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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거진 ‘김정은 리스크’ - 북한 격변기 불확실성에 한국경제 확실한 대비를 

북한 앞날 예측 힘들어…김정일보다 더 베일에 싸인 김정은 파악 급선무 


북한의 절대 권력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했다. 후계자는 27세의 김정은(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다. 김정은이 ‘부자손(父子孫) 3대 세습’에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그를 둘러싼 정치 지형이 워낙 복잡하고 불확실해서다. 침체에 빠진 북한 경제도 김정은에게 큰 부담이다. 66년 봉건왕조 북한이 기로에 섰다.

한국 경제에는 위기일까 기회일까. ‘김정은 리스크’를 다각도로 진단했다.


2008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의 셋째 아들이 후계자로 급부상했다. 국정원과 미 CIA(중앙정보국)는 그 아들의 이름을 ‘김정운’이라고 잘못 파악했다. 국정원은 2009년 9월까지 공식·비공식 문건에 김정‘은’을 김정‘운’이라고 기록했다. “대북 정보라인이 무너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큰 논란은 없었다. “북한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대북 정보라인은 그때도 정상이 아니었다.

2011년 12월 17일 오후 12시40분.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노다 요시히토 총리를 만나고 돌아온 것은 이튿날인 18일 오후 2시30분이다. 청와대 직원들은 19일 생일을 맞은 이 대통령을 위해 깜짝 생일파티도 열었다. 그날 정오 무렵 청와대가 발칵 뒤집힐 만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중앙조선통신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12월 17일 오전 8시30분 사망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일시적인 패닉에 빠졌다. 북한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50시간 넘게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원세훈 국정원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19일 오후 TV를 보고 (김정일 사망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김 위원장 사망을 까맣게 몰랐던 한·미 양국의 대북 첩보라인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대로 북한 집권세력은 ‘체제 이너서클’에 외부 침투가 없다는 점에 안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한국과 미국의 대북 휴민트(HUMINT·인적정보망)를 크게 걱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북한 정보를 수집할 만한 휴민트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한·미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에서 다음 행동이나 언급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북한 내부정보를 제대로 수집하기 어렵다는 게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다. 물론 대북 리스크는 지금껏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가령 1996년 6월 15일 서해교전 당일 코스피 지수가 2.2% 하락했지만 다음날 바로 회복했다. 2005년 2월 11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 발표 당일에도 코스피 지수는 소폭 하락(0.2%)하는 데 그쳤다. 이번 ‘김정일 사망’ 후에도 한국 경제가 흔들리진 않았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으로 잠시 요동쳤던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강호인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증시와 외환시장의 각종 지표가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며 “지금 한국 경제에 중요한 건 대북 리스크가 아니라 유럽·미국의 경제상황”이라고 밝혔다.

당장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번엔 다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불확실성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김 위원장 애도 기간이 끝나는 12월 29일 이후 북한은 ‘격변기’에 돌입할 전망이다. 북한 정치 사상 최초로 집단지도체제가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과정에서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불똥이 남쪽으로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 후견인’으로 불리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권력이 막강하다고 하지만 그 역시 군부의 견제를 받는 인물이다.

66년 봉건왕조 기로에 설까

베일에 싸여 있어 좀처럼 성향을 파악하기 어려운 김정은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관건이다. 한국 정부는 김정은 관련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정부 공식자료인 ‘북한 주요인물(통일부)’ 책자에 실려 있는 그의 정보는 단 몇 줄에 불과하다. 당연히 그의 성향이 보수적인지, 개혁적인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한편에서는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경험을 예로 들면서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데 적극적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다른 한편에선 그를 ‘대단한 야심을 가진 공격적이고 수구적인 인물’로 평가한다. 아버지보다 핵무기에 더 집착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왕지스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김정은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핵 보유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김정은이 개혁·개방정책을 취한다면 한국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처럼 핵을 무기 삼아 위협적인 발언을 쏟아내거나 국지적 도발을 감행한다면 한국 경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갈수록 침체하는 북한경제도 변수다. 북한은 현재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2010년 경제성장률은 2009년에 이어 또 다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김정은 체제가 북한경제를 살리지 못해 66년 봉건왕조가 기로에 서면 새로운 난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현재로선 북한과 김정은의 모든 게 불확실하다.

불확실성은 공포를 부르고, 공포는 시장을 떨게 만든다. 특히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실물 경제도 덩달아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김정은 리스크’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1119호 (201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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