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은 2월 5일 오후 그룹의 핵심 임원들과 저녁 약속을 잡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홍 사장의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홍 사장은 바로 자리를 떠났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호출이었다. 한참 후 저녁 자리로 돌아온 홍사장은 별다른 표정 없이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황당했지만 불러도 답이 없었다. 이들은 홍 사장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바로 다음날 알 수 있었다.웅진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는 2월 6일 그룹의 환경가전사업부문 계열사인 웅진코웨이 소유 지분을 전량 매각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홍 사장은 이 사실을 하루 전에야 들은 것이다. 웅진그룹 사정에 정통한 A씨는 “당시 홍준기 사장이 매각 사실을 하루전에야(윤 회장으로부터 듣고) 알았다”며 “웅진코웨이 매각 발표를 접하고 다들 깜짝 놀랐었다”고 말했다.웅진코웨이 사장도 매각 발표 하루 전 알아지난해 매출액 1조7000억원. 그룹 전체 매출의 28%를 차지하고 있는 핵심 계열사의 사장도 매각 발표 직전까지 몰랐을 만큼 윤석금 회장의 의사결정은 극비리에, 신속하게 진행됐다. 웅진코웨이는 건설업(극동건설) 침체와 태양광사업(폴리실리콘) 부진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던 웅진그룹의 캐시 카우(수익 창출원)였다. 윤석금 회장은 당시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으로 그룹의 일부 빚을 갚고 나머지는 태양광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격적인 발표와 달리 웅진코웨이 매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A씨는 “그룹 경영진이 매수자와 협상을 끝내고 매각 발표를 한줄 알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그러다 그룹의 또 다른 캐시 카우였던 웅진씽크빅마저 2분기에 적자로 돌아서고 웅진코웨이의 실적도 예상보다 나빠지자 웅진그룹이 다급해졌다. 웅진그룹은 8월 16일 웅진홀딩스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웅진코웨이 지분 30.9%를 MBK파트너스에 전량 매각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지분 매각가액은 1조2000억원이다. 절차가 완료되면 9월 중으로 매각대금을 받는다. 웅진코웨이의 경영권은 MBK파트너스로 넘어간다. 5년 후 지분을 재매수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이 있지만 경영권을 되찾을 수 있을진 미지수다. MBK파트너스는 2005년 설립 이후 HK저축은행과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등을 인수한 국내 최대 사모펀드다. 고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의 넷째 사위인 김병주(49)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웅진그룹이 웅진코웨이를 MBK파트너스에 넘긴 건 그만큼 자금압박이 심하다는 방증이다. 웅진그룹은 7월 24일에 KTB사모펀드와 웅진코웨이 매각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당시 매각방식은 좀 복잡했다. 그룹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KTB가 총6000억원을 출자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우고, SPC가 은행에서 6000억원을 추가로 빌려 총 1조2000억원에 웅진코웨이를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웅진홀딩스가 SPC에 2400억원을 출자하고 경영권을 계속 갖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KTB사모펀드가 10월까지 3600억원을 모으긴 어려웠다. 더구나 NICE신용평가에서 8월 8일에 웅진홀 딩스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한 단계 내렸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차입금 만기를 연장하는 게 어려질 수 있다.다급해진 웅진그룹은 20여일 만에 MOU를 백지화했다. 만기가 돌아오는 빚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웅진그룹의 총 차입금은 1조8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하는 차입금이 2740억원이다. 내년 3월 5000억원, 6월 6240억원을 포함해 10개월 안에 약 1조4000억원을 갚아야 한다.2007년 극동건설을 6600억원에 인수하면서 채무가 늘었는데 건설경기가 악화돼 그룹 재무구조가 나빠졌다. 그룹 실적도 좋지 않았다. 지난해 28개 계열사 중 이익을 낸 곳은 웅진코웨이·웅진씽크빅뿐이었다.이번 매각에 증권가 반응은 엇갈렸다. 김준섭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KTB사모펀드와 거래할 때 들어가는 2500억원을 아꼈다는 점에서 웅진그룹에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혁재 IBK투자증권 크레딧 담당 연구원은 “계열사 중 코웨이와 씽크빅 정도만 돈을 버는 상황에서 코웨이의 경영권까지 넘긴 건 장기적으로 그룹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건설과 태양광사업이 살아나지 않으면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캐시 카우 사라져 더 큰 문제 될 수도현재 웅진그룹은 극동건설과 웅진폴리실리콘이 장기간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극동건설은 지난해 2162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단기 차입금이 1년 새 751억원, 장기 차입금이 466억원 늘었다.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 가운데 일부는 극동건설을 살리는데 들어갈 전망이다. 웅진그룹 관계자는 “현재 대주주단도 건설업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매각 대금이 들어오면 재무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웅진그룹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웅진그룹의 한 계열사 사장은 직원 조회에서 ‘전체 직원의 3분의 1을 구조조정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열사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적인 방침이라는 것이다. 웅진폴리실리콘 매각설도 돌고 있다. 웅진 측은 8월 23일 조회공시 답변에서 “매각을 검토하고 있으나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지만 매각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선경 대신증권 연구원은 “웅진코웨이 매각만으로는 근원적인 (재무개선) 해결과 더 이상의 공격적인 투자가 어렵다”며 “일부 계열사를 더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이혁재 연구원도 “극동건설은 덩치가 큰데다 업황과 전망이 안 좋아서 매물로 나와도 팔릴 가능성이 작다”며 “폴리실리콘과 건설 둘 다가져가는 게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폴리실리콘을 처분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웅진그룹 관계자는 “웅진폴리실리콘 매각 여부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면서 “매각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으나 반드시 선택하겠다는 뜻은 아니며 어떤 방향이 좋을지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