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이 한창이던 8월 1일, 나이지리아 뉴스사이트 P.M.News가 “날리우드(Nollywood·나이지리아의 영화산업)의 톱배우 저스터스 에시리와 세군 아린체가 런던에서 도둑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두 명의 날리우드 스타가 런던 인근 길포드시에 있는 호텔에서 귀중품을 몽땅 털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런던올림픽 문화행사 공연차 영국에 머물던 중이었다.P.M.News는 이들 스타 배우들이 잃어버린 품목까지 상세히 전했다. 에시리는 여권과 랩톱 컴퓨터, 그리고 현금과 다른 귀중품을, 아린체는 아이패드를 도난 당했다. 이들은 즉각 경찰에 신고했으나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파악됐다.그들이 묵은 호텔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P.M.News는 기사 말미에 이들을 후원한 업체의 인색함을 비난했다.“(대스타들에게) 후미진 곳에 위치한 하루19파운드(약 3만3000원)짜리 싸구려 호텔을 제공한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도하면서 아프리카 스타에 대한 푸대접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 소식은 다른 나이지리아 뉴스사이트인 ‘인포메이션 나이지리아’와 가나의 뉴스사이트 마이조이온 라인닷컴에서도 보도됐다.날리우드 스타들은 아프리카에서 할리우드 스타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물론이고 가나와 같은 주변국 언론들도 날리우드 스타의 일거수 일투족을 연예뉴스로 다룬다. 날리우드 스타들과 날리우드 영화산업의 영향력이 아프리카에서 어느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날리우드라는 단어는 미국 할리우드(Hollywood)를 본떠 만들어졌다. 1990년대부터 급성장한 날리우드는 인도의 영화산업 발리우드(Bolly wood)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영화를 생산한다. 유네스코통계연구소(UNESCOInstitute for Statistics)가 2006년 세계 9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나이지리아의 1년 영화 제작편수는 872편, 인도는 1091편, 미국은 485편인 것으로 나타났다.홈비디어 보급으로 인기나이지리아 영화산업을 해부한 다큐멘터리영화 ‘디스 이즈 날리우드(This Is Nolly wood)’에 따르면 날리우드는 홈비디오에서 잉태됐다.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1980년대말과 1990년대 초,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 라고스를 비롯한 아프리카 도시들에는 범죄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가 지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꺼려했고, 자연히 영화관에 가는 사람도 줄어들면서 극장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런 와중에 홈비디오의 보급과 함께 집에서 비디오로 볼 수 있는 수입 영화가 조금씩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늘어나는 비디오 영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직접 제작에 착수했다. 급한 대로 품질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거 캐스팅됐고, 아날로그 비디오 카메라가 동원됐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 평균 10일 정도가 소요될 정도로 작품은 신속하게 만들어졌다. 그렇게 빨리 영화를 찍다 보니 제작비용도 평균 1만5000달러(약 170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완성된 영화는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이 어려운 나이지리아 국민들을 위해, 곧바로 DVD와 비디오 테이프로 만들어져 유통됐다.영화 내용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갔다. 250여 다양한 종족의 풍습과 문화가 주된 줄거리를 형성한다. 토속과 주술신앙, 그리고 부적·유령 등이 단골로 등장한다. 많은 영화를 급하게 만들다 보니 구성은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줄거리가 엉성하고, 시나리오를 베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예술성이 뛰어나지도 않고, 할리우드 스타일의 블록버스터는 더더군다나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볼거리, 소일거리가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만 해도 여가용으로 무난했다. 시작은 초라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제작경험이 쌓이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는 비디오 영화들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일부 흥행작들은 미국이나 유럽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날리우드는 3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에도 경제적으로는 이미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스 이즈 날리우드(This Is Nollywood)’는 2007년 현재 날리우드가 수천 개의 직업을 창출하고, 한 해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산업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한다.이와 관련 위키피디아는 여러 언론 보도들을 종합해 날리우드의 산업 규모가 5억 달러에 이르며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쯤 되자 나이지리아 정부도 자국 영화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가저작권위원회와 국가영화비디오심의위원회를 만들어 날리우드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도 만들어 내고 있다.날리우드는 이제 도약을 꿈꾼다. 초창기 제작에 사용된 아날로그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에 자리를 내줬고, 현재는 HD카메라로 영화를 찍는다. 음악이나 편집 등의 작업은 모두 컴퓨터로 한다. 지금은 대략 300여제작사들이 한해 500~1000편 가량을 만들어낸다. 영화 한 편 당 평균 5만개 정도의 DVD가 팔린다. 히트작은 개당 2달러짜리 디스크가 수십 만 개까지 팔리기도 한다.날리우드는 지평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발상지인 나이지리아의 국경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다. 위성TV 채널을 타고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 날리우드 영화가 방영된다. 이로 인해 나이지리아의 인기 배우는 인근 국가인 가나와 멀리 떨어진 남부 아프리카 잠비아 국민들에까지 친근한 이웃이 되었다.날리우드는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 질러 동부 국가 케냐의 영화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케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는 대부분 나이지리아의 프로덕션에서 만든 것들이다.DVD와 비디오를 이용해 배급하는 덕분에 나이지리아 국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처음 날리우드 영화를 수입하던 케냐의 영화인들은 이제 날리우드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날리우드를 공부하고 있다. 유럽과 미주에 사는 아프리카 이주민들에게도 날리우드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살고있는 이들 디아스포라에게 날리우드 영화는 아프리카와의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디스 이즈 날리우드’는 설명한다.국제영화제에서도 주목날리우드의 힘은 아프리카 영화의 뿌리로서 국제영화제에서도 발휘되고 있다. 2010년 제 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아프리카 영화가 경쟁부문에 진출해 상까지 받은 것이다. 차드 출신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의 ‘울부짖는 남자’가 그 주인공으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면서 칸에 모인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늙어가는 남자의 내면과 맞물리는 아프리카 차드 공화국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차드 출신 감독이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도, 본상 수상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을 통틀어서는 13년 만에 다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함으로써 세계 영화 애호가들에게 아프리카 영화를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이 영화는 지난해 제 1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하룬 감독은 2008년에도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한 바 있다.이제 날리우드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속에서 아프리카의 자존심과 원형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노예와 식민지배로 점철된 굴곡의 역사를 아프리카 사람들의 손으로 복원하고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본드 에메루와는 “우리는 (날리우드 영화를 통해)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 식으로 말한다”며 “이것이 날리우드 영화 제작자와 관객들에게 동시에 어필하는 요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