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수출 가격 경쟁력 떨어진 한국 산업 밑천 드러난다 

일본의 ‘폭탄 완화’ 쇼크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정지홍 RHT 대표
엔저 적어도 한두 해 지속 전망 … 한국 수출 타격 불가피

▎엔화 약세로 국내 자동차 업계는 수출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현대·기아자동차 수출용 차량이 경기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모습.



“삼성전자·LG전자가 일본의 소니·엘피다를 따라 잡을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환율 덕을 뺄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 엔고가 지속되지 않았다면, 과연 한국의 전자산업이 일본을 제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볼 때죠.” 삼성전자 임원 출신의 말이다. 그는 “그동안 한국 경제가 엔고의 열매를 따 먹었는데, 앞으로 엔저가 장기화하면 우리 기업의 밑천(경쟁력)이 드러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무라이가 뽑은 엔저라는 칼이 한국 경제를 위협한다. 외환시장의 일시적 현상이 아닐 것 같다.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엔저 현상이 적어도 한두 해는 지속할 것으로 본다.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방향을 정하면 보통 한두 해는 지속되는데다, 엔화를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다.

일본은행은 “2년 내에 물가를 2% 올린다”는 초강력 양적 완화 조치를 4월 4일 발표했다. 지난해 말 기준 138조엔이던 화폐 공급 총량을 연 60조~70조엔 늘려 내년 말 270조엔(약 3210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주요 선진국도 자국 이익에 따라 엔저를 용인·묵인한다.

세계에 파는 물건이 일본과 많이 겹치는 우리나라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 환율 전문가는 “도요타와 현대자동차의 제품 가격이 비슷할 때 미국 소비자가 어떤 차를 선택할지 생각한다면 앞으로 엔저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주식시장은 양국의 미래를 다르게 보는 듯하다. 증시는 미래의 경기 전망을 반영한다. 일본의 엔저가 시작된 이후 일본 니케이지수는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55.3% 뛰었다. 그 사이 한국 코스피 지수는 0.3% 하락했다. 증시가 한국 기업의 실적 악화, 일본 기업의 부활에 베팅했다고 볼 수 있다.

엔화 대비 원화 강세 이어질 듯

한국 입장에서 엔저는 통제 불가능 변수다. 정부 차원에서 뾰족한 대책이 없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윤전기를 돌려 원화 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중앙은행 전쟁’으로도 불리는 최근 환율 전쟁에서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나 유럽중앙은행(ECB)·일본은행(BOJ) 같은 초강력 양적 완화 정책을 펴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한국은행 고민도 깊어졌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올 1월 초 “큰 폭의 엔화 가치 하락 등으로 환율 변동성이 확대하면 스무딩 오퍼레이션(환율 미세조정)과 외환 건전성 조치 등으로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일종의 구두 개입이었다. 하지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월과 3월에 금리를 동결한 데 이어 4월 11일에도 시장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를 2.75%로 동결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엔화가 안정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환율은 그 자체가 환율 변동 요인이다.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경상수지가 늘어 중장기적으로 환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엔·달러 환율이 상승(엔화 약세)해 일본 수출 기업이 돈을 잘 벌고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환율이 하락(엔화 강세)해 경기가 진정된다.

이를 ‘환율의 경기 자동조절 기능’ 또는 ‘경기자동 안정화 효과’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처럼 선진국이 양적 완화정책을 빌미로 돈을 무차별 뿌리면 이런 시장 메커니즘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더 깊은 고민은 올 들어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데도(원·달러 환율 상승), 엔화 대비 원화 가치는 강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보다 엔화 가치가 더 빠르게 내려가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외환 시장에 개입할 여지를 남기고 있지만 ‘엔화 대비 원화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정부와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미국의 양적 완화 능가하는 ‘폭탄 완화’

일본은 1991년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유례없는 장기 불황을 겪었다. 1991년 이후 지난해까지 일본의 연 평균 경제성장률은 1%도 채 되지 않았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되찾기 위한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무제한 풀겠다”며 아베 신조 총리가 총대를 맸다. 지금까지 없던 초강력 양적 완화로 내부적으로 장기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고, 외부적으로는 엔저를 유도해 수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아베 총리가 재정·통화 확대를 골자로 한 아베노믹스를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아베가 첫 총리를 맡았던 2006년에도 그는 강력한 재정 확대 정책을 폈지만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아베 총리 정책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가 물러나고 ‘통화 마피아’라는 별명을 가진 구로다 하루히코가 새 수장이 되면서다.

구로다 총재는 예상을 뛰어넘는 초강력 양적 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4월 4일 구로다 총재는 “물가 상승률 2% 달성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스스로 ‘차원이 다른 금융정책’이라고 할 만큼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2년 내에 채권매입과 본원통화를 두 배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른바 ‘2-2-2 조치’다. 일본의 세 배 경제 규모를 가진 미국의 양적완화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0.5% 수준인데, 일본은 1.5%다.

또한 미국 양적 완화가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사들이는 것에 한정했지만 일본의 양적 완화는 자산 매입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필요하면 언제든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이번 양적 양화가 ‘폭탄 완화’로 불리는 이유다. 이로써 일본 재정 악화와 환율전쟁 초래 등을 이유로 아베노믹스가 실현 불가능하거나 그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초기의 전망은 완전히 시들게 됐다.

엔저 현상은 언제까지 갈까.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일단 일본 내에서 아베노믹스가 지지를 받는다. 증시가 급등하고 경기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지난해 12월 26일 출범 당시 60% 중반이었던 아베 내각 지지율은 최근 70% 전후로 올랐다. 일부 수출 국가와 신흥국이 반발하지만, 주요 선진국이 일본의 양적 완화 정책을 용인하는 것도 엔저 장기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아베 총리의 ‘윤전기’ 발언 당시만 해도 일본의 통화정책이 “이웃나라를 걸인으로 만드는 정책”이라고 비난하던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일본은행의 ‘2-2-2 조치’에 대해 “글로벌 경제성장을 부추길 것”이라며 공개 지지에 나섰다.

엔저는 일본은행의 실질적인 조치, 그리고 국내외 지지와 용인으로 인해 피할 수 없는 ‘팩트’가 됐다. 4월 11일 엔·달러 환율은 장중 달러당 99.8엔까지 올랐다. 2009년 4월 이후 최고치다. 물론 엔화만 약세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같은 날 원·달러 환율은 1129원. 최근 석 달 사이 달러 대비 원화 값은 7.5% 떨어졌다.

하지만, 엔화 가치 하락이 워낙 가파르다 보니 엔화 대비 원화 강세는 지속된다. 지난해 11월 17일, 아베 총리의 윤전기 발언이 나온 날 100엔 당 1338원 하던 원·엔 환율은 4월 11일 1131원으로 약 15% 하락했다(원화 가치 약 15% 상승). 2008년 9월 이후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엔 환율은 한국과 일본에 의해서 바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일본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정해진 후에 환산된다. 풀어 말하면 한국 돈 1000원으로 1달러를 살 수 있는데, 1달러로 일본 돈을 100엔 살 수 있다는 것이 먼저 정해지면, 원·엔 환율은 1000원당 100엔이 된다.




1차 엔저 때와 유사한 상황

‘엔화 대비 원화 강세’는 계속될까. 우선 이미 엔화가 충분히 하락한 것인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이에 앞서 지난 1년간 한·미·일 3개국 통화의 환율 변동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하반기까지 하락하다가 북핵 리스크와 미국 안전자산 선호 수요,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로 다시 상승했다. 정리하면, 지난 1년간 원·달러 환율은 1.05% 하락했다. 엔·달러 환율은 22.43% 상승했다. 원·엔 환율은 19.09% 하락했다. 그동안의 원·엔 환율은 원화 강세보다는 엔화 약세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환율 전문가들의 전망을 종합해 보면, 향후 원·달러 환율은 하락(원화 강세)하고 엔·달러 환율은 100엔 선에서 작은 변동폭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똑같은 양의 한국 돈으로 더 많은 엔화를 살 수 있음으로 원화 대비 엔화 가치는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현재의 양적 완화를 지속할 동안, 일시적인 달러 강세의 원인이 해소되면 원·엔 환율은 상승보다는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국면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80년 이후 ‘엔저-원고’가 동시에 진행된 시기는 1988년 중순~1990년 중순(1차 엔저)과 2004년 말~2007년 중순(2차 엔저) 두 차례다. 1차 엔저 당시 엔화는 일본 경제 버블 붕괴와 경상수지 흑자 축소 등으로 약세로 전환했다. 1987년 엔·달러 평균 환율은 1달러 당 123.4엔이었다가 1989년엔 144엔, 1990년에 134.6엔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강세로 전환했다.

1987년 1달러 당 792.3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1989년 679.6원으로 하락했다. 1989년 본격화된 엔화 약세와 원화의 대 엔화 강세로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증가세로 전환했다. 세계 경제도 나빠 우리나라 성장과 수출, 경상수지 모두 악화됐다. 3저(저유가·저달러·저금리) 호황으로 1988년 경제성장률 11.7%, 수출증가율 28.4%을 기록한 우리나라는 1990년에는 수출증가율이 4.2%로 떨어졌다.

2차 엔저 때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 엔화가 약세를 보인 것은 일본이 제로금리 상태를 유지했을 때 미국이 정책금리를 대폭 올리면서 일본에 있던 돈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비해 원화는 외환위기를 무난히 극복하고 양호한 경제 여건을 바탕으로 강세 기조를 보였다.

환율 여건은 나빴지만 세계 경제가 호조를 보인 것이 1차 엔저 때와 달랐다. 당시 한국은 성장률·수출·경상수지 모두 선전했다. 기획재정부 산업경제과 윤성욱 과장은 “세계 경제 둔화 속에서 엔화 약세, 원화 강세가 동시에 진행되고 우리 수출과 성장세가 둔화되는 최근 상황은 과거 1차 엔저 때와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급속히 이뤄진 엔저로 고환율이라는 가격 경쟁력이 사라지면 한국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달러에 대한 원화 강세와 엔화에 대한 원화 강세의 영향을 구분해 보면, 엔저의 영향이 한국 경제에 보다 직접적이고 강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 달러의 약세는 채산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지만, 한국과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 엔화의 약세는 채산성뿐만 아니라 수출 자체에 대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직접적이고 심각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자율변동 환율제도를 도입한 1998년 1월 이후 원·달러 환율이 1% 하락(원화 강세)할 때 수출은 단기적으로 3개월 후 최대 0.39% 줄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통계적으로 특별한 변동이 없었다. 우리나라 수출이 환율 하락의 충격에서 비교적 빨리 회복됐다는 뜻이다. 반면, 엔화 환율(엔·달러)이 1% 상승(엔화 약세)하면 우리나라 수출은 7개월 후 0.73% 하락했다. 엔화 약세가 단기적으로 우리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다만, 무역수지는 수출과 수입 모두 감소하기 때문에 큰 변동은 없었다.

달러보다 엔이 밉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산업구조가 유사한 무역경쟁국이다. 동시에 세번째로 규모가 큰 무역상대국이다. 엔화 약세의 폭이 크고, 세계 경제 전체가 저성장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분간 수출 감소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기업들은 수출 가격을 인하하거나 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다. 그동안 ‘일본 제품보다 싸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 우리 기업들로서는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엔화 약세가 7~8개월째 이어지면서 일부 업종에서는 일본 기업의 ‘가격 후려치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 중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 기업들의 원·엔 환율 손익분기점은 100엔 당 1185.2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환율이 1132.3원(4월 11일)이니 이미 적자구조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이 올해 사업계획을 세울 때 예상했던 환율이 1266.9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근심이 깊어질 만하다.

원·엔 환율이 10% 하락할 경우 설문에 응답한 기업의 수출액은 평균 2.4%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비금속광물(3.8%), 전자·통신장비(3.7%), 기계·전자장비(2.9%) 등의 업종에서 감소폭이 컸다. 전경련 관계자는 “채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쳐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영업이익률이 1.1% 가량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민간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니 일종의 엄살이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위기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의 영향은 산업별로 달리 나타난다. 기관별로 예측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철강·기계·자동차 산업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은 자동차·철강·가전·섬유 4개 산업이 엔화 약세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생산 대비 수출 비중이 높고, 주력 수출시장과 경쟁 품목이 일본 기업과 겹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과 유럽·중동 등지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자동차는 소형차 수출에서 특히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 생산하는 중형차와 달리 소형차는 대부분 수출을 통해 판매되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소형차는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커 가격경쟁력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일본 기업에 비해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겨뤄 온 대형차 역시 가격격차가 줄어들면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철강은 판재류와 강관 등 상당수 제품에서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다. 경기 부진으로 국내 철강업체들이 수출 확대를 노리는 상황에서 가격경쟁력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디지털 TV 등 경쟁 제품군이 유사한 가전의 경우도 엔화 약세가 장기화하면 가격 인하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피해 클 듯

일본에 비해 경쟁력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정보통신기기·디스플레이·반도체 등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출 비중은 크지만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거나 경쟁 제품군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소재·장비를 더 싸게 수입할 수 있으니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휴대전화(스마트폰 포함)나 태블릿PC 등 정보통신기기 산업은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기업에 월등히 앞서 있다.

디스플레이는 대부분의 일본 기업이 생산을 포기해 경쟁 관계가 약화한데다 양국 간 수출입 규모도 크게 줄어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역시 D램 시장에서의 경쟁은 사실상 끝났다. 다만 반도체는 대부분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엔화 약세에 따른 원고의 영향으로 채산성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조선은 벌크선 중심인 일본과 달리 우리 기업의 주력은 LNG선이나 해양플랜트와 같은 고부가가치선이라 엔화 약세의 영향이 미미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산업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수출은 줄어들 것이란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4월 5일 기준으로 96.4엔(4월 5일) 수준인 엔·달러 환율이 100엔이 되면 우리나라 총 수출은 3.4%, 110엔이 되면 11.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연구원 역시 원·엔 환율이 1% 하락하면 총수출이 0.1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달리 한국은행은 최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4월)에서 엔화 약세가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과거보다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그 근거로 해외 생산체계의 확산과 기업의 환위험 관리 강화를 들었다. 또 우리나라 수출시장이 다변화되고 주력 수출품목의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 등 비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엔화 약세에 따른 리스크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윤성욱 과장 역시 “한국 제품의 브랜드와 품질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환율 변동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에 비해 축소됐다”며 “대일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의 수입 단가 하락으로 완제품 수출 경쟁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비가격 경쟁력이 대기업에 비해 떨어지고 자체적인 환리스크 관리가 어려운 중소기업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H사 대표는 “한국 금형 가격이 일본에 비해 15~20% 경쟁력이 있었지만 지난해 6월 이후 빠르게 엔저가 진행되면서 일본에 시장을 뺏길 판”이라며 “60억원 규모의 수출이 예정돼 있었지만 단가를 20% 낮춰 달라는 요구에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대기업들이 엔저로

1184호 (201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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