 남자가 있다. 지금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환자 신세다. 곁에는 그를 12년째 헌신적으로 간호한 여자가 있다. 남자는 날개 부러진 새가 된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진다. 콧등에 앉은 파리 한 마리 제대로 쫓을 수 없고,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무력할 따름이다. 남자는 법원에 안락사를 허락해달라는 청원을 낸다. 장애인들에게 ‘희망이란 이런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던 그의 돌연한 결정에 안락사를 둘러싼 격렬한 논란이 시작된다.
11월 3일 개봉한 인도영화 ‘청원’은 보고 나면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해진다. 누군가에겐 사소한 몸짓 하나가 누군가에겐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일일 수 있다. 내가 무심히 흘려보내는 이 시간이 죽음을 앞둔 누군가에겐 행복을 느끼는 마지막 순간일 수 있다. ‘청원’은 이런 깨달음을 선사하는 영화다. 그렇다고 마냥 심각하지도 않으니 더 좋다. 이 영화엔 웬만한 ‘막장드라마’보다 흥미로운 요소가 가득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배신과 음모, 눈물과 웃음 등이 126분을 거미줄처럼 감싼다. 중간중간 남자 주인공의 회상 장면을 통해 환상적인 마술쇼를 보여주며 완급을 조절하는 연출이 수준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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